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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스펙 업(2) (59/218)



〈 59화 〉스펙 업(2)

와구와구- 후루룹 쩝쩝-

…같은 소리는 없었다. 식사를 방으로 가져간 지 얼마 안 돼서 카야가 깨어났고, 잠시 알몸으로 인한 소동이 있었으나 이내 가벼운 옷차림을 입고 각자 2인분씩 얌전히 해치우고 있었다. 얌전히 해치운다는 말에 어울리게 먹는 속도는 빨랐지만, 상대적으로 지저분하게 먹는 나에 비해 그녀들이 식사하는 모습은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품위가 있었다.

“대장님, 애기도 아니고 자꾸 흘리고 그래요?”

그러다 돌연 셰이가 내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검지 끝에 묻어있는 작은 고기조각을 낼름 자기 입으로 집어넣었다. 이거,연인들이나 하는 행위 아니었나? 얼마 전까지 연애는커녕 사람 자체와별 관계가 없었던 내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셰이!”

“땅에 떨어진 것도 아니잖아요? 헤헤.”

‘아니, 그게 아니라.’

카야가 너 쳐다보고 있는 거 안 보이냐고.

던전에서만큼 섬뜩한 표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시냐. 아무튼 평범한 눈빛은 아니라고!

셰이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엔 자기 몫에서 건더기를 건져올리더니 카야에게 내밀었다. 갑자기 쑥 내밀어진 스푼에 카야의 눈이 커졌다.

“언니. 아~”

“셰이.”

“아~”

셰이는 생글 웃으며 팔을  뻗었고 카야는 진심으로 곤란해보였다. 싫은 건 아니지만, 방금 전까지 노려본 자신에게 이렇게 살갑게 대하는 셰이의 태도 자체가 어색하고 어려운 느낌?

셰이가 그걸 노리고 한 거였다면 실로 대단한 거였고, 노린 게 아니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했다. 자칫 어색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숟가락질 한방에 뒤엎어버렸으니까.

“언니. 저  아파요.”

셰이가 짐짓 팔 아픈 척 투정을 부리자 카야는 어쩔  없다는 듯 스푼을 삼켰다. 그러고는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카야의 입술을 검지로 싸악 훔치더니 그대로 쪽 빨아먹는 것이 아닌가!

“뭐, 뭐, 뭐…!”

경악한 카야와 그에 못지않게 놀란 나를 두고, 셰이는 뭐가 문제냐는 듯 해맑게 웃었다.

“맛있어라.”

셰이, 무서운 여자!

**

식사를 끝내고 뒤처리를 한 다음 침대에 다시 모였다. 제대로 된 정산을 위해서였다.

나는 이번 던전행에서 얻은 모든 것들을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수많은 금화와 3개의 아티팩트가 눈이 부셨다. 다시 보는 나조차도 그러할진대, 처음 보는 그녀들은 오죽할까? 카야와 셰이의 입이 멍하니 벌어져있었다.

“금화만 따져도 200금화가 좀 넘어. 그리고  세 개는 아티팩트들. 아티팩트가 뭔지는 알지?”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아티팩트보다도 반짝이는 금화 더미에 현실성을 잊어먹은 것처럼 보였다.

“아티팩트는 조사하고 나서 우리 용사대가 쓸 만하면 우리가  거고, 아니면  거야. 이의 있는 사람?”

둘은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하하, 이거 참.

‘1구역 보상도 이런데, 2구역 보상은 어쩌려고.’

그만큼 이들이 순수하다고 봐야할 것이다. 도벽이나 탐욕과 관련된 부정적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은 수도원 생활이 길었다는 설정이 있으니 클래스를 떠나 기본적으로 축재와 사치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아니면 보지 못할 광경일지도 모르니, 지금 표정들도기억해두자.

“중요한 게 두 가지가 있어.”

“예. 듣겠습니다.”
“들을게요!”

금화 더미에 흠뻑 취한 그녀들은, 내가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하자마자 자세를 바로하고 내게 집중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흡-족함이 올라왔다.

“다름이 아니라, 첫 번째 중요한 거. 우리들 수준이 대폭 올랐을 거라는 점이야.”

“저희들 수준, 말입니까?”

“어. 우리  다, 1이었지. 그치?”

“네!”

