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화 〉흉터(3)
세스티아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온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난 분명 목격했다. 자식을 잃은 비통함이 담겨있던 ‘진짜’ 표정을. 지금까지 내게, 그리고 대외적으로 보였던 표정은 가면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먹먹했다.
“딸같이 키운 게 아니라, 진짜 딸이었다고…?”
“네. 세일럼 지부에선 저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어요. 여신을 섬기는데 사사로운 감정이 우선시 될 것 같아서였죠. 딱히 교단이 강제한 건 아니에요. 저도 동의했던 거였으니까요. 나중에 후회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래서 베스티아도 제가 어머니인 줄은 몰랐을 거예요. 죽을 때까지도.”
“아니, 그래도 어떻게.”
숨이 턱 막혔다.
19년 동안 딸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단 한 번도 듣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히 키워온 딸을 직접 처단해야만 했던 엄마의 심정은 어떠할까.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거지?
무서울 정도의 정신력이었다.
“정식 수녀가 되고 딸을 제자로 들였어요. 딸은… 제 딸이라서 자랑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재능이 뛰어났어요. 전에 말씀드린 적 있었죠? 라엘라님에 가장 근접한 아이가 아닐까 한다고. 엄마로서 품어줄 수는 없었지만, 스승님으로서는 아껴줄 수 있었어요. 딸도 절 잘 따랐고요. 하루하루가 충실하고 행복한 날이었지요.”
그녀가 슬그머니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어쩔 수 없이 그녀 옆에 앉게 되었다. 침대가 출렁거렸고, 그녀의 가슴도 출렁거렸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직위가 오르고 책임질 것도 많아지면서 딸아이와의 시간이 점점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세일럼 지부로 오게 되면서 그건 더 심해졌죠. 베스티아도 성장했고, 호기심도 많던 아이라 밖을 많이 돌아다니고 싶어했어요. 저처럼 험한 꼴을 당할까봐 최대한 막고 막았는데, 그게 그 아이한테 족쇄처럼 느껴졌었나봐요. 시도 때도 없이 몰래 빠져나갔었죠.”
그녀의 가슴에서 일단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놔주질 않았다. 오히려 더 깊숙하게 끌어들였다. 나는 반쯤 그녀에게 기댄 자세가 되었다.
“결국, 일이 터졌어요. 리베아라는, 딸아이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수녀와 함께 출장을 보냈는데 리베아라는 아이만 돌아온 거였죠. 까마득한 벼랑에서 떨어지는 거 같았어요. 교단의 힘을 빌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노력했어요. 하지만 허사였죠. 온전히 노력했어도 모자랐을 판에….”
“어째서 교단의 힘을 빌리지 않은 거야?”
“교단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헨드릭님은 입이 무거우실 거 같으니 그냥 말할게요. 그야 사람 사는 곳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라는 게 존재하니까요. 설령 그게 여신님을 모시는 교단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딸을 찾기 위해 맡은 바를 등한시한다? 그것도 이단을 중점적으로 수색한다? 꼬투리를 잡힐 수는 없었어요. 애초에 이곳의 지부를 맡게 되면서 베스티아도 함께 데려온 이유가, 딸과 같이 있고 싶어서기도 했지만 제 눈이 닿는 곳에서 보호하고 싶어서기도 했으니까요. 갑갑해하는 딸에게 어느 정도 자유도 줄 수도 있었고요.”
“…으음.”
우리는 어느새 나란히 누워있었다. 그녀는 내 팔의 위치를 제 목 뒤로 넘기더니 팔베개를 베며 내게 기댔다.
“그 뒤부터는 헨드릭님도 아시는 부분이에요. 일이 터졌고, 뒤늦게 대응했고, 커졌죠. 피해도 상당했고요.”
“…그게 네 탓은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마음이야 편하지만 처음부터 교단에게 손을 빌렸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어요. 아마 교단에서도 그 부분을 추궁하겠죠. 그럼 저는 할 말이 딱히 없긴 해요. 맞는 말이니까.”
“너, 그럼.”
“아마 일이 대충 정리되고 나면 좌천되지 않을까요? 시골 어딘가 작은 예배당의 수녀가 되는 거죠.”
“말도 안 돼! 어디까지 비참해질…!”
“어머, 저 걱정해주시는 거 맞죠?”
