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7화 〉후유증(1) (147/218)



〈 147화 〉후유증(1)

“몸에 이상은 없어요. 자잘한 건 방금 치유했고요. 하지만… 정신 쪽은, 상당히 정양이 필요해보여요.”

“…그렇군. 고마워. 여전히 바쁠 텐데, 최우선적으로 봐줘서.”

“아니에요. 엄청바쁠 정도까진 아니에요. 설령 바쁘더라도 헨드릭님 부탁은 바로 들어드리고 싶은 걸요.”

세일럼으로 귀환한 우리는 곧장 라엘라님 수도원으로 직행했다. 흉흉한 거지꼴로 쳐들어가는 모양새라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라엘라님이 누구신가. 자애와 관용의 여신이시지 않은가. 그분을 따르는 수녀들은 우리의 행색에 눈치를 주기보단 내게 안겨있는 셰이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그들의 배려 하에 우린 세스티아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치유뿐만이 아니라 휴식 공간까지 배정받았다. 지금은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세스티아와 단 둘이서 얌전히 누워있는 셰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환하자마자 곧장 여기로 달려와서 물어보는 건데, 여긴 얼마나 지났어?”

“두 달 정도 흐른  같아요.”

“우린 겨우 며칠 있었던 거 같은데 말이지… 그동안 별  없었어?”

“네. 새로 충원된 자매님들의 적응도 얼추 끝났고 조사도 일단락되어가고 있어요. 만약 다른 지부였으면 진즉 지원 삭감일 텐데, 세일럼 지부라서 숨통이 막힐 일은 없다는 게 다행이랄까요?”

“어….”

“후훗.”

던전은 애초에 입구만 세일럼에 위치한 별개의 세계였고, 때문에 지상과 시간비율이 다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질 줄은 몰랐다. 1구역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더 큰 격차였다. 어쩐지 세스티아가 생각보다  격하게 반가워하더라니.

‘그럼 3구역에 들어가면  심해지겠네. 한 번도 안 가본 4구역은 또 어떨지….’

“무슨 생각 하세요? 미간을 이렇게 찌푸리면서까지.”

“아냐. 아무 것도.”

내 미간을 검지로 부드럽게 문대는 세스티아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내가 표정을 찌푸린  걱정이  건가. 카야나 셰이도 그러긴 하겠지만, 뭔가 세스티아는그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뭔가 간질간질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왜요?”

“아니.”

“흐응, 맨날 아니라고만 하시고.”

그렇다고 그런 말을 솔직하게 내뱉긴  그래서 괜히 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 하루나 이틀 정도까진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만큼 고갈이 많이  상태였으니까요.”

“….”

“그러니 여긴 제게 맡기고 헨드릭님도 쉬세요. 다른 분들도 쉬고 계시잖아요?”

“으음, 아예 여기서 쉬고 싶은데.”

“이 방에 여분의 침대랑 소파도 없잖아요. 고집부리지 마시고 휴식을 취하세요. 던전에서 갓 돌아왔잖아요. 네?”

세스티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왠지 죄 짓는 기분이 들 거 같아서 얌전히 수긍했다. 마지막으로 셰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방을 나서려했는데….

“우웁….”

“세스티아?”

“아, 아아니에요. 아무것도. 우웁….”

“갑자기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어?”

급격히 창백해진 세스티아가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그녀였고, 또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이 아니었기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괘, 괜찮으니까요. 정말로. 그러니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우웁!!”

“세스티아!”


**


“정말로, 정말로 괜찮으니까요. 어제 뭘 좀 잘못 먹었나봐요.”

“체한 거라고? 갑자기?”

“마, 맞아요. 체했나봐요.”

헨드릭은 제정신을  차리는 세스티아를 부축해 그녀의 침대에 눕혀주었다. 물을 원하는 거 같아서 갖다 주었는데바로 토해버렸다. 영문 모를 일에 걱정이 됐지만, 세스티아는 한사코 그의 간호를 거절했다.

“치유하면서 부작용이 왔다든가 대가 같은  치르는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요? 라엘라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그냥 정말로  몸 상태가 별로여서 그랬나봐요. 바쁘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고…  거 아니니까 제 걱정은 마시고 얼른 휴식을 취해주세요. 얼른.”

“…알았어.  쉬고 또  테니까.”

“저보다는 셰이 성전사님에게 가야죠.”

