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2구역(9)
‘저 문이 포탈인가? 비밀방인가? 아니면… 정말 재수 없게 그냥 존나 센 괴물이 당첨된 건가?’
문 앞을 지키는 괴물은 적어도 겉보기엔 상당히 강해보였다. 예술가놈은 강하다기보단 좆같이 생겼다는 걸 떠올려보면….
“내려줘.”
귓가에 그리 속삭이는 일루미나를 조심스럽게 내려주고는 도끼를 고쳐쥐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괴물에게 접근했다. 괴물은 문지기처럼 문 앞에 꼼짝 않고 서 있었는데, 우리랑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괴물이 아니라 정교한 동상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셰이.”
“네.”
셰이가 클레이모어를 방어적으로 들며 앞으로 나섰다. 나머지가 그 뒤를 따랐다. 오랜 강행군으로 인해 축 쳐졌던 몸이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50걸음. 40걸음. 30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몇 초씩 걸렸지만, 그 누구도 셰이를 욕하지 않았다. 그만큼 저 앞에 보이는 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놈과 우리 용사대의 거리가 20걸음 안팎까지 좁혀질 때, 변화가 생겼다.
우드드득-
“대장님!”
“전투 준비!”
문 중앙을 가로막고 있던 놈이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거대했는데 이제는 문이 아예 안 보일 정도였다. 놈의 형상은 꼭 기사처럼 생겼는데, 예전에 이단과 금단 사이에서 봤던 거뭇거뭇한 기사놈과는 느낌이 달랐다. 뭔가, 공포무새들이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놈인 것 같았다.
정말로 이 문을 지키고 죽겠다는 기백이 느껴졌다.
[정예 괴물, <최후의 문지기> 와 조우했습니다.]
덩치랑 기세를 봐선 보스급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정예급이었다. 최후의 문지기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자 땅이 진동했다.
“이…곳…은… 지…나…갈…수…없…다….”
쿠우웅--!
셰이를 모든 방향으로 확대한다면 저렇게 될까. 거대한 검을 땅에 꽂고 통로를 완전히 막아선 문지기의 기세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미안하지만, 지나가야겠어! 나도 지키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러기 위해선…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되거든!”
셰이가 클레이모어를 치켜들며 외쳤다. 그녀도 눈앞의 괴물이 공포무새들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기 때문일까. 폭언이 없었다. 정중했다. 어쨌든 그녀의 외침이 우릴 일깨웠다.
[용사대가 최후의 문지기의 위압에 저항합니다.]
[위압 굴림]
[용사대 : 4]
[최후의 문지기 : 4]
[셰이가 저항합니다.]
[위압 굴림]
[용사대 : 5]
[최후의 문지기 : 4]
[용사대가 최후의 문지기의 위압을 견뎌냅니다.]
[위압에 걸리지 않습니다.]
위압을 이겨냈다. 처음엔 용사대 전체가 저항했지만, 몸과 마음이 꺾이려할 때 셰이의 외침 덕에 이겨낼 수 있었다.
“날…꺾…어…야…할…것…이…다….”
[속도 체크]
셰이 : 3
카야 : 4
유진 : 7
일루미나 : 5
최후의 문지기 : 2
[유진의 턴이 앞서게 됩니다.]
셰이와 문지기의 대담이 끝나자 전투가 개시됐다. 속도 체크 결과는 아주 좋았다. 굴림이 안 일어나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고, 그것도 괴물의 속도가 저리 낮은 것도 또 드물었다.
[최후의 문지기]
최대체력 :158/158
공격력 : 10
방어력 : 10
속도 : 2
하지만 스펙을 확인하는 순간, 역시 그럼 그렇지 싶었다. 문지기라는 이름, 낮은 속도. 저놈은 방어 특화형 떡대였던 것이다.
첫 인상에 비해 공격력 자체는 낮지만, 방어력과 체력이 어마무시했고 사용할 스킬도 방어형이나 반격형이 예상됐다. 치명타를 계속 터뜨리지 못하면, 굉장히 피곤해질 것 같았다.
