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1구역(3) (6/218)



〈 6화 〉1구역(3)

[대가리 분쇄]
[유진이 공포의 예언자에게 6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0/64]
[공포의 예언자가 죽었습니다.  번째 방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 : 6골드, 성수, 랜덤 스킬 스크롤, 해골 목걸이]

이겼다.

언제 어떻게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괴물놈은 육편이되어 있었고, 플레이 로그가 주르륵 떠 있었다.

치이익 소리를 내는 랜턴을 밝히자 잔뜩 어두워진 어둠이 흩어졌다.

[멘탈리티]
유진 : -51
카야 : -85

눈을 뜨고 괴물의 시체가 있는 것, 멘탈리티가 대폭 까였다는 걸 봤을  괴물놈의 그 스킬 때문이라는 걸 파악했지만…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게임에서는 나무지팡이를 치켜든 공포의 예언자가 뭐라고 지껄이면 캐릭터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러스트가 전부였는데.

꿈이었는지 실제였는지도 불분명하고, 온전히 기억나는지 아닌지도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건 내 정신상태와  상태 둘 다 엿 같다는 것이다.

“때리지말아주세요아파요죄송해요다시는안그럴게요제발뭐라도할테니한번만용서를아아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저같은쓰레기잡종이….”

나는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태아처럼 웅크린 채 머리를 감싸쥔 카야는, 완전히 맛이 가있었다.

아직 수치상으로는 아직 –85이지만, 게임상에선 –99까지 떨어져도 아무런 악영향이 없었지만.

그건 게임.

‘게임 플레이어를 게임 속 세상에 쳐박아놓고 게임 시스템을 이용하게 해놓고는,  이런 거는 게임처럼 처리하지 않는 거냐고!’

 우려대로 멘탈리티가 곧장 –100으로 추락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카야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거나 다름 없어보였다.

아니 잠깐.

-85일 때도 저런데, -100이 돼서 멘탈이 터진다면?

다른 의미로 전신에 오한이 들었다. 그리고 절실하게 느꼈다.

여기는 악명 높은 더 롱 테러의 던전이라고. 그것도 어려움 난이도와는 급이 다른 난이도라고.

단언컨대 그전까진 내가 아무리 업적따기나 개변태 플레이를 위해 일부러 막장 플레이를 많이 했어도, 지금과 같은 끔찍하고 절망적인 상황은 없었다.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리겜각이었다.

‘어림도 없지.’

[던전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공포가 용사들에게 내재된 공포심을 자극합니다.]
[유진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4]

이를 악물었다. 이 빌어먹을 던전은 몸과 마음을추스릴 시간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버티고 움직여야했다. 휴식처가 아닌 곳에서 버티는 건, 넓은 의미에서 자살행위였다.

“카야.”

“히이이이이익!”

계속 웅크리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처절하리만치 사죄하던 카야는 내가 호출하자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바닥에 긁히는 갑옷 소리가 매우 거슬렸다.

“카야.”

“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죄송합니다!”

“카야!”

“아아아아악!”

카야의 어깨를 붙잡자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겨우 두 번뿐이었지만, 전투할 때 그렇게 용맹하게 철퇴를 휘두르던 용감한 전투수녀는 어디가고 공포와 트라우마에 삼켜진 가녀린 하프엘프 여자만 남아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장소도 여의치 않았다. 천천히 달랠 수는 없었다.

짜악-

“꺄아아아악!”

“정신 차려 카야!”

“으윽, 흐윽….”

뺨을 맞은 카야는 웅크리며 울기시작했다. 그녀를 강제로 일으키려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거웠다.

“카야!”

“흐으윽, 우윽, 제, 제발….”

“넌 날 지켜준다고 하지 않았어!?”

카야의 울음이 뚝 그쳤다.

잔뜩 일그러지고 퉁퉁 부은 그녀의 눈이, 생선 눈깔처럼 흐릿했던 그녀의 눈에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이대로 밀어붙여야 했다.

