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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3) (70/218)



〈 70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3)

깡- 깡- 까앙-!

“후우우… 빌어먹을. 언제까지여기 있어야 하는 거지?”

“그야 다 완성될 때까지 아닌가.”

“쯧.”

까앙- 망치를 내리친 남자가 거칠게 땀을 훔쳤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짐짓 신경질을 냈다.

“이거 계약 조건이 너무 불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만들어야  게 이렇게까지 복잡하고 많을 거라곤 못 들었는데.”

“불평등.”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가득한 이곳에서 답답해보이기까지한 검은색 가면을 쓴 남자가 조소했다.

“그래. 요즘 들어 참으로 불평등한 계약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역시 그렇게 말할 줄 알았….”

“그딴 쓰레기 같은 재능에 기껏 ---- --님의 은총을 베풀어주었는데, 어째서 지금까지도 완성하고 있지 못한 것인지. 생각 이상으로 재능이  쓰레기여서, 이쪽 입장에서 너무 손해가 막심하다는 생각이 날로 갱신중이다.”

“지, 지금 뭐라고…!”

“설마, 대충했다거나 설렁설렁했다거나 그딴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지금, 날 뭘로 보고! 크아아아악!!!”

가면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망치를 들고 흥분하던수염 남자가 오른손을 붙잡더니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렇게 수십 초가 흐르고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수염 남자의 비명이 확 멎었다.

전신을 오들오들 떨던 수염 남자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은 가면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건만, 유달리 소름끼쳤다.

“이미 계획은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 와서 그만한 은총을 새로 준비하는 것도, 그걸 받을 만한 놈을새로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

“크윽!”

가면 남자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려 하자 수염 남자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가면 남자가 다시 한 번 조소했다.

“쉽지 않은 일은 곧,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하는데. 그 쓰레기 같은 재능에 깃든 은총을 통째로 뽑히고 싶지 않으면 말이다.”

“아, 아직 기한이 남지 않았나!”

“그래. 남긴 남았지.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뭐?”

가면 남자가 무언가 툭 던졌다. 검은색의 무언가가 정확히 수염 남자의 품에 안착했다.

“이건.”

“은총까진 아니지만 네놈 같은 쓰레기, 아 실례, 그쪽한테는 과분할 정도의 기운이지. 불평등하긴 하지만,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니. 기한을 앞당기는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자, 잠깐!”

“아 참고로. 이쪽의 대가를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쪽이 해야 할 일을 거부할 수는 없다. 흠,대략 사흘 안쪽으로 완성해주었으면 하는군.”

“사흘? 말도  돼! 이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그냥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 그래! 마스터를 데리고 와도 되는 일이라고!”

“그거야 그쪽 사정이다. 애초에 지금까지 잘해왔으면 지금 이렇게 촉박할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가면 남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크아아악!!”

“---- --님의 은총을 받고도, 한낱 인간과 비교하다니. 죽고 싶은 가보군.”

“아아아아아악!!! 제, 제발!! 그만!!!”

가면 남자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는 어떠한 감정도 내비치지 않고 무심히 빠져나갔다. 후덥지근한 임시 공방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대장의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아니, 선후관계가 잘못되었군요. 상상이 아니라 예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맞아요. 벌써 세 번이나 같은 걸 목격하면, 절대 우연이라고  순 없겠죠.”

방금 막 세 번째 ‘공포의 수녀’를 쓰러트린 참이었다. 처음 맞닥뜨렸을 때보단 심리적 저항감이 다소 줄어들었으나,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었다. 특히나 공포의 수녀마다 외모가 다른  때문에 더더욱. 거기에 멘탈리티 공격을 최소 한 번씩은 받은 것도 영향이 없진 않을 거고.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 말해봐.”

“수녀들을 납치해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건 확실해보입니다만, 왜 굳이 수녀들을 이쪽저쪽 한 명씩 따로 배치해놓은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하다못해 경호도 없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세일럼 내 교단의 수녀들을 납치한 거면 정말로 중요한 취급을 받을  같은데, 마치….”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하처럼 다루냐는 말이죠?”

“…예.”

카야는 셰이의 직설적인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여전히 파견단의 흔적을 하나도  찾고 있으니, 조금씩 불안한 마음이 듭니다.”

“불안하긴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타락한 수녀들을 셋이나 없앴고, 그만큼 저놈들의 계획을 방해한 셈이겠지.”

상대적으로 밝아졌던 주위가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반대로 수녀 셋 정도를 잃은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이미 계획이 상당히 진행됐거나, 납치된 수녀의 수가 훨씬 많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

“그건  상황이 나쁜….”

“대장님.”

“어, 셰이.”

“어쩌면 말이에요. 타락한 그년들이 그곳에 배치된것 자체가 계획의 일부가 아닐까요?”

“…뭐?”

“거기서 그년들이 파견단에게 죽는 것까지, 전부 계획이었다면요?”

“셰이, 지나친 비약입니다.”

“비약이 아니라 진짜로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맞다면 기껏 납치한 그년들을 이렇게 홀로 방치하는 것도 납득이 되잖아요? 그새끼들에게 있어서 타락한 년들은 아무래도 좋을 년들이잖아요? 자신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교단의 세력을 줄이면서 계획에 써먹는 것. 거기에 뒤처리는 같은 교단 출신에게, 기대는 안 하지만 상잔하면  좋고요.  좋은 그림 아니에요?”

더 이상 비약이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다리가 너무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공포 숭배자들은 희생양을 비롯한 제물을 거리낌 없이 바치는데다가, 여차하면 자신의 몸까지 바치길 주저하지 않는 미쳐버린 놈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잠깐만.

제물?

타락 수녀들의 피랍. 이해하기 힘든 그녀들의 배치. 공포 숭배자놈들의 계획. 그리고 제물.

