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신중한 준비(10)
[늑대S. 학살의 포효]
- 인간 폼에서 늑대 폼으로 변신할 때만 사용 가능
- 모든 괴물들에게 동시 타격(데미지 보정 -66%, 고정 데미지)
- 모든 괴물들의 공격력을 아르의 공격력 중간값의 15%만큼 감소시킴
- 모든 괴물들의 방어력을 아르의 방어력의 20%만큼 감소시킴
- 일정 확률로상태이상 ‘마비’(1턴)를 부여
- 스킬로 적 처치 시 재행동(1회)
[늑대1. 내장 해체]
- 늑대 폼에서만 사용 가능
- 최대 2개체의 적에게 동시에 타격 가능
- 데미지 보정 - 20%(1개체 타격시 데미지 보정 0)
- 치명타 확률 + 10%
- 일정 확률로 상태이상 '출혈' 부여
아르가 단번에 전장을 뒤집어놓은 두 스킬이었다. 학살의 포효는 사용 조건상 한 전투에 한 번 이상 쓰기 힘들겠지만 효과는 굉장했다. 인간 폼이었을 때의 이점을 포기한 대신 얻어가는 대가성 스킬 같은 느낌이었다.
‘스킬 이름들이 하나같이 살벌해.’
거기에 사자 두 마리를 한 번에 사/자로 만들어버린 늑대 폼 첫 번째 스킬 ‘내장 해체’는, 어떻게 보면 셰이의 ‘정의 집행’의 상위 호환 스킬이었다. 셰이의 스킬들이 대체적으로 급이 높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르의 스킬이 유달리 급이 높다거나 아니면 늑인의 늑대폼이 폭발적인 전투에 한해서 탑클래스라는 걸 증명하는 것일 터였다.
‘늑대 폼으로 변신했을 때의 피지컬 상승 수치를 고려해서 계산해보면, 늑대 폼의 늑인은… 전 클래스 통틀어서 피지컬 1위네. 말도 안 되는 수치다 진짜. 단기 전투를 위한 클래스인가.’
늑대 폼의 최대 체력 보정치는 +9로, 기존에 가장 높은 보정치인 최강 맷집 수호자의 보정치 +7을 뛰어넘었다. 그뿐만 아니라 최대 공격력 보정치도 +6으로, 깡딜 최강인 광전사의 보정치 +5마저 뛰어넘었고.
‘인간 폼의 피지컬은 약하지만, 인간 폼 스킬도 나쁘지 않아. 게다가 아르의 특징이랑 조합되면 자리 제한 없이 원거리에서 치명타를 뻥뻥 터트릴 수 있으니….’
이쯤 되면, 차라리 아르를 메인 딜러로 삼고 내가 서포터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클래스 체인지 같은 형편 좋은 건 없었다. 그만큼 임팩트가 강렬했다.
“아르르르….”
“아르!”
하지만 아르의 상태가 이상했다. 살짝 지릴 정도의 포효로 호랑이 한 마리를 터트려 죽이고, 그 덕분에 얻은 재행동으로 사자 두 마리의 피를 흩뿌릴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늑대 폼 아르가 제자리에 돌아오자마자 풀썩 주저앉은 것이다!
화들짝 놀라 다가가니 온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웠다.
“아르, 아르!”
[비산하는 피와 살점들이 아르의 본성을 일깨우기 시작합니다.]
[아르의 ‘이성적임’ 특성이 본성의 각성을 거부합니다.]
[아르의 ‘혈액공포증’ 특성이 본성의 각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종족의 특성과 개인의 특성이 충돌합니다.]
[아르 멘탈리티 –10]
[변신이 해제되기 전까지 특성 충돌은 계속됩니다.]
[멘탈리티]
셰이 : -24
카야 : -19
유진 : -22
아르 : -69
‘씨발,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좆되는 거였네!’
변신 전에는 공격할 때마다 움찔거렸고 치명타 터져서 괴물을 터트렸을땐 채찍을 놓칠 뻔할 정도로 멘탈리티가 심심찮게 깎였었다. 그래서 변신 직후, 그런 모습이 안 보이기에 특징이 상쇄되는가 싶었는데 오히려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늑대 폼 늑인의 위력은 절륜했으나 미확인된 후폭풍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아르! 당장 변신 풀어! 아르!”
늑대 귀와 손톱, 날카롭게 생긴 송곳니 등을 제외하면 인간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아르는 내 품속에서 끙끙 앓는 소릴 내며 고갤 부르르 떨었다.
“너 위험하다고!”
“끄응….”
“얘가!”
내 명령대로 스킬을 사용한걸 보면 내 말을 알아듣는 건 분명했다. 하지만 아르는 변신을 풀라는 내 말을 거부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사소통이 일방적인데 내 말을 씹어버리니 어떻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없었다.