“대, 장?”

“그래, 카야. 우린승리했어. 우리가 이겼다고.”

“아, 아아.”

“너랑, 내가. 저 역겹고 빌어먹을 새끼를 조져버렸다고!”

“아, 아아아!”

“피하지 마! 현실을 직시해!”

정신이 돌아온 듯 하다가 괴물의 시체를 보고 다시금 발작하려는 카야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이제 겨우  번째 방이다. 넌 고작 여기서 이렇게 주저앉으려고 세일럼에 와서 용사대에 지원했어? 던전이 만만해 보였어? 적당히 싸우고 적당히 힐링 좀 하면 아무나 고이 모셔갈 줄 알았냐고!”

“히, 히끅.”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던전에서 약한 건 죄악이야! 그리고 정신이 약한  더  죄악이고! 선두에 서도 된다고, 날 지켜주겠다고 한 건 무슨 자신감으로 내뱉은 거냐! 그따위로 약한 주제에!”

카야의 눈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눈에선 눈물이, 코에선 콧물이 흐르고 있었고 볼은 나한테 쳐맞아서 빨갛게 부어있었다.

사실 카야가 잘못한 건 없었지만, 결과가 나빴다. 던전 난이도가 지랄맞게 높았다. 2번째 방에서 정예가 갑자기 튀어나오다니, 거의 버그에 가까운 횡포였다.하지만 하소연할 곳은없었고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서 카야는 잘못한 게 되어버렸다.

게임이었다면.

쉬운 난이도였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려운 난이도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면 한숨을 쉬며 퇴각을 시키거나 죽든 말든 다음 방으로 이동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스쳐지나가는 캐릭터A가 아니었고,나는 그녀의 바로 옆에 있는 그녀의 대장이었다.

좋든 싫든, 그녀를 끝까지, 최소한 1-10까지는 데리고 가야하는 입장이었다.

“카야. 넌 누구지?”

“…자애와 관용의 여신 라엘라를 섬기는 미천한 종, 카야 에펜젤입니다.”

“카야. 넌 누구지?”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사악하고 타락한 것들 징치하기 위해 훈련 받은 전투수녀, 카야입니다.”

“카야. 넌 누구지?”

카야는  눈을 똑바로 마주봤다. 어느새 몸의 떨림은 멈추었고, 눈물과 콧물 또한 메말라 있었다. 그녀는 눈을 한차례 감았다 뜨더니, 머뭇거림 없이 대답했다.

“헨드릭 대장이 이끄는 용사대 HAT의 전투수녀, 카야입니다.”

“좋아. 항상 잊지 말라고. 어떤 일이 있어도.”

‘후우. 어떻게든 된 건가.’

엄지로 슬쩍 눈물을 닦아준 나는 멘탈리티가 또 까이기 전에 이동하기 위해 얼른 이 방을 뒤졌다. 숨겨진 보물은 없었다.

그러고 나니 카야에게 했던 행동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어색해졌다.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 화를 내면서 나도 모르게 과몰입했는데, 그녀의 무표정과 피묻은 철퇴, 괴물의 대가리를 후려칠 때 짓던 소름 돋는 웃음의 조합을 떠올리자 온몸이 절로 떨렸다.

하지만  쫄보 마인드가 무색하게, 카야는 출구 앞에 서있던 내게 다가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정말로 심한 추태를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사실 지금 네 멘탈리티가 –89라서, 시한폭탄을 데리고 있는 기분이야.’

라는 말은 목구멍으로 넘기며,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휴식처가 나왔으면 좋겠네. 가자.”

“…예, 대장.”

카야의 대답이  마디 늘어난 것을 느끼며, 1-2를 나섰다.


**


[해골 목걸이(일반)]
[인간형 괴물에게 데미지 보정 +1]

1-3을 찾으러 가던 도중 배낭 안에 있던 작은 목걸이를 꺼냈다. 정예 괴물이나 보스를 잡으면 항상 나오는 아티팩트였다. 아니면 낮은 확률로 나오는 보물 상자에서 득하거나.

