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이단과 금단 사이(1) (20/218)



〈 20화 〉이단과 금단 사이(1)

세상에는 아는 것 자체에 대한 굉장히 유명하면서도 모순적인 두 격언이 존재했다.

그건 바로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 이 두 격언이었다. 그리고 이 두 격언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옳은 말임이 증명되었다.

어떻게 모순이 다 옳게 받아들여질 수 있냐고?

그거야 당연히 어떨 땐 아는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이고, 어떨 땐 모르고 지나가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는 말이지 않겠는가.

문제는 그걸 시기적절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였다.

의뢰주 아저씨가 잔뜩 무게 잡으며 경고할 정도의 비밀을 듣는 것이 이득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게 이득인지. 내 판단에 달린 것이었다.

‘들어 말어?’

어제 카야와 하나가  때와는 다른 의미에서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 들어야지! 저 아저씨가 저렇게 경고할 정도의 비밀이면 분명 존나 중요한 비밀이라는  아냐. 실력 있는 대장장이와 이단이 엮어있을 수 있는 비밀. 궁금하지 않아? 당장 묶일 순 있어도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앞으로있을 던전행이 더 든든해지겠지!

- 미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올가미야. 당장의 보상이 큰 떡으로 보여도, 잘못 휘말리면 그대로 끝이라고. 던전에서 뒤지는 것도 아니고, 던전 밖에서 억울하게 이단으로 엮여서 마녀 엔딩 나고 싶어?

어차피 카야한테도 한두 번은  의뢰하겠다고 했잖아? 신실한 교단의 수녀가 함께하는데 이단으로 몰릴 게 뭐가 있어? 이단을 발견해서 정화하러 가는 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일 아냐. 게다가 정 걱정이면  번 갔다 오고 나서 가지고 있는 지도나 책 둘 중에 하나만 건네주고 털면 되는 일이고.

- 씨-발 아무튼  됨.


“그때처럼 고민하고 있구만. 하지만 이번엔  고민을 덜어주고 싶어도, 줄  있는 게 없어.”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강요하진 않겠어. 자네 말대로 상호 거래는 이미 한 차례 확실히 이루어졌으니 말이야.”

카야한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대장의 뜻대로라며 내게 맡길까, 아니면 이 의뢰를 맡기 전처럼 의욕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이단을 때려잡으러 갈까.

“일단은 제 질문을  들은 걸로 해주십시오.”

“…흐음. 왠지 내 의뢰는 아직 포기 안 한 것처럼 들리는데.”

“예. 아직은.”

확실해지기 전엔 섣불리 나서지 말 것. 확실해졌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다시 한 번 확인할 것.

고난도에서 노 데스 플레이를 도전할 때 항상 유지해야 하는 마음가짐 원투였다.

나는 다시  번  마음가짐을 되새기고는 일단 의뢰주 아저씨에게 살짝 목례한 뒤 여관으로 돌아갔다.

“오셨습니까, 대장.”

“어, 카야. 몸은, 그, 괜찮고?”

“예. 이제 완전히 괜찮습니다.”

갔다 오는데 얼마 안 걸린 거 같은데 카야는 그새회복한 모양이었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합의 하에 했다지만 카야 혼자 고통을 겪는 거 때문에 마음이 좀 그랬는데.

“아, 카야. 상의할 게 있어.”
“아, 대장. 상의할 게 있습니다.”

“…어?”

“대장 먼저 말씀하십시오.”

나랑 카야의 말이 겹쳤다. 말의 내용도. 난 그녀에게 양보했으나 그녀가 한사코 대장 먼저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기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의뢰주 아저씨랑 있었던 이야긴데….”

많은 대화를 하고  건 아니었기에 별 내용은 없었다.

‘의뢰주 아저씨의 비밀’.

요점은 이거 하나였다.

“난 일단  파고들진 않았어. 네 생각도 듣고 싶어서.”

“음….”

카야는 생각 외로 즉답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가지 대답에서 모두 비켜난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제3의 대답을 꺼냈다.

