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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화 〉스펙 업(10) (67/218)



〈 67화 〉스펙 업(10)

나라고 스킬북을  열어보고 싶겠는가. 명색이 메인 딜러인 내가 딜링 스킬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도 좀 그러지 않았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잘 키운 스킬 하나 열 스킬 하나 안 부럽다고 했어.’

제대로 된 스킬 하나만 있으면, 굳이 확실하지도 않은 딜링 스킬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 거기에 낙인 스킬인 ‘수배범 발견’은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현상금 사냥꾼의 밥줄 스킬이고, ‘섬광탄!’이나 ‘어딜 도망가’도 나름 쓸모가 있는 유틸기였다. 실제 전투에서도 써먹었었고.

‘대가리 분쇄는 지금도 충분히 좋아. 스킬1렙인데 인간형 추뎀이 4나 붙어있는 무식한 스킬이니까. 원래 현상금 사냥꾼이 인간형 괴물한테 강점이 있는 클래스이기도 했고.’

그러니 스킬 하나 정도가 아쉬운 카야와 셰이에게 스킬북을 배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불운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거부하고 있었다. 서로 자기 거라고 해서 문제가 아니라 자꾸 자신을 제외하라고 해서 문제였다.

“너희들의 남자로서 결정한 게 아니라, HAT의 대장으로서 결정한 거야. 용사대의 전체적인 전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불운 때문에  된다든지, 대장인 나만  먹는 건 불공평하다든지 그런 거 말고 다른 이유를 대봐.”

“그렇다면 제 거라도 파는 게….”

“무언가를 얻으려면, 위험도 각오해야 하는 거야. 이 정도 투자도 못해서야  험난한 길을 헤쳐나갈 수 있겠어?”

카야와 셰이는내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나한테 한 권을 쥐어주고 싶은  같았지만, 이건 그런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됐다.

“꽝이 나오면 내 책임이고, 대박이 나오면 너희 덕이야. 지금 자리에서 까봐.”

스킬북들을 다시 그녀들 앞으로 밀었다. 그녀들은 표지를 만지작거리며 망설였다.

“에잇.”

 중 총대를 멘 건 셰이였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더니 스킬북을 확 펼쳤다. 그러자  속에서 찬란한 황금색 빛이 튀어나오더니 빙글빙글 셰이의 주위를 돌다가 그녀의 심장 부근에 쏙 들어갔다.

“아아…!”

셰이와 카야가 아름다운 광경에 입을 벌리고 감탄하고 있을 때, 나는 메시지를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셰이가 적응형 랜덤 스킬북에서 성전사 전용 스킬 ‘최후의 성전’을 획득했습니다.]

‘최후의 성전…?’

[최후의 성전]
- 자신에게 낙인(1턴)을 새김
- 상태이상 ‘절대 뒤로 밀려나지 않음’을 얻음
- 상태이상 저항력이 상승함
방어력 1 증가
- 피격  자신의 체력 1 회복
- 피격 시 일정 확률로 반격(데미지 보정 –25%)
- 한 전투에 한 번만 발동할  있음
- 낙인이 해제되고 한 턴간 상태이상 ‘기절’(1턴)에 걸림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기억을 뒤져봐도 그랬다.

‘DLC 추가 스킬인가!’

줄이 뭔가 많았다. 하지만 첫 줄을 보자마자 이 스킬의 핵심을 파악했다.

‘확정 도발!’

광역기를 제외한 모든 괴물들의 공격을 셰이에게 강제로 집중시키는, 탱커 계열 최상급 스킬!

물론 적들의 공격을 집중시키고 정작 버티질 못한다면 무용지물이겠지만, 가뜩이나 방어력도 우리  제일 높은 셰이가 방어력이 추가로 올라가고 맞으면 체력도 차는 이런 미친 스킬이 있다? 거기에 확률적으로 반격까지?

‘사용 조건이랑 페널티가  크긴 한데… 시기적절할 때, 가령 후열이 붕괴될 거 같을  쓰면.’

아직 실전에서 안 써봐서 모르겠지만, 일단 메시지로만 파악했을 땐 최소 중박 이상이었다.

내가 메시지로 파악한 것처럼, 빛을 완전히 흡수한 셰이도 어떤 스킬을 얻었는지 감을 잡은 듯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들로 충분하다는 몇 분 전의 표정은 연기한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언니! 언니도 빨리 열어봐요!”

“그, 그럴까.”

기대에 가득 찬 셰이의 표정에 저도 모르게 반말을 내뱉었는지 놀란 카야는 반짝거리는 두 쌍의 시선을 빗겨내며 스킬북을 펼쳤다.

[카야가 적응형 랜덤 스킬북에서 전투 수녀 전용 스킬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를 획득했습니다.]

‘아.’

