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1구역(2트)(12)
‘진짜 뒤질 거 같이 아프네.’
눈을 깜빡여봤다. 눈꺼풀이 깜빡이는 거 같긴 한데 사방이 새까매서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이 잘 안 갔다. 그래서 손발을 움직여봤다. 손발도 움직이는 거 같긴 한데, 정작 손발을 볼 수가 없으니 소용없었다.
‘일단… 사경인 건가.’
이렇게 되기 직전, 사경에 들어섰다는 메시지는 확인했었다.
‘아, 아. 뭐야. 말도 안 나오네.’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건지, 귀가 안 들리는 건지. 조금 더 생각해보니 정황상 둘 다일 거 같았다.
‘셰이도 지금 나랑 똑같은 걸 경험했을까.’
뒤지게 아픈 거랑 오감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사방이 새까맣다는 걸 빼고는 사경이라고 딱히 특별한 게 없었다.
‘말로만 듣던 임사체험이 이럴까 싶기도 하고.’
생각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치지 않고 멀쩡히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 자체가 비정상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름 좀 날리는 철학자 아저씨의 명언에 따르면 나는 존나 실시간으로 열심히 생각하고 있느니, 존재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몸은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으니….
이래서 죽음의 경계인가?
할 수 있는 게생각하는 거 밖에 없으니 생각은 점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갔다. 가장 먼저 날 이렇게 만든 공전 새끼부터 시작해서, 카야와 셰이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으니 명령을 못 내릴 텐데, 나 없이 어쩌고 있을지. 셰이가 사경에 들어섰을 때 멘탈리티가 대폭 까였는데, 이들도 괜히 나 때문에 멘탈이 갈려나간 게 아닐지.
생각은 점점 시간 역순으로 이어져나갔다.
호쾌하게 홈런을 때려버린 카야, 휴식처에서 셰이와 있었던 일, 공포의 상자방에서 정말 공포에 걸맞은 악몽을 겪은 일, 다시 만난 공포무새의 대가리를 시원하게 찍어버린 일….
셰이가 합류한 일, 셰이와 인던에서 죽을 뻔한 일.
카야의 멘탈을 케어해주려다가, 어쩌다보니 하나가 된 일.
둘이서 돈을 벌기 위해 인던에서 고생한 일.
본 던전 1회차 1-3에서 강제 추방으로 쫓겨난 일.
용사지원소에서 카야를 처음으로 뽑았던 일.
그리고.
‘존나 병신 같은 표정 짓고 있었네.’
이 세상에 처음 빙의되고 나서 멍 때리다가 잡화상인에게 면박을 받은 일까지.
세일럼 및 던전에서의 짧은 삶은, 내 인생 어느 때보다도 밀도 높았고 또 주도적이었다.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과정 자체가,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고 느끼게 한다니.’
아이러니했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그 보상으로 돌아가면, 방구석에서 먹고 자고 더 롱 테러 하면서 썩어가겠지. 치킨도 좋고 피자도 좋고 튀김도 좋고 햄버거도 좋고, 가끔씩 꼴리는 여자 반찬 삼아서 욕망도해소하고.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푹 잘 수 있고. 위협도 없고.
하지만.
지구에서의 나는 수없이 많은 이산화탄소 제조기1에 불과했다. 그냥 죽지 못해 사는 존재였다.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집주인과 각종 배달 음식점에게 소정의 금액을 내는 것 말고는 하등 없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사회의 짐덩이, 쓰레기 직전이었다.
근데 여기선 어땠나.
완전히는 아니지만 나 덕분에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극복한 인생이 있다. 내 말 한 마디면 용감하게 적을 공격한다. 하등 쓸모없는 존재였던 내가, 누군가의 은인이 되었고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이 되었다.
강제적이긴 하지만, 목표를 위해 몸과 마음을 불사르고 있다. 평생 안 잡아본 도끼를 들고 괴물의 뼈와 살을 분리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고?’
존나 뭔가 거창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여기서도 내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1구역도 돌파하지 못한 1렙짜리 용사에 불과했다. 1-10도 아니고 1-6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동료 용사를 뽑는 기준으로 종결급, 1티어 운운하면서 정작 내 스킬은 보잘 것 없었다.
‘그래도.’
확신이 있었다.
어느새 내게도 소중해진 카야와 셰이, 그리고 언젠가합류할 4번째 용사와 함께라면.
