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첫 인던(4) (13/218)



〈 13화 〉첫 인던(4)

“오늘은 근 한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날이었다. 더럽고 천하기 짝이 없는 잡종을 보기 전까지는. 바로 내 눈앞에 있는,  말이다. 너.”

“….”

“감히  눈에 뜨인  그 자체만으로도 네년을 벌해야 하는 게 옳으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장 기분이 좋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니. 내 자비를 베풀어, 네년이 지금 당장 사라지는 것으로 갈음을 하겠다.”

더러운 잡종. 천한 년.저주받을 자식.

고개를 숙인 채 앙상한 팔다리로 후다닥 어두운 쪽으로 달려가는 잿빛머리 하프엘프 소녀가 어렸을 적, 밥 먹는 것보다도  익숙하게 들었던 소리들이었다. 아니, 밥 먹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으니 숨 쉬는 것만큼 익숙하게 들었다고 해야 급이 맞았다.

‘아파….’

구타와 욕설은 기본이었다. 마을, 도시 사람들이 보면 시골이라 부를 촌의 사람들은 엘프와 인간의 혼혈인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극심했다.

원래 엘프와 인간들 사이는 나쁘지 않았으나, 인간들이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영토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서로 양보하는 게 조금씩 있어야 협상 같은 게 이루어질 텐데, 둘 다 입장이 강경하다보니 손바닥으로 후려칠 걸 주먹으로 후려치는 꼴이 반복되었다.

그러다보니 엘프는 인간을 대체적으로 혐오했다. 탐욕이 도를 넘은 짐승이라고 표현하는 족속들도 있었다. 그런 인식이 퍼져있는데, 인간과 통정한 것도 모자라 아이를 낳았다?

어떤 나라에서는 엘프와 인간들이 별 마찰 없이 공존하는 곳도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이곳에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

부모가 있을땐 그나마 부모가 모든 걸 막아내기도 했고, 또 최대한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에 조용히 살았기 때문에 소녀는 풍족하진 않지만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살았었다. ‘사고’가 발생하고 소녀의 부모가 죽기 전까지는.

살기 위해 마을에 홀로 내려온 이후로, 소녀의 삶은 송두리째 뒤집힌 것이었다.

‘배고파….’

극심한 배고픔에 뭐라도 얻어먹기 위해 돌아다녔을 뿐이었던 소녀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심한 말에 전신이 욱신거리는 것보다도 더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욕설과 폭언을 아무리 많이 당한다 해도… 아직도 소녀의 마음은 여렸다.

‘그래도, 오늘은 그 날이야.’

일주일에  번, 사제님과 수녀님이 오시는 날.

이날만큼은 폭력과 폭언 대신, 따뜻한 포옹과 따스한 위로를.

길고양이도 거를 쓰레기 대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부드러운 빵과 스프를.

주기적으로 열리는 예배가 없었다면, 소녀는 진즉 목숨이 끊어졌을지도 몰랐다. 자의든, 타의든.

소녀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을 통해 마을에 단 하나 있는예배당 뒤편에 도착했다. 예배당이라고 하기에 굉장히 민망할 정도로 작고 볼품없는 건물이었지만, 태어나서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는 소녀로서는 저 건물조차 크고 웅장하게 보였다.

“이런, 세상에. 또….”

“수, 수녀님….”

소녀를 발견한 수녀는 매주 새로운 상처를 달고 오는 소녀를 감싸안았다. 소녀가 더럽다거나, 냄새난다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수녀 또한 엘프였음에도 불구하고, 하프엘프인 소녀를 전혀 차별하지 않았다. 혐오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소녀가 그 점을 물은 적이 있었다. 수녀는 이렇게 답했었다.

여신님의 자애와 관용을 일부라도 흉내내고 싶고 또 받고 싶은 건, 엘프든 인간이든 그 밖의 종족이든 다르지 않아요. 여신님의 자애는 그 대상을 따로 제한하지 않으셨으니, 내가 당신을 혐오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수녀는 소녀의 상처를 보고는 양손을 마주잡고 기도를 올렸다. 곧 그녀의 몸에서 밝은 녹색 빛이 나와 소녀의 몸에 깃들었다. 그러자 소녀의 몸에 나있던 멍과 자잘한 상처들이 빠른 속도로 아물기 시작했다.

“내 수준이 미약해서 완벽하게 낫게 해주지 못해 미안해요.”

도리도리-

소녀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감동을 받았다. 이미 눈물이 찔끔 나왔을 정도였다.

