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5화 〉2구역(24) (145/218)



〈 145화 〉2구역(24)

“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

“셰이.”

“싫어싫어싫어…!!”

콰드득-!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날카로운 일격!]
[카야가 공포의 눈에게 2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70/173]
[용사들의 마음속에…]

카야가 치명타를 띄운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데미지를 확인한 나는 밑의 메시지는 무시했다. 셰이를 강제로 껴안았다. 그녀는 처음에 바동거리다가 나중엔 발악했다. 손톱으로 긁고 주먹을 휘두르고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며 내 팔과 목을 깨물었다.

존나게 아팠다. 하지만 육체적인 아픔보다도 그녀가 날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과 그녀가 망가진 것 자체가 훨씬 더 아팠다. 더 롱 테러에서 공포의 눈에게 멘탈리티 공격을 받은 용사들이 어째서 그런 끔찍한 표정을 지었는지  와닿았다.

“셰이야. 우리 셰이.”

“아아아아악!”

“예쁜 셰이, 착한 셰이, 듬직한 셰이, 용맹한 셰이.”

“이거 놔아아아!!!”

[유진멘탈리티 –3]
[유진 멘탈리티 –4]

계속 멘탈리티가 까였다. 밝기도 더 내려가 있었다. 카야도 진즉 제자리에 복귀했을 것이고, 원래라면 지금 이쯤에서 셰이에게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 셰이의 상태로는….’

셰이 다음 턴은 정말 믿을 수 없게도 또 저 눈깔 새끼의 턴이었다. 셰이가 이대로 정신이 나간 채  다른 공격을 받는다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지도 몰랐다.설령 이곳에서 저놈을 조지고 세일럼에 귀환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공격을 또 당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제정신을 차려야 했다.

“셰이!”

“아아아아아!”

“네 대장님이 여기 있어. 눈앞에 네 대장님이 있다고.”

“아아아아악! 그만, 그마아아안….”

“나야. 네 대장님이야. 여기 있어.  앞에 있어. 어디 가지 않아. 너와 함께 있어. 네 뒤에 있어. 네 옆에 있어.”

“아아아….”

“미안해. 힘들었지. 외로웠지.  버텨주었어. 잘 해내주었어. 셰이 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서 있을 수 있어.”

“아아….”

“그 어떤 것도 널 망가뜨릴 수 없어. 내가 아는 셰이는 그런 여자니까.  봐.  똑바로 봐.”

“….”

“너는 고작 저 눈깔괴물새끼에게 굴복할여자가 아니야. 셰이는 강하니까.”

피눈물에 얼룩진 셰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녀는  이상 발악하지 않았다. 눈을 깜빡이며 날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네 몸을 그렇게 만든 새끼들.”

“….”

“내가 저번에 말한 적 있지? 다 조져주겠다고.”

“….”

그녀의 상체를 세우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완전히 일으키진 못했다. 셰이가 날 붙잡고 있었다.

“셰이…?”

“으으…!”

셰이는 내게의지하며 몸을 조금씩 일으켰다. 공포수확자놈의 공격을 받고 혼자서 일어났을 때와 비슷했다. 그때는 클레이모어를 지지대 삼았지만, 지금은 나를 지지대로 삼았다. 그녀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떨었지만 어떻게든 일어나는데 성공했다. 내게 반쯤 기대던 셰이가  얼굴을 더듬거렸다. 마치 앞이 안 보이는 자가 형태를 기억하려는 것처럼, 구석구석 조심스럽게….

셰이의 손가락이  눈과 코와 귀와 입술을 쓸고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눈으로는 내가 나로 안 보이니, 촉감으로 날 알아보려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게 해서라도 날 알아보고 의지하고 따르려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져서….

툭-

그녀의 손이 얼굴에서 떨어졌다. 드르륵 클레이모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대…장, 님….”

“셰이!”

“무서, 워…요….”

“셰이.”

