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5화 〉신중한 준비(12) (105/218)



〈 105화 〉신중한 준비(12)

“아르….”

“…!!”

“명, 령… 줘…!”

괴물들의 파상공세가 전부 끝이 나고, 셰이의 무용에 전율을 느끼고 있을 때.

아르가 힘겹게나마 말을 꺼냈다. 전신을 떨며땀을 흘리는 것하고 반쯤 붉게 물들어버린 오른쪽 눈동자도 그대로였지만, 어떻게든 본성을 억누르고 이성이 표면에 튀어나온 듯 보였다.

“괜찮겠어? 아니, 아니다….”

지금 상황에선  쓸모없는 질문이었다.말도 못하던 늑대  아르가 본성과 싸워가면서까지 말을 꺼냈다는 건, 그만큼 강력하게 바라고 있다는 뜻이었다.

 괴물들을 자기 손으로 찢어발기게 해달라는, 가만히 여기서 자신만 겁쟁이로 남겨두지 말아달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늑대2. 몰살의 시간]
-늑대 폼에서만 사용 가능
치명타 발생 혹은 적 처치시 재행동
재행동시 데미지 보정 1 추가


저번처럼 1스킬 내장 해체를 보다가, 슬쩍 2스킬로 눈을 돌렸다.

몰살의 시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스킬이었다. 스킬 설명만 보면 단일 공격 기술임에도 데미지 보정이나 명중률 보정, 치명타 보정 같은 어떠한 보정도 없는 대신 조건만 맞는다면 횟수 제한 없는 재행동으로 싸그리 쓸어버릴  있었으니까. 심지어 여러  행동할수록 강해지기까지.

‘재행동 발동에 실패하면 한 마리도  죽이는 거니 꽝이고, 발동에 성공해서 계속 죽이는데 성공하면….’

혈액공포증이 얼마나 터질지에 따라 달려있는 거긴 하지만, 셰이의 신들린 반격으로 상당히 끌어올린 멘탈리티가 다시 뚝 떨어질지도 모른다. 거기에 멘탈리티와는 별개로 늑인의 ‘본성’이라는 게 터질지도 모르고.

‘…아직 지원군은 언제 올지 몰라. 근데 셰이의 낙인은 턴 돌면 사라질 거고, 아르가 또 공격받을 확률은 여전히 존재하지. 그렇다면.’

공격받아서 자기 피를 보고 미쳐버리는 것보단.

공격받기 전에 괴물들의 수라도 줄이고 미쳐버리는 낫지 않겠나.

빨리 자신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뭐하냐는 아르의 시선을 마주보고, 그녀가 원했던 명령을 내렸다.

“저놈들, 몰살해버려.”

[몰살의 시간]

3시와 9시, 어느 쪽을 먼저 쳐야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9시 쪽을 가리켰다. 그쪽이 셰이의 반격으로 인해 반피 이하 놈들이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

아르는 한층 더 거친 소리를 흘리고는, 양 떼 속에 뛰어드는 늑대처럼 해수들을 급습했다.

[아르가 흉포한 호랑이12에게 1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3/24]
[흉포한 호랑이12가 죽었습니다.]
[몰살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아르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데미지가 1 추가됩니다.]

아르가 뛰쳐나간 자리에 잔상이 남았고, 황급히 잔상을 뒤쫓을 땐 이미 호랑이의 목이 공중으로 치솟은 뒤였다.메시지를 볼 것도 없었다. 끔살이었다.

한 놈의 머리를 병뚜껑 따듯 똑 따버린 아르는 잠시 목 잃은 호랑이의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를 바라보더니 다시  번 스스로의 뺨을 후려쳤다. 멎어가던 코피가 다시 흘러나왔다.

[아르 멘탈리티 –5]

처음부터 혈액공포증이 터졌다. 놀라운 전투력과는 별개로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아르의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그녀가 내 명령을 받은  출격할 때 뿐. 한 번 몰살의 시간이 발동되고 나서 다음 타겟을 뭘로 할지, 공격을 그만둘지는 순전히 아르의 몫인  같았다.

입술로 흐르던 피를 손으로 거칠게 닦아낸 아르의 다음 타겟은 바로 뒤에 있던, 눈이 푹 파인 사자였다.

“죽… 어…!”

- 크엉헝-

푸화아악-!

