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1화 〉신중한 준비(8) (101/218)



〈 101화 〉신중한 준비(8)


아르는 욕설을 동반한 부름에 반응하고 말았다. 여기선 검은 머리가 적은 편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들어본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리 같은 놈들.’

목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아르는 무시하고 제 갈길 가기로 했다.

“어? 야, 야!!!”

목소리는 삽시간에 다시 멀어졌다.


**


하루가 지나고 대망의 장비 수령일이 되었다. 그동안 가보처럼 엄중히 모셔놨던 증표를 직원에게 제출하자, 새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휘황찬란한 갑옷과 무기가 보고 싶었다며 우리 품에 돌아왔다.

외형엔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두 단계 업그레이드 된 갑옷은 몸에 착 달라붙는 것이 어떤 공격이든 막아낼 것 같았고, 손도끼는 어떤괴물의 대가리라도 모조리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사대 전체의 방어력과 체력, 그리고 공격력이 올라갔으니 든든해졌다. 카야와 셰이도 웃는 얼굴로 무기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걸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좋아. 저번 인던 후반부 같은 곳만 아니면  박살 가능하지.’

준비는 진즉 끝냈다. 의뢰도 진즉 받아놨고, 마지막 피스가 모였으니 출발만 하면 됐다. 막상 풀 무장을 하고 나니 가뜩이나 왜소한 아르가 굉장히 빈약해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그녀는 아직 우리 용사대 소속이 아니었다. 카야와 화해한 것도 어디까지나 서로 동등한 ‘대화’의 상대가 되었다는 것뿐이지, 당장 용사대원으로 받아들이는 테스트 같은  아니었으니까.

기본 스펙, 그리고 특징이랑 보유 스킬만 보고 등급을 매기고 갈아치웠던 과거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건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냐. 괜한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던전 클리어를 위해선 당연한 거야.’

쓰고 일회용으로 갈아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엄선할 뿐이다. 그때는 죽어버리면 키보드를 내리치고 욕하면서 리겜할 뿐일 게임 캐릭터였지만, 지금은 생사를 함께하는 동료고.

의뢰서에 적힌 곳으로 향하는 동안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도 안 돼요! 어떻게 일주일 넘게 걸린 의뢰를 성공했는데, 돈을 그 정도 밖에 못 받았다구요?”

“활약이 없었다면모를까… 하다못해 짐꾼 역할만 했어도 그보다 더 받았을 겁니다. 부당 착취입니까?”

“난 혼자야. 내 편도 아무도 없어.   한 명은 이길 수 있겠지만, 그놈들은 이리떼 같은 놈들이야.”

‘늑인이 저런 단어를 쓰니까 좀 오묘한데.’

뭐, 아르는 세일럼에 오기 전까지 변신을 한 번도  적이 없었고 변신하고 나서도 늑대의 특징이 그렇게까지 두드러지진 않았으니 늑대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약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머니가 인간이라고 했으니, 혼혈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어쩌다보니 아르가 세일럼에서 그동안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걸 들은 우리는 우리가 겪은 일이 아니었음에도 하나같이분노했다.

명백한 착취였다. 그것도 엄청난 수준의 착취.

“너무 부당해요. 신고한 적은 없어요?”

“맞습니다. 아무리 보상 배분은 당사자들 사이의 문제라 해도,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나라고 그런 생각을  떠올린 줄 알아? 난 용사가 아니야. 용사가 아니었던 적이 없어서 잘 모르나본데, 이 도시엔 용사가 아닌 이들의 권리 같은 건 보장해주지 않아. 용사라는 것도 흔해 빠져서 굴러다니는 마당에, 힘없는 하루살이가 같은 하루살이들한테 착취당하는  보호해줄  같아?”

“그런….”

“그럼 용사 등록을.”

“할 수 있었을 거 같아? 종족이 까발려지는데?”

“아.”

카야만 해도처음 본 아르를 죽이려 했었다. 교단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늑대인간을 배척한다는 건 같았다. 세일럼 성에 자신의 종족을 밝히는 건, 그것도 여러 교단의 지부들이 좁은 곳에 몰려 있는 곳에선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럼 왜 굳이 여기에 계속 남아있는 거예요? 힘들잖아요. 부당하잖아요. 억울하잖아요. 위험하잖아요.”