“가만. 가만….”

씨발, 잠깐만.

소름.

나는 무심코 양팔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음습한 길과 검게 죽어버린  말고 아무 것도 없었지만, 어떤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대장?”
“대장님? 갑자기 왜 그래요? 혹시, 또 정찰이에요?”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야.”

다시 한 주위를 살폈다. 세 번째 공포의 수녀가 있던 방에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꿀꺽-

주변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지만 목소리를 죽였다. 동료들은 내가 갑자기 왜 그러지 싶었는지 고개를 갸웃했으나 자연스럽게 얼굴을 맞대고귀를 기울여주었다.

“한  떠올려봐. 혹시, 첫 번째 수녀가 있던 방에서 두 번째 수녀가 있던 방까지 몇 분 정도 걸렸지?”

“으음, 15분이었나 20분이었나. 아마 그쯤이었을 겁니다.”

“20분은 안 됐을 거예요.”

“그럼, 두 번째 방에서 세 번째 방까지는?”

“그것도 그쯤인 것 같은데….”

“근데 그건 갑자기 왜요?”

“이걸 봐봐.”

나는 실시간으로 덧그리던 약도를 내밀었다. 그녀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펜을 들어 점을 하나 찍었다.

“여기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고.”

그리고 이어진 선을  이었다.

“지금  번째 방에서 10분 정도 걸렸으니까 5분에서 10분 거리 안에, 그러니까 이쯤에서 네 번째 방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보여. 그리고….”

아예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똑같은 길이의 선을 쭉쭉 그려나갔다. 처음엔 그저 가만히 보고 있던 그녀들은 점차 완성되어가는 어떤 ‘문양’을 보고는경악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제물!”
“거대문양!”

“그래….”

나는 약도를 꾸기듯이 쑤셔넣고는, 처음 인던에 들어왔을 때보다 수십 배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아낸 모든 사실과 증거, 추측들을 한데 모아보면,던전이 아닌 지상에 위치한 이곳은 단순한 소굴 따위가 아냐.”

카야와 셰이의 눈동자가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여기 전체가, 제물들을 효과적으로 바치기 위한 거대한 제단인 셈이야.”

“…맙소사.”

카야는 목걸이를 쥔 채 황망히 기도를 올렸고, 셰이는 클레이모어를 바닥에 꽂고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충 이단놈들을 향해  어느 때보다 심한 욕을 하고 있는 것을 듣고 귀를 닫았다.

‘큰 사건일  같긴 했지만, 존나 큰 사건이야 이건. 우리 셋이서 감당 안  같은데?’

이건 단순히 좆같은 괴물이 등장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 롱 테러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런 형태의 인던은 있었지만, 인던 전체가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이라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것도 설마, dlc에서 추가된 이벤트라면?’

 롱 테러처럼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알지 못하는 미래를 맞닥뜨릴 때마다 내가 결국 의지하게 되는 건 3천 시간동안 쌓인 지식이었다. 좆같은 공포무새들이 지상에서 준비한 미증유의 재앙이라는 단어보단, dlc에서 추가된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게 심리적으로  압박이 되는 것이었다.

‘여긴 존나 넓어. 전투 시간, 쉬는 시간, 식사 시간 등을 합치면 저놈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방관한다는 가정 하에도 최소 이틀은 걸릴 정도로. 게다가 타락한 수녀들을 죽이는 게 오히려 저놈들의 계획을 앞당길 수도 있는 이상, 함부로 죽이고 다닐 수도 없어.’

그렇다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파견단을 계속 수색한다? 언제 이곳 전체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후퇴…가 맞긴 한데.’

아무리 용사대의 안전이 최우선이라 강조했어도 동료들에게, 그것도 카야에게 ‘자매’들을 모조리 버리고 후퇴하자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타락한 수녀들을 보고 거부감과 동시에 동정심도 가지고 있던 그녀에게?

씨발 존나 어려웠다.


**

“성녀님. 때가 머지않았습니다.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우습네요. 애초에  준비가 필요하긴 한가요.”

“필요합니다. 마음가짐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필멸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감정, 그건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제믿음은 아직도 꺾이지 않았는데, 어째서 절 이곳에 가둬두고 되도 않는 성녀님이라는 호칭으로 모욕을 주는 것인지. 이해도 되지 않고 이해하기도 싫지만, 그렇기에  당신들이 말하는 준비는 영원히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대답이 됐어요?”

“흐음.”

검은 가면을 쓴 남자는 턱을 매만지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성녀라 불린 여자는 그걸놓치지 않았다.

“꾸미고 있는 것이 잘 안 되나봐요? 피 한 방울 안 나올  같은 사람이 대놓고 한숨을 쉬다니.”

“성녀님이 제게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저보다 훨씬 굳건한 믿음을 갖춘 자매님들이 적극적으로 이곳을 파괴하고 있겠죠. 어느 때보다 냉철한 마음을 가지고서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여자는 눈썹을 찌푸렸다. 남자의 기색에서 당황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성녀님이 제게 처음으로 관심을 기울여주신 것에 대한 보답으로, 한 가지 궁금하실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쪽에게 관심이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3일 뒤, 아니 정확히는 2일하고 반 정도. 그 뒤엔 모든 것이 완성될 것입니다.”

“자매님들이… 교단이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는  아니죠? 그리고 제가그릇된 믿음에 굴복할 거 같아요?”

“그거야, 지켜보시면 될 일입니다. 성녀님.”

“몇 번이고 말했어요. 전, 관용의 길을 걷고 있는 수녀라고요.”

“그럼,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성녀님.”

남자는 여자의 대답을 듣지 않고 스윽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겨진 여자의 깊은 한숨 소리는 그 어디에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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