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0화 〉2구역(19) (140/218)



〈 140화 〉2구역(19)

“큭… 죽여라…!”

“네가 뭔데 죽여라 마라야. 그건 우리가 정해.”

“공포시여…!”

“아 됐다 그냥.”

[수석 신도가 죽었습니다.]

무한으로 리필이 가능한 갈비만큼 뜯어먹은 건 아니지만, 아주 보람찬 스톨링이었다. 스톨링은 중첩된 활력의 선율의 지속시간이 끝날 때까지만 했기 때문에 밝기가 0이 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밝기는 전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다시 올렸기에 문제되는 일은 없었다. 고기도 뜯어본 놈이 잘 뜯는다고, 스톨링도 해본 사람이 잘 하는 법이었다.

[체력]
셰이 : 24/24
카야 : 20/20
유진 : 20/20
일루미나 : 15/15

[멘탈리티]
셰이 : -22
카야 : -1
유진 : -12
일루미나 : -41


일루미나의 절현 페널티 해제! 전원 풀피! 거기에 멘탈리티 상황도 아주 준수!

식량이 좀 빠듯하긴 하지만, 2-7까지 돌파한 걸 생각해보면 아주 괜찮은 상황이었다.

2구역 돌파까지 남은 방은 단  개.

중간에  두 개를 건너뛰었다고는 해도 그동안 휴식처나 상점, 공포의 상자방 등이 한 번도 안 떴다는 걸 고려해볼 때, 보스 방인 2-10을 제외한 나머지 두 개의 방 중 하나는 비전투 방이 뜰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컨디션도 좋고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도 없고. 좋아. 아주 좋아.’

딱히 지칠 일도 없었다. 오히려 카야랑 셰이는 즐거워보이기까지 했다. 그동안 품어온 분노를 포함한 부정적 감정들을 무기에 듬뿍 담아, 수석 신도를 이리 패고 저리 패며 환하게 웃기까지 했으니까. 얼굴이 개연성이라고, 잔혹하다 싶을 정도로 신도놈을 조지고 얼굴이랑 무기에 피를 잔뜩 묻혔음에도  다 예쁘고 아름답긴 하지만… 저들이 같은 편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루미나는 실제로겁을 먹었는지 내  뒤에 바짝 숨어 있었다.

“다시 출발하자.”

“예, 대장!”
“네! 대장님!”

나는 어떠냐고?

거울이 없어서 확신은 없지만… 아마 마주 웃고 있지 않을까?


**


2-7을나서 2-8로 향하는 길은 2-0에서 2-1로 향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순탄했다.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숙제 더미들을 바라볼 때의 심정과 바닥이 보이기 시작할 때의 심정 차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에 가장 어려운 숙제를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어려운 것들을 미리 해결한 느낌이라 더욱 그러했다. 정예 괴물만 셋을 처치했으니까.

‘만약 2-8이나 2-9에서 정예 괴물이 또 나온다? 그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야. 보스방 빼면 방 9개인데 그 중에서 4정예는  넘어도 엄청 넘은 거지.’

더 롱 테러 플레이하면서 그런 경우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는  더 레전드이긴 해도, 정말 손에 꼽았다.

“큭!”

“셰이!”

“이런, 독침이 박혀버렸네요? 언제 박혔지? 헤헤.”

“다섯 개나 더 박혔어.”

“아야야!”


“아.”

“카야!”

“으음… 손가락이 잘려나갈 뻔했습니다만, 출혈이 좀 있는  빼고는 움직이는데 아무 지장이 없을  같습니다.”

“이게 출혈이  있는 거라고? 아예 덜렁거리는데?!”

“크윽.”

도중에 전열에  두 명이 꽤나 위험한 함정에 걸렸지만 컨디션이 좋아져서 그런지, 아니면 스톨링하면서 스트레스를 확 풀어서 그런지 여전히 쌩쌩했다. 한마디로 분위기가 잔뜩 올라가있었다.

‘이러다 언제 다시 곤두박질칠지 모르는 게 던전이지만, 굳이 초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우린 약간의 체력과 멘탈리티 손상을 제외하면 별 이상 없이 2-8에 도착했다. 어쩌면, 생각보다 우리가 건너뛰었던 두 개의 방과 그 사이 통로들에 더 많은 함정이나 부정적인 이벤트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게요.”

“그래. 가자.”

“읏차!”

