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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1) (68/218)



〈 68화 〉이단의 성녀, 금단의 수녀(1)

휴식 시간이 충분한 건 아니었다.  날은 휴식이라기보단 기절이었고, 그 다음날은 크흠.

하지만 인던으로 향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관계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고 진한 육체적 관계로 증명해서 그런지, 그녀들의 잠식도 풀린 상황.

아직 전신에 뻐근함이 조금 남아있는 나와는 다르게, 그녀들은 너무나 쌩쌩했다.

“가려는 곳에 대한 설명은 생략할게. 나랑 카야는 두 번, 셰이도 한 번은 가봤으니까.”

“예, 대장.”

“문제는 저번에 우리가 들어갔던 곳이 어느 정도 깊은 곳인지, 그리고 납치된 수녀는 정확히 언제 어디까지 끌려간 것인지전혀 모른다는 거야.”

저번에 써먹었던 약도를 가져오긴 했다. 허나 전체 크기의 4분의 1이나 밝혀졌을까 싶었고, 이곳의 난이도를 이전에 만났던 괴물들로만 판단하는 건 안일한 일이었다.

그래도 4레벨이니까, 이전에 만났던 놈들을만난다면 예전같이 처절하게 당하는 그림은 안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최우선 목표는 무엇입니까.”

“수색이겠지. 수녀 쪽이든, 교단의 파견단이든.”

“수색.”

“솔직히 파견단이 어느정도 무력을 지니고 있는진 모르겠어. 그래도 교단 지부에서 급파할 정도면, 자기 목숨 정도는 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총본산의 전투단에 속했던 자매님들은… 굉장히 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만일 그 정도 되는 분들이 이곳에 파견되었다면 저희가 나서지 않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반대로우리한테까지 손을 벌렸다는 건, 그만큼 파견단의 전력이 총본산의 전투단보단 약하다는 것이겠지.”

사박사박- 우중충한 색을 띄는 흙을 밟으며 전진했다. 가장 말이 많고 활발한 셰이는 인던에 들어오기 전부터 말없이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고 있었고, 반대로 말이 가장 적은 카야가 벌써부터 끌어오르는 셰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목적을 환기시키고 있었다.

그런 카야의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 앞만 보고 빨리 걷던 셰이의 발걸음이 살짝 느려졌다. 그때 난 잽싸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살짝 잡아주었다.

“교단에서도 전투단을 파견했고, 우리도 최대한 빨리 이곳에 왔어. 조급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서 최대한 우리도 빨리 걷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앞만 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

“…죄송해요.”

“죄송할 거까지야. 나야말로 너무 냉정하게 판단하는 거 같아서 미안해.”

“아뇨. 아니에요. 대장님은 그래야 해요. 대장님 말이 맞아요.”

셰이는 몇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다시 선두에 서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전 속도보다는 살짝 느려졌지만 대신 조급함은 사라져있었다.

“고마워 카야.”

“별 것 아닙니다, 대장.”

역시 카야는 믿음직했다. 셰이와도  친해진 게 주효한  같았다.

“별 이상 없습니다.”

“이쪽도요.”

우리는 저번에 돌파했던 곳까지 제법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경에 빠졌던 셰이의 모습이 떠올랐으나 얼른 흩어버렸다. 그딴  생각해봐야 재수만 없을 뿐이었다.

“완전히 방치된 건가? 흔적이 아예 없는데?”

“예. 어쩌면 저희가 지나쳤던 곳은 극히 외곽인  같습니다. 저번에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단새끼들도, 파견단도 이쪽에는 얼씬도 안 한 거 같아요.”

“흐음.”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 인던 <이단과 금단 사이>의 규모가 더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본 던전 1구역의 맵과 지금까지 밝혀진 인던 맵을 비교했다. 얼핏 보면 비슷한 구조처럼 보였지만….

‘확실한 걸 위해선 어찌됐든 안쪽으로, 아니 중심 쪽으로 더 이동해보는 게 맞겠구만.’

나는 하나로 길게 뻗은 길을 가리켰다.

“저기로 돌입할 거야. 저기서부턴 언제 어디서 이단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경계하자. 명심해. 수색이 제1목표이긴 하지만, 그 모든 건 우리 용사대의 안전이 전제된 후라는 걸.”

“예, 대장.”

“명심할게요.”

기분 탓일까. 던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밝았던 여기도 점점 비슷하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더 어두워지는 건 팩트인 것 같았다.