내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삶에 업적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삶에, 친구 혹은 그 이상의 소중한 존재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살고 싶다. 미치도록 살고 싶다. 살아서, 일어나서. 날 이렇게 만든 새끼 대가리를 박살내고, 박살내고 또 박살내서. 던전의 끝까지 박살내고 싶다. 지금도 내게 공포를 욱여넣고 있는 가장 기나긴 공포도 예외 없이.
‘움직이자.’
누가 날 이곳에서 구원해주나? 셰이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깨어나지 못했었다.
‘움직이자. 제발! 움직이라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나는….
그들을 이끄는 대장이니까.
**
“….”
“….”
세상이 흐릿하다. 그리고 조각났다.
그녀의 대장이, 헨드릭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순간.
카야의 세상 또한 무너지고 있었다.
“언니! 대장님, 아직살아있어요!”
“….”
“언니! 카야 언니!”
살아…있다고?
“정신 차려요!!! 대장님 아직 안 죽었다고요!!!”
짜아악-!
볼이 얼얼하다. 뜨겁다. 아프다.
“아직 전투 안 끝났어요! 근데 왜 벌써부터 세상이 멸망한 것처럼, 누구 멋대로 절망하고 있는 거예요! 누군 대장님 걱정 안 되는 줄 알아요? 일어서요! 일어서라고!! 이 빌어먹을, 정신 차리라고! 카야 에펜젤!!!”
짜아악-!
피 맛이 났다. 피가 난 거겠지.
내 세상은, 내 운명은 내 입에서 난 피보다 수십 수백 배 이상 많은 피를 몸 밖으로 흘리고 있는데.
아. 치유해야 되는데.
내 몸을 바쳐서라도….
“완전히 맛이 가버렸잖아…!”
왜, 왜 치유가 안 되는 거지.
셰이.
왜. 대장을 치유하지 않고 검을 들고 있는 겁니까. 대장이 죽을 것처럼 쓰러져있는데, 어째서 대장 곁이 아니라 저 괴물에게 다가가는 겁니까.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난 지금 지극히 정상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건 어떻게든 대장을 살리는 것 아닙니까?
라엘라님.
라엘라님께서 계시를 내려주셨지 않습니까. 제 운명이 여기 있노라고, 그리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운명이 벌써, 여기서 끝나는 것입니까? 제대로 꽃 피워보기도 전에, 깊숙한 곳에 들어가기도 전에.
대장과 보다 깊은 관계가 되고 싶다는 제 욕심이, 분에 넘쳐서 이리 된 것입니까?
죽는 건 두렵습니다. 두려워서 어렸을 때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견뎌냈습니다. 하지만 대장과 저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제가 죽겠습니다. 제 피와 살로 대장을 살릴 수 있다면, 마땅히 내어주겠습니다. 대장은 저와는 달리, 진정으로 던전의 끝에 도달할 ‘용사’입니다. 저는 없어도 누군가가 대체할 수 있겠지만, 대장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라엘라시여. 당신의 어리석은 딸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믿고 따르는 대장에게 힘을 내려주십시오.
어떤 대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부디, 바라건대.
이 가치 없는 몸으로 이 세상에서 제일 빛날 용사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키길 간절히 바랍….
“…카, 야.”
“………아?”
“나, 말고… 저 새끼….”
“아, 아아, 아아아……!”
파편화되었던 카야의 세상이.
“조, 져…!”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네…! 대장…!”
**
[유진이 사경에 들어섰습니다.]
[유진의 모든 수치가 33% 감소합니다.]
[사경에 들어선 상태에서 데미지를 받으면 유진은 사망합니다.]
[용사들은 순간 거대한 절망과 빠져나올 수 없는 공포를 목도합니다.]
[셰이 멘탈리티 – 24]
[카야 멘탈리티 – 33]
[유진의 턴이 넘어갔습니다.]
[정의의 심판]
[셰이가 공포의 전사에게 4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2/72]
[공포의전사가 심판을 거부합니다.]
[공포의 전사가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자마자 전투 메시지가 한가득 시야 한구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채 다 확인하기도 전에 눈동자가 죽어버린 카야가 철퇴의 방향을 자신을 향한 것을 목격하고는, 뇌를 거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마 ‘전투수녀의 고행’으로 자해해서 날 힐할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카야의 마음에 초를 치고 싶진 않았지만쓸데없는 짓이었다. 내 피는 –3이었고, 카야가 힐로 턴을 때우면 그 다음은 다시 저놈 차례였으니까. 철퇴로 조져버리는 게 정답이었다. 패닉에 빠졌는지, 아니면 전 턴에 공격을 실패한 것 때문에겁을 먹었는지.
