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1구역(2)
“공포! 공포! 공포오오오오오오오옥!”
1층과 2층 초입에서만 등장하는 정예 괴물 <공포의 예언자>. 더 롱 테러 플레이어들은 공포무새라고 부르는 이 병신 같으면서도 시끄러운 괴물은 정예 괴물 치고 피지컬 능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각종 디버프와 멘탈리티 공격이 매우 성가신 놈이었다.
게다가 인간형임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물들었는지 외모의 반절은 괴물의 모습으로 변형돼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수준.
게임 일러스트로도 토 나오게 생긴 놈이라서 볼 때마다 짜증나는 놈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진짜 토악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공포의 예언자]
최대체력 : 65
공격력 : 6~7
방어력 : 2
속도 : 4
‘체력이 크게 뻥튀기 된 것만 빼면 나머지는 큰 차이는 없어. 다만 저놈 스킬이 얼마나 위력적으로 변했는지가 관건이다.’
[공포의 예언자가 스킬 <공포의 예언1>을 사용합니다.]
[공포의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공포! 공포! 공포오오오오오!”
‘좆됐다!’
여러 가지 패턴 중에 하필이면 제일 위험한 패턴을 보일 줄이야!
“수배범 발견!”
[수배범 발견]
[유진이 공포의 예언자를 수배범으로 낙인을 찍습니다.]
[유진이 공포의 예언자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64/65]
[낙인은 3턴 간 유지됩니다.]
[낙인이 유지되는 한, 모든 물리적 데미지가 25% 증폭됩니다.]
저놈이 <공포의 예언1>을 시전한 순간 안정적으로 전투하려는 생각은 곧바로 치워버렸다. 공포의 예언이 3이 되는 순간, 어느 정도의 데미지와 함께 막대한 멘탈리티 데미지가 들어오기 때문.
저걸 맞는다면….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카야!”
“죽음으로 사죄하라!”
카야가 평신도를 후려칠 때처럼 용맹하게 돌진해서철퇴를 내리쳤다. 하지만 결과는 그때와 천지차이였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의 예언자에게 8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56/64]
카야는 입술을 짓씹고는 내게 면목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지만, 절대 그녀 탓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스가 안 난 게 다행이었다.
‘낙인을 찍었는데도 고작?’
눈앞이 캄캄해졌다.
겨우 2번째 방에서 정예가 튀어나온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렇게 보니 새삼 우리가 레벨1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속도 체크]
유진 : 7
카야 : 4
공포의 예언자 : 4
2번째 턴이 되자 ‘압도’현상 때문에 무효가 됐던 속도 체크가 이루어졌고, 내가 선턴을 잡게 되었다.
어차피 내가 쓸 수 있는 딜링 기술은 단 하나.
대가리 분쇄였다.
[대가리 분쇄]
[유진이 공포의 예언자에게 15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41/64]
꽤 높은 데미지였다. 아마 맥뎀에 가깝게 뜬 것이겠지. 하지만 인간형 괴물에 추가 데미지를 주는 대가리 분쇄의 특성과 낙인의 증폭 데미지까지 합산하면, 그렇게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카야와 공포의 예언자의 속도가 같습니다.]
[속도 굴림]
[카야 5]
[공포의 예언자 4]
[카야의 턴이 공포의 예언자의 턴보다 앞서게 됩니다.]
첫 번째 방에서 첫 공격에 치명타를 터트린 것도 그렇고 카야는 꽤나 운이 좋은 것 같았다. 카야의 턴이 저 구역질나는 놈보다 먼저 온다면 노 피격 클리어의 가능성이 올라가는 거니까.
카야는 다시 한 번 맹렬하게 돌진해서 철퇴를 휘둘렀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의 공격이 빗나갑니다.]
[남은 체력 41/64]
‘…쓰읍.’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전투수녀는 기본 명중률이 그렇게 높은 클래스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두 번이나 명중시킨 것도 칭찬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합리화에 불과했고, 1도 줄어들지 않은 괴물의 체력은 앞으로 다가올 공포의 예언의 압박감과 맞물려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정신 차려.”
“….”
[자신에 찬 공격이 허무하게 빗나가자 용사들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유진 멘탈리티 –2]
[카야 멘탈리티 –5]
‘카야가 멘탈이 생각보다 약하네. 아니면 난이도 보정 때문에 그런 건가.’
그렇다고 보기엔 내 멘탈리티는 2만 까인 게 의문이었지만, 던전은 그런 내 고민을 이어가게 두지 않았다.
[공포의 예언자가 스킬 <공포의 예언2>를 사용합니다.]
[차오른 공포의 기운이 공간을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공포! 공포가아아! 공포가아아 다가온드아아아아!”
피가래 끓는 소리와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와 사람이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골고루 섞인 것만 같은 외침.
<공포의 예언>이 2차지까지 완료되자 한쪽 구석에서만 몽글몽글거리던 어둠이 방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공포가 빛을 잠식하기 시작합니다.]
[밝기 : 58]
밝기가 0이라고 적을 공격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카야의 부정적 특징이 문제였다.
그건 바로 어둠 공포증(밝기 50% 이하에서 멘탈리티 하락속도 25% 증가).
만일 밝기가 50 밑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저놈의 궁극기를 맞는다면?
‘멘탈 터진다. 100프로 터진다.’
운이 좋아서 닷지(회피)를 띄운다거나, -100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이제 겨우 1-2였다.
여기서 저거 3중창 맞으면 내 용사대의 결말은 파멸이었다.
