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2구역(22)
일루미나의 양 뺨을 거세게 잡고 끌어당겼다.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은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다정하게 달래줄 여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 세 번째 현을 뜯어!”
“미안해… 미안해… 내가, 그건 내가 아닌….”
“당장!!!”
“꺄아아악!”
일루미나의 귀와 꼬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눈깔새끼의 수작에서 벗어나서도 계속 미안하다고 눈물을 줄줄 흘리던 그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미안했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아,에, 아으….”
“일루미나. 정신이 들어?”
“아아….”
“이러고 있을 여유 없어. 어? 어서!”
“으응….”
[습격의 선율]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치명타율 +5]
[모든 용사 속도 +1]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인해 1의 치명타율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습격의 선율 효과로 용사대 전원의 속도가 1올랐다. 하지만 늦었다. 만일 일루미나가 속도 굴림에서 이겼다면 공격 받기 전에 카야와 셰이의속도가 눈깔새끼의 속도가 동일해졌을 것이고, 카야와 셰이와 눈깔새끼가 다시 한 번 속도 굴림에 돌입했을 것이다.
‘지나가버린 걸 붙들고 탓해봐야 바뀌는 것도없는데 말이지… 후우….’
셰이의 속도가 1 감소되었기에 속도 굴림 없이 바로 카야의 턴이었다. 그녀는 내가 일루미나를 다그치는 사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비록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동자가 방황하고 있긴 해도, 날 끌어안으며 하염없이 울기만 하던 아까에 비하면….
“대장… 대장… 내가… 제가….”
다시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하게 명령하고 그렇게 싸우다보면 다시 정신을 차릴 거라 믿었다. 우린 이보다 더 극한 상황에서도 싸워봤었다.
“카야! 명령이다!”
“대장의, 뜻대로….”
[전투수녀의 서원]
[카야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3/20]
[괴물에게 가한 데미지의 20%만큼 현재 체력이 가장 낮은 아군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두 번째로 낮은 아군은 그 반절만큼 회복시킵니다.]
저놈의 대가리를 후려치게 할까, 절정 자벞을 걸게 할까, 서원하게 해서 체력 회복을 염두에 둘까 고민했다. 결국 내가 택한 건 3안이었다. 멘탈리티가 깎인것도 문제였지만, 일루미나의 체력이 5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중 누구 하나 안 중요하겠냐만,가뜩이나 저놈은 멘탈리티 공격 특화 보스였다. 일루미나는 제1보호대상이었다.
[셰이의 집념]
[3턴 간, 절대로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셰이의방어력이 1 증가합니다.]
[셰이가 수호의 대상으로 일루미나를 지정했습니다. 일루미나가 현재까지 입은 피해를 셰이가 대신 감내합니다.]
[셰이의 체력이 10 감소합니다.]
[셰이 남은 체력 13/24]
[일루미나 남은 체력 15/15]
[일루미나가 공격 당할 경우 셰이가 대신 방어합니다(방어력 –33%).]
셰이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이 연계를 위해 아까 카야에게 서원을 하라 명령한 것이었다. 저놈은 전열이고 후열이고 지 마음대로 공격 가능한 놈이었기 때문에, 셰이가 보호해주지 않았다가 일루미나가 다시 한 번 공격당한다면 높은 확률로 사경에 빠졌을 것이 분명했다.
2라운드 때 눈깔새끼 상대로 음유시인 사경?
더 볼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일루미나를 지키라 명령했다. 정신적 고통에서 막 벗어난 그녀는 곧바로 더해진 추가적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 고통이 그녀를 자극시킨 것일까.
클레이모어를 지팡이 삼아 버티고 있는 셰이의 표정엔 독기가 한가득 차있었다.
‘지키라고, 고통을 감내하라고 명령했으니….’
너희들의 고통, 이 도끼에 담아 휘두르겠어.
저 좆같은 눈깔 새끼를 도끼날로 갈라버리겠다고!
“눈 깔아 새끼야!!!”
“감히…!”
“감히는 씨발!”
[대가리 분쇄]
[강력한 일격!]
[유진이 공포의 눈에게 2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49/173]
[용사들의 마음속에 한줄기 희망이 자리잡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4]
[카야 멘탈리티 +5]
[유진 멘탈리티 +4]
[일루미나 멘탈리티 +5]
치명타율 보정 아티팩트에 습격의 선율 보정이 제대로 효과를발휘한 덕일까. 첫 공격부터 치명타가 터졌다. 하지만 데미지를 본 순간 쌍욕이 나왔다. 인간형 낙인 치명타인데 23뎀? 계산 안해도 알겠다. 거의 민뎀 수준이었다.
‘스톨링 할 땐 그렇게 안 뜨던 민뎀이 씨발!’
치명타를 띄웠는데도 기분이 별로였다. 동료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이 두 배를 먹여도 시원찮았는데….
“훌쩍….”
일루미나가 멍하니 서서 훌쩍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황급히 손으로 눈물을 훔치더니 몸을 움츠리며 내 눈치를 봤다. 명백히날 두려워하는 반응이었다. 입맛이 썼다.
“일루미나.”
“으, 으응.”
“이번 선율. 중첩으로 부탁한다.”
“으응…? 괜찮, 겠어?”
[밝기 : 49]
“괜찮고말고.”
“알았, 어… 그렇게 할게…지, 질풍보다 빠르게, 삭풍보다 날카롭게….”
[습격의 선율(2)]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치명타율 +5]
[모든 용사 속도 +1]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치명타율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더 이상 효과가 중첩되지 않습니다.]