2-7보다 아주 살짝, 2-1에 비해서는 상당히  2-8의 문을 열었다.

“아. 손님이 오셨군.”

“상점…!”

[암흑상인의 매점에 입장했습니다.]

**

우린 상점에서 식량  개만 사고 바로 나왔다. 가진 금화도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고 눈길이 가는 물품이 있긴 했지만 드럽게 비쌌다. 그렇지만 상점이 떴다는  자체가  한 개를 꽁으로 돌파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보스 방을 제외하면 남은 방은  한 개.

2-9로 가는 도중, 다시   극렬한 두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 시간이 짧았다. 남은 방은 고작 딱 두 개였고그만큼 남은 영역도 좁았으니까.

“셰이!”

“네 언니. 여기요!”

“대장, 약도입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카야가 내민 종이랑 펜을 받아들였다. 슥슥 펜을 휘갈기듯 끄적였다. 심사숙고할 필요는 없었다.

2-8과 2-10을 북쪽과 남쪽 꼭짓점으로 삼는 마름모 하나만 그리면 되니까. 동쪽과 서쪽 꼭짓점은 물론 2-9였다. 문제는 저번 스카우팅과는 다르게 어느 쪽 길이 더 어두운지 구별이 안 간다는 것.

어느 쪽 길로 갈 것인지는 순전히 감에 맡겨야 했다.

“셰이.”

“어… 이번에도요?”

“그래.”

내가 그린 약도를 보자마자 내 부름만으로 의도를 깨달은 셰이는 이번엔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셰이를 제외한 전부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정하지 않겠다. 아마  눈빛엔 기대감마저 섞여있지 않았을까. 카야랑 일루미나도 그런 거 같았고… 셰이는우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목을 움츠렸으나 이내 가슴을 쭉 내밀더니 다시 앞장섰다.

“진짜제 감으로만 고를 거예요? 나중에 다른 말 하게 없기에요?”

“그럼 그럼.”

반 포탈 반 휴식처에 아티팩트 5개가 묻혀있던 비밀방으로 인도해주신 그 감을 믿습니다!

셰이는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갑자기 클레이모어를 제 앞에 세웠다.

“흡!”

그리고는… 그대로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어어?”

아주 잠시 곧게  있던 클레이모어는 곧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졌고, 순식간에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이쪽으로 갈게요!”

“어, 어어….”

클레이모어를 잽싸게 집어든 셰이가 택한 곳은 바로 오른쪽이었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길을 고를 줄은 몰랐지만 이미 맡긴 거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지우개나 육각형 볼펜을 굴려서 객관식 문제의 답을 찍는 것보다 오히려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이건 보기가  개 뿐이니까.

그렇게 우린 셰이의 클레이모어가 점지해준 오른쪽 길에 접어들었고, 중간에 습격을 한 번 당했으나 크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라서 금방 물리치고는 2-9에 도달했다.

“스읍- 후우… 갑니다!”

2-9. 보스 방 전 최후의 방.

과연 보스를 상대하기 전에 우리들의 컨디션이 걸레짝이 될 것인지, 최상이  것인지 이 방에 달려있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도끼를 집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일반 괴물이든, 정예 괴물이든… 아니, 정예는 안 떴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다 조져주겠어.’

한층 더 웅장해진 문이 열리고, 셰이를 따라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순간.

[휴식처에 입장했습니다.]
[휴식처에선 던전의 영향을 매우 적게 받습니다.]
[휴식처에서는 섭식과 휴식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대장님! 휴식처예요! 휴식처라구요!”

“대장, 이건 라엘라님의 보살핌이 분명합니다! 만전의 상태에서 수괴의 머리를 쳐부수고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좋은, 거지?”

“좋고말고요!몇 번이나 말했지만 제일 마지막 방에 있는 괴물은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끔찍한 놈이라니까요? 그걸 상대하기 바로 전에 휴식처가 나타난 건 정말 행운인 거예요!”

“셰이의 말이 맞습니다, 일루미나. 우리가 만약 두 번째 방에서 만났던 자칭 예술가라 칭했던 괴물 바로 뒤에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어땠을 거 같습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우릴 반긴 건 2구역에서의 ‘첫’ 휴식처였다.

“이거… 되는 판이다.”

“네?”

“아냐. 아무 것도. 가자. 텐트 쳐야지.”

“네!”

