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7화 〉마음가짐(10) (117/218)



〈 117화 〉마음가짐(10)

“아, 일루미나도 같이 왔네. 카야랑 같이 있었구나.”

“으응….”

“그렇지 않아도 저녁 식으면 맛 없어질 텐데 언제 오나 했어. 일단 먹자.”

왠지 모르게 카야의 눈치를 보면서 쭈뼛거리는 일루미나였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둘이 같이 훈련을 하면서부터 쭉 그랬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헨드리익….”

“일루미나?”

둘이 싸우기라도 한 건가?

슬쩍 카야를 보니그녀는 문에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일루미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일루미나의 표정이랑 몸짓이 평소보다 유달리 더 불안한 같았다. 그녀는 카야 뿐만 아니라 셰이의 눈치까지 보고 있었다. 내가 눈치 챘는데 셰이라고 모를까? 그녀도 당연히 눈치 챘는지 저녁 식사 위에 천을 덮었다. 졸지에 세 명이 일루미나를 둘러싼 모습이 되었다.

“무슨 일이야.”

“그….”

“엄청 심각한 일? 말하기 곤란한 일?”

“그, 그러니까아.”

쿵.

“히익!”

일루미나가 계속 말꼬리를 흐리자 문 쪽에서 작은 충돌음이 들렸다. 일루미나에 가려서 뭐가 부딪쳤는지 보였지만, 그녀는 소스라치게 떨었다.

“그러니까!”

“어, 그래.”

“하, 하루만 내게 시간을 내줄 수 있어?!”

“뭐? 갑자기?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데.”

눈을 꽉 감고 빽 소리를 지르는 일루미나에게서 튀어나온 말은 뜬금없었다. 하루 정도 시간 내줄 수 있냐고 묻는 게 뭐 그리어려워서 저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건, 그거언…!”

“아, 혹시 힘들어서 쉬고 싶은 거야? 아니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도 있는 건가?  가끔씩 쉬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카야랑 이야기는 거고?”

“어, 어?”

“카야. 일루미나랑 얘기  거야?”

“대장에게 말씀드리라 했습니다.”

“이런 거까지 나한테 일일이 허락 맡지 않아도 돼. 그래.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는 건지 들어볼까?”

“아….”

뭐지?

나름 배려한답시고 잘 대답한 거 같은데?

카야를 보니 그녀는 일루미나의 뒤통수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뭔데.’

쿵.

다시 한 번 정체불명의 충돌음이 들리자 일루미나가 고개를 푹 숙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싶어.”

“뭐라고?”

“…하고 싶어.”

“아니, 아까부터 답답해 뒤지겠네. 뭘 하고 싶다는 건데. 좀 크게 말해봐!”

“너, 너랑 교미 하고 싶다고! 발정기라서! 참기가 너무 힘들어!”

“……어?”

한순간 사고가 굳었다. 그녀의부정적 특징에 발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수인이라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고, 홀로 세일럼에서 활동할 정도면 어련히 알아서 해소하겠거니 했었다. 전에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 있었는데 그때도 스스로 해결했던 편이라 했었고.

근데  발정의 대상이 내가 된다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드드득-

셰이가 앉고 있던 의자의 팔걸이가 조금씩 우그러들고 있었다.

‘아니 저거 단단한 나문데!’

내가 기겁하거나 말거나, 한 번 말문이 터진 일루미나의 폭탄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나도 참으려고 했어! 아무리 피할 수 없는 발정기라지만, 다른 종족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헤픈 여자처럼 보이기 싫어서, 이 관계를 깨기 싫어서 참으려고 했지만… 그, 그래! 네가 나쁜 거야!”

“뭐? 내가? 갑자기?”

“좁은 방에 매, 맨몸으로 그렇게 야한 냄새를 풍기면, 유혹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라고! 적어도 발정기에 빠진 수인한테는!”

“아니, 그건….”

할 말이 없었다. 연인끼리 섹스하는 게 뭐 잘못은 아니었지만, 일루미나의 말마따나 여기엔 나랑 카야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발정기에 돌입했는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둘째 치고, 상식선에서 부끄러운 일은 맞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는데, 아, 아까 또 속옷만 입은  보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뛰쳐나갔어….”

“아, 음.”

“그러다가 카야를 만났고, 얼떨결에 카야한테 밝혔어… 카야는 너한테 그대로 말하라고 했고….”