“혼자는… 너무….”

무섭다며흐느끼던 셰이는 양손으로 힘겹게 클레이모어를 질질 끌며 나아갔다.

[정의의 심판]
[셰이가 공포의 눈에게 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5/173]
[공포의 눈이 심판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눈이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눈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그녀는 울면서 검을 휘둘렀다. 지금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왜소하다고, 가녀리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툭 건들면 부러질 정도로 너무나 위태로워 보였다.

[대가리 분쇄]
[유진이 공포의 눈에게 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56/173]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너무 분노에 찬 나머지 도끼가 흔들렸다. 셰이가 신경 쓰여서 미칠  같았다.

“헨드릭….”

“….”

“어떡하면 좋아…?”

“….”

카야와 일루미나는 나와 셰이를 번갈아보며 초조해하고 있었다. 눈깔새끼는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시종일관 여유로운 기세였다.

‘정신 차리자. 내가 잘못판단하면  뒤지는 거야.’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혔다. 그리고 지금 당장 일루미나가 절현을 발동했을 때의 데미지 기댓값을 계산했다.

‘맥뎀만 다 뜬다고 가정해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때 최후의 문지기의 괴랄한 방어력과 기믹을 뚫고 괴랄한 데미지를 욱여넣을 수 있었던 건, 용기의 선율의 데미지 보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선율은 습격의 선율이었고, 절현 발동시 보정은 ‘공격에 적중된 적의 속도 감소’였다.

즉, 절현으로 끝내려면 이번 턴에 용기의 선율(절현 데미지 보정)이나 활력의 선율(적중된 적의 방어력 감소)로 바꿔야했고  말은 현재 두르고있는 속도와 치명타율 버프가 영영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은 건 56체. 지금 속도를 유지한다고 해도 카야랑 셰이의 공격만으론 저 체력은 못 깎는다는 건 기정 사실. 그렇다면….’

선율을 바꾸든, 바꾸지 않든 아무리 빨리 죽인다 해도  눈깔새끼의 공격을 최소한 한 번은 무조건 맞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까와 같은 단일 스킬을 다시 셰이가 맞을 경우 셰이는 잠식 확정이었고 현재 –70 밑으로 떨어진 일루미나도 거의 잠식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된다면 나름 괜찮았던 나랑 카야의 멘탈리티도 도미노가 무너지는 것처럼 급격하게 깎일 것이고, 전투에 부정적인 요소가 잔뜩 더해질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가다가 앉아서 싸대기를 맞느니, 일어서서 맞겠어. 일루미나.”

“으, 으응!”

“첫 번째 현으로.”

“…알았어.”

빠르고 경쾌하기까지 했던  번째 현의 선율에서, 웅장하면서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용기를 샘솟게 하는 첫 번째 현의 선율이 암울한 공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전인미답지에 내딛는 그 한 걸음같이, 파도에 맞서는 선장과 같이.”

[용기의 선율]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공격력 +3.5]
[모든 용사 명중률 +9]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습격의선율(2)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단순히 여러 수치가 바뀌어서가 아니었다.

‘용기’의 선율이었다.

공포에서 겨우 벗어난 일루미나가, 자신을 대신해 더 큰 공포를 겪어야만 했던 셰이를 위해 혼신을 다해 연주했다. 스스로의 무력함을, 동료에 대한 죄책감을, 괴물에 대한 두려움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모두 떨쳐내기 위한 선율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의지는 현을 통해 퍼져나갔다. 저번에 들었던 용기의 선율과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절제하기 힘들 정도의 분노를 용기가 감싸안았다.

[속도 체크]
셰이 : 3
카야 : 4
유진 : 7
일루미나 : 5
공포의 눈 : 5

[공포의 눈의 턴이 카야와 셰이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금 갱신된 속도가 반전하려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눈깔을 도로록 굴리며 느긋하게 우리들이 느끼는 절망과 공포를 감상하던 눈깔새끼가 입을 털었다.

