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1구역(2트)(21) (48/218)



〈 48화 〉1구역(2트)(21)

‘아파. 아파. 아파.’

그만. 그만해. 그만해요. 제발 그만둬주세요.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난, 내가 왜 이런 처지가 되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런 처지로 있어야 하는데.

‘차라리, 죽여줬으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끔찍한 고통을. 적응되지도 않는 고통을 매일 죽지도 못하고 느껴야 하는 거야.

‘날 구해줄 사람은, 이미 어디에도 없어….’

아빠랑 엄마랑 처참한 모습으로 돌아가셨을 때.

이미, 내 세상은 무너지고 없어.

‘난네놈들의 장난감이 아냐!’

부모님이 주신 소중한 몸을,  멋대로 도구처럼 다루는 건데! 차라리 죽이라고!

‘아파! 아파!! 아파!!!’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은 얼마 못 버티고 어디론가 사라지던데, 왜 난  죽는 거야?

내가 잘 버티는 거야?

아니면 날  괴롭히려고 일부러 살려두는 거야?

죽고 싶어. 죽고 싶다고!

그만, 제발 그만해!

난, 살아갈 의미가 있는 걸까.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닐까.

내가 발버둥을 치는 게,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삶의 끝이, 이렇게 끝나는  싫어.

의미가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죽여! 죽이라고!  죽여?

지금  죽이면, 내가 지금껏 고통 받은 만큼!

아니!

부모님이 느꼈을 고통도 포함해서!

아니!

 모든 것의  배만큼 갚아줄 거야! 그러니 당장 날 죽여!갈기갈기 흔적도 없이 찢어죽여버리기 전에!

하! 내가 이깟 걸로 굴복할  같아?

죽….

“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 셰이는 황급히 자신의 옷을 뒤집어 드러난 배를 만져보았다. 땀으로 축축한 것 빼면, 오래전 생긴 흉터만 빼면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몸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꾸고 싶지 않은 꿈을 꾸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당시의 고통이 생생했다. 카야 언니가 닦아준 몸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찝찝했다.

“….”

힘들어. 귀찮아. 닦아서 뭐해. 닦고 누워서 잠들면. 또 비슷한 꿈을 꾸고 깨겠지. 그럼 또 땀범벅이 되어 있을 거고.

그렇다면 차라리 안 닦고 안 자는 게 최선이 아닐까? 그래. 그러자.

아무 것도 하지 말자.

몸을 닦아준 카야 언니나, 텐트 설치해주고 밥도 먹여준 대장님에겐 미안하지만.

난, 뭘 하면 안 될 거 같아.

그러니 하등 도움 안 되는 난, 이대로….

셰이. 들어갈게.

‘대, 대장님?’

화들짝 놀란 셰이가 굳어 있는 사이, 헨드릭이그녀의 텐트로 불쑥 들어왔다. 팬티만을 입고 다급히 달려온 헨드릭이 맨 처음 본 광경은,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셰이의 가슴이었다.


**

“셰, 셰이! 괜찮아? 어디 아파? 아픈  아니지?”

홀-리.

다급히 고개를돌린 나는 일단 셰이의 안전부터 확인했다. 눈앞에 땀으로 번들거렸던 셰이의 가슴이 아른거렸지만, 왜 상의를 뒤집어까고 멍하니 앉아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제1목적을 까먹진 않았다.

“아, 아. 괘, 괜찮아요. 조금, 안 좋은 꿈을.”

“악몽… 그래.”

그나마 예상했던 대로, 비명은 악몽 때문에 나온것 같았다. 그래. 악몽. 그럴 수 있지. 특히 던전 안에서꾸는 악몽은, 평범한 악몽과는 궤를 달리하니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 어, 그래. 많이 뒤숭숭하겠지만, 내일을 위해서 푹 쉬어.

라고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할까?

평소였다면 그랬을 확률이 높았다. 기껏해야 물이나 한잔 주고,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은다음 우리가 있으니 안심하라고, 그러니 부디  자라고 했겠지.

하지만 봐버렸다.

끔찍한 흉터로 가득한 몸을.

앞쪽은 등보다는 덜하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었다.