셰이 때와 마찬가지로 휘황찬란한 빛이 떠돈 것도 잠시. 자기도 조금은 기대했는지 살짝 미소를 띄고 있었던 카야의 얼굴이 삽시간에 우울해졌다.

“오히려 좋아!”

“대장.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는 법이라, 실망이 크지 않습니다. 굳이 그렇게 위로 안 해주셔도 됩니다.”

“아니, 진짜로. 괜찮아. 좋다니까?”

중복이라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중복 나름.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스킬이 담긴 스킬북은 내가 알기로 꽤나 비싼값에 팔 수 있었다.

“그 돈으로 네가 원하는 스킬을 사는 게  싸게 먹힐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괜찮아. 잘 뽑았어.  그래 셰이?”

“그럼요! 어떻게 보면 자유이용권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이게 불운이라니, 기만이에요!”

“그, 그렇습니까.”

진심이 통했는지 카야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피어났다. 그래, 웃으니 얼마나 좋아.

내친 김에 아티팩트 처분에 대한 것도 상의를 마친 우리는 다함께 여관을 나섰다.

우리가 향한 곳은 수도원이었다.

**

“어서 오세요, 카야 자매님. 셰이 성전사님. 그리고 헨드릭님.”

“세스티아 자매님.”

라엘라님을 섬기는 수도원에 들른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던전에서 맹세했던 것처럼 진짜로 라엘라님에게 기도하고 헌금을 내기 위해서.

‘여신님이 실재하는 이상, 그리고 정말로 지켜보고 있다는  알게 된 이상여신님께 직접 내뱉은 말을  지킬 수는 없지.’

겸사겸사 용사대의 앞길도 축복해주십사했고.

“셰이 성전사님은 완전히 헨드릭님의 용사대에 소속되신 건가요?”

“그럼요? 세스티아님껜 아주 감사하고 있어요! 덕분에 이런 좋은 용사들과 함께 던전행에 나설 수 있게 됐으니까요. 유스티티아님도 기뻐하실 거예요!”

“어머나.”

오고가는 대화는 훈훈했다. 카야와 셰이는 전부는 아니지만(섹-스라든지) 던전 내에서 겪었던 ‘공포’에 관한 것이라든가, 공포의 손이나 정예 괴물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느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공포의 힘을 지닌  같다는 둥 간략한 보고 형식으로 세스티아에게 정보를 건네고 있었다.

‘뭔가 엄마한테 어디에서 어디까지 공부했고, 친구 누구랑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디에서 놀다왔는지 얘기하는 느낌이 이런 걸까.’

물론  그랬던 적은 없었지만. 난 그녀들이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다른  생각했다.

‘맨 처음에 구상했던 조합으로는, 마지막 자리는 트헌(보물 사냥꾼)인데….’

4열(최후방)에서도 세팅에 따라 메인딜러 못지않게 딜을 넣을 수 있고, 각종 유틸기가 뛰어난 클래스인 보물 사냥꾼. 하지만 1구역을 클리어하고 나니 생각이 흔들렸다. 2구역의 괴물들이 또 어떤 미친 보정을 받고 날뛸지는 모르지만, 과연 여기서 트헌을 추가하는 게 맞을까? 아싸리 치유수녀로 체력을 온존하든지, 아니면 음유 시인으로 멘탈리티를 온존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팍 치고 올라온 것이었다. 아니면 다른 직업도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었고.

‘1구역에서 사경만 두 번 겪고, 두 명이나 잠식당할 줄 누가 알았겠어.’

전반적으로 치명타가  터지지 않았다면.  번째 휴식처가 시기적절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면.

우리 용사대는 진즉 전멸했을 것이다.

그건, 3명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내 생각엔 딜이 모자라서라기보단 유지력이 턱없이 모자랐다.

‘마침 1구역 클리어하고 얻은 황금만세의 적용 대상에도 포함되니 안성맞춤이다 싶긴 했지만… 존나  때문에 트헌을 꽂아버리는 것도 좀 그렇고.’

카야를 따라 수도원에   번째 이유.

셰이의 경우처럼, 혹시나 운명적인 영입을 또  번 할  있지 않을까하는 꼼수 때문이었다.

“소중한 정보를 알려줘서 고마워요, 카야 자매님.후후, 덕분에 공포와 던전을 연구하는 자매님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 자매님. 한 가지 말씀드릴  있어요.”

“듣겠습니다.”

“자매님과 헨드릭님이, 던전행 전에 이단의 근거지 중 한 곳을 가셨던 일 말이에요.”

“예. 추가적인 일이 있었습니까?”

“맞아요. 자매님이 던전에서 공포에 맞서는 동안 유의미한 변화가 찾아왔어요. 그것도 우리 교단에는,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가요.”