“아무튼.”

머뭇거리는 헨드릭의 눈에 걱정이서려있었다. 그걸 포착한 세스티아는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더 그를 붙들고 싶었지만 그건 아니 될 일이었다. 저 자상한 표정과 목소리에 더 노출되면, 그에게 달라붙을 것 같았으니까. 그건 그를 매우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코르디아.”


헨드릭이 완전히 나간 후, 세스티아는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복부를 쓰다듬었다.

“이번엔 진심을 다해서 사랑해줄게요. 스승이 아닌 엄마로서. 그래도… 미리 미안해요. 아빠 되는 사람은, 어쩌면 아빠로서는 영영 못 볼지도 몰라요.”

늘씬하면서도 살짝 살집이 있는 배를 쓰다듬던 손이 살짝 떨렸다. 그녀의 표정도 우울해졌다. 하지만 금세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상냥하고 자상한 그분이 코르디아를 알게 된다면 분명 책임감을 느끼겠지요. 그건 너무 기쁘고 행복한 일이지만… 가뜩이나 고통의 시련으로 가득한 그분의 길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아요. 미안해요, 코르디아. 이런 엄마라서. 코르디아는 물론 방해물이 아니에요.”

세스티아는 로자리오를 쥐었다.

“라엘라님.  못난 딸을 부디 가엾게 여겨주세요… 우웁!”


**

[공포의 눈이 죽었습니다.]
[보상 : 60금화, 만화경, 귀환석, 정체불명의 파편]

[2구역 클리어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120금화, 위대한 발걸음]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전원 귀환 보상이 추가로 주어집니다.]
[보상 : 180금화, 적응형 랜덤 스킬북(2), 정체불명의 우상]

[아무도 잠식당하지 않았습니다.]
[무사귀환 보상이 추가로 주어집니다.]
[보상 : 180금화, 긍정적 특징 발현  고정]

가만히 누워서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1구역보다 훨씬 어려워진 만큼 보상, 특히 금화가 많이 뛰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제일 마지막 보상인 ‘무사귀환 보상’이었다. 노 데스보상은 당연히 예상했지만, 잠식당한 이가 없다고 보상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더 롱 테러에선 없던 일이었으니까.

‘이것도 기쁜 오산인가.’

정체불명의 파편이나 정체불명의 우상 같은, 이름부터가 찝찝하고 불길한 보상도 있었지만 긍정적 특징 발현 및 고정이라는 기분 좋은 보상도 있었다. 심지어 1회도 아니고 모든 이에게 1회였다. 마음 같아선 당장 쓰고 싶었지만 셰이가 마음에걸려서 보류하고 있었다. 이번 2구역 보스전에서의 수훈갑은 누가 뭐라해도 셰이였고, 제일 크게 다친 사람도 셰이였는데 그녀 빼고 보상을 개봉하는 건 뭔가  많이 아니지 않은가. 역지사지로 생각해봐도 이게 맞았다.

“셰이… 세스티아….”

누구보다도 심하게 정신적 고통을 받은 셰이와 영문 모를 구역질을 호소하던 세스티아.그들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눈을 붙였다.

밤을 새서라도 간호하려던 당초의 마음과는 다르게, 그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너무나 꿀같은 잠이었다.


**


“얘.”

“….”

“아이야.”

“…….”

“야.”

“마, 말도,  돼….”

한편 모든 이들이 걱정하고 있는 셰이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헨드릭과 세스티아가 방을 나간 직후부터 꿈같은 것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꿈은 인생 살면서 가장 선명하고 또 신성했다.

무려 유스티티아 여신이 아주 또렷하게 등장했으니까.

다짜고짜 꿈속에 나타나 얼굴을 들이밀며 친근하게 말을 건 여신에게, 셰이가 가까스로 꿈이라는 걸 인지하고 중얼거렸지만….

“가짜 아니야.”

“허억. 서, 설마. 제가 유스티티아님의 전당에 입성하기라도. 아니, 아. 영광스러운 일이긴 한데, 그래도 아직 죽기엔 너무 이른 게 아닌지.”

“너 안 죽었어.”

“네? 그, 그럼 대체.”

“일단 진정해봐.”