수녀는 소녀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시간을 쪼개 소녀만을 위한 시간을 따로 가졌다.

짧다면 짧을 기도 시간이 끝나고.

잠시나마 행복했던 소녀는 곧 수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우울해졌다. 이 짧은 시간을 다시 맛보기 위해, 다시 한 번 일주일간의 지옥을 견뎌야 했다.

특히나 오늘은 수녀를 만나기 직전 겪었던 일 탓에  낙차가 더 심했고, 그랬기에 표정 변화가 극히 적은 소녀의 얼굴에 드러나고 말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도리도리

소녀는 망설이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수녀는 착하고좋은 사람이었지만, 결국은 외지인. 일주일에  번 오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었고, 수녀가 잘해주는 만큼 그녀가 없을 때 더 치명적인 독으로 돌아왔다. 그랬기에 소녀는 따뜻한 그녀의 품에 안기면서도 벽을 세웠다.

수녀 또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수녀는 입술을 깨물고는 품속에서 작은 여신상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꺼내 소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항상 곁에 머물러주겠다고 약속은 못 해요. 그렇지만, 내가 없어도 여신님께 기도를 드릴  있어요. 힘들 때가 있으면, 이 목걸이를 보면서 나를 떠올리며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여신님과 더 가까워질 날이 오게 될 거예요.”

소녀는 손바닥 위에 놓인 목걸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여신의 표정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눈앞의 수녀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 결국은 어떠한 것도 해결하지 못한.

짓고 있는 것 같은….

- 실체를 드러내기 겁내는 겁쟁이. 위선자. 받는 것에 비해 주는 건 하찮은 소인배 집단들.

….

소녀의 눈이 커졌다.

여신 모양의 조각은 어느새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자애로운 미소라고 생각했던 건, 입꼬리가 비정상적으로 찢어진 광대의 가면처럼 변해있었다.

사랑이 담긴 것 같은 눈에선, 찐득한 검붉은 색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수, 수녀님!’

소녀는 놀랐다. 수녀님이 이런 걸 줄리가 없는데…! 하지만 말문이 턱 막혔다.

- 정녕  여신이 너한테 자애와 관용을 베풀거라고 생각하나?

- 정말로  여신이 자애를 베풀었으면 애초에 네가 그런 불합리한 고난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며.

- 네가  잘못했다고 저 여신이 네게 관용을 베푼단 말인가. 오만하기 그지없는 발상이 아닌가? 넌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

‘그만, 그만! 너, 넌 누구야?’

소녀는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저항하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두려움을 느꼈지만, 그녀는 견딜 수 있었다. 수녀가 있었으니까.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수녀님…?”

“넌, 좋은 수녀가 될 수 있을 거야.”

수녀는 웃었다.

평소의 미소와는 달리, 수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소녀는 흠칫 떨었다.

**

[타락의 씨앗]
[제단의 수호자가 카야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2/14]

시커먼 게 카야의 몸에 닿을 때만 해도 존나 불안해 죽는 줄 알았는데, 꼴랑 1데미지짜리 공격이었나 보다.

‘대체뭐였던 거야? 괜히 사람 쫄리게 하고 있어.’

카야도 멀쩡히 서 있는  같고, 나는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전에 그녀를 돌아봤다.

“카야. 괜찮…?”

“아, 아아아….”

[용사의 마음가짐의 기저가 흔들립니다.]
[카야의 멘탈리티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카야 멘탈리티 –25]

‘미친!?’

 것 아닌 줄 알았던 검은색 덩어리는, 막대한 멘탈리티 공격이었다!

‘뭔 한 번에 멘탈리티가 25가 까이냐! 심지어 보스몹도 아닌데! 이 씨발, 이게 게임이냐!!!’

카야는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멘탈 공격 받으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외강내유 타입인 것 같다.

‘어디 구역, 어떤 괴물이든 멘탈 건드리는 몹은 특히 더 위험해.’

당장 내가 뭐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은 전투중이었다.

[제단의 수호자(술사)]
최대체력 : 77
공격력 : 6(5+1)~8(5+3)
방어력 : 5
속도 : 5(3+2)

[남은 체력 43/77]


이놈들의 기믹은 한 몬스터가 세 가지 타입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보였고, 방어력이 까인 대신 공격력과 속도가 상승했다. 거기에 까다로운 공격 패턴까지.

내가 기댈 건 방어력이 까였다는  밖에 없었다. 뚝배기를 빠개서 타입을 바꿔버리는 걸 노려야 할 것 같았다.