[아르가 흉포한 사자13에게 13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24]
[흉포한 사자13이 죽었습니다.]
[몰살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아르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데미지가 1 추가됩니다.(현재 +2)]

사자는 몸통이 걸레짝이 되어 죽었다. 징그러운 내장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피는 더욱 많이 흘렀다.

[아르 멘탈리티 –5]

아르는 손톱으로 손목을 그었다. 피에 대한 갈망과 공포라는, 상반된정신상태의 충돌을 뭉개기 위해 또 다른 피를 보고 있는그녀의 자해행위에서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녀도 느낀 것이리라.

자신이 일행의 구멍이 되었다는 것을. 그녀의 전투력이 훌륭하다는  지금까지의 모습만 봐도 이견이 있을  없었지만, 그것과는 별개였다. 아르의 정신상태는 매우 불안했다.

그녀를 데려온 건 결국 나였다. 혹시나 용사대에 합류시킬 수 있을까, 스펙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인던에 들어오고 나서 혈액공포증과 죽음공포증을 확인했지만, 강행했다. 그 정도는 본 던전도 아니고 여기선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경험과상식에 의거한 판단이었으나, 안일한 판단이 되고 말았다.

“죽… 어… 죽어…!”

끼에에에엑-!

[파멸적인 일격!]
[아르가 흉포한 거대 지네16에게 2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24]
[흉포한 거대 지네16이 죽었습니다.]
[몰살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아르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데미지가 1 추가됩니다.(현재+5)]

거대 지네가 마디마다 끊어져 샛누런 체액을 쏟아내며 절명했고.

“으르르…!”

왜애애앵-!

[몰살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아르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데미지가 1 추가됩니다.(현재 +6)]

또다른 거대 모기는 날개가 해체되고 배가 터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몸집에 비해 빵빵했던 배에 저장하고 있던 핏물이 비산했다.

아르는 피할 생각도 않고 그걸 뒤집어썼다.

“………….”

[아르 멘탈리티 –8]

괴물을 연속해서 죽일수록 손속이 점점  잔혹해지고 빨라지던 아르가, 한쪽 무릎을 털썩 꿇었다. 셰이처럼 전신을 괴물의 체액과 피로 물들은 아르였지만, 셰이와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셰이는 감히 영웅의 집중을 깨트릴 수 없어 다가갈 수 없는 느낌이었다면… 아르는 다가가면 죽을  같은 느낌이었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었다.

‘이번이, 마지노선 같은데….’

아르의 몸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김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몸에  묻은 피와 점액들이 투두둑 흘러내리고, 찐득하게 달라붙어있던 것들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꿀꺽-

누가 낸 소릴까. 나? 카야? 셰이?

아르가 다시 일어났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과 피부와 옷은 거의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주 옅은 핏자국만 남아있었다. 얼핏 보면 정신을 차린 것 같기도 했다.

저벅저벅-

다시금 괴물을 향해 걸어가는 아르의 뒷모습은 꼭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목줄을  소형견과 함께 강가를 느긋하게 둘러보는… 그런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양손에서 손톱이 튀어나온 순간.

그리고 정말 자연스럽게 다가가, 스테이크에 포크와 나이프를 꽂아넣듯 발버둥치는 괴물의 양 눈에 손톱을 박아넣고 좌우로 갈라버리는 순간, 깨달았다.

잠시 깨끗해진 그녀의 모습은, 태풍의눈이었다는 것을.

끼기기기기기긱---!!

[몰살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아르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데미지가 1 추가됩니다.(현재 +7)]

해충의 기괴한 비명소리가뚝 끊기고….

깨끗해진  얼마나 됐다고다시 해충의 체액을 뒤집어 쓴 아르가, 이번엔 우뚝 서서 반으로 찢겨죽은 해충의 시체를 빤히 쳐다봤다.

저건, 누가 봐도 폭풍 전의 고요였다.

‘좆, 됐나?’

늑인의 폭주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땀으로 흥건한 손을 황급히 닦은 나는 부질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카야와 셰이에게 최대한 뒤로 물러나라고 손짓했다.

‘씨발….’

통제 불가능하고 어떻게 튈지 모르는 아르에게 막대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게’ 시작됐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악!”

“크윽!!”

“씨바아알!!!”

학살의 포효와도 비슷하면서도 더 섬뜩한 포효가 전신을 강타했다. 몽둥이로 두들겨맞은 것처럼 전신이 욱신거렸고, 귀에선 축축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시야가 흔들렸고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구역질이 나왔다.

