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4화 〉2구역(3) (124/218)



〈 124화 〉2구역(3)

보상은 별 거 없었다. 그래도꼼꼼히 챙겼다. 2구역 준비하면서 하도 스펙  예산에 신경을 써서 그런가, 더 롱 테러였다면 인벤 차지한다고 줍지도 않았을 것들도 싸그리 짊어졌다.

“저기, 헨드릭.”

“어?”

“아, 아니야.”

“뭔데. 괜히 사람 궁금하게 만들고.”

쫄았다가 신났다가 다시 쫄았다가 기뻐하다가 이번에 또 쫄았다가…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기분 변화가 참 다이나믹한 여자였다.

“살면서 제일 짜증나는 게  가지가 있는 게, 그게 뭔지 알아?”

“으응?”

“하나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둘은.”

“둘은?”

“….”

“…둘은?”

“….”

“뭐, 뭔데!”

“짜증나지?”

“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면 괜찮지만, 뭔가 걸리는 게 있는데 눈치보고 말을 못하는 거라면  돼. 여기선 어떤 사소한 변수라도 있어선 안 되니까. 정말 아무 것도 아냐? 그럼 그냥 넘어가고.”

단순히 일루미나를 놀리려고 한 건 아니었다. 누가 보면 오버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녀에게 말했던 것처럼 어떠한 사소한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일루미나와는 처음이 아닌가. 어쩌면 수인 특유의 예민한 감각이 우리가 발견 못하던 걸 발견했을 수도….

“우리가 맞닥뜨린 저 사람, 아니 괴물들 말이야.”

“어.”

“저들이 다 공포에 물들어서 그랬다는 거잖아. 그럼… 우리도 저렇게 될  있다는 거야?”

“공포에 굴복하면.  쓰레기 같은목소리에 순응하면 그렇게 될 수도.”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일루미나.”

갑옷에 묻은 살점들을 털어내던 카야가끼어들었다.

“제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믿고 자신을 믿는 동료들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고. 절대 굴복하면 안 된다고.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고통을 감내하는 거라고. 벌써 잊은 겁니까?”

“아니야, 안 잊었어.”

“최대한 버티십시오. 그럼 대장이, 제가, 셰이가 받쳐줄 겁니다. 일루미나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라고 해서, 아무리 던전행 경험이 있다 해서 공포에 면역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향을 덜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익숙해지고, 더 잘 참는 것뿐이지 한계는 비슷할 겁니다. 그땐, 일루미나가 우릴지탱해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으, 으응! 미안해… 이상한 소리 해서.”

“아닙니다. 대장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차라리 지금 털어놓는 게 낫습니다. 전투도 끝났으니.”

“아. 아까는 미안해요, 일루미나 언니. 언니가 걱정해줬는데 제가 좀 거칠게 말했죠.”

“아니야. 내가 호들갑 떤  맞아….”

으음.

셰이가 진짜 거칠게 말하는  들으면 아예 혼이 빠져버리는  아닐까. 생각해보니 이번엔 발작에 가까운 폭언이 없었다. 우리랑 함께 다니면서 조금은 억누를 수 있게 된 걸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루미나에게 귀띔 정도는 해주자.

“셰이가 엄청 심한 욕을 내뱉을 때가 있거든.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해주는 거니까 그때 가서 너무 놀라지 마라고.”

“응? 셰이가? 말도 안 돼!”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저 얼굴로 웃으면서 배때지를 가르네 마네 소리를 들었으니.그 대상이 나였다면 정말 멘탈리티가 붕괴했을지도 몰랐다.

“가자.”

“출발!”

[체력]
셰이 : 24/24
카야 : 20/20
유진 : 20/20
일루미나 : 15/15

[멘탈리티]
셰이 : 0
카야 : 0
유진 : 0
일루미나 : 0

현재컨디션을 보니 매우흡족했다. 풀피 풀멘탈. 마지막에 셰이의 체력이 깎였지만, 공포에 물든 짐승에게 심판의 낙인이 찍혀있는 상황이었고 처치하자마자 3의 체력이 회복됐다. 출혈은 전투가 끝나자마자 바로 지혈했고.

결과론적으로 퍼-펙트.

이제  하나를 거쳤을 뿐인데 벌써부터 김칫국을 마시는 건가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적이 처음인데 어떻게 안 설렐 수 있겠냐고!’

물론 금세 떨어질 거다. 떨어질 거였지만… 방 하나를 이렇게 완벽하게 돌파했다는 것 자체가, 멘탈이 터지는 시기가 뒤로 밀려나는 거 아닌가.