**


타닥- 타다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고 나른하고 분위기 있었다. 아주 여유롭게 몸을 닦고 식량을 까먹고 간이 양치를  다음 데운 물을 마시는 여유를 부리고 있는 지금, 아주 몸이 팔팔했다. 1구역을 돌 때나 이번 구역에서 비밀방에 도착했을 때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체력도 이미 풀피였고 멘탈리티도 일루미나를 제외하면 그리 많이 깎인 것도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의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거라 봐도 됐다.

“꿈만 같아.”

“뭐가?”

“그냥… 지금 이 상황이.”

“그래?”

“으응. 뭔가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에 와 있다는 느낌이야. 분명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카야한테 엄하게 교육받고, 두 번째 방에서 갈고리 같은거에 꿰뚫려 죽을 뻔 했고,  번째 방에서 마주친 석상처럼 생긴 문지기 때문에 평생 처음으로 줄도 끊어보고… 그 이외에도 기상천외한 함정들과 끔찍한 공포 숭배자들, 으스스한 던전의 분위기 등등 여기 들어와서 겪은 모든 것들이 하나같이 극단적이면서도 선명해. 던전 바깥에서는 절대 겪어볼 수 없는 경험이겠지.”

호로록-

속이 따뜻해졌다.

“그런데 카야도 그렇고 셰이도 그렇고, 이번 던전행은 저번에 비하면 굉장히 잘 풀린 편이래.”

“부정할 수 없네. 저번에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어. 훨씬 더 처절했지. 죽을 뻔한 위기도 많았고, 다들 정신 상태도 안 좋았고. 지금은  지치고 부상당한  말고는 처음 들어왔을 때랑 컨디션이 거의 비슷하니까. 극단적으로 말해서 하늘과 땅 차이야.”

“운이 좋아서일까?”

“운과 돈과 사람, 삼박자의 조화지. 우리가 가진 장비와 스킬들을 업그레이드 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영입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운이 더럽게 없었다면. 셋  하나만 모자랐더라도 이렇게 쉽게 이곳까지 도달하진 못했을 거야. 도달했더라도 몸 성히 오진 못했겠지.”

“운과 돈과 사람이라….”

일루미나는 컵을 내려놓고는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힐끗 바라보니 글자들과 음표들이 중구난방으로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적고 있는  같았다.

그녀 같은솜씨 좋은 음유시인의 시각에서바라보는 우리들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어떻게 묘사될지, 어떤 선율이 입혀질지. 그래도 지금 물어보는  타이밍이 영 아닌 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완성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걸 내가 본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같았으니까.

궁금해하고 관심은 가지되  내용을 듣는 건 완성이 된 이후인  맞았다.

‘그래야… 그녀가 끝까지 우리 곁에 남아서 이야기를 완성할  있을 테니까.’

운빨좆망겜 플레이어에게 전해지는 격언들,   하나.

부두술을 조심할지어다.

일루미나가 엮어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는판도라의 상자로 남겨둘 것이다. 나중의 즐거움을위해, 괜한 징크스를 만들지 않기 위해.

모닥불을 중심으로 카야가 묵묵히 기도하고 셰이가 클레이모어를 손질하고 일루미나는 펜을 끄적이고 나는 따뜻한 물을 홀짝이는… 도저히 보스 방을 앞두고 있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고 안온한 침묵의 시간.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셰이가 클레이모어에서 손을 떼며 침묵을 깼다.

“대장님.”

“어?”

“다음 방, 말이에요.”

“어.”

“우리,해낼 수 있겠죠? 저번처럼… 어처구니없는 공격에 쓰러지진 않겠죠?”

“….”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으니까, 훨씬 좋은 몸 상태니까, 일루미나 언니까지 있으니까… 분명 이번에도 무사히 승리하겠죠?”

그건 플래그 꼽기라는 거야, 셰이.

어느새 감은눈을 뜬 카야나 손이 멈춘 일루미나까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2구역 보스들을 떠올렸다. 어떤 놈이 나올지는 역시 불명.

2구역 보스놈들도 하나같이 좆같기 짝이 없지만은….

“그럼.”

그래도 웃어보였다.

그래. 불안함은 전부 내게 던져버려.

“당연하지. 이제 고작 두 번째 구역인데. 우린 끝까지 돌파해서  같이 살아남을 거잖아?”

더 큰 깃발을 내가 꽂아버렸다. 그녀가 꼽은 깃발이 아예 가려질 정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