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14)
“셰이!!!”
셰이의 ‘정의 집행’은 의도치 않았던 쌍낙인 쌍치명타 시너지를 극대로 발휘했다. 정의 집행은 원래 2개체를 상대로 데미지 보정이 –40%, 인간형 괴물을 상대로 한다 해도 –30% 보정이 붙었다.
타겟팅 금지를 무시할 수 있는 범위 공격.
세스티아의 버프 자애의 손길.
2낙인.
맥뎀 치명타.
인간형 추뎀 아티팩트 해골 목걸이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기적적으로 모여 단 한방에 총합 50데미지라는 말도 안 되는 피해를 우겨넣은 것이다.
‘50뎀 꽂았는데 20퍼 깎았다는 게 더 레전드긴 해.’
그래도 희망이 생겼다는 게 중요했다. 전혀 시작되지 못했던 딜링 레이스를 뒤늦게나마 시작했다는 게 중요했다!
은빛 광채가 사라져가는 클레이모어를 지켜보고 있던 셰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심지를 다시 굳건히 세운 그녀에게 아까 같은 구구절절한 말은 필요 없었다.
“대가리 딱 대.”
다시 내 턴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존나게 쫄렸다. 나 다음에 저놈이 어떤 공격을 해올지 상상도 안 됐고, 천칭에 머리 쳐맞고 나서 개빡친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무력감에 빠져있던 셰이가 크게 한 방 먹여줬는데, 적어도 성녀가 깨어나기 전에 나도 한 번은 크게 먹여줘야 하지 않겠나. 보호막도 있고, 멘탈리티도 어느 정도 여유 있으니 마음 놓고 공격에 전념할 수 있었다.
[대가리 분쇄]
[유진이 공포의 대제사장 핀들리에에게 1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71/248]
“젠장….”
절대적으로 보면 결코 나쁘지 않은 데미지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나빴다. 최소 30뎀은 우겨넣고 싶었는데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다. 하기야 치명타라는 게 매번 터지면 치명타가 아니겠지만…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짝- 짝- 짝-
내 턴이 끝나고, 가면놈의 턴이 되었다. 가면놈은 느닷없이 다시 박수를 쳐댔다. 박수소리마저 참 좆같게 들렸는데, 어쩌면 저게 저놈의 재능인 거 같았다.
“전의를 금방 상실하시나 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분투를 보여주셔서 어찌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무슨 발악을 하시든, ---- --님의 강림을 어찌할 수는 없겠으나… 기왕이면 강림하실 때 먹음직스런 게 눈앞에 있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가면놈이 오른손을 가면 근처로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피할 수 없는 공포]
“조금 더 발악하셔도 좋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그의 손가락 끝에서 검붉은 핏방울이 맺히더니 삽시간에 수백, 수천 배로 불어나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뭐 어떻게 할 새도 없이 비가 되어 쏟아졌다.
생긴 건 그냥 핏방울로 된 비였지만….
“아아아아악!!!”
“대장, 조심… 카하아아악!!”
“꺄아아악!!!”
[치명적인 일격!]
[공포의 대제사장 핀들리에가 셰이에게 1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보호막이 파괴됩니다.]
[셰이 남은 체력 14/20]
[용사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급격하게 차오릅니다.]
[셰이 멘탈리티 –5]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3]
[세스티아 멘탈리티 –4]
[공포의 대제사장 핀들리에가 카야에게 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카야 남은 체력 11/16]
[공포의 대제사장 핀들리에가 유진에게 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유진 남은 체력 13/17]
[공포의 대제사장 핀들리에가 세스티아에게 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세스티아 남은 체력 20/24]
송곳으로 후벼파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강타했다. 보호막이 단숨에 깨지고, 체력이 깎였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산 채로 갈려나간 원혼들의 내뿜어낸 공포가 용사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난도질합니다.]
[셰이 멘탈리티 – 19]
[카야 멘탈리티 – 16]
[유진 멘탈리티 – 13]
[세스티아 멘탈리티 – 13]
[모든 용사들이 상태이상 ‘심신미약’에서 벗어납니다.]
[필시(必視)의 공포의 효과가 사라졌습니다.]
모든 데미지를 20% 추가로 받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가해진 전방위 복합광역기. 심지어 셰이가 치명타를 맞는 바람에 피치명타 멘탈리티 데미지까지 추가로 받았다. 보호막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셰이의 체력은….
