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8화 〉1구역(2트)(1) (28/218)



〈 28화 〉1구역(2트)(1)

- 대장니임~!

똑똑똑-

“셰이!”

“네! 대장님! 셰이에요!”

셰이의 귀환은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카야에게서 셰이의 행동에 대한 진짜 의미를 듣고, 상당히 진지하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던 터라 막연히 오래 기다릴 각오까지 했었는데, 그게 무안해질 정도로 빨리 돌아온 것이다. 그 일을 빼고 생각하면 그녀만 오늘 하루 밖에 놀러갔다  거라고 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하루하루 나가는 여관비에 남은 재산이 뭉텅이로 박살이 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일단 나는 환하게 웃고 있는 셰이에게 목걸이를 다시 돌려주었다. 근데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왜?”

“직접 걸어주세요!”

“뭐어?”

“대장님도 참, 이런 것까지 일일이 제 입으로 말하게 할 셈이에요? 자!”

뭐, 뭐야.

 대답을 듣지도 않고 셰이는 그대로 180도 턴한 다음 머리를 하나로 모아 앞쪽으로 끌었다. 그러자 그녀의 희고 가는 목이 드러났다.

‘시, 시발.’

목걸이를 직접 걸어달라고 목을 드러낸 것뿐인데, 침이 급속도로 고이고 음습한 자아가 깨어나려 했다.

 돼. 정신 차려. 망설임 없이 자신의 취약점을 보여주는, 이렇게 신뢰를 보여주려는 사람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끄덕-

옆을 힐끔 쳐다보니 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난 그녀가 내 속마음을 눈치 채고 경멸스럽게 쳐다보면 어쩌나 싶었는데.

- 괜찮지 않지 않을지도…?

‘내 머리, 아니  좆에서 나가!’

나는 애써 덤덤한 척, 셰이의 목걸이 줄을 길게 펼쳐들었다. 그리고 팔을 최대한 앞으로 뻗어 그녀와 접촉하지 않은 채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뻔히 드러난 셰이의 목과 환한 금발, 그리고 카야와는 다른 의미에서 더 맡고 싶은 체향까지. 아무리 샤워해도 내 몸에선 좋은 냄새는 안 나던데, 참 신기해. 크흠, 아무튼 셰이가 혹여나 불편할  있으니  손이 닿지 않게 하려고, 의식하지 않으려하고 했는데 오히려  의식이 쏠려버렸다.

“자, 됐어.”

“고마워요.”

그녀가 우리 용사대에 들어오고 싶다는 게 99% 확정되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조심하자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돌연 셰이가 다시 180도로 휙 돌고서 한쪽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닌가!

“셰, 셰이?”

다시 한  갑작스런 셰이의 행동에, 그녀의 양 어깨를 붙잡으려는 순간 그녀는 다시 가슴골에 퐁당 빠져있던 장신구를 눈앞으로 꺼내며 중얼거렸다. 얼굴이, 그리고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건드리거나 말을 걸어서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만면에 빛과 공정한 정의를.

유스티티아님, 당신께서 비추시는 빛과 펼치시는 정의를 따르던 당신의딸이, 이 땅을 너머 당신의 뜻이 닿지 않고 공포와 어둠이 만연한 저 던전 안에 들어가 친히 당신의 뜻을 대행할 것을 지금  자리에서 맹세하겠습니다.

부디 청하건대,  검에 어둠을 가르는 빛을, 제 갑옷에 공포에 굴복하지 않을 정의를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이 맹세를 바칠 수 있게 도와준 용사 헨드릭과 용사 카야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시고, 저희가함께할 용사대의 앞길에 어떠한 좌절과 고통와 공포로 얼룩진 시련이 들이닥치더라도 끝내는 함께 이겨낼  있도록 용기를 내려주십시오.

어떤 강대한 적이 있더라도 동료들의 제일 앞에서 동료들을 보호할 것이며,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굴복하지 않고 감내할 것이니.

다시  번 바라건대, 저와 용사대의 앞길에 빛을 비춰주십시오.”

한없이 진지하고 엄숙함마저 느껴지는 셰이의 맹세에 작은 장신구가 은빛 광채를 발산했다.광채는 금방 사라졌지만, 그 광채를 확인한 셰이는 잘 됐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관계도]
카야 : 4
셰이 : 2

셰이와의 관계도가 1이  올랐다. 딱히, 관계도를 보지 않아도 셰이의 맹세를 듣는 순간 그녀의 진심에 이미 전율하고 있었다. 딱히 그녀가 내게 한쪽 무릎을 꿇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정말로.

