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2구역(6)
[수배범 발견]
[유진이 공포의 예술가를 수배범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진이 공포의 예술가에게 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11/113]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3/15]
일루미나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이게 더 최선이라 생각했다. 전시대를 공격하는 건 미래를 내다 버리는 짓이었다. 그렇게 전시대를 부쉈다가, 턴이 돌아온 예술가놈이 같은 기술을 또 사용하면?
저놈 체력은 깎지도 못하고 우리 체력과 멘탈만 아작나는 거다. 실제로 일루미나가 전시대에 끌려올라갔을 때, 우리들 멘탈리티가 또 한 번 깎였다. 정확히는 그녀가 비명을 질렀을 때였지만…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서둘러야 했는데, 저놈이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일루미나는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일루미나의 턴이 넘어갑니다.]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2/15]
축 쳐진 일루미나의 턴이 속절없이 넘어갔다. 우릴 위해서도, 자길 위해서도 비명을 안 지르고 꾹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음유시인부터 조져.”
까드득-
당장이라도 예술가의 모가지를 썰고 싶어하는 셰이를 제어했다. 어차피 그놈은 3열이라 셰이가 어떻게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2열에 서 있는 예술품-음유시인을 조져서 예술가놈을 2열로 당기는 방법밖엔 없었다.
“죽일 거야… 죽일 거야!!!”
[정의의 심판]
[전율적인 일격!]
[셰이가 예술품-음유시인에게 2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30]
[예술품-음유시인이 죽었습니다.]
[절망했던 용사들이 전율에 빠집니다.]
[셰이 멘탈리티 +4]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5]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1/15]
“언니.”
“셰이.”
“저 새끼 죽여버려요.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 마냥 내려다보는 눈알을 터뜨려버려요. 벌레마냥 기어다니도록 척추를 분쇄해버려요.”
“그럴 생각입니다.”
셰이와 토스한 카야가 내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앞으로뛰쳐나갔다. 내가 일루미나를 억류하는 전시대 말고 예술가놈에게 낙인을 찍은 그 순간부터, 그녀도 내가 무슨 명령을 내릴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카야는 적 1열에 서 있는 예술품-성전사를 무시하고 곧장 예술가놈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낙인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들어가는 공격이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의 예술가에게 1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00/113]
[일루미나의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0/15]
“예술가에게… 불신자의 폭력이라….”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잘하고있어. 침착하자고.”
예술가놈에게낙인이 찍혔다는 걸 감안하면, 치명타는커녕 민뎀에 가까운 데미지였다. 하지만 이전까지 카야의 활약은 눈부셨다. 3연속 평타를 때렸던 내가 왈가왈부할 처지는 더더욱 못 됐다. 터지다가 안 터지고, 안 터지다가 터지고. 원래 더 롱 테러라는 게 그런 게임이었지만….
아아아아아아악---!!
[동료가 처한 끔찍한 상황에 용사들이 죄책감에 휩싸입니다.]
[셰이 멘탈리티 –5]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6]
일루미나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들으니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3뎀, 비율로 따지면 10퍼센트 조금 넘게 깐걸로는 억류가 해제되지 않았다.
[공포를 찬미하는 검]
[예술품-성전사가 카야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0/20]
[카야 멘탈리티 –4]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9/15]
아아아악--!
예술품-성전사의 공격이 넘어갔다. 일루미나는 어떻게든 고통을 참으려는 듯 했으나 그럴 때마다 등에 박힌 갈고리가 안쪽을 헤집는 건지 새로운 피가 후드드득 쏟아졌다. 저러다 언제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자기 한 턴당 데미지로 계산하면 족히 6뎀은 먹는 셈이니까, 거의 출혈 3중첩 수준이네. 근데 출혈은붕대로 지혈할 수라도 있지….’
손에 땀이 가득 찼다. 손잡이가 미끌거릴 정도였지만 쉽사리 도끼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이제 예술가놈의 턴이었다. 소환물이 하나밖에 없으니 다시 소환 패턴을 보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확신은 못했다. 더 롱 테러에서는 저 ‘억류’ 스킬을 두 명에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흐음… 피는 어느 정도 빠졌으니….”
[예술품 제작 준비]
놈의 앙상한 손가락이 다시 한 번 일루미나를 가리켰다. 그러자 전시대가 더욱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더니 천천히 그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아, 아아아아…….”
“일루미나!!!”
쿠웅-!
“꺄아아아아악!!!”
[공포의 예술가가 일루미나에게 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15]
[일루미나의 남은 체력이 0이 되는 순간, 사경에 빠지는 대신 공포의 예술가의 ‘예술품’이 됩니다.]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3/15]
일루미나를 매단 전시대가 내 뒤쪽이 아닌 예술가놈의 앞쪽에 위치한 순간, 안 그래도 타임 어택으로 접어들었던 전황이 한 층 더 절망적으로 변했다.
일루미나의 체력이 한 순간에 빠진 것도 그랬지만, 다시 한 번예술가놈이 3열로 밀려버린 것이다.
도끼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제일 좆같았던 Top3 안에 드는 놈이라 각오를 하긴 했었지만… 스킬 한 번에 우릴 벼랑 끝으로 몰고가는 놈의 악랄함에 치가 떨렸다. 분명 우린 강해졌고, 현재 체력도 가득 차 있었다. 컨디션이 좋은데 무력함에 빠진다는 건 또 다른 종류의 좆같음이었다.