“씨발, 새끼가…!”
“하하하하하! 이것도 버티시는 겁니까? 역시, 여기까지 올 정도 실력은 된다 이겁니까.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더 악착같이 버티셔서, 더 크나큰 공포를 느끼십시오!!!”
심신미약 상태는 해제됐다. 도발 효과도 풀렸다. 체력도 그렇게까지 많이 깎이진 않았다. 하지만 아팠다. 그냥 존나게 아팠다. 사실 ‘육체’의 고통까진어떻게 참을 만했다. 처음 겪어본 것도 아니었고 고통의 정도가 어느 정도를 넘다보면 그 이상 넘어가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신’적 고통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잠식된 상태여서 더 치명적이었다. 심지어 그 두 가지 고통이 동시에 들이닥쳤고, 순식간에 임계점을 넘어버린 고통에 기억이 잠깐 사라지기도 했다.
차라리 그대로 기절했으면.
하지만 1구역에서도 그랬듯, 기절하지 않았다. 지독했다. 씨발 넌 뒤지지 않았으니 뒤질 때까진 뒤질 수 없어요라고 강요하는 듯 했다.
‘카야였나? 세스티아였나? 아. 카야였지.’
“카야.”
단 두 글자로 된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눈알이 빠질 거 같고, 고막을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았으며 혀가 짓이겨지는 거 같았다.
“카야.”
다시 한 번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그냥 이렇게 서 있는 게, 이렇게 살아있는 거 자체를 몸이 거부하려는 거 같았다.이보다 더 큰 고통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아픔이 곧바로 찾아왔다.
“컥, 커억, 꺽…!”
동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걸 보고 있는 내 마음, 내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은 그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런 동료들에게 싸우라고 ‘명령’을 내려야 하는 지금.
내 눈에선 피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카야!”
덜덜덜덜-
“카야!!!”
극심한 고통에 카야는 정신을차리지 못하고 발작하고 있었다. 셰이도, 세스티아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카야가 가장 심각했다.
카야에게 다가갔다. 발이 조각조각 해체되는 느낌이었다.
죽을 거 같이 아프지만 안 죽어.
실제로 해체되는 게 아니야, 그저 고통이야.
카야는 나보다 지금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그러니 제발.
움직여!
제일 힘들었던 첫 발걸음 이후 카야에게 달라붙기까지, 그 사이의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다. 잠시 의식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어느새 카야를 껴안고 있었다.
“카야. 카야. 카야. 카야. 카야….”
귀에 대고 계속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숫제 흐느끼는 거 같았다. 아, 울고 있긴 하니까 흐느끼는 게 맞는 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런 고통을 겪게 해서 미안해. 조금 전에 욕한 것도 미안하고 위로해주지 못한 것도 미안해. 네가 아파하니 나도 아파. 근데 나도 너무 아파서, 내가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더 아파.
네가 제정신 차리는 걸 간절히 바라는 게, 순전히 너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서 미안해. 네가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철퇴를 휘두르길 원하는 냉정한 대장이라서 미안해. 기왕이면 치명타를 띄우길 원하는 욕심 과한 대장이라서 미안해.
네가 내게 집착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너만을 바라봐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카야, 넌 언제나 내 ‘처음’이라는 거.
동료. 친구. 전투. 섹스. 그리고 사랑…까지.
카야.
카야.
난 널 여기서 잃고 싶지 않….
“…대장.”
“아.”
“왜 울고 계십니까.”
카야가 손가락으로 내 뺨을 스윽스윽 닦아주고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에 닿은 부분도 엄청나게 아팠지만, 그녀가 정신을 차렸다는 기쁨이 고통을 뒤덮었다.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그렇습니까. 제가 잘못 봤나 봅니다.”
그녀는 왼손으로 근처를 더듬더니 철퇴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대장.”
“어?”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
“제가 명령을 들을 상태가 아니거나, 정말로 못 들은 게 아니라면… 저는 언제나 대장의 명령을 기꺼이 따를 겁니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세요. 유진.”
”…!”
“어서요.”
눈을 감았다. 갑작스런 호칭에 멈췄던 호흡을 재개했다. 다시 눈을 떴다. 카야는 그대로였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평소의 모습을 보여줘야겠지?
