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1구역(2트)(13) (40/218)



〈 40화 〉1구역(2트)(13)

“카야. 너무 붙어 있어서 걷기가 힘들 정돈데.”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것 까진 없는데, 조금만 떨어져달라는 거지. 이렇게 너무 붙어있으면 유사시에 대응하기 좀 그렇잖아.”

“죄송합니다.”

필수품은 돈을 탈탈 털어서 샀으니 조금은 여유가 있던 식량을 소비해 최소한도로 회복한다는 극약처방도, 반쯤 패닉에빠졌던 동료들을 진정시키고 1-6을 빠져나온 것도 좋았다. 하지만 가장 급한 문제를 처리하고 나니, 동료들의 정신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셰이는 그나마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같은데, 카야가 문제였다.

도저히 내 옆에서 떨어질 생각을 않는 것이다!

“카야. 왜 그래.”

“죄송합니다.”

뭔 말만 하면 대답이 항상 죄송합니다로 똑같았고, 뭔 말을 해도 내 옆에 붙어있는 것도 똑같았다.

‘이래서야….’

앞으로 남은 방은 보스방까지 4개. 휴식처가 아닌 곳에서 머뭇거릴 여유는 없었다. 때문에, 걸어가면서 이야기해야만 했다.

“나 정말 괜찮다니까. 셰이도 다음날 멀쩡하게 돌아다녔잖아. 맞지?”

“네? 네! 그럼요!”

살짝 눈짓하자 재빨리 동의하는 셰이. 하지만 카야는 묵묵부답이었다.

“셰이는 던전에서 나올 때까지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근데 난 봐봐. 전투 끝나기 전에 정신 차렸잖아. 괜찮다는 증거 아니겠어?”

“맞아요, 맞아. 역시 대장님.”

그러나 카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아니, 누가 보면 카야 네가 죽다 살아난 줄 알겠어… 어? 말해봐. 왜 그래? 나 진짜 괜찮다니까.”

“….”

“뭐라고?”

“제가….”

드디어 카야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너무작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통로를 울리던 발걸음 소리가 죽자 그녀의 목소리를 겨우 들을수 있었다.

“저번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잘못하는 바람에 큰 위험을 겪었습니다. 그때, 저는 속절없이 악몽에 휩쓸렸고 대장에게 추태를 보였습니다. 대장이없었으면, 저는 미쳐버렸거나 용사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카야.”

설마, 1회차 때 1-2 전투를 말하는 건가? 1뎀 차이로 못 죽였던 거?

그거, 나한테만 그게 보이지 카야는모를 텐데… 감으로 아는 건가, 아니면 과한 죄책감 때문인 건가?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하는 바람에, 대장이 죽을 뻔했습니다.”

“네 탓이 아냐. 넌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고.”

“이렇게 붙어있으면,대장에게 향할 공격을 제가 막아낼 확률이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제가 뭔가 하는 것보다, 대장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막아내는  도움이   같습니다.”

분명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대화가 아니었다. 카야는 내 말을  듣고 자기 말만 하고 있었다. 일단 카야의 멘탈리티는 –74인데….

‘날 잘 따르는  좋지만, 그게 너무 과해진 상태인 건가?’

[관계도]
카야 : 4
셰이 : 2

괜히 관계도를 봤지만 변동 사항은 없었다.

‘설마, 카야가 4고 셰이가 2라서 이러는 건가? 진심?’

일단은 부정했다. 참고는 하고 있지만 100% 맹신하고 있진 않았다. 무엇보다, 만약 관계도가 똑같은 수준이라고 해도 카야와 셰이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종족, 성장 배경, 나이, 성격, 취향 모든 게 다른 인물일진대, 어찌 단순한 숫자로 비교할  있단 말인가.

‘의존이나 집착 뭐 이런 거일수도.’

어렵다 어려워. 괴물 조지는  하나만으로도 목숨을 걸어야하는데, 그 와중에 동료들 멘탈도 케어해야 한다는 게. 괜찮은 것 같다가도 한순간에 이리 되니 안심할 수가 없었다. 내가 치명타 한방 맞는 순간 좋았던 분위기와멘탈리티가 단숨에 박살난 것처럼 말이다.

“카야.”

“죄송합니다.”

“카야. 귀 열고 내 말 들어.”

“죄송합니다.”

“카야!”

이해는 한다. 자신이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해서 내가 뒤질 뻔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도중에 좌절해서는  됐다. 좌절은 전염되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는 던전 돌파 중이다. 평소와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미봉책에 불과하지만, 어쩔 수 없이 행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셰이, 잠시만 저쪽 봐줄래.”