끄덕-

1렙짜리 용사 세 명이  번째 구역을 노데스로 2트 만에 돌파했다? 우리처럼 최고난도도 아니고 중도 귀환이 불가능한 것도 아닌 용사대들 기준으로도 이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우릴 제외한 절대다수의 용사들은 던전에 들어가서 공포를 없앤다는 사명감보다는, 물질적 보상을 노리고 들어가는 쪽이었으니까. 자신의 몸은 소중하니까 적당히 치고 빠지고. 손익 계산해서 이득 봤다 싶으면 바로 빠지고. 그렇게 왔다갔다 하다가 더 큰 욕심이 생길때쯤 되어서야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기록은 안 되어있겠지만, 우리 용사대의 던전 공략속도는 탑10 안에는 그냥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 갱신하면, 분명 놀랄 거야. 아마 용사훈련소 직원들도 놀랄 거고. 그러니 당황하지 말고, 괜한 소리 말고 수준만 파악하고 바로 여관으로 돌아와. 아니,  참에 각자 개인 시간 갖고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는 걸로. 어때?”

“네! 대장님.찬성이에요.”

“대장은 같이 안 가십니까?”

“난 이것저것 알아볼 게 있어서.”

아티팩트야 무슨 효과가 있는지 지금이라도 알려줄 수 있었지만, 그녀들의 원활하고 정확한 납득을 위해 아깝지만 수수료를 떼고 감정을 받기로 했다. 내 말을 그녀들이 신뢰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가진 게이머로서의 보정이라고 해야 되나 능력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이걸 밝히는  또 다른 일이었다.

‘게다가 2구역에 가려면 제4의 멤버를 영입해야 돼. 밝힐 거면 모두한테 밝혀야지, 두 명만 밝힌 상태에서 영입하면 정보의 갭이 반드시 생길 거고 그건 동료간 생길 마찰의 시초가 될 거야.’

그러니 밝히기 전까진, 세일럼 상식에 맞춰서 행동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자! 이건 카야 거. 이건 셰이거.”

나는 금화 더미의 절반 정도를 가른 다음, 나머지를 3등분 해 각각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대략 33~35금화 정도였다.

“대장, 이건.”

“저거 반은 일단 용사대 공용 자금으로쓰고, 나머지는 각자 용돈으로 쓰자고. 사고 싶은 거 있음 사고, 먹고 싶은 거 있음 사고. 아, 그 돈으로 무구 수리 같은  하지 마? 그건 공용 자금에서 처리할 거니까.”

“와….”

“너무 많습니다, 대장. 제가 이걸 받아도 될는지.”

순순히 좋아하는 셰이와 달리 카야는 머뭇거렸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당장 하루치 숙박비, 고작 몇 실버가 모자라 급하게 인던을 돌아야했던 일도 있지 않았나. 그러다가 갑자기 그 수십 배가 되는 돈을 덜컥 받아버렸으니….

사람은 과거를 아예 잊어서도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과거를 기준으로 삼아도 곤란했다.

“우린 그럴 자격 있어.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고. 오히려 우리가 해낸 일이나 겪었던 고통들을 생각하면, 이 돈도 적다고 생각해.”

“대장….”

“오롯이 널 위해 사용해. 뭐라  사람 아무도 없어. 아니면, 제발 가지라고 명령이라도 해야 하는  아니지?”

카야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자기 앞에 쌓여있는 금화를 소중히 집어들었다.

“잘, 쓰겠습니다.”

“그래. 그걸로 뭘 하든 상관   테니까.”

“흥흐흥~ 흥흐흥~ 흥~ 흥~ 흐응~”

어느새 금화를 다 챙긴 셰이는 벌써부터 신이 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카야를 재촉했고, 이내 어색하게 서 있던 카야의 손을 잡고는 이따 보자며 사라졌다.

‘몇 시간뿐이지만, 혼자가 됐네.’

생각해보면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혼자였던 시간은 적었다. 딱 첫 날 하루. 씨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하면서 여관에서 어영부영 하루를 보냈었지. 그 이후로 용사지원소에서 카야를 영입하고 나서는, 동료들과 함께 있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다 보니 잠시뿐이지만, 지금 혼자 있는 게 조금은 어색했다.

‘내가 애도 아니고, 새벽도 아닌데 갑자기 감성 충만해진 것도 아니고.’

“크흠, 그럼 제4의 멤버를 물색하러 가보실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일부러 육성으로 내뱉었다. 음,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

 롱 테러에서 멤버, 그러니까 추가로 용사를 영입하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용사지원소에서 마음에 드는 용사를 픽업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조우 이벤트에서 영입을 성공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용사지원소에서 마음에 차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낮긴 하지만.’

용사지원소에서 픽업할  있는 용사는 대체적으로 레벨이 낮았다. 아마 예전의 나나 카야처럼 쌩초짜거나, 뭔가 하자가있거나 사정이 있어서 제대로 된 용사대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이 절대다수일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둘러봐야 했다. 셰이의 경우처럼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일단 내가 기댈 곳은 용사지원소밖에 없었으니까.