이제 와서 보니 카야의 오른손에 철퇴가 들려 있었다. 정체불명의 충돌음은  철퇴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나.

일루미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나, 나도 알아! 지금 내 처지가 추하고 우습고 또 내가 했던 말이 굉장히 어처구니없게 들릴 거라는 거! 근데 미치겠어. 돌아버릴  같아. 몸이 끝도 없이 긴장되고 달아올라서 도리어 아플 지경이야. 전신에 잔불이 달라붙었는데, 물도, 모래도 없어!”

일루미나는 오른손을 내게 뻗었다가 왼손으로 저지했다. 눈은 반쯤 맛이 가있었고, 눈물은 이미 뺨을 가로질렀다.그녀의 우반신은  당장이라도 덮치려하는데, 좌반신은 어떻게든 이성을 차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상반된 움직임이 너무 처절하고 괴이했다.  롱 테러에서 용사들 대사나 공식설정으로만 접했던 수인의 발정은 무서울 지경이었다. 조금 푼수끼까지 보였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뚝.

그때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물방울 같은 게 떨어지는 소리와 비슷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닌지 셰이도, 카야도 반응했다.

“하아… 하아…! 더워… 더워!”

그때 일루미나가 로브를 벗어던졌다.그러자 땀으로 번들거리는 전신과 빳빳이 서있는 귀와 꼬리가 드러났다.

땀 때문에 속이 다 비치는 상의와 묵직하게 출렁거리는 육중한 가슴도, 빳빳하게 서있는 꼭지도, 빵빵한 엉덩이와 떡 벌어진 골반도 골반이었지만 가장 압권인 건 그녀의 하의였다.

하의 전체가 젖어있었다. 오줌이라도 지린 것처럼. 근데 지린내 같은 건 전혀 안 났다. 누렇지도 않았다. 하의를 적신 그 액체는 대부분 허벅지를 타고 종아리까지 내려가 신발을 적셨지만, 일부분은 허벅지에서 다이렉트로 자유낙하하기도 했다. 아까 들었던 소리의 원인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카야랑 셰이가 절정 중에 흘린 걸 합쳐도… 이 무슨.’

카야와 셰이의 보짓물을 홍수라 표현했던 것이 어폐가 되었다. 아니, 차라리 이쪽을 대홍수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까. 대홍수가 일루미나의 그곳에선 강렬한 냄새가 났다.

지금 당장 박아달라는, 씨를 뿌려달라는… 수컷을 원하고 유혹하는 그런 냄새가.

꿀꺽-

“흐응….”

셰이의 옆얼굴이 보였다. 애써 시선을 일루미나의 얼굴 쪽으로 고정했다. 하지만 이미 고여버린 침과 발딱 서버린 자지새끼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녀를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암컷의 발정에 휘말린 수컷의 반응이었다.

‘카야 셰이 카야 셰이 카야 셰이 카야 셰이.’

카야의 모닝스타와 셰이의 클레이모어를 떠올렸다. 자지를 가라앉히진 못했지만 이성을 차리기엔 충분했다.

“고민이 많았을  같은데 솔직하게 말해준 건 고마워.”

“그럼!”

“우연히 네 발정을 자극한 건 정말 유감이긴 하지만, 그래도 네 발정을 내가 해소시키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 너한텐 단순히 발정 해소일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제발, 제발! 응? 그 손으로 날 만져줘! 쓰다듬어줘! 쑤셔줘! 제발!”

이미  까발려져서 뒤가 없다고 느낀 것일까. 일루미나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대쉬했다.

“미안해 일루미나. 저번에 물었을 때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대답했었잖아. 진즉 알았다면 돈이나 시간을 마련해줬을 텐데….”

“아니야. 아니야! 그땐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야! 너, 너만이 해소시켜줄 수 있어! 아,  그럼… 진짜 미쳐버릴 거 같아!!”

골치 아팠다. 나라고  몸이  꼴리겠는가? 지금도 자지가 빳빳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이 부풀었다. 하지만 세스티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세스티아의 경우는, 강간당하고 부모에게 의절당한 뒤, 아기에겐 죄가 없다며 포기하지 않고 출산의 고통을감내하며, 어미라는 걸 밝히지도 못한 채 19년 동안 키워온 딸을 제 손으로 끝장내야 했던 그 아픔. 생과 사를 함께 넘나들었던전우애. 우리 용사대를 여러 가지로 챙겨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그녀가 보여주었던 처절함 등등이 겹쳐진 결과였다.