세스티아는 서랍 속에서 어떤 목걸이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목걸이는 전체적으로 까맣게 물들어있었고 꽤나 뭉개져있었는데, 서글서글한 편이었던 세스티아의 얼굴이 어느 샌가 무표정으로 굳어져있었다. 카야와 셰이도 목걸이를 확인하고는 헛숨을 들이키더니 그들의 얼굴도 세스티아처럼 굳어져버렸다. 훈훈했던 분위기가 단숨에 살벌해졌다.

“목걸이… 같은데.”

분위기가 불편했던 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자, 동료들이 아차하는 얼굴로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고,  화가  나머지.”

까드득-

셰이는 반쯤 눈이 돌아가있었다.

“…저 목걸이는.”

세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카야가 입을 달싹거렸다. 그녀는 이내 괴로운  눈을 깔며 침통하게 말했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제가걸고 있는 목걸이와 비슷한, 관용의 길을 걷고 있는 수녀의 목걸이가 틀림없습니다. 그것도 이단의 기운에 깊게 잠식되어버린….”

“뭐, 그럼. 설마.”

“예. 이미 여신님의 곁으로 갔거나.”

“그씨발오물만도못한새끼들습성을생각해보면지금쯤어떤끔찍한짓들을당했을지상상하고싶지도않아요.”

그래서 셰이가 이렇게 빡돌았구나.

그제서야 이 분위기가 이해됐다.근데 분위기를 이해했다고 해서,  목걸이를 굳이 우리한테 보여준 이유까지 이해됐다는 건 아니었다.

분하겠지. 모르는 사람이지만 카야로서는 같은 교인이었고, 셰이도 친한 교단의 교인이었으니까. 당연한 분노고 나도 저 일면식도 없는 목걸이의 주인에게 동정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녀들은 라엘라의 철퇴이자 유스티티아의 검이었지만 동시에 HAT의 용사들이었고, 난 그들의 대장이었다.

단순한 분노와 동정과 의리같은 것 때문에 위험한 일을 덥석 받는 일은 막아야했다.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세스티아님. 그 말씀을 ‘저희’에게 꺼낸 의도를 듣고 싶습니다.”

왜?

단순히 사라져버린 자매에 대한 애도를 하고 싶었다면, 카야에게만 얘기 했어도 되는 일이었다. 조금  봐줘서 셰이까지는. 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에서 굳이 이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높은 확률로, 우리 용사대에  목걸이와 관련된 일을 엮으려는 거 아닐까하는 의심을 하는 건 지나친 망상일까?

나와 눈이 마주친 세스티아는살포시 미소지었다. 겉으로 보기엔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내고자하는 따뜻한 미소처럼보였지만, 이미 속으로 망상을 하고 있는 내겐 ‘칫, 눈치 빠른 녀석은 이래서 곤란하다니깐?’ 이런 의미가 담긴 곤란한 미소처럼 보였다.

“의도…까지는 아니에요. 이미 저희 지부에서 알만한 자매님들은  알고 있는 일이고, 마침 카야 자매님이 보고차 지부에 오셨으니 카야님도 아셔야 할 이야기인 것 같아서였답니다.”

“그렇습니까.”

그래? 진짜? 순수하게 진심으로?

나는 그런 의미를 담아 자리를 파할 기세로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러자 세스티아가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입꼬리가 살짝 떨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이미 상당수의 자매님들이 그곳으로 파견나간 상황이지만, 저는 이 사건이 단순한 피랍사건이 아닐 것 같아서 무척이나 불안해요. 너무 성급하게 파견을 결정한 것은 아닌지, 혹여나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들 때문에 자매님들에게 이상이 생길지.”

그래서 뭐요?

가만히 쳐다봤다.

“위험한 곳에서 갓 돌아오신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굉장히 염치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장소에 두 번이나 갔다 온  있는 자매님과 헨드릭님이라면, 수준 1 세 명으로 던전의 한 구역을 무사히 돌파한 용사대라면.”

세스티아는 어느새 양손을 부여잡고 검게 물들은 목걸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혹시나 벌어질 비상사태에도 능히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실종됐던 자매님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흠.”

“만약 수락해주신다면, 보상은 라엘라님께 맹세하고 섭섭지 않게 드릴 생각이에요.”

그거야 당연한 거고.

얼마나 줄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라엘라님께 맹세했으니 쪼잔하게 주진 않을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만일 이 일을 받아들일 거라면 한시라도 빨리 출발하는  좋을 테니까.

나는 동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셰이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다는  몸을 들썩이고 있었고.

“출발 보고는 생략하겠습니다.”

“아…!”

“가자. 최대한 빨리 준비해야 하니까.”

“예, 대장.”

보상도 보상이지만… 레벨이 올랐으니, 한 번 시험해보자고.

4레벨의 몸뚱이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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