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화 〉1구역(2트)(11) (38/218)



〈 38화 〉1구역(2트)(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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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씨발 존나… 말이  나오네.’

시야가 뒤집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눈앞이 번쩍했다. 어쩌면 순간 기절했다가 깨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귀에선 이명소리가 가시질 않았다. 저 무식한 도끼를 도끼로 받아낸 내 손이랑 손목엔 감각이 없었다. 이보시오. 의사 양반. 감각이 없소.

‘살아는 있나보네.’

유령 같은 게 된 게 아니라면, 이런 잡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겠지. 애초에 사경이라는 게 있으니 한방에 뒤지지도 않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말로만 찡찡거리는, 죽을 만큼 아프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은 느낌.

시야가 명료해지자 날 가장 반기는 건 전투 메시지였다.

[통렬한 일격!]
[공포의 전사가 유진에게 1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3/15]
[쓰러진 용사의 모습이 용사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들어서게 합니다.]
[셰이 멘탈리티 –7]
[카야 멘탈리티 –10]
[유진 멘탈리티 –6]
[치명타를 성공했습니다. 공포의 전사의 속도가 3턴 간 1 증가합니다.]

“대장! 대자앙-!”

“아, 안 돼요. 대장님! 어떻게 찾았는데, 어떻게 찾은 건데…!”

“크으….”

날 이렇게까지 격하게 걱정해주는 걸 보니 그간의 노력이헛되지는 않은 것 같네. 근데 얘들아. 그만 좀 흔들어주면 안 될까. 토할  같아….

“비켜봐….”

“아.”

“대장님!”

“정신, 차려. 우리, 전투, 돌입했어.”

내가 전신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자, 카야와 셰이도 이를 악물었다.

‘그래. 이래야 더 롱 테러지.  좆같음. 언제 다시 찾아오나 했다.’

그동안 좋았던 기세와 분위기를 순식간에 시궁창으로 처박아버리는 정예 괴물의 일격. 그걸 몸으로 직접 겪는 건 상당히 뼈아팠지만, 패닉에 빠지진 않았다. 비록 제4의 벽 너머에서였지만, 이런 꼴을 워낙 많이 겪어봤어야지.

‘치명타 맞았는데 사경에  빠진  어디냐.’

이런 운빨좆망겜을 재밌다고 3천 시간 넘게 붙들고 있던 사람이 나다. 이 와중에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이 웃겼다. 분명 게임 중이었다면 샷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 심한 욕을 퍼부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 아, 팀이 지고 있는데 웃고 있어요!

 졌어.

할만 해.

“대, 대장?”

“언제나처럼 나 죽기 전에 저놈 조지는 거야. 쉽지? 그냥, 평소 때완 달리 한대 맞고 시작한 거라고 생각해. 그거 빼면 다를 거 없어.”

“대장님!”

[공포의 전사]

최대체력 : 72
공격력 : 5~10
방어력 : 3
속도 : 7(6+1)

아마도 갓전 모드가  공전 새끼의 스펙을 확인했다. 속도가 1올라간 게 굉장히 거슬리면서 뼈아팠다.

‘저거 3중첩 되면 된다. 아니, 그 전에 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 해보기도 전에 선빵을 제대로 맞았으니 용사대의 기세가 상당히 꺾이긴 했지만, 고작 1-6에서 좌절할 수 없었다. 나는 일부러 큰소리를 내며 용기를 북돋았다.

“최소한 한 번은 더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다들 힘내보자고!”

[수배범 발견]
[놀라운 일격!]
[유진이 공포의 전사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71/72]
[용사들의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이 싹틉니다.]
[셰이 멘탈리티 +2]
[카야 멘탈리티 +3]
[유진 멘탈리티 +2]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낙인 치명타 실화냐….’

떠서 손해 볼 건 없었다. 소소하게나마 멘탈리티도 회복되고, 기분이 좋았다. 게임이었다면 찰진타격음과 성우의 간지 나는 치명타 전용 보이스도 들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운빨 총량의 법칙을 상당히 신봉하는 나로서는, 치명타 떠도 꼴랑 1데미지 밖에 안 뜨는 낙인에 치명타가 떠서 혹여나 다음 턴에 치명타가 뜰 운을 끌어다 쓴 게 아닐까 상당히 초조해졌다.