“아직까지도 그분의 힘에 굴복하는 이가 없다니… 대단하군.  끈질긴 의지에 경의를 표하도록 하지. 벌레라도, 생존본능이 없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뭐라는 거야 이 씨발놈이!”

“한 번이  되면  번, 두 번이  되면 세 번 두드리면 될 뿐이다.”

시뻘건 눈깔의 색이 다시 변했다. 이번엔 음침한 보라색이었다. 눈깔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나 싶더니 우릴 내려다봤다. 아니, 정확히는 눈깔새끼가 천장에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씹. 광역기다.’

족히 10m 이상까지 부유한 눈깔이 한  깜빡이자 우리가 서있는 곳을 포함해 방의 대부분이 보라색 빛으로 가득 찼다.

어떤 좆같은 일이 일어나질 몰라 절로 움츠러든 우리 앞에, 정체불명의 물질…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뭔가 이상한 덩어리 같은 게 나타났다.

‘아. 설마.’

“그분의 편린을 직접 보아라. 영광으로 알고 저항하지 말고 순응하라. 판단하지 마라. 마침내 경외의 감정을 가지고 배알하라.”

“씨발,다들 버텨!!! 그리고 저거 직시하면 안 돼!!!”

“크윽!”

[경외의 시선]

공포의 시선이 한명의 멘탈리티를 집중적으로 조지는 거였다면, 경외의 시선은 용사대 전체의 멘탈리티를 까먹는 스킬이었다.

정확히는, 공포의 눈이 보유한 ‘가장 기나긴 공포의 편린’이라는 덩어리를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마주한 용사들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의 원래 모습을 본 어떤 인간 여자가 그 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타죽었다는 이야기가.

그런 비슷한 원리였다.

 ‘덩어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는 가장 기나긴 공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공포의 눈은 저렇게 끔찍한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다르게 보면 저 정도 변한 것에서 그친 것이었다. 짐승으로 변해 이지를 잃어버린 것들과 다르게, 미약하게나마 견디고 받아들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포 숭배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가 될 수 있었던 거고.

오랜 세월 공포를 숭배하는 자도 그러할진대, 전혀 연관 없던 우리가 갑자기 저걸 인지한다면?

저절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쳐들어 자해하려는 몸뚱아리를 가까스로 제어했다. 어정쩡하게 굽혀진 무릎과 허리, 목은 어떻게든 머리를 들어올리려 하고 눈꺼풀은 힘껏 열리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어떻게 해서든 바닥을향해있는… 제3자가 보면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자세였으나 저 덩어리가 뿜어내는 존재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렇게라도 버티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불완전한 내 시야에, 무릎을 꿇어버린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셰이와 일루미나였다. 카야도 무릎 끓기 직전이었고.

“아….”

무릎을 꿇은 것까지는 뭐 어쩔 수 없다 칠 수 있었다. 나도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하지만 저 덩어리를 보는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셰이랑 일루미나는 이미 저 덩어리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카야나 나나, 그걸 보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도와줄 방도가 없었다. 움직이는 순간, 곧바로 저걸 직시하게 될  같았으니까.

“경외하라. 네놈들이 닿을 운명, 진리의 티끌일지니.”

“….”

“…….”

“셰…이…! 일루…미나…!”

컥컥 소릴 내며 동료들의 이름을 불러봤지만 닿지 않은 듯했다. 버티자. 아직 카야도 버티고 있지 않나. 나랑 카야랑 끝까지 버텨서, 어떻게든 이번 공격을 버티고 저놈의 대가리를 분쇄할….

쿵-

“…………아.”

카야의 무릎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린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고… 내 생각은 거기서 끝이었다.

어느새 내 무릎은 바닥에, 눈동자는 덩어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ㅍ를□■ㅏ들■라」



「■□■걊■쀍뛣□뺤■■■」

「■□■쨊■■□■■■□■■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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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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