‘일루미나의 전시대가 2열을 차지하고 있고, 고기 방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성전사가 1열이야. 그럼 저기서 예술가놈이 다음 턴에 소환 패턴을 보인다고 해도 남은 건 한 칸. 그렇다면….’
도끼를 고쳐쥐었다. 힐끗 일루미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현재 체력이 꼴랑 3이었다. 내 공격이 끝나면 2로 떨어질 것이고.
결단을 내렸다.
‘양면이다.’
[대가리 분쇄]
내 도끼는 예술품-성전사도, 일루미나의 전시대도 아닌… 예술가놈에게 향했다.
[유진이 공포의 예술가에게 2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77/113]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2/15]
“씨발, 씨발, 씨발!!”
또 평타였다. 그리고 일루미나의 억류는 여전히 해제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기준이 3분의 1이나 2분의 1일 수도 있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셰이의 턴이었다. 그녀를 바라봤다. 시종일관 괴물들에게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며 이를 갈고 폭언을 내뱉던 그녀가… 비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치명타가 한 번이라도 터졌더라면.
일루미나가 겪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내가 지금 그녀에게 이런 명령을 내릴 일도 없었을 것인데.
“셰이.”
“대장님.”
“……부탁한다.”
침통한 표정으로 고갤 숙였다. 순간이지만 싱긋 미소지은 셰이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조용히 클레이모어를 바닥에 박았다. 그녀의 뒷모습에서, 동료를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울컥했다.
[셰이의 집념]
[3턴 간, 절대로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셰이의 방어력이 1 증가합니다.]
[셰이가 수호의 대상으로 일루미나를 지정했습니다. 일루미나가 현재까지 입은 피해를 셰이가 대신 감내합니다.]
[셰이의 체력이 13 감소합니다.]
[셰이 남은 체력 11/24]
[일루미나 남은 체력 15/15]
[일루미나가 공격 당할 경우 셰이가 대신 방어합니다(방어력 –33%).]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4/15]
“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아무런 상처 없이 입과 등에서 피를 쏟아내는 셰이와 다시 새로운 피를 쏟아내는 일루미나의 비명 소리가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셰이의 희생으로 당장의 크나큰 위기는 넘겼지만… 말 그대로 넘기기만 한 상태였다. 순식간에 셰이의 체력이 너덜너덜 해졌고, 일루미나는 다시 체력이 깎이기 시작했다.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이제 나와 카야 둘 뿐이었다. 셰이마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쉴 새 없이 피를 토하고 있었다.
“대장.”
“카야.”
“대장은… 이럴 때를 대비하신 겁니까.”
“…….”
그럴 리가.
셰이가 저 스킬을 각성한 것도.
카야의 스킬을 바꾼 것도.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스펙 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입을 다물었다. 카야는 딱히 내 대답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서원하겠습니다.”
“….”
“반드시, 저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에게 라엘라님의 자애를 베풀어주겠노라고… 쿨럭!”
“카야!”
[전투수녀의 서원]
[카야의 체력이 4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6/20]
[괴물에게 가한 데미지의 20%만큼 현재 체력이 가장 낮은 아군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두 번째로 낮은 아군은 그 반절만큼 회복시킵니다.]
[일루미나의 체력이 1 감소합니다.]
[남은 체력 13/15]
덤덤하게 서원하던 카야 또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피를 토했다. 스킬 사용시 최대 체력의 20%가 깎인다는 설명이 있긴 했지만, 일루미나와 셰이에 이어 카야까지 피를 토하자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체력]
셰이 : 11/24
카야 : 16/20
유진 : 20/20
일루미나 : 13/15
[멘탈리티]
셰이 : -49
카야 : -33
유진 : -45
일루미나 : -55
그때 용사대의 컨디션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느새 다시 괴물들의 턴이었다.
예술품-성전사의 깃털 같지만 빡치는 공격이 끝나고, 다시 예술가놈의 턴이 되었다.
이제 놈이 무슨 스킬을 쓸지 두려워졌다.
이게 진짜 공폰가?
무저항 상태인 일루미나를 다시 상처 입히는 것도 두려웠고, 새로운 예술품을 소환하는 것도 두려웠다.
“흐으음… 생각보다… 오래 버티는군… 그럼 이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 그래….”
하지만 예술가놈이 꺼내든 건, 새로운 스킬이었다.
[공포 찬미]
“으… 아아….”
“크르륵…!!”
“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탑에 쌓여있던 시체들이.
정육점 고깃덩어리처럼 매달려있던 시체들이.
쓰레기처럼 이곳저곳 방치됐던 시체들이.
한쪽 벽에 걸려있던 수십이 넘어가는 ‘가면’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공포.” “공포.”
“공포.” “굴복하라.” “공포.”
“공포.” “공포.” “숭배하라.”
“공포.” “공포.”
“공포. 공포.” “받아들여라.”
“공포. 공포.” “맞이하라.”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예술가놈의 손짓을 따라 ‘합창’했다.
소름끼치는 얼굴과 목소리, 음산한 멜로디와 정신 나갈 것 같은 가사의 반복.
지옥이 구현된 것 같은 2-2의 배경과 맞물리자 극렬한 거부감과 혐오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당장이라도 저 역겨운 걸 보고 있는 눈알을 뽑아내고 좆같은 말을 듣고 있는 고막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양 무릎을 꿇자.
그리고 눈과 귀를 바치자.
그렇게 실제로도 눈에 손톱을 들이밀었을 때.
“다들, 정신, 차려… 진짜, 용사님들이잖아아아아악-!!!”
일루미나의 발악에 가까운 외침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손톱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