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이단과 금단 사이(3)
‘뭐야 쟤. 좀 무서워.’
높은 확률로 부정적 특성 ‘발작’ 때문에 일어난 일일 것이다. 어떠한 징조도 없이 갑자기 돌변한 셰이의 폭언은 대비할 시간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왔다.
단순히 험한 욕이 섞여있는 폭언을 듣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눈앞에서 겪어보지 않으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뭔가, 옳게 여겼던 개념이 실은 오래 전부터 어긋났다거나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았다.
이래서 멘탈리티가 까인다고 하는 거였나보다.
더 나쁜 건, 정작 장본인인 셰이는 자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셰이님.”
“네에~?”
“혹시 아까 우리에게 했던 말, 다시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에? 아까 했던 말이요? 우움, 추적은 저, 셰이에게 맡겨주세요! 이거였던가아?”
씨발, 저게 만약 멍청한 척하는 연기라면 내 인생 최고의 배우에 노미네이트될 자격이 있었다.
연기가 아니라도 문제였다. 언제 또 저런 기분 잡칠 랜덤 이벤트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거였고, 해결 방법도 모른다는 거였으니까.
‘그래. 저렇게 헌신적이고 믿음직한 카야도 특성에만 안 박혀있다 뿐이었지, 사실상 ’자기 혐오‘나 조금 더 뒤틀려서 ’피학성애자‘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용사긴 했어. 그런데 떡하니 부정적 특징에 박혀있을 정도면, 이 정도 일은 각오하긴 했어야 돼.’
다만, 게임에서 멘탈 깨진 용사가 동료한테 패드립 치거나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말들을 내뱉을 때. 왜 그렇게 정색하면서 멘탈리티가 까이는지 화딱지가 났었는데….
실제로 당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번은 그 대상이 우리가 아니라서 이 정도였지, 만약 저 발작의 대상이 우리라면?’
아무리 저 성전사가 카야와 버금가게 예쁘게 생겼다고 해도, 멘탈 깨지는 욕을 듣는 건 전혀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 나쁘지, 않을지도…?
‘시발 뭔 개소리야.’
정신 차리자. 여긴 인던 안이었다.
나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계속 카야에게 언니언니 하면서 들러붙는 셰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인던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볼 수 있게 된 그녀의 보유 기술들이었다.
[Shae셰이]
[1스킬. 정의 집행]
- 최대 2개체의 적에게 동시에 타격 가능
- 데미지 보정 - 40%(1개체 타격시 데미지 보정 -20%)
- 인간형 괴물을 상대로 데미지 보정 + 10%
[2스킬. 성전사의 집념]
- 자신 버프
- 상태이상 '절대 뒤로 밀려나지 않음'을 얻음
- 속도 1 증가
- 매 턴 종료 시 자신의 체력 1 회복
- 피격시 1번에 한하여 1회 반격(데미지 보정 -40%), 반격 성공시 체력 1 회복
[3스킬. 정의의 심판]
- 데미지 보정 +10%
- 명중률 보정 + 15
- 일정 확률로 상태이상 '기절' 부여
- 일정 확률로 '심판의 낙인(대상 처치시 자신의 체력 2 회복)' 부여
[4스킬. 정의의 빛]
- 지정한 아군1인의 체력 2 회복, 자신의 체력 1 회복
- 지정한 아군 1인과 자신의 멘탈리티 1 회복
- 밝기 5 상승
그녀가 보유한 스킬들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두 번째 보고 나서는 손으로 눈을 비볐고, 세 번째 보고 나서는 잠시 눈을 감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지에 대해 잠시 고찰했다.
“…대장?”
카야의 목소리에 눈을 떴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이건 결코 꿈이라던지 환상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대체 뭐냐, 이 여자.’
천재 특성은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막말로 그건 그냥 운이었다. 현대에서도 금수저로 태어나는 거나 IQ 150넘는 머리로 태어나는 게 지극히 부모 빨인 제비뽑기인 것처럼, 용사의 선천적인 재능도 그런 운이었다.
근데 이 눈이 부시는 스킬들. 이건 단순히 운과 재능의 영역이 아니었다. 환호성을 지르기가 무서울 정도로, 격 높은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나 카야가 2구역까지 돌파해도 비슷하게 맞추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나는 이 여자의 레벨이 1이 아니었다면, 내가 직접 이 세계에 떨어진 것만 아니었다면.