“목표는 저 불길한 빛에 둘러싸인 수녀야. 같은 교단 자매기도 하고.”
“그녀에겐 안타까운 말이지만, 그녀는 더 이상 수녀가 아닙니다. 또한 같은 교단 자매도 아닙니다. 그러니 제 철퇴가 망설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예.”
“조져.”
“대장의 뜻대로.”
카야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에게도 무지막지한 고통이 엄습하는지 눈가를 찌푸렸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는 베스티아를 향해 폭발적으로 쇄도했다.
콰아앙!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놀라운 일격!]
[카야가 공포의 성녀 베스티아에게 2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44/248]
[용사들이 조금이나마 용기를 되찾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4]
[세스티아 멘탈리티 +3]
훌륭했다.
집착 디버프 때문에 데미지가 10% 까인 걸 감안해도 잘해주었다.
카야는 절뚝거리며 셰이에게 다가갔고, 나는 세스티아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흰자위를 드러내며 입에서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가장 심각했던 카야에게 집중하느라 본의 아니게 방치하는 사이 세스티아도 증상이 심해진 거 같았다.
얼굴과 목에 흐른 거품을 닦아주고 그녀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눈동자가 살짝 돌아왔는데 완전히풀려있었다. 뺨 몇 대 친다고 해서 어떻게 될 거 같진 않았다.
카야, 셰이. 미안.
나는 입에 물을 머금고 그녀의 입으로 직접 넘겼다. 의식을 완전히 잃은 건 아닌지 어떻게든 꿀꺽 넘겼다.
세스티아에겐 미안하지만, 그녀의 특징을 이용하기로 했다. 요부라면, 그리고 색정적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성적인 자극을 가하면 제정신을 빨리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녀와 입을 맞추면서 동시에 가슴을 움켜쥐고 가랑이를 지분거렸다.
“흐응!”
“….”
진짜 통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유감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 지금은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나는 쉬지 않고 그녀의 말랑말랑하면서도 농염하기 짝이 없는몸을 주물럭거렸다. 분명 그녀도 나랑 카야가 그랬듯 신체가 엄청 고통스러울 텐데, 어째선지 신음소리가 점점 더 음탕해지고 촉촉해졌다. 나는 그녀의 무절제함과 이성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세스티아.”
“흐응, 응, 으읏.”
“세스티아. 듣고 있는 거 다 알아.”
“흐읏!”
나도 모르게 고갤 돌려 주위를 살폈다. 카야는 셰이를 보살피고 있었고, 가면놈은 곧 깨어날 성녀 쪽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음탕한 년아.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만져주니까 그렇게 좋은 거야? 수녀 맞아?”
“하읏, 그, 그게, 으응.”
“잘 들어. 머릿속에 들은 건 음탕한 생각밖에 없는 네년이라도, 그동안 경험한 것들이 있겠지.”
그녀 바로 다음 턴에 베스티아가 깨어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결정이 그야말로 승부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세스티아의 의견을 묻고 싶었다.
왜냐.
세스티아는 9레벨이었다. 섹스로 9레벨을 딴 게 아니라면, 존나 많은 괴물들을 조졌거나 강한 괴물들을 퇴치했을 거라는 건 팩트니까.
“보호의 요새로 치유하면서 동시에 보호막을 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니면 영원한 안식을때려버리는 게 좋을까. 저거 깨어나면 엄청 힘들어질 거 같은데.”
“으읏, 저, 저는.”
세스티아는 내가 움직임을 멈춘 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지금은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쪽이, 좋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가장 좋은 보호는, 다치고 나서 치유하는 것보다 공격해오는 적을 없애버리는 것이니까요.”
과연. 라엘라님의 딸 아니랄까봐 굉장히 자애로운 가치관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과 일치했다. 지금이 아니면 타이밍이 안 나올 것 같았다.
“후유증은?”
“후유증은….”
그녀가 도톰한 입술을 앙다물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헨드릭님이, 지금처럼, 안아주시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
“기왕이면, 조금 더 거칠게… 아, 아니에요.”
존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압사당할 것만 같은 무게감을 어이없게 털어내는 그녀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한숨을 삼킨 나는 그녀에게 명령했다.
“영원한 안식이나 준비해, 이 씹변태년아.”
“네, 네엣!”
무절제한 씹마조변태 수녀의 몸에, 녹색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