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이단과 금단 사이(4)
[제단의 수호기사의 ‘기선제압’이 발동됩니다.]
“구정물뒤집어쓴거같이생긴쓰레기만도못한놈이뭐잘났다고그딴시선이야눈깔뜯어버리기전에눈깔아.”
[‘기선제압’의 발동이 무효화됩니다.]
나는 다른 의미로뜨악한 표정으로 셰이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처음에, 수호기사라는 저놈이 뭐라 지껄일 때만 해도 1-2에서 위압당했던 그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아 조졌다 싶었다. 틀림없이 우리 턴이 삭제되고 선턴을 빼앗길 징조였으니까.
근데 성전사 특인지, 아니면 셰이가 특이한 건지 그녀의 욕설이 끝나고 위압 비스무리한 게 풀린 것이었다.
‘셰이, 이 미친년이!’
당장 끌어안고 머리를 헝클이고 싶을 정도로 듬직했다.
‘존나 잘했어! 네가 적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진심으로!’
대형은 1열 셰이, 2열 카야, 3열에 내가 서 있는상황에서 전투가 개시됐다.
[속도 체크]
셰이 : 4
카야 : 4
유진 : 7
제단의 수호기사 : 5
[유진의 턴이 제일 먼저 앞서게 됩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속도 체크가 벌어지고, 나는 침음을 삼켰다.내가 선턴을 잡는 건 별로 놀랍지 않는 일이었기에 상관없었지만, 막상 이번 속도 체크를 보니 새삼 우리 용사대 조합의 단점이 눈에 확 뜨인 것이다.
거북이.
1열에 주로서는 탱커는 어쩔 수 없다 치지만, 힐과 딜의 짬뽕 역할을 맡은 카야의 클래스가 전투수녀였고그들의 방어구는 중갑이었다. 그리고 중갑을 입은 클래스는 공통적으로 속도가 느려터졌고.
심지어 지금 거북이처럼 느리다고 말하는 4라는 수치도,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일단 긍정적 특징에 기민한 몸놀림으로1이 올라간데다가, 그녀의 종족이 하프엘프라 엘프족의 페널티인 ‘중갑 페널티’를 피해갈 수 있었다.
‘만약 기민한 발놀림이 없고 엘프였다면.’
그랬다면 애초에 첫뽑기에서 그녀를 픽하지도 않았겠지만, 속도가 4가 아니라 1이었을 것이다. 더 롱 테러의 속도 시스템이 누적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셰이는 천재 특성이랑 성전사의 집념 스킬 덕분에 탱커 치고 속도가 빨리 오겠어.’
특히 제단의 수호기사의 속도인 5와 불과 1차이였기때문에, 첫 턴은 어쩔 수 없더라도 두 번째 턴부터는 운이 좋으면 셰이가적보다 빠르게 행동할 수있을 것이었다.
[제단의 수호기사]
최대체력 : 69
공격력 : 6~9
방어력 : 7
속도 : 5
‘앞서 만났던 놈과 비교하면 체력이 좀 낮지만 나머지 수치의 평균은 다 높아.’
분석은 일단 여기까지. 실제로 흐른 시간은 몇 초 안 흘렀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대치만 하고 있는 것도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실제로 게임에서도 자기 턴에 아무 것도 안 하고 오랫동안 있으면 멘탈리티가 까이고 밝기가어두워지고, 전투 자체가 길어지면 그 현상이 가속화되는 페널티가 있었으니까.
여긴 인던이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너도 낙인 맛 좀 봐야지?”
[수배범 발견]
[유진이 제단의 수호기사를 수배범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진이 제단의 수호기사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9/69]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0?’
어쨌든 시작은 낙인부터.
하지만 데미지 수치를 보는 순간, 뭔가 방어 관련된 능력이 있겠구나, 생각보다 더 쉽지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들- 어- 왔- 는- 가-!!!”
낙인을 찍은 후 적에게 넘어간 턴. 근데 저놈이 갑자기 우릴 향해 소리를 질렀다. 단순한 고성이 아닌, 귀가 찢어질 것 같고 머리가 떨릴 정도로 엄청난 포효였다.
[위압의 외침]
[제단의 수호기사가 위압적인 전투의 함성이 용사들의 전의를 꺾습니다.]
