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이단과 금단 사이(2) (21/218)



〈 21화 〉이단과 금단 사이(2)

“안녕하세요~?”

“…세스티아 자매님?”

“딱 알맞은 때에 다시 오셨어요, 카야 자매님. 여기 앉으세요.”

다시 의뢰주를 만나러  헨드릭과 갈라져 다시 수도원에 찾아간 카야. 그녀는 세스티아의 옆자리에서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차를 홀짝이는 금발의 여자를 보고 직감했다.

협력자.

어떻게, 그 사이에 바로 이야기가  건지. 생각보다 두 교단 사이가 친밀한 건가, 아니면 당장 보이는 협력자가 저 여자 한 명뿐이니….

“카야 자매님. 이쪽은 유스티티아 교단에서 정의의 길을 걷고 있는 성전사 셰이님이에요. 셰이님. 이쪽은  교단에서 자애의 길을 걷다 얼마 전 한 용사대에 합류한 카야 자매님이에요.”

“와~ 엄청 예쁘신 수녀님이세요! 이름도, 얼굴도요!”

“아, 음. 고, 고맙습니다.”

셰이라는 이름의 성전사는 굉장히 활기차고 밝고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 같았다. 카야 자신과는 극과 극이라고 할 정도로. 셰이가 웃자 방의 분위기도 활짝 핀 것 같았다. 예쁘장한 얼굴 밑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중갑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어딘가 귀족 아가씨가 아닐까 싶을정도였다.

“카야님은 혹시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나이요?”

“네!”

“음, 그건 딱히 세보지 않아서….”

카야는  짧은 사이에 셰이가 부담스러워졌다. 태생적으로 다른 부류의 사람 같았다. 자신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악착같이 뿌리내린 잡초였다면, 같은 여자가 봐도 아름다운 성전사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애지중지 귀한 취급을 받으며 축복 속에서 피어난 꽃 같이 보였다.

본지 얼마나 됐다고, 너무 친근하게 구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대장은, 헨드릭은 이런 자신을 뭐라 하지도않고 존중해주었는데.

물론, 셰이가 잘못한 건 딱히 없었고 카야도 그걸 겉으로 티내진 않았다.

“하프엘프이신  보니까, 저보다는 언니이실 거 같은데.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예?”

“같은 교단이 아니니 자매님이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구, 그렇다고 계속 카야님이라고 부르기도 좀 딱딱하지 않아요?”

잠깐 대장을 떠올린 사이에 만난 지 5분도 안 된 낯선 여자에게 언니라고 불리고 있었다.

‘나… 그렇게 나이 안 많은데.’

슬쩍 세스티아 쪽을 바라봤지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언제 이렇게 가까이 붙은 거지?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갈 준비가 되었는데, 언니는요?”

“저희도 준비는 되었지만, 협력자가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으흥~ 좋은  좋은 거 아닐까요? 마침 심심하기도 했고, 좋은 일이기도 하고! 또 이렇게 예쁜 언니도 알게 됐으니 이게 얼마나 이득이에요?!”

“아아… 으음.”

곤란하다. 페이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최근 헨드릭을 제외하면 친구도, 형제자매도,  누구와도 친하게 지낸 적 없고 다정한 대화도 나눠본 적 없던 카야에게는 이 순간 자체가 너무 벅찼다.

“자아, 셰이님. 카야 자매님은 낯을 좀 가리시는 편이니까 너무 그렇게 재촉하시면 당황할 거예요.”

“앗, 미안해요! 그런 줄도 모르고….”

활짝 웃던 꽃이 시무룩 고개를 숙이자 순식간에 처연한 모습이 되었다. 카야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괘, 괜찮습니다. 조금 당황했을 뿐이니까.”

“정말요?”

“예. 우선 개별적 의뢰로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시급히 협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야가 고개를 숙이자 셰이도 꾸벅 고개를 숙이며 환하게 웃었다. 남자가 보면 100명 중 98명 정도는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운 웃음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네! 언니! 최선을 다해서 씹어먹을 이단씨발새끼들을 썰어봐요!”

“….”

“언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

- 우선은 정찰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유스티티아 교단에서도 굳이 셰이님 한 명을 보낸 건, 일단 직접 눈으로 보고 파악하라는 뜻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2층에 위치한 방으로향하는 계단, 그 즈음에서 카야는 세스티아가 셰이 몰래 속삭였던 말을 떠올렸다.

- 셰이님은 수습 성전사들 중에서는 최고에 가까운 실력을 지녔다고 해요. 다만….