“제가 상의하고 싶은 것과 맞물리게 됐습니다. 아마, 이 의뢰에 교단이 높은 확률로 참여할지도 모릅니다.”

“…뭐? 교단?”

갑자기 교단이 왜?

어? 뭐야. 어떻게 흘러가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카야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조금 차분하게 했다.

“대장이 의뢰주에게 갔다 오시는 동안, 저 또한 수도원에 갔다 왔습니다.”

“수도원에?”

“예.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까지는 아니지만, 교단에 속한 수녀들은 던전이나 그에준하는 곳에서 신성력이나 무력을 사용할 경우 가장 가까운 지부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도 저희가 맡은 의뢰에 대한 보고를 하기 위해 저번과 마찬가지로 수도원에 찾아갔습니다만….”

카야 또한 그녀가 수도원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여러 교단들이 있는 세일럼 내에서 이단에 대한 의뢰가 버젓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단들이 나서지 않았던것, 그러나 이번엔 그 의뢰를 직접 갔다 온 카야의 말의 믿고 교단에서 힘을 쓸 것이라는 것, 하지만 당장 라엘라 교단의 세일럼 지부에선 가용 전력이 없으니 바로 옆의 친하게 지내는 유스티티아 교단에서 성전사를 빌려올 확률이 높다는 것.

“내가 정리한 게 맞아?”

“예.”

“너도 나랑 상의해봐야 하니까 당장 협조해달라는 말은 안 했다는 거고.”

“예. 대장도 아닌 제가 독단으로 결정할 일이 아닌데다가, 그….”

카야는 잠시 입을 오물거리더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교단이 나서기 전엔, 대장과 저, 둘이서만 맡았던 의뢰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 의뢰는 대장과 저에게 최우선적인 결정권이 있다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흐뭇함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카야는 내가 대답이 없자 고갤 돌려  보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대, 대장. 그러니까, 방금 말은.”

“그래. 카야가 용사대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잘 알겠어. 그치?”

“…예.”

카야,  방금 순간적이지만 입술 삐죽인 거. 내 심장에 치명타 먹였다.

크흠-

“카야,  말대로라면 우리가 가졌던 증거는 아예 교단에 넘겨버리는 게 좋을까?”

“저는 그쪽 전문이 아니라서  모르지만, 교단에는 이단 그 자체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있는 자매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뭘 얻을 수 있느냐를 제외하고 단순히 이단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로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만?”

“대장은, 혹여나 우리가  의뢰를 수행한  때문에 그릇된 족쇄가 묶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그치?”

“그렇다면, 대장의 고민과 제 고민을 합쳐놓고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올  같습니다.”

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그런 의심을 받지 않게, 교단의 뜻대로 유스티티아에서 파견 나올 분과 함께 의뢰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저희 용사대 소속이 아닌 교단 사람이 있으면 객관성도 확보할수 있고,  당장 우리 입장에서도 일시적이지만 전력이 늘어나니 안정적으로 의뢰를 다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굳이 의뢰주 아저씨의 비밀을 캐지 않고.”

“예. 그렇게 하면 저희는 안전과 보수를 같이 챙길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교단의 합류. 이건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리고 아까 분명 카야가 성전사가 올 확률이 높다고 했지.’

가뜩이나 탱커를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그것도 힐러와 딜러를 짬뽕해놓은 전투수녀인 카야를 영입한 시점에서, 용사대가 구상할 수 있는 최선의 조합 중 1열 탱커는 성전사로 강제된 상황이었다.

전투 수녀 1힐 체제는 유지력이 후달려서 2구역에서 말라죽을 게 뻔했고, 그렇다고 나머지 한 자리에 퓨어 힐러를 넣으면 딜링 능력이 후달려서 2구역까지는 어떻게 꾸역꾸역 버틸 가능성이 있었지만 3구역 이상에서는 뚫릴 가능성이 8할 이상이었다.

방패를 단단히 올려 적의 공격을 막는 것보다, 공격의 근원을 더 빨리 처단하는 게 덜 맞는 방법이었으니까. 적어도 고난도에서는.

‘이번 인던행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2보 전진이 아니라 3보 전진이 될  있을지도 모르겠어.’

