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1구역(2트)(8)
어색.
지금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딱 어울리는 단어였다.
진심을 담아 서로의 속을 터놓고 얘기하며 다시 한 번 셰이라는 용사대원을 정식으로 영입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진심이라는 것은 그 파괴력 하나는 알아주지만, 그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게 있었다.
그냥 이 침묵이 존나 어색했다.
나는 뒤늦게 내 말이 주는 민망함과 오글거림 그 사이 무언가 때문에 셀프 피드백을 받고 벙어리가 됐으며, 셰이도 아마 자신의 몸을 보여준 것에 대한 후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서서 나가기엔, 여긴 내 텐트지 않은가.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려면 셰이가 나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나가기는커녕 바닥에 다시 누워버렸다.
[관계도]
카야 : 4
셰이 : 2
‘다시 사이가 회복된 건 좋긴 하지만, 이렇게 자는 건 안 좋은데.’
지금 용사대가 가지고 있는 건 전부 세일럼에서 살 수 있는 최저가 텐트다. 최소한의 바람막이와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막이 정도의 구실밖에 못하는 텐트라는 뜻이었다.
그런 텐트에서 자세라도 편하게 해야 잘 쉴 수 있을 텐데, 옆에 있는 사람의 피부에 닿지 않게 신경 쓰면서 구석에 빳빳하게 있어야 하니 제대로 쉴 수나 있겠나.
말을 꺼내기 정말 어색했지만, 컨디션을 위해 겨우 말을 꺼냈다.
“셰이. 그, 할 말 다 끝났으면 너도 이제 편히 쉬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그러네요.”
다행히 내 뜻을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후우. 그나마 신경 쓰이는 게 하나 해결됐으니, 아까보단 편히 쉴 수 있겠지.’
하지만 체감 상 1분 넘게 기다려봐도, 셰이는 여전히 누워있었다.
“셰이?”
“그거 아세요? 제 등, 카야 언니도 본 적 없어요.”
“그, 그래?”
“함께 훈련받았던 성전사들도, 스승님도 본 적 없어요. 여자든, 남자든 다 포함해서요. 만지는 건말할 것도 없구요.”
아. 악수나 갑옷 입은 상태에서 가볍게 포옹하는 정도는 제외하고요.
중요한 사실을 빼먹었다는 듯 다급히 덧붙였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뭐 어쩌자는 건지.
그때 바닥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 바닥에 대고 움직일 때 나는, 그런 소리였다. 나는 가만히 누워있었으니 이번에도 셰이라는 말인데.
“그래서 잠도, 늘 혼자잤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가까워진 듯 했다.
“그러니 오늘 제가 여기서 잔다면, 철 들고 누군가와 함께 자는 것도 대장님이 처음이네요.”
“여관에서 카야도 있었잖아?”
“저는 침대에서 혼자 잤잖아요.”
그건 맞지. 맞는데, 어쩌다가 흐름이 이렇게 된 거지?
“대장님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없어요. 그냥, 누워있을게요.”
그게 곤란하다는 거야. 편히 못 쉬잖아.
“대장님이랑 카야 언니에 한해서지만… 어깨를 토닥여주는 가벼운 접촉 정도는 견뎌내고 싶어요. 나중엔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정도로, 익숙해지고 싶어요.”
노력은 가상하다만….
“그걸 견뎌낸다고 표현하는 시점에서 이미 부적절해. 굳이 그렇게까지 힘든 걸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제가 그러고 싶으니까요.”
“왜?”
“온전한 저를 포용하고 끝까지 가겠다는사람은 대장님밖에 없었으니까요.”
스윽-
바닥이 끌리는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렸다.
“지금까지 다들 제 외모와 배경을 보고 멋대로 기대했어요. 유스티티아의성전사니까. 겉껍질은 나름 봐줄만하게 생겼으니까. 하지만 그들에겐 그냥 한탕을 위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고, 돈보다 이단 자체를 박살내고 싶고 깊숙한 곳에 들어가야 한다는 저와맞지 않았죠.”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더 가까이서 들렸다.
“심지어 교단 내에서도 절 반쯤 내놓은 자식 취급했어요. 너무 과격하다고. 여신님을 따르는 종이 사고방식이 너무 한쪽에 매몰되어 있다고. 제 스승님이신 성전사장님만이 제 뜻을 이해해주셨어요. 그분마저도 없었으면, 성전사도 도중에 그만뒀을지도 몰라요.”
“으음.”