“아빠를 죽인 교단 사람들한테서 도망쳤어. 아빠가 죽기 전에 세일럼으로 도망치라고 했거든. 그래서 여기로왔어.”

우린  말을잃었다. 특히 ‘교단 사람’인 카야와 셰이는 멈추기까지 했다. 정작 두 교단 사람 앞에 서 있는 늑대인간이 제일 덤덤했다.

“안 가?”

“아니, 아르, 너….”

“나도 왜 이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어.근데 그냥똑같이 생각했을 뿐이야.”

“똑같이? 뭘?”

“당신들이  다른 늑대인간과는 다른 늑대인간으로 여기고 있듯이, 나도 당신들을 다른 교단 사람과는 다른 교단 사람이라고 여기면 된다고.”

아르가 날 올려다보았다.

“똑같잖아?”

“…그래. 똑같지.”

“그래. 그러니까 아무래도 좋을 내 과거 같은 건 그만 얘기해.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카야와 셰이가 걸음을 멈춘 까닭에 제일 앞서게 된 아르가 다시 원래 자리, 최후열로 돌아왔다.우린 다시 걸었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조금 무거워진 걸 느끼며 의뢰서를 펼쳐보았다.

「세일럼 서쪽 외곽 주변에 나타나는 해충 및 해수 구제」

세일럼은 꽤 큰 편에 속하는 도시였고, 상업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도시였다. 상대적으로 농업을 비롯한 1차 산업은 굉장히 빈약하기 때문에 아마 식량 자급자족률을 따진다면 다른 도시보다 많이 낮을 것이다.

그런 세일럼에서 몇  되는 식량 생산 스팟들 중 하나가 바로 서쪽 최외곽과 그 주변에 위치한 세일럼 축산장이었다.

거긴 해충과 해수들의 맛집이나 다름없었고, 구제해도 끝이 없었기 때문에 세일럼 성에서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계속 의뢰를 내걸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연중무휴급 의뢰였다.

‘보상 자체는 그리 나쁘진 않지만….’

그 의뢰를경험했던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내뱉었던 말이 ‘존나 좆같았다.’였다는 것과, 웬만한 하루살이들도 돈이 급한 게 아니라면 고개를 저을 정도의 의뢰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웬만한 하루살이들이 경험했다는 걸 봐선 난이도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다른 의뢰들이 너무 하찮거나, 너무 오래 걸리는 것들 밖에 없어서 대안이 없었다.

약 시간 정도를 더 걷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기엔 우리뿐만 아니라  명은 족히 넘는 이들이 무기를 만지작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등장에 잠깐 흘긋 쳐다보다가 제각기 혀를 차거나 침을뱉거나 욕설을 중얼거렸다.

“저 자들이….”

“참아.”

“대장.”

“굳이 따지자면 우리가 저들 영역에 들어온 거야. 그리고 이득도 없어.”

“알겠습니다.”

애초에 이 의뢰 대상은 공식적으론 ‘용사’들이다. 하지만 의뢰 보상금보다 더 많은 금화를 얻을  있는 던전을 드나드는 용사들이, 이런 의뢰들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그걸 하루살이들이 받아먹는 거고, 세일럼 성도 알면서도 필요성에 의해 방관하는 거고. 저들 눈엔 딱 봐도 용사처럼 생긴우리가,  그래도 작고 더러운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재수 없는 새끼들처럼 보일 것이다.

‘한 번 하고 말 건데 굳이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어. 덤빈다면 모를까.’

저놈들이 다 덤벼도 질 것 같진 않았다. 그걸 저쪽도 아는 건지 그 이상의 시비는 걸지 않았다.

힘.

그 차이 때문에 예전의 아르처럼 보상을 착취당하는 일도, 지금처럼 이쪽이 소수여도 기세를 압도하는 것도 가능했다. 사람 사는 곳에서 통용되는 논리는 어딜 가도 비슷하겠지만, 이런 약육강식의 논리가 ‘용사’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는 건 괜히 좀 그랬다. 저들도 한 때 용사였고, 몰래 용사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질 나쁜 ‘용병’처럼 보였다.

“하아…겨우 이 정도밖에 안 모이다니. 그러니 보수를 올리자고 몇 번이나 건의했건만.”

괜히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작은 바위 위에 서서한숨을 내뱉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에 짧은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숨을 푹푹 쉬며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우릴 발견하더니 대놓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신청자 목록 보고 긴가민가했는데 정말로 오다니! 신출도 아니고 경험 있는 용사대가 있다면 이 정도 인원으로도 충분하지! 암!”