“왜 그러는 거야 대체! 젠장, 돌아버리겠네!”
“대장! 저길 보십시오!”
“뭘? 제단? 갑자기 제단은 왜?”
“미세하게 양쪽에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카야가 철퇴로 3시 쪽 제단과 9시 쪽 제단을 가리켰다. 두 제단의 색이 조금이지만 차이가 났다. 3시 쪽 제단의 색이 아주 약간이지만 더 어두워져있었다.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다. 아니, 카야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아예 눈치를 못 챌 뻔했다.
‘아까 아르가 9시 쪽 괴물 두 마리 잡은 거의 영향인가 근데 메시지에선 한 라운드마다 변한다고 했는데…… 아? 설마?’
한 라운드가 넘어가고 한 번에 확 변하든, 지금처럼 서서히 변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 미세한 색의 차이.
그건 2마리였다.
‘씨발 이 좆같은 시스템. 포위 해제 조건을 왜 숨겨놓나 했더니 그딴 식으로…!’
아무리 처음 겪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플레이타임은 배신하지 않았다. 숱하게 겪었던 다양한 패턴과 함정 등에 고통 받았던 두뇌가 풀로 돌아갔고, 곧 좆같은 결론을 도출해냈다.
“다들 잘 들어.”
나도 모르게 톤이 확 내려갔다.
“저 제단들. 괴물이 일정 시간 쌓이면 색이 어둡게 변하는 거 같거든. 3시 쪽 제단이 9시 쪽 제단보다 미세하게 더 어둡잖아. 그건 아까 아르가 9시 쪽에 있는 괴물을 두 마리 잡아서 그런 거 같아. 그게 아니면 저 변화를 설명할 근거가 없어.”
“그렇다면….”
“느낌 오지? 절대. 절대로 방치해선 안 될 거 같다는 거. 저 제단이 완전히 검게 변색되면 안 될 거 같다는 거. 정면에 있는 괴물들에게 조금 공격을 허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제단에 있는 것들을 조져야 돼. 내 생각엔, 저 제단이 완전히 변색되지 않게 계속 괴물들을 처리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인 거 같아.”
아마 게임이었다면 2/100, 이런 식으로 카운팅되지 않았을까. 정말로 100마리를 잡아야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거였다.
만약 제단이 파괴된다면, 카운팅은 리셋될 것이고 포위는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고.
[제단이 파괴되면 새로운 제단이 생겨나 새로운 괴물들이 등장합니다.]
이건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지독한 기만이었다. 기회가 한 번이 아니라는 식으로 안심을 줘놓고, 나중에 더 큰 절망을 선사하는 좆같은 짓이었으니까.
“앞으로 카야는 9시 쪽 제단을, 셰이가 3시 쪽 제단을 맡아. 나는상황 봐서더 위급한 쪽을 지원할 테니.”
“아르는, 괜찮은 건가요?”
“아르는….”
아르는 상반신을 잔뜩 낮춘 자세에서 자신이 흩뿌렸던 피가 있는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몸은 떨고 있는데 말이다.
“모르겠어. 지금 당장 위급한 건 아닌 거 같은데, 좋은 상황은 결코 아냐. 변신한 게 더 악영향이 끼치는 거 같은데 말을 안 들으니 원.”
아르는 맨 처음 내가 안아줬을 때를 빼고는 우리들의 접촉을 거부했다. 다가오지 말라고, 건드리지 말라고 이를 드러냈다.
“어쩔 수 없어. 우릴 위해서도, 아르를 위해서도 최대한 빨리 저 괴물들을 조지는 것만 생각하자.”
“대장님.”
“왜.”
“후퇴…는 안 되겠죠?”
“…힘들겠지.”
삼면으로 포위당한 상태였다. 말이 삼면이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아니었다면 진즉 사방에서 포위당했을 것이다. 시도는 안 해봤지만, 만약 우리가 겉보기엔 뚫려있는 것 같은 뒤쪽으로 후퇴를 시도한다면?
[포위가 풀릴 때까지 용사대는 후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메시지를 거스를 수 있을까?
고개를 저었다. 지나친 도박이었다. 원래 더 롱 테러에서도 난이도에 따라 달랐지만 후퇴는 상당한 페널티를 동반했다. 실패 확률도 존재했다. 근데 대놓고 후퇴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우리도 저 괴물들처럼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나가게 해달라고 발악하다가 뒤를 잡혀 몰살당할 수 있었다.
‘무기랑 방어구 업글 안 되어 있었으면, 훨씬 더 곤란할 뻔했어.’
아르의 스펙을 확인하고 전투 실력과 조합을 확인한다는 당초 목적은 이뤘으니, 아르만 어떻게 잘 보호하면서 싸울 수 있다면 아예 답이 안 보이는 건 아니었다.