“가면을 써야 했어요. 연기를 해야 했어요. 사람들은 제 외모를 보고 멋대로 제 행동과 성격을 예측하고 기대해요. 그리고 멋대로 실망하고요. 그런 삶을 살다가… 가면을 안 써도 된다고. 연기를 안 해도 된다고 하면서 제가 원하는 바를 함께 이루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어요. 아무리 저라도, 그런 사람하고는 가까워지고 싶지않겠어요?”
한 번 더, 셰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날숨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이런 저를, 끝까지 품고 가신다고 맹세하셨잖아요.”
“그건.”
“안 되나요?”
벅벅 머리를 긁었다.
고작 살짝 피부가 맞닿는 걸 연습하고 싶다는데, 안 될 게 뭐가 있을까.
다만 지금 너무 피곤하다는 게 문제지.
그래도 일생일대의 용기를 끌어내고 있을 셰이를 생각해서, 인내심을 발휘했다.
“자.”
“…!!”
나는 구석에서 좀 안쪽으로 이동한 다음, 옆을 더듬어 셰이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목각인형이 되었다.
“악수는 괜찮았다며?”
“이,이, 이게 악수는 아니잖아요오? 소, 손 잡기잖아요오?”
손이 부들부들 떠는 게 두려움에 따른 거부반응 때문인지, 아니면 내 손을 쳐내려는 걸 스스로 억제하려는 것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
셰이의 손이 핸드폰 진동보다더 거세서 잘 수가 없었다.
“셰이.”
“네, 녜에?”
“나 걷어차거나 주먹질 하면 안 된다? 미리 말했어?”
“에. 대, 대장님? 대체 뭘. 아.”
나는 그녀를 살짝 껴안았다. 자연스럽게 목 뒤로 팔을 넣고 한 팔로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감싼 자세였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더 가까워진 셰이의 몸은 잔뜩 경직되어 있었고, 목에서 그녀가 정신없이 내뱉은 날숨의 습기가 느껴졌다.
‘젠장. 이것도 실팬가.’
셰이의 숨소리를 들으니 이러다 그녀가 패닉으로 인한 과호흡으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녀를 떼어놓기 위해 살짝 밀었는데… 밀려나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가 내 가슴팍을 붙잡고 있었다.
“셰이. 너 괜찮아?”
“하아, 하아, 하아.”
“셰이?”
“미, 미칠 것 같아요.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도, 너무 가빠서. 그래서.”
“아니 그러니까 일단 떨어져봐!”
“여, 여기서 물러나면 다, 다음에 더 어려워질 것 같아요…!”
아니 왜이렇게까지.
진짜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카야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닐 테고.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심호흡을 시켰다.
“스읍- 하아-.”
“스읍- 후우-.”
쿵쿵거리는 셰이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끝내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몸이 뻣뻣한 건 여전했지만… 적어도 핸드폰 진동하는 것처럼 심하게 떨지는 않았다. 나는 계속 그녀의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였다. 잠들 때까지.
“언니가 한 말이 이해가 되려고 해요. 조금은.”
코앞의 남자가 잠든 걸 확인한 셰이는, 당장이라도 떨어지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담으며 오히려 더 달라붙었다.
“당신은, 정말 신기한사람이에요.”
**
온몸이 무거웠다. 잠은 가까스로 잘 수 있었지만, 푹 잔 느낌은 절대 아니었다. 혹한기 훈련 중 야영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한마디로 좆같다는 거지.’
1구역을 어떻게 돌파하기만 하면 내 반드시 텐트의 품질을 높이겠다고 생각했다. 구역 클리어 보상은 난이도가 높아진 만큼 꽤나 짭짤할 테니까.
‘셰이는 먼저 일어났나보네.’
대충 머리를 정리하곤 텐트를 나섰다. 그러자 모닥불의 불씨를 다시 살리고 밥을 준비하는 두 동료의 모습이 보였다.
“아. 대장. 일어나셨습니까.”
“대장님? 푹 쉬었어요?”
“어. 너희들도 잘 잤어?”
평소대로의 어조다. 셰이는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일처럼굴었다.
그래. 이거였다. 이게 내가 바랐던 분위기였다.
[멘탈리티]
셰이 : -43
카야 : -41
유진 : -42
불완전한 잠이라도 휴식은 휴식인지 멘탈리티가 상당히 회복된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었다.
섭식, 즉 밥 먹기였다.
밥이라고 해봐야 고형 수프를 녹인 것과 건조 식량이 다지만, 따뜻한 수프에 찍어먹으면 배고픈 상황에서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전투식량이라고 생각하면 못 먹을 것도 없었다.