“네? 아, 네!”

약간의 미안함을 담아 셰이의 고개를 돌리게  후, 내게 거의 붙어있던 카야를 끌어안았다. 전투수녀의 중갑과 곳곳에 묻어있는 핏자국들이 거슬렸지만, 개의치 않고 그녀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카야는 순간 움찔하더니, 바라던 바였다는듯 양손을 내 허리에 두르고 꾹 힘을 주며 마주 안았다.

‘와씨. 힘  이렇게 쎄.’

내가 지금 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티내지 않았다. 건재함을 과시하려면, 그걸 통해 카야를 안심시키려면 강-력한 포옹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야 하는 것 아니겠나.

나는 카야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그녀가 고개를 들길 유도했다. 허리에서 그녀의 손이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반응을 보니 일단 상호작용이  되는 건 아니고.’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쓰다듬자 카야가 내 의도대로 고갤 들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회색 눈동자는 짙은 죄책감과 슬픔에 잠겨있는 것 같았다.

“카야.”

“죄송, 합니다.”

“한번만 더 대화 내용과상관없이 무작정 죄송하다고 그러면, 앞으로 너랑 얘기 안 할 거야.”

“…!”

카야의 눈이 반배는 커졌다. 입을 악무는 게 보였다. 머릿속에서 두 자아가 치열하게 싸우는 게 훤히 보였다.

‘내 잘못은 중대하니 그럼에도 사과해야 한다.’와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대장의 말을 들어야한다’ 쪽이싸우고 있겠지.

“이렇게 포옹하지도 않을 거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않을 거고, 같이 자지도 않을 거야.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을 거고, 철저하게 같이 던전을 도는 용사대원1로 대할 거야.”

“그건… 으읍!”

그녀의 입술에선 아릿한 혈향과 건조식량이 반쯤 섞인 맛이 났다. 솔직히 좋다고는  못할 맛이었지만, 그건 내 입술을 맛보고 있을 카야도 마찬가지일 테니 퉁 치고.

나는 카야의 입술과 혀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원래라면 절대 상상하지도 못했을, 던전 내에서 애정 행위를 한다는 것에 대한 스릴과 초조함. 그리고 카야의 멘탈을 지금으로선 이런 방식으로밖에 신경 써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어쩔 수 없이 소외되어버린 셰이에 대한 미안함까지.

그 모든 것을 담아, 카야의 입을 공격했다.

 건재해.  말 들어. 내게 집중해. 멋대로 좌절하지 마. 멋대로 내 고기방패 되려고 하지 마. 날 따라와. 나랑 또 키스하고 싶으면,  안기고 싶으면 앞으로 그러지 마. 지금까지 그래왔던것처럼, 내 말에 따르라고.

나, 안 죽으니까. 안 죽을 거니까. 나도 살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너 없으면 내가 당장이라도 뒤질 것처럼 구는  그만 둬.

난 네 대장이야. 네가 인정한 대장이야.

그러니까. 명령이야.

멋대로 좌절하지 마.

일부러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은 많은 것을 말한다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최대한 눈으로 말하려 했다. 그래서  눈빛이 그만큼 강렬했던 걸까, 카야는 반쯤 감았던 눈을 뜨고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체감  1분은 살짝 넘은 것 같은 폭력적인 키스가 끝이 나고.

나는 억지로 카야에게서 멀어졌다. 카야의 입술과 혀는 어디 가냐는  애타게 매달렸지만. 이미 내 얼굴은 멀어진 뒤였다. 절그덕거리는 제3자의 갑옷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가자.”

“…예. 대장.”

카야는 잠시간  바라보다가, 이내 목 뒤가 붉어진 셰이의 뒤를 얌전히 따라갔다. 일단, 응급처치는 성공적이었다.

‘말 그대로 응급처치라는 게 문제긴 하지.’

[멘탈리티]
셰이 : -74
카야 : -77
유진 : -65

위험한 건 여전했다. 아까 키스를 그만둔 것도, 멘탈리티가 까였다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던전한테 분위기 파악 못 하냐고 윽박지를 수도 없었다. 애초에 던전 안이라서 이런 극약처방을 연속적으로 하고 있는 거였으니까.

카야의 심리 상태는 한 층 더 복잡하게 꼬여있을 것이고, 셰이도 트리거만  당겨졌다 뿐이지 만만찮은 상태일  뻔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한  더 사경에 빠진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미쳐버린 카야와 셰이를 보고야 말겠지.’