아티팩트는 등록하기만 하면 모든 캐릭터에게 상시 적용되는 특별 아이템이었는데, 무한정 등록할 수는 없었다. 최대 등록 개수는 인원수*2였으니, 4인 용사대 기준으로는 8개까지만 등록할 수 있었다.

만일 새로운 걸로 교체하고 싶으면, 기존의 아티팩트는 파괴해야 했지만.

‘이제 첫 번째인데 등록 안 할 이유는 없지. 등록.’

[해골 목걸이(일반)가 아티팩트에 등록되었습니다.]
[아티팩트]
[1. 해골 목걸이(일반) - 인간형 괴물에게 데미지 보정+1]

효과는굉장히 심플하고 소소 그 자체인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티팩트였지만, 1-2에서 1뎀 차이로 한 순간에 용사대가 붕괴할 뻔한  생각하면 이마저도 소중했다. 1뎀 때문에파티가 폭파될 뻔한 우리에게, 1뎀짜리 추뎀 아티팩트를 내밀다니. 꼭 지금 우리 상황을 놀리는  같았다.

1데미지, 1체력, 1방어도, 1속도.

더 롱 테러의 던전에서는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꼬르르륵-

갑자기 꼬르륵 소리가 어두운 복도에 울려퍼졌고, 절로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니 카야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런 것 정도는 아무렇지 않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그럼 괜히 더 부끄럽게 할 필요는 없겠지.

“아까 그놈이랑 싸워서 그런지 배고프네.”

배낭에서 전투식량 2개를 꺼내서 자연스럽게 하나를 그녀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이고는 이내 열정적으로 까먹기 시작했다.

[적절한 영양분의 보급이 용사들의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유진의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남은 체력 13/15]
[카야의 체력이 1 회복되었습니다.]
[남은 체력 11/14]

‘잘 먹네.’

하기야 카야는 키도 큰 편인데다가 중갑을 입고 저렇게 움직일 정도면 근육량도 꽤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열량도 많을 것이고. 뭐, 원래 게임에서 그런 것까지 따지진 않았지만 게임과 현실이 애매하게 뒤섞인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배고픔 표시가 뜰  밥을 먹이면 체력이 소량 차오르는데, 그 때 무시하고 밥을 안 주면 멘탈리티가 까이고 재수 없으면 체력까지 까이기 때문에 절대 굶겨서는 안 됐다.

“가자.”

“예, 대장.”

배고픔을 해결해서인지 기운이 조금 좋아진  같은 카야였으나, 솔직히 계속조마조마했….

피융-

“시발 깜짝이야!”

[운 좋게 함정을 피했습니다.]
[유진 멘탈리티 +1]
[카야 멘탈리티 +1]

[멘탈리티]
[유진 : -53]
[카야 : -88]

‘와 진짜 함정도 어떻게 매번 있냐. 카야가 걸렸으면….’

멘탈리티 –88은 물이  차있는 유리잔이나 마찬가지였다. 누가 툭 건들면 물도 쏟아지고 유리잔도 깨지는,그런 아슬아슬한 상태.

뭐가 됐든 한 번이라도 치명타를 맞으면 카야의 멘탈은 바로 터지게 될 것이다.

“대장!”

“아, 괜찮아.”

‘네가 함정에 걸려서 멘탈이 갈리는 것보단.’

놀란 쫄보 가슴을 진정시킨 후, 밝기가 절대 50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한 함정이 발동되서인지, 아니면 아직은 초입부라 그런지 추가적인 함정은 없었고 무사히 1-3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제발 휴식처. 제발.’

겨우 1-3에서 휴식처를 이렇게도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을까. 휴식처가  확률은 이론상 25%.

카야를 힐끔 바라 본 후 문을 열었다.

끼이익-

[공포의 상자방에 입장했습니다.]

괴물방은 아니지만.

재수 없으면 괴물방보다도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이벤트방이 열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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