[중첩된 선율은 3턴간 유지됩니다.]
[이번 전투에 한해 습격의 선율을 다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습격의 선율 2중첩, 전 용사 속도 +2, 치명타율 +12.
셰이의 일루미나 밀착 보호, 일루미나의 버프, 카야의 서원, 내 낙인까지.
모든 밑작업은 끝났다.
선율의 이름처럼, 이젠 우리들이 저 눈깔새끼를 습격할 시간이었다.
[속도 체크]
셰이 : 5
카야 : 6
유진 : 9
일루미나 : 7
공포의 눈 : 5
카야의 속도가 눈깔 새끼의 속도를 추월했다.
“카야.”
“예, 대장….”
“난내 도끼에 우리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담았어.”
“….”
저벅-
카야는 평소처럼 쇄도하지 않았다. 징그러운 눈깔새끼의 오만한 시선을 직시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의 눈에게 12의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37/173]
[셰이의체력이 2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15/24]
[카야의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14/20]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다는 것과 눈깔새끼의 방어력까지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데미지였다. 다만, 축 처진 카야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셰이와 공포의 눈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셰이 : 4
공포의 눈 : 2
[셰이의 턴이 공포의 눈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아무말 없이, 무표정으로 돌아온 카야를 바라보며 속이 타고 있을 때 희소식이 들려왔다. 셰이가 속도 굴림에서 이긴 것이었다.
“셰이!”
“….”
[특징 ‘가학성애’가 발동됩니다.]
[통제를 벗어나 공격을 가합니다.]
[정의의 심판]
[셰이가 공포의 눈에게 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35/173]
[공포의 눈이 심판에 저항합니다.]
[공포의 눈이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그녀 또한 아무 말 없이 눈깔을 향해 클레이모어를 휘둘렀다.
“셰이, 너….”
“….”
사용 스킬이나 데미지 자체를 뭐라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근데 아직 잠식되지도 않았는데 부정적 특징이 터졌다는 것, 이건 굉장히 안 좋은 징조였다.
‘차라리 욕을 해, 셰이… 그렇게 악귀 같은 얼굴을 하고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더 무섭잖아… 아까 오열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거야?’
다소 아쉬운 우리의 턴이 끝나고 눈깔 새끼의 두 번째 턴이 되었다.
‘3연 광역기는 오바지.’
맨 처음 입장하자마자 당한 공포의 분석, 그리고 첫 턴에 당했던 공포의 거울. 하나하나 좆같지 않은 스킬이 없었지만 적어도 더 롱 테러에선 같은 스킬을 연속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여기까지 온 용사들이라 그런지 몸부림이 제법 처절하니 볼만하긴 한데, 결국은 그분의 뜻을 거스르는 어리석인 자들.”
되도 않는 소릴 지껄이던 눈깔새끼의 까맣게 물들어있던 눈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완전히, 시뻘건 색으로.
‘단일 스킬! 근데, 누구에게?’
내 예상이 맞다면, 저건 한 용사의 멘탈리티를 극도로 떨어뜨리고 디버프까지 걸어버리는 단일 스킬 ‘공포의 시선’의 전조였다. 당장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괴악한 눈깔이 데구르르 우리들을 훑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었다.
“히이익!”
일루미나였다.
“저, 저, 저 씹새끼가!”
“이곳을 더럽히고 파괴하고, 여기까지 온 것 자체를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안 돼!!”
“공포에 떨어라.공포에 잠식되어라.마침내 공포에 굴복하리라.”
검붉은색 섬광이 일루미나를 향해 쏘아졌다. 일루미나는 베이파를 끌어안고 오도도 떨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피할 생각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셰이의 수호가 발동됩니다.]
[일루미나에게 향하는 공격을 대신 받습니다.]
[셰이의 방어력이 4 감소합니다.]
하지만 그 섬광이 일루미나에게 적중되는 일은 없었다. 어느 샌가 불쑥 튀어나온 셰이가 경로를 틀어막았다. 검붉은 빛은 일루미나 대신 셰이를 집어삼켰다. 그광경은 너무나 불길하고 섬뜩했다. 꼭 셰이의 피로 된 폭포처럼 보였다.
“셰이… 뭐야 이거!”
다가갈 수 없었다. 흡사 단단한 벽이 있는 것 같았다. 셰이의 표정이나 상태는 알 수 없었다.
“아, 아아….”
일루미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저 섬뜩한 빛을 맞을 뻔 했다는 것에 놀랐고, 자신 때문에 셰이가 대신맞았다는 것에 어마어마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콰아아아-
빛이 서서히 약해졌다. 셰이의 윤곽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다가갔다. 아까와 같은 벽은 없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었다. 이름을 불렀다.
“셰….”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제발아파아파
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그만해제발그만해그만해그만해
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거야제발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거야죽여버릴거야
아파아파아파아파제발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미안해미안해제발미안해제발미안해미안해
왜이래제발왜이래왜이래왜이래제발왜왜왜왜왜왜왜왜제발왜왜왜왜왜왜-
“…………………….”
[공포의 시선]
[공포의 눈이 셰이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4/24]
[용사가 극도의 공포를 마주쳤습니다.]
[용사가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받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 44]
[공포가 용사의 신체를 구속합니다.]
[셰이의 최소 공격력이 2, 최대 공격력이 3 감소합니다.]
[셰이의 명중률과 회피율이 감소합니다.]
“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마오지마!!!!!”
두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던 셰이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최대한 멀어지려 했다.
내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