셰이도, 카야도, 나도 전부 주저앉았다. 버틸 수가 없었다. 오들오들 떨었다. 방어력이나 최대 체력 이런 거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을 사냥하고 포식하는 종족.

늑대인간.

그 억눌렸던 포식자의 본성이 해방된 순간, 우린 피식자의 공포를 느꼈다.

“대장님! 대장니임-!! 정신 차려요! 정신 차리라고!!!”

“대장! 대장!! 헨드릭!!!”

셰이와 카야는 비교적 빠르게회복하고 일어났으나… 나는 주저앉은  꼼짝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굳건한 성직자들이고, 나는 방구석폐인 출신이라서?

그것도 물론 영향이 있겠지만… 내 눈엔, 그들에게 안 보이는 명확한 ‘메시지’들이 보였다.

[아르가 ‘피의 격노’ 상태에 빠집니다.]

단어부터 존나 불안한 느낌이 드는 상태이상에 빠진 아르는….

[아르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피의 격노가 해제되기 전까지 ‘혈액공포증’ 특성이 발동되지 않습니다.]
[피의 격노가 해제되기 전까지 아르의 변신이 풀리지 않습니다.]
[‘미숙한 변신’ 특성과 충돌합니다.]
[아르는 매 턴마다 최대 체력의 10%를 잃습니다.]
[공격력이 20% 증가합니다.]
[방어력이 0으로 고정됩니다.]
[입힌 데미지의 10%를 회복합니다.]
[공격 대상이 인간형일 경우, 20%를 회복합니다.]
[아군을 무작위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유리대포에서, 눈먼 살육기계가 되어버렸다.

“씨발, 씨발…!”

“대장님!!! 정신 차려요!!!”

“난 지극히 제정신이야 씨발!!!”

“대장님…?”

“최대한, 최대한 뒤로 물러나! 어서!!”

엉금엉금 기었다. 추하게 보여도 상관없었다. 최대한 눈에 안 띄어야 했다. 다행히 괴물들은 아직 많으니,그걸로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 됐다.

‘씨발 dlc, 씨발 늑대인간!’

아무리 하이 리턴이라고 해도, 리스크가 씨발 말도  되잖아! 적어도 컨트롤은 되어야 할 거 아냐!! 멘탈리티 터진 것도 아닌데, 저게 말이 되냐고! 아군한테 뒤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껴야 되는 게 말이 되냐고!!

“캬아아아아악!!!”

[몰살의시간이 이어집니다.]
[아르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데미지가 1 추가됩니다.(현재 +8)]
[아르의 체력이 2 감소합니다.]
[아르가 체력을 2 회복합니다.]

이미 스택이 상당히 쌓인 데다가 피의 격노로 공격력이 더 올라간 아르의 살육은 저딴 괴물들로는 멈출 수 없었다. 튜토리얼 존에 만렙이 깽판 치는 것 같았다. 피지컬이 약한 괴물이 여럿 있는 지금 상황이, 오히려 악화 요인이었다.

[몰살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아르가 재행동을 얻습니다.]
[데미지가 1 추가됩니다.(현재 +9)]
[아르의 체력이 2 감소합니다.]
[아르가 체력을 2 회복합니다.]

허나 끝나지 않을  같았던 그녀의 몰살의 시간은 9스택에서 끝이 났다. 10번째 공격에서 민뎀 평타가 떴고, 괴물이 실피로 살아남은 것이다.

 턴에 괴물을 무려 9마리나 죽였는데.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다시 내 턴이  걸 봐서, 아르의 턴이 끝난  확실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저벅저벅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르의 모습에 지독한 위압감을 느꼈다. 도저히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셰이와 카야도 무기를 쥔 손에 힘이 가득 들어가있었다.

완전히 시뻘겋게 물들어버린 눈동자가 앞에  있는 셰이부터 쓰윽 훑더니, 이윽고 내 얼굴에서 멈췄다.

“멈춰!”

내게 다가오려는 아르를 셰이가 막아섰다. 카야도 달라붙었다.

아르는 셰이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다. 그러자 셰이는 클레이모어를 아르의 목에 갖다댔다. 아르의 시선이 그제서야 셰이에게 향했다.

“당장… 당장  모습을 풀어!”

 모습으로 헨드릭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셰이의 의지와   치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아르의 기세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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