소설리스트

〈 150화 〉여신강림(1) (150/218)



〈 150화 〉여신강림(1)

여신 강림.

셰이가 어느 정도 회복한 후 모인 우리가 셰이의 안부 다음으로 언급한 화제였다. 원래는 그녀가 회복되는 대로 여관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조만간 유스티티아님이 셰이의 몸에 강림하려 하신다니 수도원에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크나큰 영광입니다, 셰이. 절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네, 언니.”

“와, 살아서 여신이 강림하는  보게 될 줄이야…! 엄청난 이야기잖아!”

여신을 모시는 수녀로서 카야는 셰이를 축하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듯 했고, 일루미나는 특종을 단독으로 접한 기자처럼 눈을 반짝였다.

“1초가 될지, 1분이 될지는 몰라요. 여신님께서 강림하신 적이 손에 꼽는다 하셨으니까요.”

“셰이가 그만큼 대단한 성전사라는 거지?”

“그, 그건 아니지만… 우리 용사대가 대단한 거예요. 진심으로 던전을 뿌리 뽑으려 하는 용사대가, 비교적 단시간에 이렇게 성과를 내는 용사대가 우리뿐이라서 그럴 거예요.”

“설령 여신님의 뜻이 그렇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않아도 됩니다, 셰이. 당신은 최고의 성전사이며 최고의 동료입니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카야 언니….”

“아주 좋은 겹경사입니다. 셰이가 무사히 회복하는 것도 모자라 유스티티아 여신님을 받아들일 예정이라니. 마치 우리 용사대의 앞길에 빛이 내려오는 같지 않습니까?”

똑똑-

- 세스티아에요.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끝을 모르던 카야의 축하는 도중에 세스티아가 들어오면서 잠시 끊겼다. 인사를 마친 그녀가 셰이를 보며 말했다.

“라엘라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강림체인 셰이성전사님을 최선을 다해서 도우라고. 육체와 정신 둘 모두가 최상의 상태일  유스티티아님께서 강림해야셰이 성전사님께도 부담이 최소화될 거라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니 바라시는  있으면 부담 없이 말씀하세요. 들어드릴 있는 것도, 들어드리기 힘든 것도 최대한 다 들어드릴 테니까요.”

“딱히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요, 세스티아님.”

“혹시 모르니까요. 여신님께서 강림하신다니,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 조심할 수밖에 없다는 점 이해해주세요. 만일 셰이님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겨서 강림이 어긋나기라도 한다면….”

“알았어. 원하는  있으면 바로 말할게. 편의를 봐줘서 고마워.”

“후후, 저보다는 라엘라님께 더 고마워해주세요.”

“그럴게.”

할 말은 거기서 끝이었는지 세스티아가 곧바로 방을 나갔다. 나가기 직전 나랑 잠깐 눈이 마주친  같았지만 문이 닫혔다.

“언제 강림하실 거라는 이야기는?”

“그때 이후로 아직 말씀은 없으셨어요. 거의 회복했고, 또 조만간이라 했으니 며칠 이내이지 않을까요?”

“그래….”

사실 라엘라님을 비롯해 이 세계의 신들에 대한 지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식 설정에도 그렇게 많이 할당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 던전을 돌파하는  신이 아니라 용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용사들 전원이 성직자였다면  모를까.

그래도 자애와 관용의 여신인 라엘라님이나 빛과 정의의 여신인 유스티티아님이 악신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라엘라님의 신도 출신 용사는 대부분 치유 수녀와 전투 수녀였고, 유스티티아님의 신도 출신 용사는 대부분 성전사였다. 악한 사람이나 이단과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면 귀의 자체가 안 됐을 정도라고 하니까. 실제로 여기서도 그랬고.

직접 대화를 한 적은 없었지만 동료들의 로자리오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분들이 우릴 지켜보고 있고 우릴 조금이나마 돕고 있다는 걸 알아본 적 있었다. 무엇보다 카야가, 셰이가 따르는 신들이 나쁠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강림 그 자체였다.