실력 좋다. 신실하기도 하다. 외모도 뛰어나다. 성격도 좋다. 사교성도 좋다.

다만, 가끔씩.

세스티아의 말에 따르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셰이 아닌 셰이’가 튀어나올 때마다 굉장히 버겁다는 것.

그것 때문에 쉽사리 단체 임무를 맡지도 못하고, 용사대도 여러 번 퇴짜 맞은 모양이었다.

“언니? 뭐해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끼익-

상념을 지우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의자에 아슬아슬한 자세로 걸터앉아 펜을 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헨드릭의 모습이 보였다.

“대장.”

“아, 카야. 왔….”

“안녕하세요!”

우당탕-!

“어억!”

“대장!”

“헤엑, 괜찮으세요?”

 처음보는 사람한테 하는 인사가 저렇게 요란해? 깜짝 놀랐잖아 씨발.

상당히 임팩트 있는 첫 만남이었다.

**

[셰이Shae]

종족/성별 : 인간 여성
클래스 : 성전사(Crusader)
레벨 : 1
최대체력 : 17(11+4+2)
공격력 : 2(1+1)~8(7+1)
방어력 : 4(1+2+1)
속도 : 4(1+1)
기사회생/각성 : 9(8+1)%
정찰확률 : 15(14+1)%
긍정적 특징 : 천재(모든 수치+10%, 최소 1)
부정적 특징 : 발작(낮은 확률로 멘탈리티 하락)


‘홀-리.’

용사지원소에서 첫 뽑기 했던 때도아니고, 당장 눈앞에서 생긋 웃으며 뚫어지게 쳐다보는 여자한테 내 동료가 되어라 같은 말도 안 했는데 이게  보이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저 빛나는 프로필 앞에,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존나 헤프게 웃어서 머리가 어떻게 된 여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무조건 잡아야 한다!’

난이도 불문. 성별 불문. 종족 불문. 클래스 불문.

<더  테러>를 3천 시간 넘게 플레이하면서 용사들에게 붙는 수많은 긍정적, 부정적 특징들을 봐왔지만 ‘천재’가 붙은 용사는 정말 드물었다.

절대 후천적으로 붙는 특징도 아닌데다가, 초반에도 후반에도 꾸준히 도움 되는 ‘아무 조건 없이 모든 수치 10% 추가’라는 특징. 웬만치 쓰레기 같이 느껴지는 용사라도 천재 특성이 붙었다 하면 일단은 키워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천재’는 S급, 1티어 특성이었다.

당장 나랑 카야만 해도 1-2에서 1데미지가 모자라 용사대 붕괴 직전까지 갔던  생각하면….

어쨌든 이건 나뿐만 아니라 절대다수의 더 롱 테러 게이머들도 인정하는 바였다.

거기에 부정적 특징인 ‘발작’ 하나랑 여성이어서 3대 피지컬 능력치인 체/공/방이 역보정 붙은 걸 제외하면 큰 흠도 없었다.

‘아니지. 다른 탱커였으면 몰라도 성전사인  생각하면, 여자인 게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

프로필에는 안 보이는 히든 스탯이지만, 치유력 보정은 남자가 0, 여자가 +2였다. 그렇기에 잘 키운 여자 성전사는‘성퀴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유지력을 바탕으로한 끈질긴 탱킹이 가능했다.

“너무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부끄러워요!”

“아,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잘생기셨으니까!”

…카야, 이 여자 뭐야?

 여자, 뭔가 좀 부담스러운데.

슬쩍 카야를 바라보며 눈짓으로 물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주먹을 쥐고 여자의 뒤통수를 지긋이 노려보고 있었다.

‘넌  왜?’

 여자, 지구에서 태어났다면 연예인이나 대기업 방송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텐션이 장난이 아니었다.

 같이 하찮은 방구석 게이머가 마주하기엔, 너무나 사는 세계가 다른  같은….

그래! 인싸. 씹인싸의 혼.

셰이라는  여자에겐 나와 상극의 혼이 담겨져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파악한 걸로는.

“그래도 포기할  없지.”

“네? 뭐를요?”

“아뇨. 그나저나 준비는 다 됐다고 하셨는데, 혹시 던전에 들어가신 적은 있습니까?”

“아니요? 용사대에 몇 번 속한 적은 있었는데,어쩌다보니 다시 혼자가 됐지 뭐예요? 헤헷.”

“예? 이유가 뭐죠?”

“우움, 글쎄요~?”

‘얘 봐라…?’