[셰이와 카야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셰이 : 4
카야 : 3

[셰이의 턴이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이쯤 되면 둘은 그냥 안 굴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두 동료 간의 속도 굴림이 끝나고, 셰이의 턴이 되었다. 그녀의 클레이모어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전신은 톡 건들면 터질 듯이 부들대고 있었다.

“가자. 셰이.”

“대장님의 복수를!”

셰이야,  아직 안 죽었어….

성전사인 셰이의 몸에서 귀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날 날려보내고 위풍당당 서 있던 공전새끼가 순간적으로 움찔거릴 정도로, 셰이의 돌진은 그만큼 파괴적이었다.

[정의의 심판]
[셰이가 공포의 전사에게 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6/72]
[정의의 심판이 공포의 전사에게 내려집니다.]
[공포의 전사가 상태이상 ‘기절’(1턴)에 걸립니다.]
[공포의 전사는 다음 턴에 어떤 행동도  수 없습니다.]
[공포의 전사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후. 일단 기절은 걸었고.’

공전 저새끼는 절대 날뛰게 두어선 안 됐다. 갓전모드가 된 공전은 혼자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놈이었으니까. 하드 cc인 기절을 가할  있는 스킬을 셰이가 가지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대장의 복수… 곱게 보내진 않겠다.”

아니, 카야.  안 죽었다니까.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의 전사에게 1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54/72]

‘치명타는 안 터졌지만  정도면 거의 맥뎀이네. 아까 즉사도 터졌고… 카야가 좀 되는 거 같은데?’

모든 턴이 돌았다.

그리고 다시 저놈의 차례가 되었다.

[공포의 전사의 턴이 넘어갑니다.]
[공포의 전사가 상태이상 ‘기절’에서 풀려났습니다.]

셰이가 미리 먹인 기절 덕분에 저놈의 한 턴을 삭제해버렸다. 내 목숨이  턴 더 늘어났다.

‘남은 체력은 54에 방어력은 3. 방어력이 정예 치고는 높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고.’

만약 방어력까지 높았다면 공전은 1구역 최강의 정예 괴물로 꼽혔을 것이다. 나는 도끼자루를 꾹 쥐고 생각했다.

‘50% 도박의 실명탄이냐, 확률 미상의 도박 대가리 분쇄냐.’

만약 실명탄을 먹이는데 성공한다면, 다음 턴 저놈의 공격은 대략 50%의 확률로 빗나가게 된다. 셰이의 기절도 무한정 먹일 수는 없으니 마땅히 고려할만한 선택지였다. 그리고 지금 공격하는 것은 몇%인지 알 수 없는 확률로 치명타를 먹일  있을 것이고.

더 롱 테러 게이머 한유진이었다면, 열에 여덟은 전자를 택했을 것이다. 난 안전지향적 플레이를 선호했으니까. 하지만 헨드릭에 빙의된 나는, 내 지향과는 반대의 행보를 보여왔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어느 쪽을 택하든, 100% 확실하지 않아.’

공전새끼가 헛손질하기를 기대할 것이냐. 아니면.

내 도끼가 저놈의 대가리에 치명타를 먹이길 바랄 것이냐.

어느 쪽이든 간절하게 바라겠지만….

저벅-

“내 운명을, 동료도 아니고 괴물 새끼한테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지.”

 선택은 후자였다.

[대가리 분쇄]

동료들이 이를 악물고 나를 보고 있었다. 허접한 데미지밖에  넣더라도, 설령 재수가 없어서 미스(내가 공격을 실패)나 닷지(적이 공격을 회피)가 뜰지라도. 전신에 고통이 차올라 팔다리가미친 듯이 후들거려도.

나는 공포에 맞서는 용사들의 대장이다. 저 빛나는 원석들이 믿어주는 대장이란 말이다.

내가… 씨발 내가.

지금껏 살면서  하나 제대로 이뤄본 게 없는 나지만. 그나마 이 세상에서 유용하게 써먹을 만 한 게, 3천 시간이 넘는  롱 테러 플탐이라고.

그런 내가! 고작 1구역 정예괴물 따위의 도끼밥으로 전락하기 위해 이지랄 한 줄 알아?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도 존나 비명 지르고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꼴 사납게 공격하진 않겠어.