[수배범 발견]
[유진이 최후의 문지기를 수배범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진이 최후의 문지기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58/158]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0뎀이라. 역시.’
저놈의 방어력과 예상되는 타입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격력 버프가 있었다. 모든 이들의 속도가 저놈을 앞서있으니,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었다.
[용기의 선율]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공격력 +3.5]
[모든 용사 명중률 +9]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방어력이 10이라고? 우리 공격력은 4.5가 올랐다. 상당히 상쇄한 셈이었다. 일루미나의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자 카야가 철퇴를 들었다. 내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그녀는 내가 무엇을 명령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깨가 좀 뻐근했는지 팔을 빙빙 돌리던 그녀가 빈틈이 없어 보이는 문지기의 갑옷에 철퇴를 때려박았다.
까앙-!
‘까앙?’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1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45/158]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3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148/158]
‘뭐야 저게? 문지기의 의지는 또 뭐고.’
공격력 버프에, 13% 스킬 보정에, 25% 낙인 보정까지 더해졌는데 13뎀이라고? 3체력을 회복하는 건 또 뭔데?
평소와는 다른 타격음이 들렸을 때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정말 어안이 벙벙해지는 방어력이었다. 물론 우리셰이의 방어력이 12라지만, 그녀의 최대체력은 24에 불과했다. 최대 체력 158짜리가 저런 방어력을 갖추는 건, 그것 자체로 어마어마한 폭력이었다.
오죽했으면 공격하는 입장이었던 카야가 제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반발력이 어마어마했다는 뜻이리라.
나는 쎄하게 올라오는 감각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셰이를 붙잡았다.
“셰이. 수호를 부탁해.”
“…알겠어요.”
[셰이의 집념]
[3턴 간, 절대로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셰이의 방어력이 1 증가합니다.]
[셰이가 수호의 대상으로 일루미나를 지정했습니다. 일루미나가 현재까지 입은 피해를 셰이가 대신 감내합니다.]
[셰이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셰이 남은 체력 17/24]
[일루미나 남은 체력 15/15]
[일루미나가 공격 당할 경우 셰이가 대신 방어합니다(방어력 –33%).]
셰이를 끝으로 우리의 첫 번째 턴이 끝났다. 그러자 그동안 묵묵히 통로를 가로막고만 있던문지기가 몸을 움직였다. 단순하면서도 느린 그 동작 하나가 마치 산이 움직은 것 같았다.
“결…코…뚫…지…못…하…리…라….”
[최후의 문지기의 집념]
[최후의 문지기가 수호 태세를 갖춥니다.]
[최후의 문지기의 방어력이 5 증가합니다.]
[최후의 문지기를 공격하는 자는 가한 데미지에 비례해 데미지를 입습니다.]
‘씨발, 방어력 15? 반사데미지?’
선 넘네?
뭐, 우린 공격할 필요도 없고 반사 데미지로만 죽이겠다는 건가? 자긴 문지기니까 문 앞에서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으면 알아서 물러나겠거니, 싶은 건가?
저놈은 저놈의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만, 저걸 뚫어야하는 입장에선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대가리 분쇄]
[유진이 최후의 문지기에게 1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37/158]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1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138/158]
[유진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9/20]
“미친!”
엄청난 반탄력에 하마터면 도끼를 놓칠 뻔했다. 손이 얼얼했다. 카야가 이런 느낌이었구나 싶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표정은 꽤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헨드릭…?”
“잠시만.”
고민했다. 저놈 방어력도 방어력이었지만 반사데미지 문제도 있었다. 고작 1데미지라고 할 수 있지만, 저놈의 무지막지한 체력을 깎다보면 우리 체력도 가랑비 젖듯 계속 깎일 것이 뻔했다.
‘활력으로 바꿔?’
하지만 여기서 공격력 버프가 꺼진다면?
‘장기전이 예상되는데 벌써부터 중첩 걸고 달릴 순 없어. 일단은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지켜본다.’
“유지해줘.”
“으응.”
[용기의 선율의 효과가 유지됩니다.]
“카야.”
“예. 대장.”
“…힘내자.”