‘굳이 용사대라고 떠들 필요는 없잖아 이 아저씨야….’

의뢰 책임자로 보이는 그의 말은 아무래도좋았다. 빨리 이 불편한 장소를 벗어나고 싶었다. 저 중년 남자도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헛기침을 내뱉고선 우릴 제일 먼저 의뢰 장소로 보냈다.

“네 분께서는 여기, 1번 구역으로 가주시면 되겠습니다.”

“1번 구역만 막으면 되는 겁니까?”

“맞습니다. 축산장이 워낙 넓어서 부득이하게 전력을 나눌 수밖에 없는 점은 양해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정확히 언제까지 막으면 됩니까?”

“정해진 시간이나 처치 수는 없지만, 대략 반나절에서 한나절 정도면 약간의 소강상태가 옵니다. 딱 보면 아실 겁니다.”

“반나절에서 한나절이라… 만약 한나절이 지나고도 계속몰려오면 그땐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이걸 부십시오.”

아주 작은 피리였다. 이걸 불어서 뭐 어쩌라는 거지? 내가 미심쩍어하는 걸 알아챘는지 그가 잽싸게 덧붙였다.

“다른 구역을 맡은 이들로 증원을 보내겠습니다! 만약 피리를 불고 30분 안에 증원이 없다면, 후퇴하셔도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후퇴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위험은 안 들었다. 해수와 해충이 어떤 식으로 얼마나 몰려오는지, 얼마나 좆같을지가 관건이었다.

남자가 1구역이라고  곳으로 향했다.

“아르. 이 의뢰는 해봤어?”

“아니. 돈이 아무리 급해도 이건안 했어.”

“왜?”

“…해충이든 해수든, 한 곳에서 많이 죽여야 하니까. 많이 죽이면 피도 많이 나오겠지. 설렁설렁 했다간 가뜩이나 적은 돈,  적게 받을 거고. 그래서 안 했어.”

“아니 그럼 지금은 아무 말  했어?”

“지금은 혼자가 아니니까.”

음.

아르는 말 그대로 혼자가 아닌 자신의 처지를 말한 것이었겠지만, 그녀의 말은 묘한 울림이 있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것이, 카야와 셰이도 순간 몸을 움찔한 게 보였으니까.

“아. 저긴가보네.”

“반나절에서 한나절이라… 체력 분배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예 근원지를 찾아서 박멸하는 게 좋을 텐데요.”

“그게 가능했으면 진작 하지 않았을까.”

의뢰자 측에서 미리 징표로 박아둔 곳을 지나자 메시지가 떴다. 를 클리어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인스턴스 던전 '끊이지 않는 위협'에 입장했습니다.]
[인스턴스 던전 내에선 경험치 획득량이 감소합니다.]
[인스턴스 던전에서는 후퇴할 수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위협이라… 거창하네.’

세일럼의 식량상태를 꾸준히 위협한다는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라 생각하며, 아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프로필 떴냐!’

[아르*Ar]

종족/성별 : 늑대인간 여성
클래스 : 늑대인간(Werewolf)

함께 인던에 들어와서 그런지 아르의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아르*Ar]

종족/성별 : 늑대인간 여성
클래스 : 늑대인간(Werewolf)
레벨 : 3
최대체력 : 15/21
공격력(2) : 3~11/3~15
방어력(1) :2/4
속도 : 4/1
기사회생/각성 : 7/10%
정찰확률 : 27/23%
긍정적 특징 : *이성적임(변신시 '격노'상태에 빠지지 않음)/유연함(공격 사거리+1)/준족(첫 라운드에 한해 속도+1)/능수능란(인간 폼일 때 치명타 확률 증가, 늑대 폼일 때 공격력 증가)
부정적 특징 : *미숙한 변신(변신을 오래 유지하지 못함)/혈액공포증(치명타를 띄우거나 적 처치시 일정 확률로 멘탈리티 감소)/죽음공포증(자신이나 동료의 체력이 낮아질수록 멘탈리티 감소폭 증가)


“뭐해? 멍하니 서서.”

‘세상에… 이게 무슨 프로필이야?’

처음 보는 형태의 프로필과 환장의 특징의 콜라보에,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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