플탐 좀 되는 게이머가 운도 상당히 받쳐준 판에서 작정하고 투자해서 애지중지 키운 용사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나 카야의 포텐셜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의 용사였다.
스킬 중 방어력에 관련된 스킬이 없는 게 그나마 찝을 수 있는 흠이었고, 그나마 그 흠도 기절이라는 하드 cc기와 조건부이긴 하지만 자힐 기술만 3개가 포진된 준종결급 이상의 스킬들이 커버할 수 있었다.
“우움? 아. 대장님은 그렇게 바라보셔도 괜찮아요! 잘생기셨으니까!”
“셰이님은 아직 저희 용사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언니도 대장이라고 하는데 저만 헨드릭님이라고 부르는 건 딱딱하잖아요? 게다가 임시라고는 하지만 지금 같이 활동하고 있고요! 동료처럼!”
프로필을 봤을 때만 해도 이미 김칫굿을 사발 째로 들이켰었다. 근데 사실 아까 전 셰이의 발작을 직접경험하고 난 후, 조금은 김칫국을 뱉어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스킬까지 보고 난 이후, 지금은?
‘컨트롤 하는 방법을 익히든지, 아니면 내 멘탈을 단련하든지 하자.’
던전 클리어가 최우선인데, 이런 용사를 놓칠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대장님! 맞죠? 저, 지금은 동료잖아요? 그쵸?”
[관계도]
셰이 : 0
그래. ‘지금은’ 동료지.
나는 너무 안달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의식적으로 유지했던 선을 살짝 뒤로 물리기로 했다. 직감이 왔다. 제1차 분수령이 카야의 멘탈붕괴를 막는 것이었다면, 여기가 제2차 분수령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셰이의 용사대 합류에 큰 영향이 끼칠 것 같았다. 저래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보여도, 아예 대가리가 텅텅 비거나 눈치가 소멸한 사람 같진 않았으니까.
이런 비지니스적인 미소를 짓는 게 참 어색했지만, 던전 클리어를 위해서 이 정도도 못하겠어?
헤프게 웃든, 가끔씩 홰까닥해서 섬뜩할 정도로 폭언을 퍼붓고는 해리성 인격장애 환자처럼 자기만 기억을 못해서 분위기가 싸해지든,부담스러울 정도로 텐션이 높든, 소름이 돋을정도로 이단에게 광기어린 모습을 보이든.
그 정도 천재라면, 그럴 수 있지.
우리 셰이. 하고 싶은 거 다 해…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셰이 넌 이제부터 유스티티아 교단에서내놓은 섬뜩한 천재 셰이가 아닌, 나만의 천재 셰이가 되어주어야겠어.
“그럼요, 셰이님.”
카야가 믿을 수 없는 걸 보는 것처럼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는 걸 보니 쿡쿡 쑤시긴 하지만.
“아니, 셰이. 나도 잘 부탁해.”
“네! 대장님!”
역시.
셰이의 눈이 커지더니 척-하고 짐짓장난스런 경례를 올렸지만, 계속 주의 깊게 주시했던 난 놓치지 않았다. 눈이 커지기 전, 순간이나마 그녀의 표정이 정색에 가까운 무표정으로 변했다는 것을.
[유진 멘탈리티 –2]
시발. 소름 돋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여자냐. 뱀인가? 여운가?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사람의 멘탈을갉아먹는구나. 다른 의미에서 요물이다 요물.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셰이의 경례에 답해주었다.
카야, 네 한숨이 굉장히 무겁게 들린다….
**
전투와 함정은 한동안 없었다. 적어도 우리가 파괴했던 제단이 있었던 곳까지는 쭉.
‘적어도 여긴 무작정 리스폰 되는 곳은 아니라는 거야.’
일단은 본 던전이 아니라는 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본 던전에서는 인간처럼 생긴것도 다 괴물 그 자체였으니까. 물론, 여기서 나타났던 인간(이단)들이 괴물이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시스템적인 차이였다.
내겐 어차피 다 조져야하는 괴물인 건 차이 없었다.
“흐음~”
셰이는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쭉, 제단이 있었던 곳을 맴돌며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발끝으로 땅을 툭툭 건들며 흙을 짓이기다가도 갑자기 쪼그려앉아 흙을 한 움큼 집더니 냄새를 킁킁 맡기도 하다가… 갑자기 혀끝을 내밀어 흙에 살짝 댈 때는 식겁했다.
