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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화 〉준비(3) (17/218)



〈 17화 〉준비(3)

꿀꺽-

이놈의 침은 방금 전에 삼켰는데도 나왔다.카야의 날숨과 머리카락, 그리고 체향이 날 파블로프의 개로 만들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파블로프의 개는 여러 번 실험하기로 했잖아.’

“그… 카야. 너무 가까운데.”

“…예.”

말하려고 입을 열면 내 입김도 카야의 얼굴에 닿을까봐 조심스레 말을 꺼냈지만, 어째 카야의 대답에 아쉬움이 묻어난 것 같았다. 이게 맞는 느낌인지, 아니면  망상인지 구별할수가 없었으니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네 운명이라는 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건데?”

“….”

한유진 패시브로 장착된 쫄보의 심정으로 물어보니, 카야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고갤 돌려 그녈 쳐다보니,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아냐. 대답하기 곤란하면 됐어. 이유는 알았으니까. 어. 네 말은 그러니까 내가 던전행을 계속하는 한, 너도 날 따라 던전행을 따라와준다는 거잖아? 그치?”

“….”

아니 기껏 자연스럽게 정리해줬는데 왜 대답이 없는 거야, 카야!

“어, 어쨌든 네가 뭘 잘못했다고 한진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서  잘못한 것도 없고, 또 난 널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네가 도저히 못 해먹겠다고 뛰쳐나가는 게 아니라면….”

“대장은  몸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어?”

누군가  뒤통수를 거세게 후려친 느낌이었다. 지금, 카야가 뭐라고  거지?

“대장은, 제 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어, 그, 미안. 내가 일부러 본 건 아니고.”

“어쩔 수 없었던 상황 말고, 대장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제 몸을 본 것에 대한.”

“그, 그야….”

뭔가 집요함이 느껴졌지만, 카야의 입에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는말이 나왔으니 이 정도는솔직하게말해도 되지 않을까?

“아름답고, 흥분되고… 잘 빠졌다?”

“….”

“음, 미안. 아무리 그래도 이런 말은  그렇지?”

“더럽지 않았습니까?”

“뭐?”

“천박하지 않았습니까?”

카야의 얼굴에선 부끄러움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진지했고… 그래, 필사적이었다.

내 말이,  생각이 거짓이 아니었으면 한다는 간절함이 담겨있는  같았다.

게다가 카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것을 넘어 자기혐오 성향까지 있는 것 같았다.

이거, 안 좋은데.

“아니, 네가 왜?”

“제가 대장에게 사과한 이유는, 제 몸을 대장에게 함부로 보여줘서입니다. 제 더러운 몸으로, 대장의 눈을 더렵히고 마음을 심란하게 했을 수 있으니까.”

 반대야. 눈이 더럽혀지긴커녕 정화됐다고.

아니, 마음이 다른 의미에서 심란했던  맞아. 근데, 몸이 더럽다느니 영문을 모르겠어.

내가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음에도 불구하고 카야의 자기혐오성 발언은 끝나지 않았다.

“대장은 착합니다. 이런  배려해서,  더럽지않다고 얘기해주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필요는 없습니다. 대장도, 절 보고 피하지 않았습니까.”

“…하?”

“욕실에서 나왔을 때, 눈을 감고 뒷걸음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던전행을 위해, 동료를 위해 저에 대한 거부감을 애써 감추시고 절 끝까지 배려하는 대장의 언행에 감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괜한 거짓으로 심적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얘가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그녀의 몸매가 주는 자극이 너무 강해 무심코 물러났던 행동이, 무언가 그녀의 트라우마를 또 건드리고 만 모양이었다.

더러워서 피한다. 하지만 던전행의 동료인 자신을 위해 상냥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카야는 주장은 그랬다.

후우.

이봐, 날 여기로 빠트린 인간인지 뭔지 모를 새끼야. 이런 것까지 포함해서 ‘최고난도’라고 말했어야 하지 않냐. 던전 난이도가 급상승한 것만으로도 양심은 이미 흔적도 사라진 거 같은데, 동료 문제까지 이렇게머리 아프게 하시겠다? 그래서 관계도라는  집어넣으셨고?