“당연한 거 아냐!”
“기쁘네요. 정말로요.”
“아니 그렇게 뭉뚱그리지 말고, 제대로….”
“쉬이이. 괜찮으니까. 저는 괜찮으니까….”
내게 반쯤 안겨 있던 세스티아가 한쪽 팔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제지하지 못했다.
아니, 딸이 그렇게 죽었는데. 세스티아 너도 이후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괜찮다고만 말하는 건데? 어?
“헨드릭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갑자기?”
“헨드릭님도 갑자기 물어봤었잖아요.”
노골적인 화제 돌리기였다.
지금 표정도 가면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그녀를 위해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녀가 괜찮다고 했으니 나도 괜찮은척,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스물 둘이었나.”
“어머머. 제 딸보다 세 살 많은 거네요 그럼?”
“그렇게 말하니까 지금 구도 굉장히 이상한 거 알아?”
“그런가요?”
열넷에 베스티아를 낳았고 19년이 지났다 하니 세스티아의 나이는 서른 셋. 임신기간 고려해서 열다섯에 낳았다고 해도 서른 넷이었다. 서른 넷이라면, 나랑 띠동갑인 셈이었다.
“나이를 알아버리니, 왠지 지금처럼 반말하기가 힘드네. 그것도 딸을 둔 엄마였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따지면 카야 자매님도, 셰이 성전사님도 헨드릭님보다 다 연상인 걸요?”
“어? 진짜?”
“아. 자세한 건 비밀이에요. 제가 말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아니, 아예 아는 척을 하지 마세요!”
“알았어. 아니, 알았어요?”
“말투도 그냥 그대로 해요!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근데 언제부터 내 손이 세스티아의 가슴에 올려져 있는 거지?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목 뒤에 가만히 있었는데?
“헨드릭님.”
“어?”
“뭘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아요. 분명, 저는 지금도 슬퍼요. 제 기도에 고통스러워하던 딸아이의 모습이 떠올라요. 한 번에 안식에 들지 못한 것도 안타까웠고, 끝내 절 엄마로 알아보지 못한 것도 서글퍼요. 하지만… 딸이 실종되고 난 이후부터 그때까지 쭉, 각오했던 일이었어요. 슬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 달도 넘게 이어져 오던 감정이기에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희석된 것뿐이에요. 견딜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이에요.”
“세스티아.”
“진정 저를 걱정해주신다면….”
그녀가 몸을 반쯤 일으켜 날 내려다봤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그녀의 가슴이 내 가슴을 살포시 압박했다.
“오늘밤만이라도, 저를 모든 슬픔과 안타까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수 있어요?”
“세스티아, 난.”
“알아요. 카야 자매님과 셰이 성전사님 때문이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내 뺨을 쓰다듬었다.
“옭아매지 않아요. 제가 이대로 용사대에 들어간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전 오늘밤만을 원해요. 슬픈 감정과는 별개로 천박하게 달아오른 이 몸을, 당신이 달래주길 원해요. 오로지 당신만이 달래줄 수 있어요. 혹시 죄책감 때문이라면….”
세스티아가 순식간에 내 옷을 벗겼다. 그 속도에 당황한 사이, 그녀가 내 입술을 훔치며 말했다.
“모조리 제책임으로 돌리세요. 전 당신이 말했던 대로 음탕하고 천박한 여자니까요.”
“자, 잠깐… 흐읍!”
세스티아가 다시 한 번 내 입술을 훔쳤다. 입술만큼이나 도톰한 혀가 내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벗어나야 하는데, 그녀의 사정도 기구하고 비참한 것도 알긴 알겠는데, 그래도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솔직히 반응했다. 가슴과 가슴이 맨살로 맞닿는 순간, 혀와 혀도 맞닿았다. 아찔한 감각이었다. 카야와 셰이에게서 없었던 농염함이 섞여있었다.
묵직한 중량감과 압도적인 부드러움.
밀어내려면 밀어낼 수 있었지만… 세스티아의 뺨에 흐르는 눈물 한방울을 본 순간, 나는 카야와 셰이를 동시에 안았던 그날처럼, 다시 한 번 쓰레기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일을 숨기지도 않을 거고, 어떤 비난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사죄를 청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했던 대로, 오늘밤만큼은.