그래도 내가 저놈을 조지라고 명령한 순간, 카야는 의심의 여지없이 다시 철퇴를 들었다.
카야는한 걸음 걸을 때마다 날 뒤돌아봤다. 내가 그 자리에 있나, 눈을 뜨고 있나, 혹여나 스치는 바람에 꽥-하고 뒤져버리는 건 아닐까 확인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셰이가 내게 다가오려는 것도 막았다.
눈물은 폭포처럼, 표정은 얼음처럼, 목소리는 악마처럼.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의 전사에게 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5/72]
[공포의 전사가 죽었습니다.]
[보상 : 14골드, 공포의 양날도끼, 성수]
“죽어. 죽어. 죽어.”
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죽어-
카야의 소름끼치는 철퇴질은, 공포의 전사의 시체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질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대장님!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장!!”
“후우. 일단은, 여기, 먹을 것 좀 가져다 주고.”
카야의 눈치를 보며 발을 동동 굴리던 셰이는 카야가 내 곁에 다가오자 옆에 따라붙으며 날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카야는….
‘아직도 맛이 좀 간 거 같은데.’
그녀의 정신상태도 상당히 심각해보였으나 당장 내 몸이 더 급했다.
‘전투가 끝났으니 힐을 받을 순 없어.’
현재 내 체력은 –3. 사경이라는 특수한 상태 덕분에 살아있는 거지, 원래는 존재할 수 없는 체력이었다. 죽지 않고 전진하기 위해선, 여기서 식량을 먹어서라도 억지로 회복해야 했다.
최소한 1이 될때까지.
“식량, 좀 넉넉하게, 가져다주고… 여기 방, 구석 구석,건질 거 없나, 수색, 해봐….”
“네…!”
셰이가 수색하는 동안, 카야가 가방을 통째로 들고 오더니 바닥에 식량을 통째로 쏟아버렸다. 그리고는 굴러다니던 것 중 하나를 집어 개봉하더니, 잠시 건조식량이랑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갑자기 자기 입으로 집어넣고 전투적으로 씹어대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지…?’
기적적으로 자력으로 깨어나긴 했다지만, 명료한 판단이 잘 안 되는 상황. 말할 힘도, 따질 힘도 없던 나는 이윽고 카야의얼굴이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그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카… 으읍!”
츄우웁-
카야는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망설임 없이 입을 맞추고는, 내 입 안으로 자신이 꼭꼭 씹던 걸 넘겨주려 했다. 마치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그러하듯.
나는 당황했지만, 입은 막혀 있었고 몸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그녀가 주는 대로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말로만 보던 받아먹기 플레인가….’
몸은 뒤질거 같은데, 상황도 존나 심각한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이상한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입에서 피가 한가득 나왔을 땐 기겁해서 어떻게든 카야를 말리려 했지만, 그녀는 빼기는커녕 오히려 내 피를 다 빨아먹고는 다시 꼭꼭씹어 음식을 넘겨주었다.
그렇게 무려 3회분을아기새처럼 받아먹고 나서야 체력이 0을 넘어설 수 있었다.
“…고마워. 고생 많았어.”
…할짝.
카야는 대답 대신 자신의 혀를 천천히 핥았다. 그리고는 내 옆에 바짝 붙어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왠지 똑바로 마주보는 건 부담스러웠던 나는 로그에 시선을 돌렸다.
[멘탈리티]
셰이 : -70
카야 : -74
유진 : -60
[체력]
셰이 : 17/17
카야 : 13/14
유진 : 2/15
‘박살났네.’
기껏 관리한 멘탈리티가 다시 걸레짝이 된 상황. 그래도 난 웃어보였다.
“할만 해.”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야와 셰이에게 말했다.
“정말이야. 할만 해. 그러니까걱정하지 마.”
“대장님….”
“나 못 믿어?”
카야와 셰이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지금까지처럼, 날 믿어. 그리고 날 따라와. 그러면, 난 언제고 일어나서 앞을 내다보고 너희의 길을 알려줄 테니까.”
툭툭-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그리고는 1-6의 출구를 가리켰다.
“가자.”
발소리는 곧, 세 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