만약 유스티티아 교단에서 파견 나온 성전사가 별 하자 없이 카야 정도만 되어도. 그리고 어떻게 해서  용사대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쓸만한 성전사까지 끼면, 1구역 클리어는 훨씬 수월해진다.’

“그래. 카야,   대로 해보자. 근데 한 가지 걸리는  있어.”

“그게 무엇입니까?”

“과연 의뢰주 아저씨가 어떤 반응을 보일 거냐는거야. 만약 그 아저씨가 교단의 협조를 받고 싶었으면 진즉 협조 요청을 했을 거야. 근데 그러지 않았어. 의뢰소에 종종 걸리는 이단 관련한 의뢰를 대하는 교단의 태도를 파악하고, 이렇게 사비를 털어 자신만의 의뢰를 내건 것만 해도 교단과 한 뜻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저는…?”

“그때의 넌 교단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용사대에 속한 용사 개인이었니까. 근데 정식으로 ‘이단 색출’을 위해 교단에서 파견된 수녀라면? 그것도 나랑 너 말고 제3자까지 끼어들면?”

“…필시 무언가 다른 반응이나 행동을 벌일 수도 있다고 보십니까?”

“어. 만약 그 아저씨가 뭔가 찔리는 게 있다면, 우리가 유스티티아 교단에서 나올 협력자와 함께 찾아가기 전에 꽁무니를 뺄지도 모르지.”

“상당히 복잡합니다….”

카야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렇다면, 차라리 대장이 미리 떠보는 건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면 시간도 있으니 말입니다.”

“정면돌파라.”

잠시 고민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빨리 해결하는 게 낫겠지. 좀 이따 다시 이야기 하자고.”

“예, 대장.”

나랑 카야는 다시 한 번 각자의 장소로 흩어졌다.

**


“안 됩니까?”

프후우-

의뢰주 아저씨는 한숨을 거하게 쉬었다.

“자네는 날 곤란하게 하는구만. 이럴  알았으면 거래하지 않는 건데.”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의도는 아니었어도 결과는 그렇다는 이야기지. 엉덩이 무거운 교단이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아저씨는 한참 수염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돌연 가득  있던 맥주잔을 원샷에 해치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자네의 대가리를 전력으로 후려치고 싶어.”

“예?”

“그리고 자네에게 의뢰를 맡긴 내 대가리도 말이야. 그렇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판단을 내려야 할 때지. 이런 이야기까지 굳이 와서 한다는 건,  의뢰를 계속하겠다는 것이겠고, 그래서 자네들이 의뢰를 끝내고 돌아오면 어떻게  장소를 알고 있었는지, 뭘 노리고 있었는지에 대해 교단과지극히 불유쾌한 사적 면담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말 따윈 집어치워. 애초에 그게 무서워서  사정을 캐물은 거 아닌가?”

쩝.

유구무언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아저씨, 괜히 길드에 안 나가고 땡땡이치는 게 아니라는 것과 우리와 조우했던 이단과 무언가 관계가 있다는 것 혹은 있을 예정이라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반응이 나올 리 없었다. 찔리는 게 있는 것이겠지. 그나저나 아무리 교단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해도, 굉장히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뭘 원하는지,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것 기억하나.”

“뭐 말입니까?”

“기록적인 것은없냐고 물었던 것.”

“아. 예. 설마?”

“자네가 술집을 나가고 나면 바로 거처를 바꿀 거야. 그리고 만약, 기록적인 무언가를 찾아서 나한테 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 지금 이 자리로 찾아오게. 찾아오면 알게 될 거야.”

“교단 몰래 말이죠.”

의뢰주 아저씨는 대답 대신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마치 날벌레 쫓는 시늉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다행히 생각보다 차분하고 이성적인 의뢰주 아저씨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하는 일은 없었지만, 아쉬울 거 하나 없을 대장장이가 뭐 때문에 이단과 엮였는지 조금은 신경 쓰였다.

하지만 여관에 가까워질수록 빠르게 잊혀졌다.

이미 내 머릿속은 던전 클리어와 관련된 일로 가득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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