[체력]
셰이 15/17
카야 13/14
유진 13/15
[멘탈리티]
셰이 : -33
카야 : -31
유진 : -32
밥을 먹고 다시 확인해보니 체력이 최대 체력의 25%만큼씩 회복됐고, 멘탈리티도 추가로 10만큼 회복할 수 있었다. 식량도 넉넉하게 챙겨왔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더 롱 테러에서도 휴식처에 도착했는데가진 식량이 부족해서 체력이랑 멘탈리티 회복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뒷처리와 재정비까지 모두 끝난 후, 우리는 휴식처의 출구 앞에 서 있었다. 쉬었으니,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앞으로 구역의 보스를 만날 때까지 휴식처가 없을 수도 있어. 이게 마지막 휴식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푹 쉬었어요!”
카야도 그렇고, 셰이도 그렇고. 휴식처에 도착하기 전의 분위기는찾아볼 수 없었다. 확실히,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원기를 회복한 티가 났다.
나는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았다. 멘탈리티로 드러난 수치 말고, 내 본연의 정신 방벽이 조금은 튼튼해졌을 거라 믿었다.
“가자.”
“네! 대장님!”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동료가 있고, 서로의 모자란점을 받쳐준다. 1회차 때 내가 카야를 받쳐줬듯, 2회차 때 카야와 셰이가 날 받쳐줬다.
그렇기에 우리는 문제가 있더라도 능히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끼이익-
상대적으로 으스스함이 덜한 휴식처를 빠져나오자마자 던전의 공기가 우릴 거칠게 반겼다. 절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게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떨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휴식과 식사는 용사들에게 힘을 주었다.
[용사들의 앞에 희망의 불빛이 타오릅니다.]
[밝기 : 98]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컨디션 좋을 때 최대한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마법횃불의 밝기도 절대 50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하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함정을 조심하는 것 빼고는 문제될 게 없었다.
[카야가 함정을 피했습니다.]
[용사가 작은 자신감을 얻습니다.]
[카야 멘탈리티 +2]
소소한 멘탈리티 회복도 나쁘지 않았다.
‘이때쯤 갈림길이나 다음 방이 나올 때도 됐는데.’
1-4를 나선 지 30분이 넘었다. 통로 길이가 방을 넘어갈수록 조금씩 길어지긴 하지만, 전보다 돌파 속도가 빠른 걸 감안하면 슬슬 뭐라도 나와야 정상이었다.
“대장님.”
“어.”
역시.
선두에 선 셰이가 날 불렀다는 건 뭘 발견했다는 뜻이리라. 셰이가 한쪽으로 비켜서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나랑 카야가 그쪽을 바라보니, 웬 잡동사니들이랑 길쭉한 종이들이 널브러져있었다.
‘설마, 신언서(神言書)…?’
신언서란 더 롱 테러 설정상 던전 내 공포 숭배자들이 숭배를 더 빡세게 하기 위한 연구 차원에서, 기존에 존재하는 교단들의 교리와 자신들의 교리를 비교분석하던 책이나 종이들이었다. 낮은 확률로 정예 괴물 이상의 방이나 통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물이었다.
“함정일까요?”
“던전 내에, 그것도 통로 한가운데에 종이와 책이 있는 건 명백히 수상한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니. 저게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데요?”
“으음….”
신언서.
더 롱 테러에선 웬만하면 거들떠도 안 보던 거였다.
‘높은 확률로 미쳐버려서 부정적 특징을 즉시 획득해버리지.’
기존에 존재하던 교단의 교리만 있는 거라면 미칠 일이 뭐가 있겠냐만은, 공포 숭배자들의 교리가 교묘하게 섞여있어 읽기만 해도 공포에 머리가 잠식되어 성격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미쳐버린다는 게 공식 설정이었다.
그래서 평소였다면 잡동사니 취급하고 건너뛰자고 말했겠지만 내가 지금 망설이는 이유는….
‘성전사와전투수녀. 둘 다 성직자 계열인데 성수까지 충분히 있어.’
지금 우리가 웬만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까이 가서 살펴보자. 괴물은 없는 거 같으니까.”
“예. 대장.”
읽으면 높은 확률로 미쳐버리는 신언서는, 반대로 해주에 성공할 시다음 방까지 한해 상당한 버프를 주고 낮은 확률로 긍정적 특징까지 주는 로또 기물이었다.
성직자 계열 + 성수는 최악이 신언서를 통째로 날려먹는 꽝이었다. 즉, 미쳐버린다는 리스크가 없었다.
‘기세 한 번 살려보자.’
어디 한 번, 로또 한 번 긁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