신을 딱히믿지도 않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게, 셰이의 맹세가 끝난 직후, 정말로 어떤 시선이 잠깐 머무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스펙이 오르거나 긍정적 특징이 생긴  아니었지만….

한동안은 그 생경한 감각 때문에 셰이를 내려다보는 자세 그대로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도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무릎 아프겠다.”

“그 말을 기다렸어요. 헤헤.”

언제 그렇게 진지하게 맹세했냐는 듯, 셰이는 헤프게 웃었고 그렇게 그녀는 정식으로 HAT의 3번째 용사가 되었다.

**

“셰이가 합류했고, 탱커 없이 두 명이었던 우리 용사대는 아주 안정적인 3인 조합이 완성됐어.”

어차피 시간도 늦은 거, 하루 정도더 쉬는 건 큰일은 아니었다. 셰이가 정식으로 용사대에 합류했으니, 나는 미루었던 던전행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편한 옷차림으로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는, 그 중에서도 카야와 셰이는 내가 정보를 적어놓은 종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셰이, 너는 던전에 들어간 적은 없다고 했었지.”

“네, 대장님.”

“우리가 저번에 갔던 곳과 대부분은다르지 않을 거야.”

함정, 통로, 방, 보상, 괴물, 상점, 비밀방.

인던도, 던전도 대충 저런 요소들의 조합이었다. 저것들이 얼마나 악랄하게, 지랄맞게 조합되고 배치되어 있는지에 따라 난이도가 조절될 것이고.

“나랑 카야도 1-3, 그러니까 세 번째 방까지밖에 가봤어. 더 갈 수는 있었지만 알  없는 이유로 세일럼에 강제로 추방됐었지.”

내 손으로 룰렛을 돌렸는데 겪어보지 못한 기믹이 걸렸어라고 말한 다음, 매우 높은 확률로 튀어나올 그게 뭔 말이냐는 질문에 납득 가능할 대답을 할 자신이 없었다. 게임 용어가 나올 부분은 적당히 뭉갰다.

“그래도 던전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다는 점과 언제 어느 곳에서 함정이 발동될지 모른다는 엿 같은 차이점이 존재해. 그놈보다 더 강한 괴물도 있을 거고.”

“정신을, 갉아먹어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자기도 모르게 초조해지고 급해지고, 그러다보면 짜증이 늘고 화가 나고. 어떻게든 빨리 던전에서 도망가야할 것 같은,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점점 미쳐가는 거야.”

이 정도 정보는 세일럼에 던전 경험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알려면 알 수 있을 정도의 정보였다. 때문에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었다.

“임의로 나타나는 휴식처가 아니면 휴식도, 회복도 힘들어. 그리고 정말 재수가 없으면 우리가 함께 싸웠던 그놈같은 괴물을 연속으로 세 번도 만날 수 있고, 재수 좋으면 한 번 정도만 만날 수도 있겠지.”

“아, 저는 운이 좋은 편이니까 덜 만나겠네요!”

“셰이. 그, 미안합니다. 제가, 운이 안 좋은 편이라….”

“에이, 그런 걸로 침울해하고 그래요 언니는? 대장님은요?”

“나? 흐음.”

 롱 테러를 운빨좆망겜이라고 부르던 시점에서 이미 끝난  아닐까. 그래도….

“너희가 내 동료가 된  보면, 운이 엄청 좋은 거 아닐까.”

“….”

“….”

씨발.

역시 어울리지도 않는 립 써비스는 하는 게 아니었는데. 이거 분위기 어쩔 거야. 그래, 존나 얼척이 없겠지. 느끼하고 오글거리겠지.

“크흠, 내 운은 그냥….”

“대장님, 그런 말로 카야 언니를 유혹했죠? 저번에  꼬실 때부터 알아챘어요!”

“뭐?”

“언니! 카야 언니! 정신 차려요! 침 흘려요 침!”

“흐엣?”

다행히 카야는 내 립 써비스에 넋이 나가버린 모양이었고, 셰이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켜주었다. 다행이었다. 크흠, 대장의 권-위가 실추될 뻔했다. 카야 한 번 안았다고 기고만장해졌을지 모른다. 나 같은 놈 때문에 풋내기, 애송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걸지도 모른다. 자중하자.