좋아. 좋다 이거야.

내가 비록 이쪽 방면엔 문외한이지만,  또한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한 스텝이라 생각하니이상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래.

첫 동료이자 2티어급은 되는 전투수녀인 그녀가 자칫 잘못해서 피학주의자나 자기혐오같은 구제 불가능한 특성이 떡하니 붙어버리는 걸 방지하는 작업이라 생각하자고.

그걸 방지하기 위해선.

- 자기 몸이 더럽다. 그래서 그걸 본 내가 피하고 있다.

그녀가 굳게 믿고 있는  가정을 근본부터 바꿀 필요가 있었다.

- 네 몸은 하나도 더럽지 않다. 오히려 네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그런 것이다.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자학적인 말 같으니, 그걸  자리에서 뒤집기 위해선 다소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겠지. 괜히 어물쩡대다가 형식적인 사과와 위로로 넘어간다면, 영영 그녀의 인식이 굳어져버릴 가능성이 컸다.

‘그건 안 되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름을 방치할  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역으로 카야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구도는 처음이어서 그런가, 그녀가 눈에 띄게 당황하는  보였다.

아무 말 없이 점점  얼굴을 가까이 하자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다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 대장.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괜히 꺼낸  때문에 마음에 부담감이 들었다면…!”

“이러는 게 뭔데.”

“예?”

카야가 멍청하게 되물었다.

“이러는 게 뭐냐고.”

“그… 그건.”

“이러시면 안 된다고 말했잖아. 뭐가  된다는 건데?”

나는 얼굴을더 가까이했다. 이젠 내 들숨이 그녀의 볼에 닿았다.그녀의 옆머리가 작게 흔들렸다.

“제, 제 몸은 더럽습니다! 괜히 제가 한  때문에 책임감이나 죄책감이나 반발심이 생기셔서 이러시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말하기 쪽팔리지만, 처음이거든.”

“헷?”

이상하면서도 웃긴 반응이었다. 그 덕분에 행동을 옮기면서도 내심 몸에 긴장이 한가득 차있었는데, 상당히 해소되었다.

“나, 너처럼 예쁜 여자를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고. 대화를 이렇게 많이  것도 처음이고. 같이 목숨 걸고 싸운 것도 처음이고. 그, 몸을 본 것도 처음이고. 다 처음이란 말이지.”

내 고백을 듣는 카야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하기야. 중세 비스무리한 배경인 이 세상에서 이 나이 먹도록 여자 경험 한 번 없다는 건, 믿기지가 않겠지. 얼굴도 멀쩡하고 사지도 멀쩡하게 생겨서 말이야. 물론내가 빙의한 헨드릭이란 놈이 과거에 여자를 얼마나 후렸는지, 아니면 나처럼 모태솔로였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더러워서 피했다? 아니.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예쁜 몸이라서. 더 보고 있으면 내가  버티고 실수할까봐 두려워서. 기본적으로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런 거였어. 계속 보고 있으면, 남자라서 어쩔 수 없이 흥분할까봐.  소중한 동룐데, 실수하면 안 되잖아.”

“소중한….”

하필 립서비스로 집어넣은 단어를 포착하는 카야. 뭐 됐어. 일단은 그녀의 인식을 바꾸는 것에 집중할 때였다.

“카야. 너만 괜찮다면, 네 말이 틀렸다는 걸 지금부터 증명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아악! 이 병신 같은 입은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내뱉고 나서도 아차 싶을 정도였으나, 카야는 눈동자만 봐도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끄덕.

그녀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난 떨리기 시작한 손을 움직이는 대신 일단 몸 전체로 그녀 위를 덮어버렸다. 카야가 숨 참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시, 시발 뭐냐 이 감촉은.’

내가 위에 입은 건 얇은 셔츠  장이 전부였고, 카야가 입은 것도 ‘진심’ 수녀복 하나 뿐인 것 같았다. 몸과 몸이 맞닿은 느낌이 너무나 생경했다.

옷이 있었지만, 맨살끼리 닿았나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감각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손은 아까전보다 더 떨고 있었다.

‘미쳤어. 시발 미쳤다고.’