화르륵-

[몰려오는 어둠에 작은 불씨가 저항합니다.]
[밝기 : 99]

마법횃불을 점등했다. 저번엔 굳이 횃불을 이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용하지 않고서는 사방을 경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워졌다. 분명  던전처럼 사방이 막혀있는 곳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로 움츠러드는 싸늘한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이단과 금단 사이, 이단과 금단 사이.’

인던 이름을 생각했다. 이단은 이단이고 금단은 금단이지, 이단과 금단 사이라는 건 대체  뜻하는 거지? 여기가 공포를 숭배하는 이단놈들의 근거지나 소굴같은 곳이라는 건 알겠다만….

“조심!”

“물러나십시오!”

예전에 봤던 연기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갓 자동차에서 빠져나온 매연보다도 더 시커먼 연기가 앞길을  막았다. 그리고 그 연기는 점점 이쪽을 향해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젠장, 다른 길은!”

“없습니다!”

“대장님, 지시를!”

마치 이 이상의 접근은 불허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 있었던 연기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이건 절대 자연적으로는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공포’의 힘이 담겨있는  같았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린 다른 입구가 어디있는지도 몰라.’

이대로 빠져나간 다음, 정체불명의 연기 때문에도저히 진입할 수가 없었다는 식으로 보고해도 교단 측에서는 딱히  말이 없겠지. 우리가 보상을 먼저 받아먹은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모두 성수 마셔! 진입한다!”

“예!”

그렇다고 해서 저 연기가 당장 물러나야  정도의 장애물같지도 않아보였다.

“흐읍!”

각종 상태이상 저항력이 올랐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후, 한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연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막상 진입하니 이건 연기라기보단 물먹은 솜에가까웠다.

[공포와 어둠이 사방을 잠식합니다.]
[밝기 : 71]

마법횃불의 밝기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숨이 턱턱 막혔고 멀쩡하던 사람도 어둠 공포증이나 폐소 공포증에 걸릴 것처럼 아주 답답했다.

“셰이! 카야!”

- 저리 꺼져!
- 이상, 없습니다…!

코앞에 있던 동료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렸다.

‘내 판단이 틀렸나?’

답답함은 갈수록  심해졌다. 괴물이나 함정 같은 건 없었으나, 내가 정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냐. 틀리지 않았어.’

내 판단이 틀렸다기보단, 다른 사람이 이곳에 들어왔으면 진즉 버티지못하고 자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본 던전에서 겪었던 것들에 비하면 나름 귀여운 수준이었으니까. 사경에서는 발버둥칠몸조차 없었고, 악몽에서는 너무나 생생하고 끔찍한 꿈을 꾸었다.

그에 비해 여긴 그저 굉장히 어둡고, 답답할 뿐이었다.

‘이곳보다 더한 상황도 버텨낸 여자들이야. 버틸 수 있어. 그리고 빠져나갈 수 있어.’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좆밥매연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계속 되뇌고 있었는데, 어느 샌가 시야가 말끔해졌기 때문이었다.

“대장!”
“대장님!”

“어억!”

그리고 양쪽에서 전력으로 몸통박치기를 시전하는 회색 고양이와 황금색 강아지가, 용사대 전원의 무사함을 확증했다.

그들이 중갑을 입은 걸 망각하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며, 면목 없습니다. 대장.”
“죄송해요….”

“아냐. 으깨질 거 같이 아프긴 했지만 진짜로 으깨지진 않았어….”

“죄송해요!!!”

“농담이야.”

농담은 아니었다. 그래도 당장이라도 울  같은 셰이의 표정을 보니 진담은 농담이어야 했다. 까짓거좀 아프고 말지.

“너희들은 어땠어?”

“앞이 안 보이고 숨이 막히고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나가는 셰이와 뒤에서 받쳐주는 대장을믿고 계속 나아갔습니다.”

“무릎 꿇리고 절 고문했던 악독한새끼들의 면상이 떠오르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절대 무릎 꿇기 싫었어요. 붙잡히기 싫었어요. 그래서 마구 걷어차고 달리고 뿌리쳤더니, 어느새 빠져나왔어요.”

“잘했어. 아주 잘했어.”

[공포의 안개]
[셰이가 있는 힘껏 몸부림칩니다.]
[저항 굴림]
공포의 안개 : 5
셰이 : 6
[셰이가 상태이상 ‘굴복’에 저항했습니다.]

[카야가 굳건한 믿음으로 공포를 견대냅니다.]
[저항 굴림]
공포의 안개 : 3
카야 : 4
[카야가 상태이상 ‘굴복’에 저항했습니다.]