‘유리대포야. 유리대포. 한 방 쏘고 포신이 깨질 위기에 처할 정도의 유리대포.’
씁쓸한 마음을 접고, 내 다음 말을 기다리는 카야에게 9시 방향에서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는 호랑이를 가리켰다.
“저 짐승 새끼들을 완전히 박살내버려.”
“예, 대장.”
콰드득-!
카야의 철퇴는 미쳐버린 짐승들의 대가리를 단숨에 박살냈다. 그녀는 최대한 날렵하게 뒤로 물러났으나 피와 살점이 조금씩 묻는 것까진 피할 수 없었다.
“아우우우우우----!!!”
박살난 늑대의 바로 뒤에 있던 늑대가 길게 하울링했고, 곧바로 새로운 늑대가 충원됐다. 카야가 이를 악무는 게 보였다.
“씨발…!”
나-셰이-아르-카야 순으로 이어지던 아군의 공격이 막 끝나고, 대부분 우리보다 속도가 동등하거나 열세였던 괴물들의 파상 공격이 시작됐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앵--------
시작은 3시 쪽에 있던, 운 좋게 마비에 걸리지 않았던 거대 모기였다. 거대 곤충들은 존나 혐오스러웠다. 구역질이 나왔다. 날갯짓도, 침도 문제였지만 곤충 특유의 눈이 제일 좆같았다.
[맹렬한 흡혈]
거대 모기는 정신 나갈 것 같은 모기소릴 내며 우리 주윌 맴돌더니, 무지막지한 길이의 침을 아르에게 향했다.
푸우우욱-
“안 돼!!!”
“아르!!!”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다. 포위당하기 전까진 거대곤충에게공격받은 적은 없었다. 해수 쪽에 비해 해충 쪽이 속도는 빠르고 체력과 방어력이 약하니 공격받기 전에 우선적으로 조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해야 하는 적이 4마리에서 12마리로 늘어났고, 선제타격으로 아군의 전력을 유지한다는 계획에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그 구멍을 수십 cm는 넘을 것 같은 거대 모기의 침이 노렸다. 그것도 가장 불안한 상태의 아르를.
“으르르르르르---!!!!”
왜애애애애애앵---!!!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침이라기보단 숫제 레이피어라고 해도 무방한 모기의 침을 아르가 온몸으로 꽉 붙잡아버린 것이다!
마치 모기가 물 때 근육에 힘을 주면 침을 못 빼고 부들거리는 것처럼!
“미친!”
“아르!!”
옆구리에 꽤 깊게 박혔는지 피가 나오고 있었는데, 아르는 전신의 근육을 한계까지 수축해 거대 모기를 붙들고 있었다. 거대 모기는 어떻게든 침을 빼내려고 날개를 더 거칠게 휘둘렀지만, 아르는 한 술 더 떠 손톱을 아예 모기의 침에 박아버렸다.
[아르가 흉폭한 거대 모기의 맹렬한 흡혈을 거세게 저항합니다.]
거대 모기의 날갯짓에 흙먼지가 날려 시야가 뿌예지는 상황. 아르와 거대 모기의 대치 상태가 너무 첨예해서, 자칫 잘못하다 아르가 그대로 관통당할 것 같아 다가가기도 애매했다.
[저항 굴림]
“아르!!”
결국, 운명의 굴림이 발생했다.
“이번에 끝나고 돌아가면, 하루 종일 네가 먹고 싶은 걸 먹게 해 줄게! 그러니 지지 마!!!”
아르 : 4
흉폭한 거대 모기17 : 3
[아르가 맹렬한 흡혈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출혈’(3턴)에 저항했습니다.]
[상태이상 ‘중독’(3턴)에 저항했습니다.]
[흉폭한 거대 모기 17이 아르에게 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7/21]
침이 반으로 우득 부러졌고, 거대 모기는 황급히 원위치로 도망갔다. 허나 기뻐하기도 잠시, 아르는 옆구리에 박힌 침을 보더니 말리기도 전에 확 뽑아버렸다.
푸화아악-
“얌마!!!”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아르의 본성을 일깨우기 시작합니다.]
[아르의 ‘이성적임’ 특성이 본성의 각성을 거부합니다.]
[아르의 ‘혈액공포증’ 특성이 본성의 각성에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종족의 특성과 개인의 특성이 충돌합니다.]
[아르 멘탈리티 –12]
[변신이 해제되기 전까지 특성 충돌은 계속됩니다.]
“….”
“아르! 아르! 임마 야!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아르! 괜찮아요? 대답해봐요!”
“아르! 무사합니까!”
“으르르….”
“야 임마….”
아픈 내색도 않던 아르는 뻥 뚫린 제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녀가 동료들의 외침에 고개를 들었을 때.
은색으로 빛나던 아르의 오른쪽 눈동자가 반 이상,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