생판 남도 아니고, 함께 생사를 넘나들었던 동료인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아아…!?”
몸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내 아래에 깔린 세스티아가 놀란 듯 짧은 비명을 질렀으나 이내 내 입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녀는 내 침을 오아시스의 물처럼 탐했다.말랑한 혀를 이러저리 뒤섞으며 침이 나올 때마다 약탈해갔다.
그리고 그녀가 바랐던대로, 음-탕하고 천박한 가슴을 쥐어짜듯 마구 주물렀다.
“응! 으응! 하읏!”
“좋아? 만져주니 그렇게 좋아?”
“네, 네! 이거, 이거예요! 이 느낌! 흐으응!”
여자의 가슴에 대한 지식은 한없이 얕았다. 작으면 빈유, 크면 거유라는 단어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사이즈를 나타내는 컵도, A는 작고 D는 크다 정도밖에 몰랐다. 그런 어설픈 좆문가인 내 눈으로 봐도 세스티아의 가슴은 D는 그냥 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더 미치겠는 건, 그녀의 체향. 살 냄새 자체가 너무나 좋았다. 카야나 셰이의 살냄새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카야는 은은했고 셰이는 진했다면 세스티아는 달달했다. 도저히 열아홉 살 딸이 있었던 여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몸매와 냄새였다.
중력에 의해 살짝 양옆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모습 또한 처음 경험하는 꼴림 포인트였다. 카야나 셰이의 가슴은 그 정도까지 크진 않았다. 자꾸 쓰레기같이 머릿속으로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세스티아의 가슴은… 자꾸 달라붙고 싶게 만드는 마성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아기처럼.
쮸웁, 쯉, 쮸와압-!
“흐응, 흐읏, 읏, 그, 그렇게 세게 빨아도오옷!”
“하도 음탕해서젖도 나올 줄 알았는데.”
“으으응!”
실컷 만졌다. 그녀의 흰 가슴이 온통 붉어질 정도로, 내일 통증에 허덕일 정도로 마구 쥐어짰다. 근데 그녀는 아파하기는커녕 더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상당히 세게 깨물어도, 뜯어낼 것처럼 우악스럽게 쥐어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하아, 하아… 만족했어? 원하는 대로 실컷 만져줬는데. 가슴.”
“아직….”
“뭐?”
할딱이던 그녀가 허벅지를 양옆으로 벌렸다. 그리고는 손으로 자신의 비부를 가리켰다.
“그때, 여기도, 만져주셨잖아요….”
“….”
왈칵-
의도한 건지 모르겠지만, 타이밍 좋게 보지에서 애액이 쏟아져 나왔다. 이미 그녀의 엉덩이 밑은 잔뜩 축축해져있었다.
“손가락에 범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칠게 쑤셔 넣으셨잖아요?”
“그, 그랬나?”
“이번에는….”
세스티아의 손가락이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자지새끼의 끄트머리를 툭, 건드렸다. 그것만으로 찌릿했다. 더 만져달라고 파르르 떨었다.
“더 굵고, 뜨겁고, 기다란 걸로… 쑤셔주세요. 거칠게, 더 거칠게, 아플 정도로, 강제로 범한다는 생각으로… 천박하고 음탕한 년을 강제로 임신시킬 기세로 쑤셔주세요.”
“세스티아.”
“제발요….”
평소엔 자애롭고 온순하게 보이던 살짝 쳐진 그녀의 눈매가, 밑에서 치켜뜨자 그 이미지가 완전히 역전됐다.
남자를 유혹해서 작살내는 요부.
다만, 자식을 제 손으로 끝내야만 했던 비통을 잊기 위해 고통에 가까운 육체적 쾌락을 원하는… 어딘가 망가져버린 요부였다.
‘씨발….’
그 와중에도, 그런 그녀의 모습은 지독히 아름답고 섹시해서 좆침반이 정북 방향으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여자가 저렇게까지 매달리는데, 어서 안 쑤시고 뭐하냐는 듯 거세게 성을 내고 있었다.
“제게… 평생 잊지 못할 밤을 선물해주세요. 평생 지속될 이 흉터에 바를 연고가되어주세요.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만, 옅어질 수 있도록….”
푸욱-
“하으으응…!!!”
마음속 깊은 곳에 흉터가 자리 잡은 두 남녀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