셰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사람 대하는 잘 모르지만 수많은 ‘게임 캐릭터’들은 많이 봐왔던 게이머의 감각이,  여자를 영입하고자 하는 내 생각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천연 트러블 메이커!’

의도하진 않은 행동으로 분란이나 사고를 일으키고, 의도하지 않았기에 대놓고 탓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따지는 사람만 죄인이 될 같은… 그런 여러모로 골치 아픈 타입!

게임을 플레이 하다보면 키우던 용사가 ‘호기심이 지나치게 왕성함’이나 ‘도벽질’, ‘표리부동’ 등 부정적 특징이 여러  중복되는 경우도 있었다. 평소엔 발동 확률도 그렇게 높지 않고 발동 되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건 아니라서 감수하고 플레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가끔씩 저런 부정적 특징들이 중복되서 발동되면 그것만큼 골 때릴 때가 없었다.

그런 쎄한 느낌이, 하필이면 100명 중에 1명 나타날까 말까한천재에게서 느껴지고 있다는 게 통탄할 일이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을까?’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게임과는 달리 내가 직접 동료와 대화를 하며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

셰이가 용사대 합류는커녕 아직 의뢰조차 같이 나가지 않은 상황에서 뭔 김칫국을 대야째로 퍼마시고 있는가 싶겠지만, 셰이는 그 정도 가치를 지닌 성전사였다.


“…뭐, 일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어서 이야기 해보죠. 물품들은 챙기셨습니까?”

“네! 텐트랑 이불이랑 여벌 옷이랑 갑옷 닦을 걸레랑, 숫돌 같은 것도 전부 챙겨왔어요!”

“식량이나 약초, 해독약, 붕대, 성수, 마법기름 같은 건?”

“우움….”

셰이는 볼을 긁적이며 슬쩍 눈을 피했다.

“헤헤.”

아니 이년이?

아무리 던전은  들어가봤다지만, 용사대에 몇  속했다면 기본 지식은 있었을 텐데?

“…혹시 돈은 얼마나 가지고 계십니까?”

“없어요!”

이 뭐 병….

참자, 참자, 참자.

천재다.

뭔가 모자라 보이지만, 아 어쨌든 천재 특성 보유자라고!

“대장. 일단은 저희가 셰이님 몫까지 산 다음, 의뢰가 끝나고 추후 유스티티아 교단에 청구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 그런 방법이! 카야 언니는 얼굴도 예쁜데 머리도 똑똑하네요? 부러워라~”

“….”

셰이의 텐션 높은 감탄사는 적당히 흘려들었다. 만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상대법을 어느 정도 깨우친  같았다.

“좋은 생각이야, 카야. 시간을 보면 지금 출발해도 늦지 않을 거 같은데, 어때?”

“대장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저도요!”

나는 상점에서 셰이 몫의 필수품들을 구매한 후, 둘을 데리고 다시 한  인던 <이단과 금단 사이>에 발을 디뎠다.

[인스턴트 던전 <이단과 금단 사이>에 입장했습니다.]
[인스턴트 던전 내에선 경험치 획득량이 감소합니다.]
[인스턴트 던전에서는 후퇴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본 메시지지만 바뀐 건 없었다. 인던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도 그렇고 구조도 그랬다.

“와! 정말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겠어요! 완전 우중충하고 으스스한데요?”

셰이가 들뜬 어조로 물었지만 나랑 카야가 말없이 걷기만 하자 풀 죽었는지 알아서 입을 닥쳐주었다.

“대장.”

“그래.”

다만, 흔적은 남아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혈흔과  주위를 살폈다. 시체는 사라져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 괴물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이단 놈들이 시체를 옮겨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

나랑 카야가 의견을 주고받자 한동안 닥치고 있던 셰이가 우리 가운데 사이로 불쑥 얼굴을 내밀더니 환하게 웃으며 외쳤다.

“혹시 추적이 필요하시다면, 저! 셰이에게 맡겨주세요!”

“…셰이님?”

“제 눈! 제 코! 그리고  촉!”

여자 아이돌이 귀여운 척하는 것도 아니고, 검지로 제 눈과 코와 쌩뚱맞게 가슴을 차례대로 가리킨 셰이.

“이 모든 것은 개씨발검으로배때지를갈라내장을끄집어내목을매달아불로태워죽여도시원찮을세상의곰팡이만도못한씨발이단새끼들을 위한 거니까요!”

“….”

“헤헤.”

[유진 멘탈리티 –5]
[카야 멘탈리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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