“…힘내겠습니다.”
카야가 빨갛게 부어오른 손으로 다시 철퇴를 부여잡으며 앞으로 쇄도했다.
까아앙-!
**
“헉, 허억, 허억….”
“하악, 하악….”
“포…기…해…라…내…가…있…는…한…그…누…구…도…여…길…지…나…갈…수…없…다….”
“니미 씨발!”
몇 라운드가 지났다.
중간에 몇 번 한 자리 데미지가 뜬 적 있었는데 ‘문지기의 의지’라는게 상상 이상으로 악랄했다. 난 처음엔 일의 자리는 반올림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0 미만의 데미지는 전부 흡수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거의 일방적으로 몇 라운드나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5부 능선에 도달했다. 계속 공격한 용사대는 엄청 지쳐있고, 4대 1로 뚜드려 맞은 괴물은 너무나 멀쩡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손바닥이 퉁퉁 부어 도끼를 쥐기가 힘들었다. 너무 열 받았다.
‘밝기가… 하. 차라리 스톨링 때문에 이러는 거였다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밝기 : 43]
정말로 최선을 다해 두들기고 있는데 못 뚫는 거였다. 특수 공간이라 그런지 일반 통로나 전투에 비해 멘탈리티 하락 속도나 밝기 하락 속도가 상당히 느리긴 했지만, 이 이상 전투를 장기화하는 건 안 좋았다. 저기서 저놈의 방어력이나 공격력이 올라간다?
“일루미나.”
“으응!”
“첫 번째 현을 뜯어낼 시간이야.”
“…승부처네?”
“그래.”
[용기의 선율(2)]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공격력 +3.5]
[모든 용사 명중륙 +9]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더 이상 효과가 중첩되지 않습니다.]
[중첩된 선율은 3턴간 유지됩니다.]
[이번 전투에 한해 용기의 선율을 다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판돈을 키웠다. 더 이상 우리가 말라 죽기 전에 뚫어낼 심산이었다. 그래도 멘탈리티는 그녀의 선율 덕에 오히려 전투 전보다 좋아졌다. 중간에 자잘한 반사뎀 누적 때문에 한 번 활력의 선율을 유지한 적이 있어서 체력도 어느 정도 문제없었다.
갓 갱신한 따끈따끈한 낙인에 무려 공격력 9 증가의 2중첩 용기의 선율을 머금은 그녀의 철퇴가 다시 한 번 문지기의 갑옷에 부딪쳤지만….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1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2/158]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6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68/158]
[카야의 체력이 2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5/20]
“크윽!”
“카야!”
“괜, 찮습니다!”
2중첩 공뻥으로도 20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녀가 실패했으니 이론상 비슷한 기댓값을가진 셰이도 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정의의 심판]
[셰이가 최후의 문지기에게 1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51/158]
[최후의 문지기가 심판에 저항합니다.]
[최후의 문지기가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최후의 문지기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문지기의 의지가 발동됩니다.]
[문지기가 체력을 7 회복합니다.]
[남은 체력 58/158]
[셰이의 체력이 2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3/24]
“대체… 왜! 왜 뚫을 수가 없는 거야!!!”
셰이가 거칠게 클레이모어를 내리찍으며 울분을 토했지만, 그녀의 말은 문지기놈의 목소리에 파묻혔다.
“나…는…결…코…쓰…러…지…지…않…는…다…!”
[문지기의 저항]
[최후의 문지기의 체력이 50% 미만이 되었습니다.]
[최후의 문지기가 한 라운드 동안 받은 모든 피해만큼 체력을 회복합니다.]
[최후의 문지기의체력이 33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91/158]
2페이즈? 회복? 그래. 좋다 이거야. 처음부터 그런 타입이라고 예상했고 충분히 그럴 수 있어.
근데 받은 피해는 경감했으면서, 회복하는 체력은 원래 피해대로라니?
“이 씨발새끼야… 그건 아니지….”
내로남불 상도덕 없는 새끼. 안 지나갈 테니까, 일단 우리 좀 쉬면 안 될까?
당연히, 후퇴는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