‘혹시 알아? 또 다른 천재, 또 다른 원석이 숨어 있을지?’

만약 그렇다면, 다소 공략 속도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데려가서 키워볼만 하지 않을까. 2구역 대신 1구역의 잔존구역들을 돌다보면 레벨이 비슷해질지도 모른다. 우리가 얻는 보상은 매우 적겠지만….

“어서오십셔. 지원입니까?”

“아뇨. 모집입니다.”

김칫국은 그만. 다시 찾은 용사지원소, 그곳엔 카야를 영입할 때의 그 직원이 똑같은 멘트와 어조로 날 맞이했다.

“용사대 증명서 이리 주시고… 흐음?”

기계적으로 멘트를 읊던 그는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갑자기 손뼉을 마주치며 쏜살같이 말을 쏟아냈다.

“아 그때 그 회색머리 반쪽짜리 엘프 데려가신 분이시네!”

“아, 예.”

맞긴 맞는데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이야, 누가 데려가나 싶어서 골치 아팠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데려가줘서 기억이 안  수가 있나! 어째, 쓸만합니까?”

“무슨, 의밉니까.”

신경이 거슬렸다. 뭐? 누가 데려가나 싶어? 골치가 아파? 내 어조가 상당히 다운됐으나, 직원의 말은 계속됐다.

“아 왜 그, 치유도 반쪽짜리고 힘도 남자에 비해 달리고, 경험도 없고 그렇다고 지식이 빠삭한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무작정 세일럼에 온 용사들이 어디 한둘이 아닌  알지만은, 그렇게 답 없는 용사는 처음이지 뭡니까. 그렇다고 규정 상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차에 용사님이 딱! 데려가지 뭡니까!”

“아, 예. 매우. 잘. 해내고. 있습니다.”

묘하게 반가웠던 마음은 삽시간에 사라지고, 저 촉새 같은 주둥이를 뭉개주고 싶었다. 네깟 놈이 뭔데 카야를 그딴 식으로 폄훼해.

뭘 안다고.

육신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을 겪어봤어? 정신이 집어삼켜지는 공포를 느껴봤어?

징그럽게 생긴, 혐오스럽게생긴 이단 숭배자놈들을 한 놈이라도 죽여봤어?

공포에 맞서봤냐고. 공포에 맞서는 위대한 발걸음을 봤냐고 이 새끼야.

‘릴랙스 하자. 릴랙스.’

차라리 아는 척 하지 말 걸 후회했다. 저 직원새끼는 자기가 수많은 초보 용사들을 분류하고 만나봤다며 일종의 용사 전문가라도  것 마냥 떠들기 시작했고, 그건 굉장히 시끄러웠다. 카야라는 걸출한 전투 수녀도  알아본 안목으로 떠들어봤자, 내겐 전혀 알맹이가 없는 말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다면서 예의와 눈치는 밥 말아 먹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때 그 용사가….”

“죄송하지만 이따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별로 없는데. 지원용사들 목록을  살펴볼 수 있겠습니까?”

“쩝, 아. 예. 그러십쇼.”

이 투머치토커눈새를 이왕이면 다시 볼 일 없기를 바라며, 그가 건넨 용사들의 프로필이 적힌 종이를 살폈다.


[유렌Yuren]

종족/성별 : 인간 남성
클래스 : 수호자(Guardian)

‘까비….’

인간 남성 수호자. 이론상 거의 최강의 탱커였다. 수호자가 탱커 중에서도 방어력이 제일 높은 클래스인데다가, 인간 남자라서 딱히 방어력이나 중갑 페널티도 없었다. 하지만 자리가 없었다.

‘내겐 셰, 셰이가 있어!’

셰이에 비해 특징이 평범하다며 애써 쓰라린 마음을 달랬다.  장  장 꼼꼼하게 살폈지만, 예상대로 좀처럼 마음에 드는 용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첫 뽑기 때처럼, 최고난도 던전을 돌기엔 너무 평범하거나 좀 괜찮다 싶으면 어딘가 하자가 있었다. 1구역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보면… 타협의여지는 없었다.

‘아쉽지만, 한 명이 갖고 있는 조금의 하자가 던전 안에선 언제든지 크레바스로  수 있어. 조급하지 말자.’

불쾌함을 억누르고 직원의 인사를 적당히 응대한 나는 장비지원소와 용사훈련소에 들리기로 했다.

부디, 업그레이드 비용을 듣고 쌍욕이 덜 나오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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