‘아냐. 아예 안 터질 수도 있잖아.’

과한 설레발은 치지 않는다. 부두술이 벌어질 수 있었으니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공포의속삭임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물러납니다.]
[밝기 : 92]

2구역에 들어오자 밝기 관련 메시지도 뭔가  노골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닌 게, 1구역에 비해 밝기가  올라갔다. 1구역이었다면 97이나 98까지는 올라갔을 양이었는데.

그것뿐만 아니라 함정의 종류나 수도 많아졌다. 1구역에선 기껏해야 독침이나 송곳 함정 정도였는데, 2-1 전에 바닥이 푹 꺼지는 함정도 그렇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것도 그랬다.

“튀어! 전력으로 뛰라고!!”

“으아아아아!”

쿵-! 쿵-! 쿵-! 쿵-!

평소처럼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던 도중, 누가 뭘 건드렸는진 모르겠지만 미세하게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고… 일루미나가 천장을 가리킨 순간 우린 뒤도 안 돌아보고 돌파했던 길을 역주행해야만 했다.

“어, 언제까지 오는 거야아아!”

“일단 뛰어!!”

녹슨 것 같지만 찔리면 바로 꼬챙이가 될 것 같은 거대한 쇠 송곳부터 해서, 단두대칼날, 커다란 바위 등 어마무시한 것들이 우릴 맹렬한 속도로 뒤쫓았다.

“대장님!!”

“돌파해-!!!”

결국 우리는 2-1까지되돌아왔고, 셰이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굳게 닫혀있던 문에 어깨를 들이박았다.

콰아아앙-!

“닫아!!!”

“으아아아!!!”

셰이의 차징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대개  사람 정도가 드나들 수 있게 열리던 문이  사람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게 활짝 열렸고, 우린 들어가자마자 온 힘을 다해문을 다시 닫았다.

쿵- 쿠구구우웅-!!

“하악, 하악, 하아….”

하도 달렸더니 어질어질했다. 침이 질질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고 말았다.

“대체… 이게 무슨….”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함정이있단 말인가.

뒤늦게 주위를 살폈다. 2-1은 그대로였다. 이곳저곳 널브러진 시체가, 지금 겪은 게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더 롱 테러에서도 원래 돌파했던 방에 다시 돌아올 수 있긴 하지만, 실제로도 가능해서 다행이다….’

가슴에 손을얹고 숨을 고르고있는 카야와 어깨를 매만지는 셰이, 그리고 발라당 드러누워 헥헥거리는 일루미나를 쓰윽 훑으며 메시지를 살폈다.

[위험천만한 함정을 무사히 회피했습니다.]

“…하?”

“대장?”

뭐야. 이게 끝이라고?

정말? 진심? 리얼로?

메시지 로그를 다시 훑어봤지만 정말 저  줄이 끝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장님?”

“아니… 저딴 함정이 나온다는  들어본 적도 없어가지고. 겪어본 적도 없고.”

함정도 악랄해지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괴물 스펙도 확 높아졌으니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건 좀 선을 넘은 거 아닌가.

‘씨발 이렇게 불평하면 뭐하나. 클레임건다고 누가 들어주는 것도 아닌데.’

멘탈리티가 까였다. 예상외의 함정에 심신이 지친 영향이 큰 것 같았다.

“더 이상 소리가 안 들리는 거 같은데, 일단 문부터 열어볼까.”

“알겠습니다.”

“둘둘씩 붙자고. 셋 하면 여는 거다. 하나,둘, 셋!”

문을 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그 누구도 문 밖을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아.”

“라엘라시여….”

정확히는 나설  없었다.

커다란 바위들과 칼날 등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사람 하나 파고들 틈조차 없었다. 만약 문을 안쪽에서 열수 있지 않았다면, 저 더미들이 조금만 더 2-1에 가까이 위치해있었다면.

우린 어쩌면 2-1에서 고립되거나, 문을 열자마자 저 더미에 깔려버렸을지도 몰랐다.

“대장.”

“….”

“명령을.”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더미를 바라보다가 배낭을 툭 내려놓았다.

‘챙기긴 했지만, 이걸 써먹을날이 올 줄이야.’

잠시 배낭을뒤적거리다 삽으로도, 곡괭이로도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꺼냈다. 정확히 4개였다.

“헨드리익… 설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겠지? 그렇지?”

“웬만하면 고장내먹지 말자고.”

“아아….”

이곳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영혼은 기억했다.

