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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진실게임(3) (91/218)



〈 91화 〉진실게임(3)

카야에게 손목을 잡힌 채 어디론가 끌려가던 나는 더  혼란에 빠졌다.

‘왜? 뭐 때문에? 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왜 카야만  거지? 설마, 셰이가 진짜로….’

우리가 묵었던 건물보다도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라엘라 교단의 세일럼 지부는 생각보다 넓었는데, 본관이 상당히 작아질 때쯤 되어서야 카야가 손목을 놓아주었다.

“여긴, 어디야?”

“일단 들어가십시오.”

“어….”

본관에 비해 굉장히 작은 건물이었다. 무슨 용도로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 있는지 짐작도 안 갔다. 그저 카야의 재촉에 의구심을 접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사람의 출입 자체가 적은 건물인지 문에서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먼지도 상당히 있는 거 같았는데, 중요한 건 내부의 구조였다.

“여긴….”

“고해실입니다.”

“고해실? 여기에?”

“죄를 대신 사해줄 수녀님은 없는, 스스로 고해하고 스스로 뉘우치기 위한 곳이라들었습니다. 위치도 위치고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들었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안심…?”

안 그래도 작은 공간이  개의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고,  칸막이 안쪽은 어두운 커튼으로 가려져있었다.

“이쪽에 들어가십시오.”

카야는 그중 가운데 칸막이에 나를 인도했다. 들어가지 않으면 강제로 밀어 넣을 것 같았다. 설마, 이 좁은 곳에서 뭐라도 하겠냐는 마음도 있었고 내 소매를 잡은 그녀의 악력이 은근한 압박을 선사했다. 순순히 안에 들어갔다.

펄럭-

칸막이 안은 생각했던 것보단 넓었다. 두 명이 들어가면 그대로 꽉  것 같았는데, 세 명이 있어도 여유공간이 있었다.

그 말은 즉, 이미 칸막이 안쪽에서 셰이가 날 기다리고 있었고. 카야가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앞뒤로 포위당한 격이었다.

‘설마, 상당히 떨어진 곳까지 유인한 이유가…!’

“대장.”

“헉!”

“아까부터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뒤쪽에서 나타난 카야의 손이 어깨에 닿았다. 절로 흠칫 떨었다.

보고 있나, 공포 새끼야? 이런 게 바로 공포라는 거야. 너처럼 저급한 수단 같은 거 하나도 안 쓰고 내게 이렇게도 공포감을 쑥쑥 심어버리잖아. 보고 배워라.

“움직이지 마십시오.”

“뭐, 뭐? 뭐하려고?”

“움직이지 마십시오.”

“카야? 카야! 이, 이거 뭐하는 거야. 에이, 장난이지? 어?”

“움직이지 마십시오.”

“무, 무섭게 왜 그래. 어? 우리 대화라는 좋은 수단이 있고, 대화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하는….”

“움직이지, 마십시오.”

“아, 알았어알았어! 알았다니까!”

어깨를  카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날 손쉽게 제압한 카야가 검은 천을 내 눈에 씌우고는 빙빙 둘러감았다. 순식간에 시야가 차단됐다.

달그락- 덜컥- 사르륵- 탁-!

뭔가 물건들이 서로 부딪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별  아닌 소음인데,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서 시각이 차단되니 굉장히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이쪽은 됐어요, 언니.”

“저도 다 됐습니다. 풀어도 되겠습니까.”

“네.”

뒤통수에 카야의 손이 닿았다. 곧 세상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 사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작은 의자와 검은 커튼만 달랑 있었던 공간에 상당한 크기의 원탁과 의자  개가 120도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엔 회초리, 몽둥이, 채찍, 촛불 등의 살벌한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어딜 가십니까.”

“카, 카, 카, 카야.”

“저기, 저쪽 의자에 앉으십시오.”

무심코 뒷걸음질 치다가 카야와 부딪쳤다. 그녀가 뒤쪽을 완벽히 틀어막고 있었다. 다시 앞쪽을 바라봤다. 거기엔 셰이가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선 회초리를 제 손바닥에 착착 때려가며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션은 꼭, 닥치고 빨리 안 오면 회초리부터 맞을 줄 알라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개 숙인 죄인이 되어 셰이의 왼쪽 자리에 앉았다. 뒤따라오던 카야는 입구를 뭘로 막더니 나머지의자에 앉았다.

“대장.”

“예!”

“뭐가 그리 무서우십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아닙니다! 하나도 안 무섭습니다!  긴장합니다!”

카야와 셰이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그제서야 방금 내뱉은말이 병신 같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제부터라도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는 말을 실천하기로 했다.

‘훈련병도 아니고… 무서워. 무섭다고, 얘들아.’