만약 내가 저런 흉터를 온몸에 가지고 있다? 난 진작에  버티고 죽었을 것 같았다. 저런 흉터가 온몸에 가득할 정도면, 얼마나  고통을 겪었을 것인가?

셰이는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몸은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았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그녀는 모르는 듯 했지만 전신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내 옷차림이 순간 신경 쓰였지만, 이내 신경을 꺼버렸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그녀도 상의를 벗고 있었으니,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갔다. 셰이는 여전히 멍하니 앉아있었다. 텐트에 들어올 때 잠깐 날 보는 듯 했다가, 이내 고개를 숙여 계속 자신의 복부를바라봤다. 가슴을 가릴 생각도 않고, 아무 말도 없이 계속 그러했다.

그런 그녀의 반응은, 내가 그녀의 복부에 손을 가져다 댈 때 극렬하게 터져나왔다.

짜악-!

“손대지 마!”

“….”

“아….”

예전에 평상복 위로 어깨를 툭 건드렸을 때보다 몇 배 이상 거친 반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지금은 흉터가드러난 맨살을 만지려 했으니. 멍했던 그녀의 표정이, 상당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함부로 손대려 해서 미안.”

“아니, 아니에요.괜찮아요. 정말이에요. 대장님.”

“그래? 정말 괜찮아?”

“네?”

나는 손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무시하고 다시 손을 움직였다.  손이 배에 가까워지자 셰이의 표정은 점점 공포로 물들어갔다.

결국 내 손가락이흉터에 닿은 순간.

짜악-!

 손은 다시거칠게 튕겨나갔다.

“아, 아아… 아니에요. 이건, 이건 제 뜻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마법횃불을 점등했다. 엄청 흐릿하게 보였던 그녀의 표정이 보다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명백히, 공포에 질려있었다.

정확히는 다시 자신의 배로 향하는 내 손에게.

“으, 으으, 으으, 그, 그러지 말아주세요. 제발요.”

셰이는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말하는 중간중간 윗니 아랫니가 달달 부딪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싹 무시했다.

나는 세 번째로 그녀의 복부에 손을 댔다.

‘1, 2, 3, 4.’

5.

이번엔 5초가 걸렸다.

처음엔 1초 미만. 두 번째엔 약 3초.  번째엔 약 5초로 늘어났다.

나는 다시 손을 가져다댔다.

“제발… 대장님! 왜 이러세요! 왜!”

“해치지 않아. 난, 널 해치지 않아.”

손등이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어째 여자 동료들의 힘이 하나같이  같았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게이머로서의 감, 대장으로서의 감, 남자의 직감, 관계도에 따른 감.  아무거나 가져다 붙여도 좋다.

그녀의 멘탈이 가장 밑바닥까지 쳐박혀있는 지금이야말로, 타이밍이라고.

끈질기게 시도했다. 머릿속으로는 몇 번이나 파양당하고 학대당한 반려견과의 교감을 시도한다고 생각했다. 접촉 자체에 공포를 가지고 있는 그녀를 치유하기 위해선, 오히려 접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잘못하다가 트라우마가  심해질 수도 있는  아닌가하는 걱정도 살짝 들었지만….

‘그거야말로 정말 미안해, 셰이. 극단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날 용서해줘. 아니, 용서하지 않아도 좋아.’

지금은 모를 띄우기 위해 별 지랄을 다 해야 했다. 걸도, 윷도 필요 없었다. 오로지 모. 모를 띄우기 위해서 지금까지도박수도 던지고 극약처방에 가까운 판단을 연속해서 던졌다.

이 지랄맞은 최고난도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판단도, 실천도 내가 했으니 책임은 당연히 내가 진다.’

설령 세일럼에 귀환해서 회복한후, 카야에게 나를 향한 집착증이 잔존하게 될지라도. 셰이에게 또다른 증상이 발현될지라도.

오롯이 내가 감당할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견뎌줘. 셰이.

**

쓰윽- 쓰윽-

대략 시간쯤 걸렸다. 셰이의 복부를 쓰다듬는 내 손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손을 쳐내고 싶은 듯 손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끝내 참는데 성공했다.

셰이의 목소리엔 짙은 슬픔과 원망이 섞여있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대장님…? 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저 악몽이라고 했잖아요…  절, 싫다고 거절하는 절,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거예요…?”