너무나 생생해서 꿈이라 생각하려 했는데, 꿈이 아니란다. 그래서 죽어서 뵙는  줄 알았는데 죽은 것도 아니란다. 셰이는 혼란스러웠지만 경애하는 여신이 진정하라 했으니 진정하려 했다. 그러자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역시 꿈인 거 같은데… 셰이가 속으로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면 네 정신세계에 내가 무단으로 침입한 거나 다름없어. 아무리 네가 내 전사라곤 하지만 경우가 없는 짓이고,네게 악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너한텐 나와의 만남 자체가 꿈의 형태로 느껴질 거야. 익숙하면서도 네게 무리가 가지 않는 형태지.”

“아아… 그, 그럼. 이게, 설마. 계시? 제게 계시를 내리시려는 거예요?”

“아니. 그럴 거였으면 목소리만 냈지 뭐하러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쳤겠어. 그나저나 말  끊지 말고 들어줄래?”

“죄, 죄송합니다! 유스티티아님!”

“어휴.”

유스티티아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지켜볼 땐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하기야, 내 신돈데 어쩔  없나.’

유스티티아가 손짓을 하자 테이블과 한 쌍의 의자가 생겼다. 그리곤 빳빳한 자세로 허리를 숙이고 있던 셰이를 손수 의자에 앉혔다. 셰이는  둘 바를 몰라했다. 감히 여신님과 같은 눈높이에 있을 수 없다며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앉으려했다.

“그만. 시간 낭비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 네가  어느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네가 날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는 지가 훨씬  중요해. 공경한다며 무릎 꿇고 고갤 조아려도 속으로  업신여기고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 소용없잖아. 맞아 아니야.”

“맞아요!”

“그래. 그러니까 똑바로 앉아. 더 이상  끊으면 화낸다?”

“네,네!”

셰이는 화들짝 고개를 들어올렸다. 똑바로 바라보는 여신의 얼굴은 너무나 눈이 부셨다. 절로 고개를 숙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내가 왜 나타났는지 궁금할 텐데, 일단 잘 들어. 다 듣고 나서 마음에 안 들면 거부해도 돼. 내 말을 거부한다고 해서 네게 불이익이 가는 건 어떤 것도 없을 거야.”

“여신님의 말씀을 거부하다니, 어찌 감히.”

“그만. 일단 들으랬지?”

“아, 네!”

“조만간,  몸이 나아지면 네 몸을 빌려 잠시 강림해볼 생각이야.”

“네에에에?!”

“내가 네게 강림하는 것만으로 네 신체능력과 신성력을 다루는 수준이 상당히 올라갈 거라 생각하고 있어. 네가 능히 버틸 수만 있다면 말이야.”

“가, 가, 가, 가.”

“강제하지 않아. 그나마 최근 들어 네가 날 잠깐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기에 제안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해?”

“네, 네.”

셰이는 정신없이 끄덕였다. 그녀는 작게 용기를 내보았다.

“그런데 여신님… 왜 하필 저예요? 저보다  뛰어난 분들도 많은데….”

“던전 공략을 진심으로 도전하면서도 가장 가능성 있는 아이가 너라서 그래.”

“아.”

셰이는 무심코 헨드릭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상에서  뜻을 전도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악의 축이라고 할  있는 던전을 뿌리 뽑는 것은 더 중요하다고  수 있겠지. 던전이 그곳에 자리잡은 지도 너무 오랜 세월이 흘러서, 지상의 존재들은 그걸 이 세계의 일부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어. 이 세계와 다른, 아주 이질적인 것인데 말이지.”

“네….”

“그동안 너 같은 아이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금세 포기하거나 죽었어. 그렇다고 내 아이들에게강요할 수는 없잖아. 그러던 차에 네가 눈에 들어온 거야.”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거나, 혹은 포기했으면… 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지금 네 정신이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라 이 이상은 못 있겠네. 신중하게 결정해. 뭣하면 네 동료들이랑 상의해도 좋고. 나중에 로자리오를 손에 쥐고  세 번 부른 다음 기도하면….”

“…할게요.”

“뭐?”

“강림, 해주세요.”

“너, 내 말 제대로 들은 거 맞아?”

“해주세요! 최대한 버틸게요! 부탁드립니다!”

“아니 잠깐만….”

“아… 혹시 제 신체가 강림하시기에 형편없나요….”

“그게 아니고.”

“제 몸 가지곤 감히 여신님을 감당할  없겠죠… 네….”

“아니, 내 말 좀 들어라!”

유스티티아는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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