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2구역(2)
[속도 체크]
셰이 : 4
카야 : 4
유진 : 7
일루미나 : 5
수석 신도 : 4
공포에 물든 짐승 : 5
[유진의 턴이 앞서게 됩니다.]
그나마 1구역에 나타나는 놈들은 다 인간형 괴물이었고, 역겹게 생기긴 했지만 그나마 인간처럼 보이긴 했다. 하지만 2구역은 설정상 1구역보다 더 깊은 곳에 위치한 곳이었고, 그 말은 즉 2구역은 1구역보다 가장 기나긴 공포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다.
아직 인간이긴 하지만 더 심한 변이를 가진 신도. 그리고 인간이 아닌 ‘짐승’.
공포의 힘을 더 많이 받아들여 더욱 강해진 신도와 그 변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짐승으로 변해버린 괴물이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석 신도]
최대체력 : 46
공격력 : 7~12
방어력 : 4
속도 : 4
[공포에 물든 짐승]
최대체력 : 40
공격력 : 8~11
방어력 : 4
속도 : 5
‘미친… 체공방 실화냐? 일반 괴물인데?’
가슴이 웅장해지기는커녕 절로 쪼그라드는 상승폭이었다. 1구역 첫 방에 있었던 평신도와 눈앞의 수석 신도를 비교하면, 대충 계산해도 7할 이상.
만약 장비 업그레이드를 한 번도못했다면?
‘오우 쉣….’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벌써부터 조마조마했다. 일루미나 방어력이 3이고 최대체력이 꼴랑 15인데, 치명타라도 맞으면 일반 괴물한테 사경이 뜰 수도 있다는 거였으니까.
‘역시 버티는 쪽보단 빨리 조지는 게 답이야.’
그래도 일반 괴물이었다. 낙인으로내 한 턴을 소비할 정도의적은 아니었다. 나는 한층 더 묵직해진 도끼를 치켜들었다.
목표는 인간형 괴물인 ‘수석 신도’.
스펙 업은 저놈들만 된 게 아니었다. 이 날을 위해 파워 업된 도끼와 파워 업된 스킬의 위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공포는 씨발 너나 많이 쳐 드세요!”
연신 공포를 강권하는 폐기물같이 생긴 괴물에게 도끼를 휘둘렀다.
푸화악-!
“공포, 시여…!”
[대가리 분쇄]
[유진이 수석 신도에게 1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9/46]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비싼 돈 주고 업그레이드 한 보람을 느낄 정도는 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체감 데미지는 상대적이었다.
‘반피는 까고 싶었는데….’
팔을 휘둘러 도끼에 묻은 괴물놈의 피를 털어냈다. 카야와 셰이는 덤덤하게 괴물들을 주시하며 무기를 겨누고 있었지만, 일루미나는 딱 봐도 얼어있었다.
“정신 차려, 일루미나! 피 처음 봐?”
“으, 으응!”
[일루미나와 공포에 물든 짐승의 속도가 같습니다.]
혼자서 꽤 오랫동안 세상을 돌아다닌 그녀가, 딱히 피가 무서운 건 아닐 것이다. 아마 저놈들이 너무 좆같이 생겨서, 아니면 평소와 너무 다른 내 모습을 보고 놀랐을 수도 있다.
물론, 던전은 그런 사정 따위 전혀 봐주지 않는다.
[속도 굴림]
일루미나 : 6
공포에 물든 짐승 : 5
[일루미나의 턴이 공포에 물든 짐승보다 앞서게 됩니다.]
‘와씨.’
고작 첫 번째 방에서 이런 굴림이 벌어질 줄이야.
일루미나가 저 굴림에서 진다고 해서 파티가 궤멸 위기에 처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그냥 뭔가 심상치 않았다. 사소한 것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어찌됐든 다행이었다.
‘일루미나. 습격의 선율로.’
명령을 내리자 연신 침을 꼴깍 삼키며 잘게 떨던 일루미나가 베이파를 들었다. 마구 떨리던 손은 현에 닿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해졌다. 그녀가 세 번째 현을 튕기며 읊조렸다.
[습격의 선율]
“질풍보다 빠르게, 삭풍보다 날카롭게.”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치명타율 +5]
[모든 용사 속도 +1]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치명타율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캬!! 요거지!’