2구역 보스전을 치르면서 ‘가장 기나긴 공포의 편린’이라는 덩어리를 잠깐 목도했을 때 나라는 존재가 해체되고 뭉개지고 뒤집히고 반전되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만큼 ‘격’의 차이가  존재를 마주한다는  크나큰 부담이 오는 것인데, 아무리 선신이라 할지라도 유스티티아님의 격 또한 우리 같은 필멸자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을 게 뻔했다. 근데그분을 목도하는 것도 아니고 몸에 담는다는 것이, 걱정이  될 수가 없었다.

‘근데 셰이의 의지가 너무 강력하단 말이지….’

신체 능력 및 신성력의 효율 상승.

여신님이 직접 말한 예상 효과는 둘째 치고, 신도 입장에서야 신이 자신의 몸에 강림하려는  영광된 일일 것이다.

그래도.

만약 강림으로 인해 셰이의 존재 그 자체가 변하게 된다면. 되돌릴 수 없는 부작용이나 상처가 생긴다면.

설령 그 상대가 신이라 할지라도, 나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다시 사흘이 지났다.

명상과 육체 단련을 반복하던 셰이는 몸을 깨끗이 한다며 오랫동안 욕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유스티티아님이  내려오실지도 모른다 했다.

“목욕재계?”

“아무래도 몸을 최대한 깨끗하게 하는 게 여신님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니까요. 잠시나마 필멸자의몸으로 들어오시는 건데, 본래의 몸보다 여러모로 불편하시지 않겠어요? 그러니 깨끗한 신체와 잡생각 없는 정신으로 여신님을 맞이하려는 거예요.  안 되는 강림의 역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났던 절차거든요.”

“정말로, 셰이에게 이상은 없겠지?”

“그럼요. 걱정 마세요. 셰이 성전사님은 헨드릭님의 여자이기 이전에 유스티티아님의 딸이니까요. 자기 딸을 잘못되게 하고 싶은 어머니는 없지 않겠어요? 특히나 어머니와 딸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말이에요.”

“그런가….”

“네. 걱정하시는 걸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믿어보시면 어떨까요? 그 편이 유스티티아님이랑 셰이 성전사님의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그러네. 너무 걱정만 해도 해결되는 건 없겠지.”

세스티아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카야랑 일루미나는?”

“카야자매님은 강림처로 예정된 장소를 정리하고 계시고 일루미나님은 역사에 길이 남는 이야기를 앞두고 악상을 미리 정리해야 한다나…?”

“일루미나도 참.”

“헨드릭님? 어디 가세요?”

“카야 도와주려고. 계속 여기 있으면 부정 탈 수도 있잖아?”

“셰이 성전사님은헨드릭님이 여기 계시는 걸 좋아하실 텐데요.”

“혹시 모르니까. 그럼 좀 이따가 다시 보자. 셰이  봐줘.”

“네, 헨드릭님.”

몇 시간 후로 바짝 다가온 여신강림. 불안함을 다소 떨쳐낸 나는 이걸 이벤트 중 하나라고 여기기로 했다. 좋은 의도처럼 대박 이벤트가 될지, 아니면 쓰레기 이벤트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결과가 어찌되든 이번 일이 우리목표의 성패를 가르는 최중요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해보였다.

**


‘아이야.’

“네, 여신님.”

‘난 준비됐는데.’

“저도 준비됐어요, 여신님. 언제든지… 와주세요.”

‘마지막으로 말할게. 절대 무리하면 안 돼. 주도권을 내가 쥐긴 하겠지만, 그래도 네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내가 제때 네 몸을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면 최악의 경우엔 어떻게 된다고 했지?’

“여신님께서 제 신체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갇히시거나, 아니면 제 몸이 붕괴되고 여신님께서 강제로 튕겨나가신다고 하셨어요.”

‘그래. 어느 쪽이든 너나 나나 좋은 결말은 아니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자. 알았지?’

“네, 여신님.”

‘그럼 시작하자.지금부터 잡생각은 모조리 비우고,  강하게 떠올려. 계속해서.’

태어난 이래 이보다 더 깨끗이 씻은 적이 없을 정도로 꼼꼼히 씻은 셰이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드러운 융단 위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양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만면에 빛과 공정한 정의를. 빛이 향하지 않는 곳은 어디에도 없으며, 정의를 판단하는 천칭엔 눈이 달려있지 않도다. 판단은 신중하게, 심판은 가차 없이. 그 모든 행동에 빛이 있나니….”