셰이의 손에 들린 회초리와 카야가 만지작거리는 채찍 때문에 이성적인 생각을 하기가 힘들었다.

“대장. 제가 이곳이 어떤 건물이라고 했습니까.”

“무인고해소…?”

“맞습니다. 지금부터, 저희와 대장님이 해야 할 건.”

“상호공개고해랍니다?”

상호공개고해.

일반적으로 고해는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칸막이랑 검은 커튼이 있는 것도 죄를 사해주는 여신의대리자 역할을 하는 수녀와 고해자 사이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고해하는 사람이 현저히 적을 뿐더러, 고해한다 하더라도  시원하게 고해하지도 못 할 테니까.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상호공개고해는 그런  없었다. 얼굴을 서로 보이는 공개적인 상태에서 서로에게 고해를 해야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까놓고 말해서 진실게임이랑 비슷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었다.

페널티,  벌칙이었다.

진실게임에서는 대답을 최소한  번은 회피할 수 있다거나, 그 이상 회피할 때가 되어서야  먹기라든지 손목 맞기 같은 가벼운 벌칙 같은 받겠지만….

“스스로가 생각하는 무게만큼, 스스로 ‘참회’해야 합니다.”

고해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참회’,  ‘자해’해야 했다.

‘이세계 중세판 진실게임 실화냐….’

더 환장하는 건, 감춘 정보에 대한 중요도만큼 참회해야 한다는 규칙만이 존재한다는 것.  고해를 회피해놓고 가볍게 회초리로 손바닥 한 대 때리고 넘어가는 짓을 했다간….

‘겨우  정도 무게밖에 안 되는 정보를 우리에게 숨기는 거예요? 우릴 못 믿는 건가요? 흐응, 그런 거죠?’

가불기였다.

차라리 질문한 사람이 때리는 거라면 이를 악물고 버티면 넘어갈 수라도 있을 텐데, 오로지 스스로 벌칙을 내린다는 점에서 개인의 양심과 서로간의 신뢰 문제까지 건드렸다.

참회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

그건 그녀들과의 신뢰를 더 깨뜨리는 일이었다. 당장의 위기를 넘기자고 미래를 파탄내는 행위였다. 게다가 이곳은 수도원… 진위 여부 정도는 파악하는 수법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예전에 셰이와 던전 안에서 사랑을 나눴던 때처럼 말이다.

굉장히 무겁고 무서운 자리였으나… 원인 제공자는 나였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도 망 가 지  세 요.

셰이가 입을 뻥긋거렸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부터 계속 채찍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카야가 스타트를 끊었다.

“대장이 고해하기를 청합니다. 대장.”

“예.”

“대장은, 저희를 어떻게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자신의 말에 담긴 진실의 무게를 더하고 싶다면, 앞에 놓여있는 작은 여신상을 손에  채 말씀하시면 됩니다.”

역시나.

흉흉한 도구들 사이에 괜히 미니여신상 같은 게 놓여있는 게 아니었다. 아마 저게 진위판독기 역할을 하겠지.

나는 망설임 없이 여신상을 손에 쥐었다. 대답도 망설임이 없었다. 망설여서는 안 되는 대답이었다.

“사랑하는 연인, 훌륭한 동료, 그 둘을 합쳐평생 함께하고 싶은 동반자.”

“읏….”

“카야?”

“크흠, 큼!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셰이, 당신 차례입니다.”

카야는 갑자기 고갤 홱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얼굴이 살짝 빨개진  같기도 한데….

“대장님이 고해하기를 원해요.”

“그래.”

 번째 턴이니 몸풀기용 문제라고 생각했다. 카야의 반응을 보니 단호한 대처가 생각보다 잘 먹힌  같았다. 계속 이런 식이라면, 훈훈하게 끝날 수 있을지도…?

“대장님, 세스티아님을 안았을 때가 더 좋았어요? 절 안았을 때보다?”

“….”

어림도 없지.

바로 핵매운맛 질문이 훅 치고들어왔다.

망설이면 안 돼. 바로 대답해야 돼!

아까만큼의 속도는 아니지만,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한 덕택에 재빨리 대답할 수 있었다.

“셰이, 너랑 안았을 때가더 좋았지.”

“흐응? 그래요?”

“물론.”

“그런데, 왜 이번엔 손을 떼셨을까요?”

“어? 내가?”

당황해서 고갤 밑으로 내렸다. 정말이었다. 여신상을 굳게 쥐고 있었던 오른손이 사라져있었다. 정말, 진심으로 당황했다. 언제 뗀 거지?

알고 보니 빌어먹을 오른손새끼는 축축하게 차오른 땀을 허벅지에 닦고 있었다.