‘제발 치명타 치명타 제발 치명타 치명타 치명타-!’

평생 무교였고 여기서도 무교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기도했다.

[대가리 분쇄]
[믿을 수 없는 일격!]
[유진이 제단의 수호자에게 27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6/77]
[악을 가르는 단호한 일격에 용사들의 마음이 굳건해집니다.]
[유진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3]

[‘수배범 발견’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제단의 수호자의 몸에서 낙인이 사라집니다.]

----------!

“씨발 그렇지!”

카야의 치명타와 합치면 2연속 치명타가 터졌다. 운이 좋았다. 괴물 새끼는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움켜쥐며 알아들을  없는 괴성을 질러댔다. 검은색 무언가가 뭉텅이로 떨어져나가는 것 같기도 했다. 기절 때문에  턴 날린 거랑, 낙인이 사라진 건 아쉬웠지만 저놈 체력은 이제 20퍼 정도밖에 남았다. 저놈이 괴로워하는 사이, 나는 카야의 어깨를 짚었다.

“카야.”

“….”

“카야!”

“아. 대장.”

“정신 차려! 아직 전투 안 끝났어!”

“예, 예.”

쓰읍. 아까 멘탈 공격의 후유증이 상당한 것 같았다. 수치로는단순히 –25였지만, 그녀가 그 짧은 순간에 어떤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는지는 그녀만이 알았고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까인 멘탈은 휴식이나 특수 스킬밖에 답이 없었다.

나는 카야에게 공격을 내리려했지만….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할  없다- 용서할 수 없다아아아아아-!”

[제단의 수호자가 섬뜩한 공격의 자세를 취합니다.]
[치밀한 계략의 자세가 해제됩니다.]
[제단의 수호자의 속도가 2 증가합니다.]
[제단의 수호자의 공격력이 1~3 증가합니다.]
[제단의 수호자의 공격은 일정 확률로 용사의 방어력을 무시합니다.]

[제단의 수호자(공격)]
최대체력 : 77
공격력 : 7(5+2)~11(5+6)
방어력 : 5
속도 : 7(3+4)


“어, 어어…씨발…?”

3번째 타입은  생각보다 스펙이 뛰어났고.

“네놈들은 마땅히 죗값을 치르게 되리라----------!!!”

앞선 두 타입보다  흉흉하게 일렁이는 검은색 무언가가 뾰족한 창이 되어 순식간에 날아왔다.

[공포의 비와 절망의 피]

섬뜩한 이름의 기술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광역기였고….

[치명적인 일격!]
[제단의 수호자가 유진에게 1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15]
[용사들의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공포심에 잠식됩니다.]
[유진 멘탈리티 –9]
[카야 멘탈리티 –7]

어어, 하는 사이 코앞까지 다가온 흑색의 창이 수십 갈래의 창이 되어 내 몸과 카야의 몸에 우수수 꽂히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피하고 싶은 의지는, 부질없이 가로막혔다.

그리고….

[섬뜩한 공격의 특성 ‘관통’이 발동되었습니다.]
[카야의 방어력이 무시됩니다.]
[제단의 수호자가 카야에게 1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14]

내 입에서 울컥, 핏덩이가 나옴과 동시에 온몸에서 피가콸콸 흐르는 카야가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카야….”

“….”

“카야…!”

나, 아직 4 남았잖아….

카야도 아직, 1 남았잖아…!

근데, 왜 이렇게 아픈 거냐…?

 이렇게, 곧 죽을  같이 괴로운 거냐고…!

씨발 눈앞에 공격이 들어오는 걸 보고도 피하지 못하게  거면! 고통도 못 느끼게 할 것이지, 왜! 왜애애애!!!

“죗값을 치르리라-!”

“씨발 닥쳐!”

나는 낙인이고 뭐고 이 울분과 짜증과 고통을 모조리 저놈한테 풀어버리려 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턴이 아니었다.

“카야. 카야!!”

카야는 말없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발밑에 피로 된 웅덩이가 넓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피로 물든 철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뚜벅뚜벅, 천천히 괴물놈에게 다가갔다. 걸어갈수록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와 혈로가 그려졌다.

“내,  믿음을, 내 추억을, 그런 식으로 더럽히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카야는 철퇴를 치켜들었다.

“네놈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여신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원치 않는 고통을 주입하지 않으시니.”

그녀는 처음으로, 내 명령 없이 철퇴를 내리찍었다.

콰드드득-

“따스한 자애와 냉철한 관용이 있을 따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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