이런 꼴을 보이니 경험 있는 녀석들이 동정보고 아다새끼라고 놀리는 것일까.

근데 어떡해.

옷 너머로 닿기만 했는데 너무 떨릴 정도로 흥분되고 좋은데.

하지만  흥분만 달래면, 자위하는 거나 뭐가 다르랴. 제1목적은 카야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오해를 뜯어고치는데 있었다.

나는 내 미숙함에서 비롯된 떨림까지 이용했다.

“카야.보여? 너무 긴장해서 그래.  같이 예쁜 여자랑 살짝 포옹한 것만으로도 흥분해서 미칠 것 같아서 그런다고.”

“….”

“이래도 증명이 안 돼?”

카야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정도로는 증명이  되겠지. 막말로 이를 악물고 더러움을 꾹 참느라 부들부들대는 걸로 보일 수도 있잖아?

그러니, 다음 단계로 가도 되겠지?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만졌다.

“…아.”

그녀의 볼은 말랑했다. 그리고 부드러웠다. 무심코 꼬집어보고 싶은 충동을 자제하며 다른 손도 올려 반대쪽 볼을 감쌌다. 얼굴이 작아서 그런지,  두 손만으로 거의 다 가려졌다.

“이래도?”

끄덕-

양손에 볼을 잡힌 상황에서도, 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맨 처음에 몸 전체를 뒤덮었는데, 양손으로 볼을 감싼  뭐 그리 대수겠어.

심호흡을 한 뒤, 그녀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입술과 입술이 살며시 접촉했다.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카야의 눈. 지진이 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리는 눈동자. 팔딱 치솟은 양쪽 귀. 완전히 멈춰버린 호흡.

세상이 멈춰버린 것만 같은 순간 속에서, 나는 카야의 부드러운 입술을 음미…하기는 개뿔 당장이라도 그녀의 수녀복을 벗기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만 했다.

결코 능숙하다 볼  없는, 키스라고 하기에도 뭣한 첫 키스.

“아아…!”

내 입술이 떨어지자 카야의 입에서 달콤한 탄성이 터졌다. 아래가 절로 불끈거리게 하는 목소리였다.

스읍- 후우-

그녀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이래도?”

“…예. 아직, 부족합니다.”

카야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무언가를 바라듯, 확신을 담은 어조로 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나는 다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이번엔 조금 더 용기를 내 혀를 꺼내봤다. 톡톡 혀끝으로 그녀의 굳게 닫힌 입술을 두드리자, 부끄러운  한동안 가만히 있던 입술은 조금씩 공간을 허락했다.

하지만  혀끝은 조금씩 나아갈 생각이 없었다.

한 번 문이 열리자 쑥 들어간  혀는 수줍게숨어있던 카야의 혀와 물리적으로 인사했다. 나도, 그녀도 그 말랑하면서 물컹하면서도 한없이 야릇한 감촉에 숨을 들이켰으나 혀를 깨물린다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카야의 혀는 수동적이었고 내 혀는 서툴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곳은 둘 만의 공간이었고, 둘이 좋으면 그만이었다.

내 혀는 조금씩 능숙해졌고, 카야의 혀는 조금씩 호응이 늘었다. 그동안 말하고 음식을 넘기는데만 쓰이던 부드러운 근육이, 서로의 타액을 윤활유 삼아 외설적으로 얽히고 또 얽혔다.

쮸우우웁…!

흥분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는 것도 까먹어서 그런지, 호흡곤란이 와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체감상 10분은 넘었을 것 같은  키스를 끝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양팔이  등을  안고 있었고 내  허벅지가 그녀의 하체를 억세게 구속하고 있었다.

한동안 방에는 우리 둘의 거친 숨소리만이 오고 갔다.

“…이래도?”

나는 말을 하면서도 이게 마지막 물음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내 눈빛과 표정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잔뜩 흥분한 개새끼같이 생기지 않았을까.

다행히, 카야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예. 아직, 부족합니다.”

그녀가 내 뒷머리를 잡아당기며 웃어보였다.

“제 말이 틀렸다는 걸, 완전히 틀렸다는 걸… 더 증명해주십시오.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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