일루미나가 현을 뜯으며 주문에 가까운 가사를 읊조리는 순간, 뭔가 몸이 가벼워진 것 같은, 그 외에 뭐라고 잘 표현할 수 없는 기분 좋은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다. 셰이랑 카야도 화들짝 놀라며 잠시 일루미나를 쳐다봤을 정도로, 신묘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멘탈리티 좀 회복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끝이냐?
아니었다.
[속도 체크]
셰이 : 5
카야 : 5
유진 : 8
일루미나 : 6
수석 신도 : 4
공포에 물든 짐승 : 5
[셰이와 카야와 공포에 물든 짐승의 속도가 같습니다.]
네 명이나 속도가 뛰자 당연히 속도 테이블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겼고, 시스템은 다시 한 번 속도 체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라면 공포에 물든 짐승새끼가 우리에게 발광을 했겠지만, 속도 굴림이 발생해버렸다.
[속도 굴림]
셰이 : 4
카야 : 4
공포에 물든 짐승 : 4
[속도 굴림]
셰이 : 2
카야 : 6
공포에 물든 짐승 : 1
[카야의 턴이 셰이와 공포에 물든 짐승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셰이의 턴이 공포에 물든 짐승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아니 이걸 카야가?’
생각 이상으로 기분 좋고 효과도 좋은 일루미나의 스킬 효과에 이어 카야의 기분 좋은 반전까지. 셰이가 웬일로 굴림을 망했지만, 짐승새끼가 더 망해버리는 바람에 둘 다 선턴을 잡았다. 까무라칠 정도로 괴물의 스펙이 높아진 걸 제외하면 아주 좋은 출발이었다.
“카야.”
“예.”
“함 보여줘. 목표는 짐승.”
“대장의 뜻대로.”
라엘라님의 자애가 듬뿍 담긴 카야의 철퇴가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그녀는 어깨를 붕붕 돌리더니 특유의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하고는,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라엘라시여, 모자란 딸에게 힘을 내려주시길.”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콰드득-!
--------!!!
“그렇지!!”
[강력한 일격!]
[카야가 공포에 물든 짐승에게 2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9/40]
[용사들의 마음속에 용기가 샘솟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3]
[일루미나 멘탈리티 +3]
육중한 파열음과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짐승새끼의 피와 살점들. 거기에 더해지는 귀 아픈 비명은 분명 소름끼쳤으나 대열로 복귀하는 카야는 웃고 있었다.
아마, 나도 웃고 있지 않을까?
“셰이!”
“네!”
“아예 짐승새끼 짖지도 못하게 해버리자고.”
“네! 대장님!”
카야와 바통터치하듯 셰이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육중한 전차가 풀 스피드로 전진하는 것 같았다.
“죽어!”
[정의의 심판]
[셰이가 공포에 물든 짐승에게 1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9/40]
[공포에 물든 짐승이 지엄한 심판에 굴복합니다.]
[공포에 물든 짐승이 상태이상 ‘기절’(1턴)에 걸립니다.]
[공포에 물든 짐승은 한 턴 동안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습니다.]
[공포에 물든 짐승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좋았어!”
가장 좋은 건 치명타를 터뜨려서 죽이는 거였지만 안 터지면 또 어떠한가. 기절을 먹였는데!
[공포에 물든 짐승이 턴을 넘깁니다.]
저 봐라.
카야의 철퇴 한 방에 반피가 나가버린 짐승새끼가 셰이에게 또 쳐맞아서 짖지도 못하고 골골거리는 저 모습을.
질풍같이 몰아치는 용사대의 3연격에 괴물들의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그것도 첫 턴에.
‘항상 나 빼고는 맞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가, 되게 어색하다. 이런 전개.’
뭔가, 생각했던 대로 순순히 이뤄져서 얼떨떨할 지경이었다.
“공포를… 받아들여라…!”
[공포에게 바치나이다]
[수석 신도가 셰이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3/24]
“큭!”
“셰이이!”
[저항 굴림]
셰이 : 3
수석 신도 : 5
[셰이가상태이상 ‘출혈’(3턴)에 걸립니다.]