“따, 땀을 닦느라고 나도 모르게 그랬나봐. 다시 대답하면 되겠지?”

“굳이 그렇게까지  하셔도 되는데… 대장님이 그러시겠다면 말리진 않을게요. 굳이요.”

‘안 하면 좆된다.’

여기서 저게 반어법이라는 걸 눈치 못 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라엘라님을 간절히 외치며, 아까와 똑같이 대답했다.

“흐응….”

‘씨, 씨발. 잘못됐나?’

내 오른손에 가려진 여신상은 머리만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이 막히는 분위기는 대체…?

“그랬구나. 뭐, 알았어요.”

“그, 그래. 고마워.”

뭐지, 내가 불쌍해보여서 마지못해 넘어가준다는 저 미적지근한 반응은. 그래도 지금은 좋은 게 좋은 거였다. 내가 굳이 나서서 따질 필요는 하나도 없었다.

“자. 다시 언니 차례예요.”

“어?”

하지만 내 차례는 당연하다는 듯 스킵 되고 카야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을 때.

“대장이 고해하기를 청합니다.”

“아니, 잠깐! 내, 내 차례는.”

“대장은 다음 동료를 여자 용사로 들일 생각입니까?”

“따, 딱히 그럴의도는 없어! 너도, 셰이도 그냥 영입하고 나니 여자였을 뿐이야!”

“제가 물은 건 다음 동료입니다, 대장. 똑똑하신 분께서 논점을 은근슬쩍 흐리지 말아주십시오.”

첫 번째 문제는 튜토리얼이었다는 듯, 날카로운 잽과 훅을 날리는 카야에게 코너로 몰렸고.

“대장님이 고해하기를 원해요. 세스티아님께 동료 영입을 제안했죠?”

“그, 그랬지.”

“저희는 당연히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그…건 말이야. 그니까.”

코너로 몰린 내게 셰이가 묵직한 스트레이트를 꽂았다.

“대장이 고해하기를 청합니다. 만약 다음 ‘여자’ 동료가 대장에게 사적인호감을 표한다면, 저나 셰이처럼 안으시겠습니까.”

“호감 있는 여자라고 무작정 안는 게 아니라, 너희랑은 그만큼 가까워진 상태라서….”

“대장님이 고해하기를 원해요. 만약 지금 당장 세스티아님이 용사대에 합류 가능하다면, 대장님은 받아들이실 건가요?”

“세스티아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최고위 치유 수녀로서, 저번 전투에서도 그녀가 없었다면….”

“받아들이실 건가요?”

“그, 그러니까 그건 너희들과 상의한 후에….”

정신이나갈 거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대답 하고 말고를 떠나 차라리 셀프 회초리질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그래서 대답하다 말고 회초리 쪽에 눈을 잠깐 돌렸더니 그걸 귀신같이 파악한 셰이가휙 들고는 감춰버렸다. 그렇다고 채찍이나 몽둥이 같은 건 엄두도 안 났다.

‘미안합니다 미안해… 좆을 좆대로 휘둘러서 미안해….’

“대장이 고해하기를 청합니다. 대장 앞에 저보다 훨씬 뛰어난 전투 수녀가 나타났다고 가정합니다. 외모도, 수준도, 실력도, 장비도, 성격도 전부 저보다 뛰어난데 저와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고 대장에게 호감이 있습니다. 거기에 저는 모종의 이유로 중상을 입어 의식불명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장의 수중에 있는 돈이 다 떨어져갑니다. 저를 놔두고 새로운 전투 수녀를 데려가시겠습니까?”

“일단 첫째, 카야 네가 가정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전투 수녀가 있을 리 만무해. 있다면 라엘라님의 현신 정도겠지. 그리고 둘째, 네가 죽은 것도 아닌데 널 내버려두고 던전에 들어가는 거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러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절대로.”

“읏… 그, 그렇습니까.”

“언니…?”

“큼, 크흠!”

기계적으로 대답하다보니 카운터를 먹여버린 거 같다. 얼굴이 붉어진 카야를 셰이가 째릿 쳐다보고 있었다.

‘끝이, 보이는 건가?’

희망을 가졌다. 정말 솔직하게 대답했고 더 물어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정말로. 정말 뛰어난 용사가 있어요. 대장님 마음에도 들고 그쪽도 대장님을 괜찮게 봐요. 대장님의 가장  목표인 던전 돌파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을거 같아요. 대장님은  영입하고 싶어해요. 놓치면 엄청 후회할 정도로. 근데 저나 언니가 반대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용사는  된다고 반대하면… 어쩌실 생각이에요?”

셰이가 날린 한방.

“난….”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질문이 마지막 고비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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