“크흠! 중요한 건, 뭐가 됐든 아홉 번의 작은 방을 돌파하면 보스를 만난다는 거지.”

“보스에 대한 정보도 있습니까?”

“있지만 몰라. 이것도 직접 가보기 전까진 어떤 보스가 튀어나올지 모르거든. 이미 던전의 첫 번째 보스를 돌파한 용사대가 내놓은 정보들이 있지만, 다양해.”

참고로  롱 테러의 1구역 보스는 7마리 하나였다. 물론 여기서도 1구역 보스가 7마리 중  마리로 나온다면, 보스가 사용하는 패턴이나 스킬 정도는 당연히 유용하게 써먹을  있겠지만 그걸 굳이 지금부터 말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선 1-3에서 튕겨 나온 1렙 초짜니까, 나중에 직접 싸우면서 맞춤형 전투를 하면 되겠지.

근데 뭐, 슬프게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나 경험이 쓸모없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우린 첫 번째 보스까지 완전히 돌파할 거야. 그게 우리 1차 목적이야.”

“오!”

“대장. 대장의 계획을 반대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두 번째 던전행만에 첫 번째 보스를 공략한 용사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것이 아닌지….”

당연히 어렵지, 카야. 근데 어쩔 수가 없어. 정말 미안하게도… 우리 용사대는 후퇴 못 하거든.

여기 말고 게임 더 롱 테러에선 제한적이나마 공략 도중에 더럽게 비싼 귀환석을 통해 세일럼에 들를 수 있었다. 사용 제한은 없지만 귀환석이 더럽게 비싸서(심지어 사용횟수에 따라 가격이 증가), 정말 파밍이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한 게임당 한 번 쓸까말까였다. 돈이 생기면 용사들 스펙 업그레이드 하기 바빴고, 죽는 게 아까워서 귀환석을 이용해 세일럼에 돌아오면 엄청나게  적자를 보기 때문에 스노우볼이 씨게 굴러갔다.

게다가 정작 제일 위험한 전투중일 때는 사용하지도 못했다. 정확히는 쓸 수는 있는데, 쓰면 랜덤으로 최소  명은 뒤지니 쓰려는 용도를 생각하면 쓰는 게 어불성설이고.

하지만 이곳에서 다른 용사대들은 보스까지 깨지 않고도 자주 던전을 들락날락했다. 왜? 이곳에선 그게 정상이었다. 애초에 다른 용사들에게는‘후퇴 불가능’이라는 제한 자체가 없었다.

후퇴불가능은 오로지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나랑 카야랑 셰이는, 저번 같은 극히 드문 경우가 아닌 이상 1-10까지 쭉 밀고나가야 했다.

“던전은 많이 들락날락한다고 적응이 되는 곳이 아닐 거야. 던전에서 뿜어져나오는 어둠과 공포는 적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게다가 중간에 나오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것은 미미하다고도 들었어. 그렇게 되면 저번처럼, 준비가 모자라서 던전에 다시 도전하지 못하고 돈을 위해 의뢰를 전전하게 되겠지. 실력은 늘지 않고 시간만 흐르게 되는 거야.”

최종 보상, 경험치 정산, 특징 발현.

후퇴하면 이 모든  포기해야 했다. 어차피 우린 후퇴 못 할 테니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으음….”

“어차피 던전의 끝을 보기 위해선 다음 구역으로 넘어가야 하고, 구역을 넘어가기 위해선 보스를 잡아야 해. 근데 또 중간까지만 갔다가 나오면, 다음에 들어갈 때 처음부터 다시 돌파해야 하는 걸로 알거든?”

“처음부터 말입니까?”

“어. 아마  번째 방부터 다시 괴물과 맞닥뜨릴 거야.”

인던은 리젠 현상이 없었다고 해도, 본 던전에서 그런 행운을 바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다시 진입하는 순간 던전 구조도, 함정 위치도, 괴물 위치나 구성도 싸그리 바뀔 것이다.

3명의 1렙이 노데스로 원트에 1구역을 깬다는 것.

그건 더 롱 테러의 고난도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성공하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있을 것이다.

“내일 일찍 일어나자마자 챙길 수 있는 건 최대한 꽉꽉 채워서  거야. 다음 도전은 없을 것처럼. 그러니 오늘은 다른  생각 말고  자자. 알았지?”

“네! 대장님!”

끄덕-

실패의 경우는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내 말을 믿고 내 계획을 따르겠다는 카야와 셰이의 의지에 보답하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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