[유진이 침착한 의지로 공포를 상대합니다.]
[저항 굴림]
공포의 안개 : 3
유진 : 5
[유진이 상태이상 ‘굴복’에 저항했습니다.]

전투 메시지가 주르륵 갱신되어 있었다. 굴림이 무더기로 발생하고, 다들 상태이상 ‘굴복’에 저항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메시지엔 동료들이 말했던 상황이 내포되어 있었다.

‘역시, 위험하긴 했지만 충분히 견딜만 했어.’

저 거무튀튀한 것은 멘탈리티를 갉아먹는 함정이었고, 한층 멘탈이 단단해진 우리가 보란 듯이 정면돌파로 뚫어낸 것이다.

원래라면 멘탈을 갉아먹었을 괴물들의 사악한 함정을 박살낸 우리들은 오히려 사기가 충만해졌다. 비정상적으로 급격하게 어두워졌던 주위도 약간은 밝아졌고, 중간에 잡다한 장애물이나 함정이 있었지만 손쉽게 통과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갈림길을 마주했고, 난 갑자기 머리를 강타하는 찌릿한 감각에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대장! 무슨 일….”

“쉿!”

급히 손을 뻗어 내게 다가오려는 동료들을 제지했다.

[인근 구역을 정찰합니다.]
[정찰자의 상태에 따라 정찰 결과가 달라집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두 줄의 메시지와 함께 줄곧 우리가 다녔던 길만 밝아졌던 미니맵의 안개가 원추형으로 밝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씨발 눈깔 빠질 거 같애!!!’

더 롱 테러에서 수도 없이 정찰(스카우팅)하던 용사들은 매번 이런 고통을 겪었던 거야? 난 그것도 모르고 정찰 제대로 안 하냐고 구박했었는데. 좆간이 미안해?

맵이 밝혀질 때마다 뇌가 익어버릴 거 같은 고통이 더해지자 그대로 기절하고 싶었으나, 동료들의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보며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후우우….”

“대장님!”

풀썩 주저앉은 나를 황급히 끌어안은 셰이와 가방에서 물통을 꺼낸 카야.

나는 물로 목을 축이며 상황을 설명했고, 그제서야 그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당황했습니다.”

“저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당황스럽고, 아프기도 하고. 만약 너희도 갑자기 머리랑 눈이 엄청 아프다가 이곳에 뭐가 있는지 더 잘 알  같은 기분이 든다면, 정찰이 발동된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여전히 걱정을 놓지 않고 있는 그녀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며 약도를 꺼냈다. 그리고는 펜으로 쭉쭉 거침없이 새로 밝혀진 부분을 따라그렸다.

“다시 봐도 신기합니다.”

“와아… 그럼 여기선 왼쪽으로 가는 게 맞는 건가요?”

“밝혀진 곳까지만 봐선 그렇긴 해.”

“그럼?”

“끝까지 가면 막다른 길일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 주어진 정보를 이용하는  맞겠지. 그러니 왼쪽으로 가자.”

“대장, 몸은….”

“괜찮아. 정말로.”

그녀들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걱정을 덜어냈다. 정말로 괜찮아지기도 했고, 적어도 정찰된 지역에 한해서는 눈먼 함정에 당한다거나 급습을 당할 일도 없었다.

그랬기에 일시적으로 내가 선두에 나서서 이동했고, 금세 밝혀진 곳의 끝까지 도달했다. 다시 대열을 원래대로 바꾸었다.

“이 앞은, 상당히 꺼림칙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맞아요. 최소한 저번에 만났던 그 기사행세하던 쓰레기이단놈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인 것 같아요.”

공교롭게도 정찰은 딱, 눈앞의 문 직전에서 끊겼다. 하지만 딱히 아쉽진 않았다. 나를 비롯해서 동료들까지 전부, 최소 정예급 괴물이 우릴 맞이하리라는 것을 손쉽게 예측했으니까.

저렇게까지 공들인 장소에 잡졸들이 나타나는 것도 좀 웃기지 않은가.

“다들 준비됐어?”

끄덕-

“열어.”

끼이이익--

거슬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안쪽으로 천천히열렸다.

“방해하는 불신자들이 또  것인가. 지겹기 짝이 없구나.”

[정예 괴물 <공포의 수녀>가 등장했습니다.]

 안쪽에서 우릴 맞이한 건, 시꺼먼 기사도 병사도 괴물도 아닌… 새까만 로브를 입은 가녀린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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