[유진 남은 체력 14/15]
[카야 남은 체력 13/14]
[셰이 남은 체력 16/17]
[유진 멘탈리티 –9]
[카야 멘탈리티 –10]
[셰이 멘탈리티 –7]
‘씨발, 초장부터 광역 멘탈공격이냐? 그것도 기사라는 새끼가?’
검 든 새끼가 빔을 쏘든, 활 든 새끼가 검을쓰든 알 바 아니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괜히 더 짜증났다. 게다가 여기선 딱히 궁극기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저런 걸 연속해서 몇 번씩 처맞다간 어어 하는 사이에 용사대의 멘탈리티가 박살이 날 수 있었다.
[셰이와 카야의 속도가같습니다.]
[속도 굴림]
셰이 : 5
카야 : 3
[셰이의 턴이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셰이와 카야,둘의 속도가 같았기 때문에 아군이라 할지라도 속도 굴림이발생했다.둘 중 누가 이겨도 상관없었다.
왜냐?
“셰이!”
“죽여버릴거야썰어버릴거야갈아버릴거야태워버릴거야….”
[셰이가 성전사의 집념을 발동합니다.]
[3턴 간, 절대로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셰이의 속도가 1 증가합니다.]
[셰이의 체력이 매 턴 1 회복됩니다.]
[피격시 단 1회에 한하여 1회 반격할 수 있습니다.]
[남은 체력 17/17]
[반격 1]
어차피 속도를 1 올려주는 자벞(자기 버프)을 걸고, 저 기사놈이 자신의 속도를 올리거나 우리의 속도를 조정하는 기술을 다음 턴에 쓰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기사놈과 셰이의 속도는 셰이의 버프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계속 같을 테니까.
그럼 속도 굴림에서 이기기만 하면 셰이가 턴을 계속 앞설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카야의 턴.
“카야!”
“예, 대장.”
‘이렇게 된 이상, 절정이다.’
“으읏!”
육성으로 지시하면 뭔가 굉장한 쓰레기가 되는 기분이 들었지만,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카야가 절정을 발동합니다.]
[카야의 속도가 1 증가합니다.]
[카야의 최대 공격력이 1 증가합니다.]
[카야의 공격 적중시 무작위 아군의 체력을 1 회복합니다.]
이로써 카야의 속도도 5.
원래는 카야에게 철퇴를 휘두르게 할 생각이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첫 턴은 버프칠로 소비하기로 한 것이다.
5%의 확률로 한 방에 하늘로 보내버리는 카야의 한 턴을 날리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턴 속도 굴림에 카야도 참가함으로써 아군이 먼저 턴을 잡을확률이 50%에서 훨씬 위로 올라갈 테니까.
“흐읏….”
철퇴를 쥔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얼굴이 붉어진 카야가 이를 악물고 야릇한 숨을 내쉬는 걸 결코 보고싶어서가 아니었다.
진짜다.
“후우.”
다시 돌아온 내 턴.
평소 같았으면 바로 도끼를 휘둘러 적의 대가리를 빠개려 했겠지만, 적의 공격력이 생각보다 높아 고민이 되었다.
‘섬광탄으로 실명을 먹일까 말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슨 공격이튀어나올지 무서워서 미리 대비한다? 그건 저놈의 다음 공격을 보고 판단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은 공격하는 게 먼저였다. 내 대가리 분쇄는명중률 보정도 많이 붙어서 실패할 거라는 부담도 없었다.
“꺼져!”
[대가리 분쇄]
[유진이 제단의 수호기사에게 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0/69]
‘쓰읍.’
치명타가 안 뜬 것, 그리고 저놈의 방어력이 꽤 높은 것 치고는 평타 이상의 수치였다. 물론 만족스럽진 않았다.
[셰이와 카야와 제단의 수호기사의 속도가 같습니다.]
다음 턴.
내 의도대로 속도 굴림이 발생했다.
여기서 이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첫 턴을 버프로 때운 의미가 9할 이상이 날아간다.
‘둘 다 이기면 최선. 한 명이라도이기면 차선.’
그리고.
[속도 굴림]
셰이 : 3
카야 : 2
제단의 수호기사 : 4
“….”
씨발 운빨좆망겜.
그래. 그러시겠지. 두 명이 한 놈에게 모조리 굴림패 당하는 건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확률을 기반으로 한 플랜을 짠 내가 병신이겠지. 근데 어떡해. 굴림은 내가 어떻게 관여할 수 없는 순수 100% 운의 영역인데.
그동안 운수가 좋더라니.
“씨발….”