“네가 걱정돼서.”

“내가, 걱정돼서…? 그런 같잖은 말은 집어치워요!”

셰이가 버럭했다. 마침내, 무기력함에 잔뜩 눌려있던 그녀의 감정이 분출되고 있었다.

“그래요! 맹세! 맹세했죠! 맹세했었죠! 대장님과 언니가 보고 있을 때, 유스티티아님께 대놓고 맹세했었죠! 알아요 저도! 지금의 제가 하등 용사대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거! 대장님이랑 언니 귀찮게 하고 있다는 거! 이대로 가다가 구역 돌파가 어려워질 거라는 것도! 다 안다고요!”

“그래.”

“그래요! 근데 어떡해요? 뭐든 게 부질없게 느껴지는데!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내가 제대로 방어해도! 내가 힘써서 공격해도! 목표는 이루지 못할 거 같고, 내가 지키려 했던 언니랑대장님도 고통 받는 건 똑같은데!”

어느새 셰이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이단을 증오하고 잘 때려잡을 것처럼 얘기했는데, 지금 이 꼴이 된 제가 얼마나 한심해요? 네? 그렇잖아요?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어떻게든 기운 북돋게 해주겠다고. 어떻게든 쉬게 해주겠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이단 앞에 클레이모어를 들게 하겠다고! 이런 쓸모없고 한심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저를 억지로 위로하겠다고! 이런 나라도!!!”

“그건아니야, 셰이.”

“거짓말 하지 마!!!”

셰이가 내 목을 붙잡았다. 숨이  막혔다.

“내가 불쌍하게 보이잖아! 내가 흉측하게 보이잖아! 내가 쓸모없는 짐덩이로 보이잖아! 그럼에도 당장 쓸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당장 함께 싸울사람이  밖에 없으니까! 고기방패로라도 써먹으려는거잖아!!!”

“고기방패라니, 말이 심하네.”

“닥쳐! 닥쳐요!!!”

어질어질했다.  목을 붙잡은 셰이는 이제 목을 쥐고 앞뒤로 정신없이 흔들고 있었다.

“봐! 눈 똑바로 뜨고 여길 보라고!”

내 뒷머리를 거칠게 움켜쥔 그녀가 방금 전까지 내가 쓰다듬던 자신의 복부로 끌어당겼다.

“깨어있는 채로 배가 갈렸어! 무슨 사술을 썼는지 기절하지도 못했어! 그 악독한 놈들은 내가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있게 술수를 부렸어! 그놈들이 내 배를 가르고! 자궁을 적출해서! 자궁에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다시 집어넣고! 대충 봉합한 것까지 전부!”

셰이의 하복부엔 이리저리 뒤틀린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끔찍할 정도의 무력감이 들었어. 산채로 배가 갈리고, 소중한 아기를 위한 방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유린당하고… 그렇다고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했어. 그때 느꼈던 그 무력감을, 지금도 계속 느끼고 있다고.검을 휘두를 때도, 적의 공격을 막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눈을 감을 때도!!! 지금, 당신이 여길 억지로 쓰다듬을 때조차도!!!!”

그걸, 그걸!!!

셰이의 두 눈은 충혈되다 못해 새빨개져있었다.

“내가 느끼고 있는 걸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뭘 안다고… 네가 걱정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는 거냐고!!!!!”

“확실히.”

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셰이가 저항했지만 이번엔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주 힘을 줬다.

“내가 네 과거를 다 아는 것도,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지.”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알고 싶고 널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내가.”

“…하?”

“너와 함께 싸우는 동료로서. 그리고 널 품고 던전 끝까지 이끌  대장으로서. 난,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어.”

극도로 분노했던 셰이의 표정이 차게 식어갔다. 그럼 그렇지, 네가 그런 사람이었지 라고 말하는  같았다.

“…화내서 미안했어요. 손 때린 거랑 목 조른 것도 미안해요. 어떻게든 쉬고 몸 상태 회복해볼게요. 그게 대장이 원하는 거잖아요. 그쵸?”

“셰이.”

“왜요, 대장……….”

셰이의 축객령은 이어지지 못했다.

쮸우우웁-!


내가, 그녀의 복부에 입을 맞춘 순간.

석상처럼 굳어져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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