더 롱 테러에서 멘탈이 갈리고 갈려 –100을 돌파해 완전히 미쳐버린 용사들은, 회복되기 위해 레벨이나 증상에 따라 최장 10분 정도의 시간과 상당한 돈을 소모해야 했다. 각자 클래스나 성향, 보유한 특징 등에 따라 회복하는 방법도 제각각이었지만….

‘안 돼. 1구역에서부터 미쳐버릴  없어.’

게임 상에서야 말끔히 회복됐다지만, 여기선  그럴 확률이 높을 거라는 것에 플탐 3천 시간을  수도 있었다.

마치 한계 이상으로 늘어난 고무줄이 다소 헐렁해지는 것처럼, 한  미쳐버린 용사들은 다음엔 더욱 더 쉽게 미쳐버리는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크윽!”

“셰이!”

[셰이가 함정에 당했습니다.]
[셰이가 상태이상 ‘출혈’(3턴)에 걸렸습니다.]
[남은 체력 16/17]
[날카로운 함정이 용사들의 몸과 마음을 헤집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5]
[카야 멘탈리티 –3]
[유진 멘탈리티 –4]

“캬야. 붕대.”

“여깄습니다.”

“셰이, 조금만 참아.”

“흐읏….”

출혈은 붕대로 막아냈다. 체력도 기껏해야 1 깎였을 뿐이었다.

[멘탈리티]
셰이 : -79
카야 : -80
유진 : -69

하지만 멘탈리티가, 마침내 80선까지 붕괴했다.

멘탈리티 회복 이벤트라든가, 앞으로 맞닥뜨리는 전투에서 계속 치명타를 먹이지 않는 이상 이대로 간다면….

‘안 돼. 말이 씨가 된다고, 생각도 하지 말자.’

그 와중에 갈림길이 나왔다. 고민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바로 오른쪽을 골랐다. 수시로 확인하는 멘탈리티 상태를 보며 점점 더 초조해졌다. 초조해지는 만큼 발걸음도 초조해졌다. 조금 전 셰이가 함정에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난 내 초조함은 무언으로 동료들을 재촉했다.

뚜벅-

초조함 가득한 발걸음 소리만이 울리던 통로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뚝 끊겼다. 선두에 서 있던 셰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카야도 멈췄고, 나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게도, 뭐야, 왜 멈췄어? 라고 물을 이유는 없었다.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러네. 후우. 돌아가자.”

막다른 길이었으니까.

막다른 길엔 잘하면 비밀방 같은 히든 요소를찾을 수 있었지만, 도적 계열도 없고 레벨도 낮은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 빠르게 미련을 털고 뒤로 돌아갔다.

[용사들의 무거워진 마음에공포가 자리 잡습니다.]
[셰이 멘탈리티 –4]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3]

‘빌어먹을.’

멘탈리티 하락 속도가 빨라졌다.  봐도 후퇴 페널티가 적용 중인 것 같았다. 후퇴 페널티란 가던 길이 막다른 골목이든 아니든 뭐든 간에전진했던 길을 되돌아갈 경우, 멘탈리티 하락 속도가 빨라지는 페널티였는데… 갔던 길을 돌아간다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상당히 힘 빠지는 걸 표현하는 장치라고 생각했었다.

[용사들의 앞길에 공포가 드리웁니다.]
[셰이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4]

[멘탈리티]
셰이 : -86
카야 : -88
유진 : -76

하지만 실시간으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멘탈 상태를 보니, 단순히 힘을 빠지는  넘어서 이거 잘못하다간 통로 위에서 공포에 잡아먹히는 현상을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막다른길에 딱  번 봉착한 순간, 형편 좋게 멘탈리티를 회복시켜주는 기물이나 이벤트가 뜨길 기다릴 여유가 사라졌다.

‘함정에 걸릴 위험성은… 무시한다.’

결국 지금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또다시 극약처방이었다. 한  극한 상황에 몰리기 시작하고 선택지의 범위가 좁아지니, 지금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너무나 한정적이었다.

“셰이,카야.”

“…네. 대장님.”

한 박자 느린 셰이의 대답과 미약하게 고개만 끄덕인 카야.반응도 심상치 않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둘을 데리고….

“지금부터 다음 방에 도착할 때까지 달리는 거다. 쉬지 않고.”

“…네?”

“뭐해? 뛰어!”

터지기 전에 1-7에 도착하느냐 마느냐, 숨 막히고 사지가 떨리는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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