[제단의 수호기사의 턴이 셰이와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셰이의 턴이 카야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뒤이어 뜬 메시지가, 턴을 먼저 잡아 초기에 조진다는 기존의 패턴을 확인사살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뒤이어 다가올 저놈의 공격에 대비했다.
“물러나지 않겠다면, 물러나게 해주마-!”
부와웅- 콰아앙-!!
“크윽!”
“셰이!”
[2형 – 날려보내기]
[제단의 수호기사가 셰이에게 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1/17]
[셰이가 거력에 저항합니다.]
[셰이가 뒤로 밀려나지 않습니다.]
저놈이 무지막지한 기세로 셰이에게 대검을 횡으로 휘둘렀고, 셰이는 한쪽 무릎을 꿇긴 했지만 버텨내는데 성공했다. 입은 데미지를 보니 재수 없게도 맥뎀이 뜬 거 같았다.
“….”
그리고 스킬효과로 발동된 셰이의 반격.
[셰이가 제단의 수호기사에게 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셰이의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남은 체력 12/17]
하지만 반격은 데미지보정이 –40%인데다가, 저놈의 방어력이 꽤 높았다. 체력이 1 회복된 것에 의의를 두었다. 물론, 이런 걸 디테일하게 모르는 셰이는 자신의 반격이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하자 더욱 더 싸늘한 표정이 되었지만.
‘아무리 셰이가 1티어급 천재라고 해도, 아직 1렙이라 스펙이 애기라고… 공격 한방에 피가 걸레짝이 되어버렸어.’
나나 카야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건 이미 전에 경험하지 않았었나.
‘아니 씨발, 그냥 지금 난이도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지.’
어찌됐든 버텼다. 셰이의 턴이었다. 그녀는 공격을 버티면서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까드득-
‘아니, 입술이 왜 걸레짝이 된 거야….’
셰이는 예의 ‘그 소름돋는 무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숨길 생각이 없거나, 눈앞의 이단놈 때문에 그럴정신이 없거나.
턴대로 싸울 것을 강제하고, 용사대의 대장인 내게 지시를 내리는 이 절대적인 시스템이 저 미친년마저 강제하고 있었다. 내 지시를 따르라고. 아직까지는.
‘지금은, 힐보단 기절이다. 셰이.심판이다.’
내 지시가 끝나기가 무섭게 바람처럼 앞으로 튀어간 셰이는, 신성력을 끌어 모은 클레이모어를 산을 쪼갤 기세로 기사놈에게 내리찍었다. 어떠한 기합소리도, 앓는 소리, 말도 없었다.
이 일격에 저 간악한 이단 숭배자를 조져버리겠다는 강한 일념이 담겨있는 일격은, 물론 일격사는 불가능했지만 원래의 제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감히-! 내게, 위선자의 빛 따위를!”
[정의의 심판]
[셰이가 제단의 수호기사에게 2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58/69]
[제단의 수호기사가 심판에 저항합니다.]
[제단의 수호기사가 상태이상 ‘기절’에 저항합니다.]
[제단의 수호기사에게 심판의 낙인이 새겨집니다.]
[낙인은 3턴간 유지됩니다.]
‘이런….’
꼴랑 2데미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1렙이기도 하고, 성전사는 극딜세팅을 하지 않는 이상 근본은 탱커였다. cc기 먹이고, 꾸역꾸역 적의 공격을 알아서 버텨내는 것. 그게 내가 원했던 성전사의 역할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셰이는, 아프겠지만 버텨주면 된다.
그럼 저놈의 뚝배기는나랑 카야가 어떻게든 부숴버릴 것이다.
“카야!”
타타탓-
카야도 조금이나마 나와 합을 맞췄고, 그래서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지시 없이도 깨달은 듯 했다. 그녀는전속력으로 달려가 빛에 속박당한 자세로 굳어있는 기사놈에게 철퇴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콰아앙-!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파멸적인 일격!]
[카야가 제단의 수호기사에게 1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1/69]
[강력한 공격이 용사들의 심장을 자극합니다.]
[유진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4]
[셰이 멘탈리티 +4]
[절정의 공격으로 셰이의 체력을 1 회복합니다.]
[셰이 남은 체력 13/17]
“하아아…!”
전투의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절정의 효과 때문인지 잔뜩 달뜬 얼굴로 철퇴를 쥔 채 나를 바라보는 카야.
‘씨발 카야 지금 너 존나 섹시해!’
나는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