[턴당 2의 데미지를 입습니다.]
수석 신도의 공격력은 7~12. 하지만 셰이의 방어력은 무려 12였다. 공격력만 놓고 보면 저놈이 맥뎀을띄워도 0뎀이 떠야 했으나, 데미지 보정이 있는 공격이었던 것 같다. 그걸 포함해서도 굉장히 가려운 수준이었으나, 출혈 때문에 괜한 데미지를 입는 게 조금 짜증났다.
“셰이! 괜찮아!?”
“이 정도는 별 거 아니에요.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호들갑 떨지 마세요. 전투 중이에요.”
“으, 으응.”
수석 신도놈의 단검이 셰이의 왼쪽 뺨을 살짝 스쳤고, 그곳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일루미나가 방방 뛰었으나 셰이는 피를 거칠게 닦아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클레이모어를 앞으로 겨누었다.
‘하는 건 공포만 외칠 줄 아는 씨발 새끼가.’
나랑 카야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 해서, 걱정 안 하는 게 아니었다. 내 속에서 열불이 난 상태였다.
‘안 그래도 온몸에 흉터가 많아서 옷도 매번 가려 입어야 하는 여잔데, 그나마 흉터가 없는 얼굴에 상처를 내?’
디졌다 진짜.
다시 내 턴이었다.
“잡몹이면 잡몹답게, 대가리 딱 대고 얌전히 길이나 비키라고!”
[대가리 분쇄]
[파멸적인 일격!]
[유진이 수석 신도에게 3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46]
[수석 신도가 죽었습니다.]
[공포를 섬기는 이를 파멸시키는 일격에 용사대가 희망을 얻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4]
[카야 멘탈리티 +2]
[유진 멘탈리티 +4]
[일루미나 멘탈리티 +3]
‘씨발 이거지! 이 맛이지!!’
수석 신도는 비명도 못 지르고 대가리가 분쇄됐다. 도끼는 두개골뿐만 아니라 흉부 위까지 갈라버렸고, 괴물놈의 가슴팍을 발로 차며 도끼를 뽑아냈다. 그러자 놈의 시체는 피와 뇌수와 장기를 쏟아내며 쓰러졌다.
“헤, 헨드릭….”
“왜. 무섭고 그래?”
“대단해…!”
“난 또 뭐라고.”
카야와 셰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를 대충 털어내고 제자리에 복귀했다. 다음은 일루미나의 턴이었다.
“이대로 가도 무난히 잡을 거긴 한데… 한 번 용기의 선율로 바꿔줄래?”
“으응!”
어차피 짐승 새끼는 체력도 얼마 안 남았고 기절 상태였다. 난 이참에공격력 버프의 위엄을 실감해보고 싶었다.
일루미나는 이번엔 첫 번째 현을 튕기며, 다른 가사를 읊조렸다.
“전인미답지에 내딛는 그 한 걸음같이.”
[용기의 선율]
[일루미나의 선율이 용사들의 마음을 달랩니다.]
[모든 용사 멘탈리티 +2]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멘탈리티를 추가로 회복합니다.]
[모든 용사 공격력 +3.5]
[모든 용사 명중률 +9]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인해 1의 공격력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습격의 선율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용기의 선율 3레벨의 기본 효과인 공격력 3.5 추가에 타고난 가희 특징으로 1 추가되어 무려 4.5 추가.
습격의 선율 때와는 다르게, 저 괴물을 볼 때 드는 혐오감을 비롯한 각종 거부감들이…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하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저놈들을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박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카야.”
“예.”
“조져.”
피 때문이 아니라 살짝 붉은 기운이 감도는 그녀의 철퇴가, 이미 만신창이 상태가 된 짐승의 허리에 꽂혔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공포에 물든 짐승에게 1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0/40]
[공포에 물든 짐승이 죽었습니다.]
방어력 4짜리 괴물한테 평타 19뎀.
개와 하이에나 그 사이 어딘가처럼 생긴 짐승새끼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육편이 되어 비산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아아.
모든 것은, 우리의 뜻대로.
“히익….”
“왜 그래, 일루미나?”
“아,아니야! 아무 것도! 으응!”
아주 상쾌한 스타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