이 날을 위해 요 사흘 동안 셰이는 사람과의 접촉도최소화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하면서 쉽게 몰두할 수 있었다.

‘유스티티아님. 유스티티아님. 유스티티아님.’

붙임성 있는 일루미나 언니도, 무뚝뚝하지만 상냥한 카야 언니도.

던전을 돌파하기 위해 결성된 용사대, HAT도.

증오하는 공포 숭배자들의 근본이라  수 있는 던전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는 일생의 목표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의지하는 사람인 헨드릭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어야 했다.

경애하는 여신님을 받아들이기 위해, 어떠한 불순물도 있어서는 아니했다. 이미 끔찍하게 변해버린 피부는 어찌하진 못하더라도, 땀을 비롯한 오물 정도는. 순수하게 여신님만을 떠올리는 것 정도는 해야 했다.

모든 것은 던전의 멸망을 위해.
모든 것은 대장님, 유진을 위해.

역설적으로 그들을 지워나갔다.

셰이의 마음속에서 그녀를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하나씩 지워지자 그녀의 몸에서 점점 은빛 광채가 발하기 시작했다.

‘유스티티아님, 유스티티아님, 유스티티아님.’

제일 먼저 날개뼈 근처까지 내려오던 찬란한 금발이 어깨 부근까지로 줄어들었다. 동시에 정수리부터 머리카락색이 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변화는 그게 시작이었다.

 그래도 키가 큰 편이었던 셰이의 키가 더 커졌다. 상체와 하체 모두 조금씩 더 날렵해지고 길쭉해졌다. 얇아졌지만 절대 왜소하거나 여리여리하게 보이지 않았다. 근골의 밀도는 더 높아졌다. 몸의 변화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얼굴이 변했다. 눈초리가 약간 위로 올라갔으며, 눈동자와 눈썹 또한 차가운 은색으로 변했다. 코와 입이 조금씩 작아졌고 얼굴선이 더욱 날렵해졌다.

얼굴의 변화까지 끝이 나자 왼쪽 어깨 위엔 은빛 천칭이, 오른쪽 어깨 위엔 장검이 둥둥 떠올랐다.


“….”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서자, 몸을 두르고 있던 은빛 광채가 사라졌다. 상체는 품이 짧은, 하체는 품이 긴 드레스가 둘러져있었다.

빛과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가 강림했다.

“지상은 진짜 오랜만이네.”

샤르륵-

“들어오지 않고 뭐하고 있어.”

왼손에 천칭을, 오른손에 장검을 집어든 셰이, 아니 유스티티아가 문을 향해 중얼거렸다. 그러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헨드릭 일행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헨드릭을 비롯한 필멸자들은 2-10에서 봤던 ‘그 덩어리’와는 다른 의미에서 유스티티아를 직시할 수 없었다.

자박자박-

맨발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곧 끊겼다. 헨드릭은 자기 앞에 보이는 하얀 발에 몸서리쳤다.

“맹랑한 아이야.”

“….”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야?”

“아, 아닙니다. 유스티티아님.”

“그래. 웬만하면 한 번에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생각보다 이 아이가 날 잘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럴  있는 시간이 무한대는 아니니까.”

“예, 예!”

헨드릭은 극한의 긴장감에 목소리를 떨면서도, 필멸자를 위해 격을 최대한 낮춘   정도인데 강림체인 셰이는 대체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건지 걱정했다.

“아이야.”

“예, 유스티티아님!”

“지상에 내려오면  번 듣고 싶은  있었는데.”

“예?”

헨드릭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여전히 유스티티아의 발등에 시선을 고정하며 되물었다.

“그때처럼 장모님이라고 불러보지 않을래?”

“…………예?”

기겁한 헨드릭이 무심코 격의 차이도 무시한 채 고갤 들어올렸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유스티티아가 씨익 웃고 있었다.

‘은색, 고양이상… 생각보다 동상이랑 많이  닮았….’

헨드릭은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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