가자.

K-곡괭이질 & K-삽질.


까앙-!

**


우리가 매고 있는 배낭이 마법 배낭이라서, 더  테러 지식을 갖춘 내가 미리 저 곡괭이삽을 챙겨서, 그리고 우리들 체력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서.

우린 2-1과 2-2 사이의 통로를 동맥에 낀 지방처럼 가로막은 더미들을 끝내 돌파할 있었다.

“끝, 났, 다…!”

아직 2-2에 진입하지도 않았는데 우린 벌써부터 전신에 땀을 뻘뻘 흘리며 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언제 어디서 괴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장을 해제한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무장은 너무 무거웠다. 경갑을 입은 나나 비무장인 일루미나는 그나마 견딜만 했지만, 중갑을 입은 카야랑 셰이는….

“후우…… 잠깐만쉬었다 가자.”

“저흰, 괜찮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한 손으로 철퇴 들어볼래?”

“….”

철퇴를 들어올리려는 카야의 손이랑 팔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채 반절도 들어올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셰이랑 일루미나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무기를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데,어떻게 공격을 성공시킬  있겠나. 메시지로 표현은 안 되고 있지만, 분명 명중률에 지대한 영향이 미칠 것이다.

만약 곡괭이삽이 없었다면?

내 준비성에 스스로감탄하면서도, 그걸 써야만 하는 상황이 나온 것 자체가 짜증났다.

[고된 몸과 지친 마음에 공포가 조금씩 스며듭니다.]
[셰이 멘탈리티 –5]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5]
[일루미나 멘탈리티 –6]

휴식처가 아니기에 멘탈리티 감소는 감수해야 했다. 메시지는 무시한 채 땀을 닦아내고 수분을 보충하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상대적으로  힘들었던 나는 그녀들의 팔이랑 허벅지도 조금씩 주물러줬는데, 내가 음습한 마음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알아서 그런지 대놓고 거절하지는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경계하는 척 고개를 돌리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덕분에 상쾌한 스타트 이후 불합리하다싶을 정도의 함정과 막노동, 그리고 던전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초장부터 조질 뻔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호전됐다.

“대장 덕분입니다.”

“감사함과 울분을 담아 세 배로 때려버릴 거예요.”

“아주 악랄한 놈들이야!”

2-2에 도착한 동료들은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흐르자 분노가 차오른 것이었다. 그 분노는 해소할 대상이 없었고, 곧 투지로 변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가자.”

셰이가 문을 열었다. 2-1보다 살짝 큰 것 같은 2-2 안쪽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났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문을 연 것 자체를 후회했다.
‘씨발, 이게, 지금, 뭐….’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이리저리 널브러져있는 시체들이었다. 똑같은 방법으로 죽은 게 아닌지 시체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고, 피가 안 묻어있는 곳이 없었다. 최소 수십 구 이상이었다.

시체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벗겨져 있었는데, 어떤 시체들은 탑처럼 쌓여있었고 어떤 시체들은 박제되어 벽에 걸려있었다.  어떤 시체들은 꼭 짐승이 파먹은 것처럼 결손이 심했는데,  시체들은 무분별하게 이곳저곳 널려있었다. 또 어떤 시체들은 정육점의 큰 고깃덩어리마냥 갈고리에 매달려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안쪽의 벽엔….

하나같이 극한의 고통을 표현하는 듯한 ‘얼굴’들이 가면들처럼 걸려있었다.

지옥이 강림하면 이러할까.

당장이라도 2-2를 돌파할 기세였던 동료들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라, 엘라, 시여….”

“웁, 우우웁-!”

멍하니 라엘라를 중얼거리는 카야와구역질을 하는 일루미나.

“구더기만도못한세상의오물이또이딴짓거리를유스티티아님의이름을빌릴것도없이백번천번베고또베고찢어으깨죽일….”

스위치가 켜진 셰이.

‘뻐킹….’

그리고 애써 담담한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필사적으로 참고 있던 나는,속으로  롱 테러에서 가장 상대하기 짜증나고 좆같았던 정예 괴물 Top3 안에 드는 놈을 만났다는 것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아… 새로운 신도들인가…?”

“씨발.”

그 순간 시체를 ‘조각’하던 괴물놈의 고개가 우리 쪽을 향했고, 놈의 대사가 더 테러에서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곤 억지로 몸에 힘을 줬다.

“흐음… 불신자들이군…?”

“다들 정신 차려-!!!”

[정예 괴물, <공포의 예술가>와 조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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