그런 점들이 있었기에 카야와 셰이도 그 정도 선에서 그친 것이었고.  처음인 것도 꽤 영향이 컸으리라.

하지만 일루미나는?

동료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같이 싸운 적도 없고, 나랑 연인 사이도 아니고 딱히 용사대에 뭔가 기여를  것도 아직 없었다.

그냥 발정.

 아니면 해소가 안 된다는, 그녀만 이해할 수 있는 일방적인 주장 하나뿐이었다.

“카야랑 셰이는 동료이자 동시에 나와 끝을 함께할 여자이기도 해. 근데, 정말 미안하지만, 일루미나 넌 동료이긴 해도… 내 여자는 아니야.”

“아아. 아.”

“진심으로, 유감이야.”

“….”

“그… 차라리 우리가 방을 따로 잡아줄게. 며칠이면 될까?”

“…….”

“일루미나.”

“…게.”

“일루미나?”

“나… 나도… 나도…!”

부르르 떨던 일루미나가 고개를 홱홱 돌렸다. 그녀의 시선엔 셰이와 카야가 있었다.

“나도, 네 여자가 되면! 그러면!”

“일루미나! 진정하자. 너 지금 너무 흥분해서 그러는 거야. 더 가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거야. 어? 내가 조심성 부족했던 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이렇게까지  밝혔는데, 이미 그 전처럼 날 대할  있겠어? 헨드릭 넌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카야랑 셰이는 절대 안 그럴 걸? 봐봐! 날 못된 년처럼 바라보는 저 눈빛들을 봐!”

“늑대에 이어서 여우라니, 수인에 대한 지식이 일천했던 게 뼈아픕니다.”

“이쪽이야말로 정말 짐승 같네요, 언니. 적어도 늑대는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은혜까지 갚으려고 했는데 말이에요.”

“당신들은, 당신들은  감각을 모르니까! 나, 나라고 임자 있는 남자를 건드리고 싶었는지 알아? 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난 몸도 마음도 정말로 비참해지고 있다고!”

아아.

파국인가. 데자뷰인가.

언성을 높이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니 갑자기 수인족 용사에 대한 고찰을 장황하게 씨부려놨던 팁글이 떠올랐다.

「뭣도 모르는 뉴비가 수인족 보정치에 혹해서 함부로 영입했다가 용사대 멘탈 제대로 갈릴 수 있다. 수인족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부정적 특징 ‘발정’은 랜덤하게 터지는데, 종족이나 성별 분포, 현재 상황에 따라 한순간에 용사대가 망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다 운빨이라 소량의 멘탈리티만 깎이고 넘어갈 때도 많지만, 어찌됐든 수인을 기용할 때는 발정에 대한 리스크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던전에서  터진 건 정말 다행인데… 아니, 그랬다면 오히려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 없다면서 어찌저찌 넘어갔을지도 모르지. 물론 그렇게 된다면 카야와 셰이의 속에 상처가 나 곪아버리겠지만.’

수인이라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그녀의 특징과 보유 스킬, 그리고 확고한 의지를 체크했었다. 성격 좋지 특징 좋지 스킬 좋지…  이상의 음유시인을찾는 것도 힘들  같아  붙잡았다. 근데 고의성 없는 노출 두 번에 일이 이렇게 된다고?

만약 발정이 수인의 종특이 아니었다면, 가볍게 넘겼을까? 그건 모르겠다.

“대장.”

“어. 어?”

“이 발정난 수인을 어떻게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결국 대장입니다.”

“하으, 하흐흐흐.”

점점 더 이성을 잃고 자신의 가슴과 보지를 지분거리기 시작한 일루미나를 애써외면했다.

“아니, 그거에대한  아까 말했잖아?”

“그럼, 아예 내치실 것입니까?”

“뭐?”

“저 수인 말마따나, 이미 저희들 관계는 되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장이 저 수인의 요청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상호 호의적 관계에 이미 금이 가버렸으니.”

“거기에 대장님이나 저희를 나중에 원망할 게 뻔해요. 그 정도도  들어주냐면서요.”

“그런 건, 대장이 원하던 그림은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금 결정하는 게 좋을  같습니다. 방출일지, 아니면…… 잔류일지.”

카야와 셰이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일루미나는….

“하악, 하아, 흐아하하아악!!”

퓨웃- 퓻- 퓨우웃-!

홀-리, 라엘라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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