“셰이! 뭐하는 거야!”
“아, 퉷퉤. 대장님?”
“다른 건 몰라도 흙은 왜 먹는 거야?!”
“아, 먹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헷.”
푸엣 퓃- 그 이후로도 여러 번 입에서 흙을 뱉어낸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맛은 없었지만 먹은 보람은 있었어요. 흔적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대충 감이 왔거든요. 이 음식물쓰레기만도못한구정물씨발쓰레기같은이단새끼들이어디벌레처럼숨어있는지.”
“…어?”
“으음, 아마도 이쪽으로 가면 될 거 같은데… 아차! 대장님한테 물어봐야지?”
…식은땀이 흘렀다. 태연하게 어린애가 장난치다 흙 좀 먹은 것처럼 흙이 맛이 없었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개정색하면서 이단의 흔적을 찾았다고 말하며 뛰쳐나가려다가 누가 갑자기 태클이라도 건듯 급정거하더니 고개를 홱 돌려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대장님 소릴 하며 내 분부를 기다린다.
컨트롤을 해보겠다고 다짐한 게 얼마 전인데, 종잡을 수가 없었다. 카야를 슬쩍 보니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다른 곳을 보는 척했다. 카야 너마저….
다행히 한 번 겪어봐서 그런가, 아니면 전보다는 강도가 약해서 그런가 멘탈리티가 까였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그와 별개로 심장이 벌렁벌렁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만약 그녀의 감이라는 게 들어맞는다면, 우린 꽤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터였다.
“확실해?”
“네! 우움, 이런 말제가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마안! 지금까지 제 추적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거든요!”
“그래. 믿음직하네.”
“헤헷.”
“그럼 앞장서줄 수 있을까? 여기 즈음부턴 우리도 이제 미지의 곳이라, 이제부턴 추적 가능한 네가 선두에 서줬으면 좋겠는데.”
“네! 맡겨주세요!”
터엉-
배배 꼬인 놈이 들으면 ‘이제부턴 모르는 곳이니 나 대신 네가 몸빵해라.’라고 들을 수도 있는 내 부탁을 셰이는 제 중갑을 두들기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수락했다.
뭔가 듬직하긴 했는데, 카야에게서 느껴졌던 듬직함과는 5억 광년 정도 거리가 떨어져있었다….
“흠흐흠~ 흠흐흠~ 흠~ 흠~ 흐음~”
‘정신 나갈 거 같애. 정신 나갈 거 같애. 정신 나갈 거 같애…!’
소풍이라도 온 듯 경쾌한 발걸음과 콧노래. 그리고 도저히 추적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조심성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태도.
잔뜩 긴장하고 주위를 계속 살피는 건 자연스럽게 나와 카야의 몫으로 돌아왔고,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근데 왜 저 미친년을 왜 제지하지 못하는가.
‘지도에 그려진 길보다 더 빠른 길을 정확히 파악해서 찾아가는데, 무슨명분으로 말려?’
설령 길이 어긋나더라도 갑자기 그녀에게 이단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이곳 지도를 꺼내는 것도 분위기 이상해지는 일이고.
길은 맞는 것 같으니 따라는 가는데, 저 미친년의 콧노래 때문에 없던 으스스함과 무서움이 생기고 있었다.
“저래서, 용사대에서 죄다 쫓겨난 거구나….”
“….”
오죽하면 과묵한 카야마저 이런 말을 할 지경이었으니.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듯, 고생하는 게 있으면 보답이 온다고 하던가.
지도에 나있는 정석 루트로 갔다면 내 느낌 상 적어도 세네 번의 전투는 치렀어야 할 구간을, 단 한 번의 전투도 치르지 않고 두 번째 제단까지 도착하게 된 것이다.
“카야. 셰이. 준비해.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예, 대장.”
대답이 없던 셰이는 이미 클레이모어로 보이는 양손검을 들고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불과 10초 전 모습과 갭이 엄청났다.
프스스스-
조금 더 다가가자, 첫 번째 제단에서처럼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허나 이번엔 그 형체가 하나였다.
“기다렸다.”
[정예 괴물, <제단의 수호기사>와조우했습니다!]
“참람된 위선자들이여.”
신장이 최소 2m가 넘는, 외양으로만 보면 데스나이트가 떠오를법한 거구의 흑기사가 우릴 오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