나는 제발 치유 받고 쉬어달라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공포의 전사가 내뿜는 공포의 기운을 전력으로 갈라냈다.

너도 치명타?

[믿을  없는 일격!]

나도 치명타다 이 씨발 새끼야!!!

[유진이 공포의 전사에게 3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6/72]
[한계를 뛰어넘는 공격에 용사대의 사기가 오릅니다.]
[셰이 멘탈리티 +4]
[카야 멘탈리티 +5]
[유진 멘탈리티 +4]


“으아아아아아하하하하하!!!”

“대장!!!”
“대장님!!!”

인간형 낙인 치명타 맥뎀에 깨알 같은 해골 목걸이 1추뎀까지.

내가 지금 스펙에서  수 있는 최대 데미지가 작렬했다. 단번에 공전새끼의 피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 낙인 셔틀 아니야? 메인딜러라고!

급격한 치명타 맥뎀 뽕이 차올랐다. 어쩌면, 나 2타 맞기 전에 저놈을 조질 수 있다는 희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공전 새끼는 피랑 알 수 없는 거뭇거뭇한 덩어리를 쏟아내며 절규하고 있었고, 턴은 셰이에게 넘어갔다.

둘이서 16딜. 16딜만 꽂으면.

둘  치명타가 안 터지면 간당간당 할 것 같지만, 둘이 누군가. 셰이와 카야 아닌가? 더군다나 카야는 흐름을 탄 상황이니, 치명타를 언제 또 먹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아까처럼만 딜 나와도 충분해. 셰이가 5, 카야가 12 넣었었지. 둘 다 치명타 안 터졌는데도 17딜 나왔어.’

메시지 로그를 올려 저번 라운드의 딜량을 확인했다. 가능성은 충만했다. 카야의 딜이 맥뎀에 가까운 거긴 했지만, 어쨌든 가능성 있다는 거 자체가 중요했다.

0%나 100%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게임이었다.

“하아아앗!”

[정의의 심판]
[육중한 일격!]
[셰이가 공포의 전사에게 1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72]
[용사들의 마음에 희망이 싹틉니다.]
[셰이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4]
[유진 멘탈리티 +3]

“그렇지!!!”

셰이가 치명타를 먹였다. 남은 체력은 꼴랑 6. 변수가 확 줄어든 셈이다.

[공포의 전사가 심판에 저항합니다.]
[저항 굴림]
셰이 : 4
공포의 전사 : 5

[공포의 전사가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저항 굴림? 응~ 이기라 해. 어차피 다음 턴 카야야.

혹시 모르니 카야의 데미지 기댓값을 계산했다.

‘낙인 보정 받으면 5~13이고,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뎀 보정 받으면 6~14. 거기에 아티팩트 인간형 추뎀 1 생각하면 7~15. 마지막으로 저놈 방어력이 3이니까….’

치명타가 아닌 카야의 데미지 기댓값은 4~12였다. 4에서 12까지의 숫자 중에서 4와 5만 피하면 되는 일이었다.

9분의 7,77.8%

치명타 터지면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두근두근 두 배는 빨리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저놈에게 최후의 공격을 선사할 철퇴를 바라봤다.

‘카야. 믿는다.’

존나 듬직한 우리 카야.

그녀는 다시  번 공포의 전사에게 쇄도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아…!”

아.

[공포의 전사가 카야의 공격을 회피했습니다.]

카야의 철퇴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 차이로 공포의 전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공포의 전사 주위에 타오르는 검은색 연기가 활활 타오르는 게, 우리를 비웃는  같았다.

“하….”

“대, 장님… 죄송, 합니다….”

뭔가, 지금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거기서, 닷지가 뜬다고?

아니, 일단 인정해. 그동안카야가 명중률이 낮은 편인 전투수녀 치고 철퇴를 존나 잘 휘둘렀다는 거, 인정한다고.

[공포의 일격]

“공포를느껴봐라!”

근데,  하필 지금이야?

[공포의 전사가 유진에게 6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3/15]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안 돼애애애애애!!!!”

“대장니이이이이이이이임-!!!!”

두쿠웅-!



[유진이 사경에 들어섰습니다.]


공포의 전사가 휘두른 도끼가 내 갑옷에 명중한 순간.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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