나는 손바닥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괴물놈, 정확히는괴물에 찍힌 낙인을 노려봤다.
그리고는 전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뛰어 도약했다.
[대가리 분쇄]
[빛나는 일격!]
[유진이 공포의 예언자에게 3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0/64]
“끄으으아아아악! 감히이이이이이이!”
“좋았어!”
“대장!”
[괴물에게 파멸적인 타격을 입혀 용사들의 용기가 샘솟습니다.]
[유진 멘탈리티 +3]
[카야 멘탈리티 +4]
인간형 낙인 치명타!
현상금 사냥꾼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데미지조건을 충족했고, 그 결과는 굉장했다.
정예 괴물의 체력을 한 방에 반을 날려버린 것. 그것도 겨우 1렙이말이다.
이로써 카야가 미스 없이 맥뎀을띄워 저놈을 처치한다면. 아니면 더 확실하게 치명타를 띄운다면.
어려움 난이도에서도 성공하기 불가능에 가까운 정예 괴물 노피격 클리어가 가능하게 된다!
딜뽕을 맛봐서 그런지 머릿속에서 행복회로가 거세가 불타올랐고, 나는 그녀의 어깨를 턱 짚었다.
“널 믿는다.”
끄덕!
좀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던 카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쿵쿵쿵 소리를 내며 개박살이난 얼굴을 부여잡고 괴성을 질러대고 있는 괴물놈에게달려든 뒤 전력으로 철퇴를 휘두른 카야.
“끄아아아아! 절대로오오! 절대로오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카야가 공포의 예언자에게 9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남은 체력 1/64]
“…………아.”
1?
1이라고?
낙인을 찍고, 낙인 치명타를 띄우고, 명중률 낮은 편인 전투수녀가 2번이나 히트를 성공했는데도….
고작 1뎀이 모자라서 못 죽였다고?
[공포의 예언자가 스킬 <공포의 예언3>을 사용합니다.]
[이 공간에 잠식된 공포가 용사들에게 스며듭니다.]
[스킬 <진정한 공포의 편린>이 시전됩니다.]
“보아라! 진정한! 공포를! 보아라! 느껴라! 전율하라! 마침내 경외하라!”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정상적인 말투로 광기에 찬 단어를 내뱉는 공포의 예언자.
끝끝내 저놈의 궁극기 <진정한 공포의 편린>이 시전 되고야 말았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키가 컸고 건장해보였으며 외모 또한 준수했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앞으로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바뀐 건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만 있을 뿐.
어디가 앞인지도 잘 모르겠고, 어디가 동서남북인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앞으로 걸어야할 것 같은 감각이 그를 다시 앞으로 걷게 했다.
걷고 또 걷고.
얼마나 걸었는지 감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으나, 남자는 계속 걸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가만히 있는 건 더 꺼려졌으니까.
그렇게 건장했던 몸이 점점 수척해지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꼿꼿했던 등이 조금씩 구부러질 때.
드디어 어두컴컴하기만 했던 이 공간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생겨났다.
무언가가 ‘보였다’는 것.
느려졌던 걸음이 다시금 빨라지고, 생각이라는 게 사라지고 앞으로만 걷는다는 행위만 반복 명령하던 뇌가 목적이라는 걸 인식했다.
보이는 무언가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남자는 더욱 수척해졌고 주위의 어둠은 역설적으로 더욱 어두워져만 갔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모를 시간이 지나서, 남자는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
그건 바로 처참하게 박살난 시체 한 구였다. 그리고 그 시체가 입던 옷과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이 완전히 똑같았다.
상당히 낡아서 해진 옷과, 그것보다도 더 세월의 풍파를 직격탄으로 맞은 것 같은 거적 데기 같은 옷이지만.
무심코 시체의 옷을 건드리니, 그 순간 시체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는 머지않은 곳에 다른 무언가가 생겨났다.
작은 희망이 생겨났다가 박살났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남자는 공포심이 생겼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4부위로 부서진 중갑과 알 수 없는 쇠막대기 하나뿐.
그 갑옷을 보자 남자는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남자는 이번엔 건들지 않고앞으로 뛰었다.
그러자 이제껏 칠흑 같은 어둠만 있었던 공간이 그가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상 속 어두운 곳에서]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업적을 자랑하지 못하고]
[봐주는 사람 없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공포를]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떠올랐고.
[‘받아들여. 본능은 자연스러운 거니까.’]
[‘공포 자체는 무서운 게 아니야. 공포라는 개념과 통념이 무서운 거지.’]
[‘그러니 거부하지 마.’]
[‘받아들이고, 좌절하고, 숭배하고, 경외하면.’]
[‘가장 기나긴 곳에서 찾아오는 공포가 진정한 널 해방시켜주리니.’]
정체불명의 목소리들이 남자에게 속삭였다.남자는 눈을 감고 귀를 감으려 했으나, 보고 싶지 않아도 글씨는 계속 보였고 듣고 싶지 않아도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남자는 얼마 안 가 털썩 쓰러졌다.
글씨가 사라지고 목소리가 사라졌다.
남자는 다시 일어나서 걷기 시작했지만, 그러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나타났다.
남자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계속 걸어가자 글씨와 목소리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굴복해]
[‘넌 하찮은 인간에 불과하다.’]
[절망해]
[‘절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복종해]
[‘불가능한 것을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숭배해]
[‘받아들여. 그리하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지 않을 테니.’]
[경외해]
[‘필멸자들은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법. 공포와 하나가 되면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남자의 눈에서 피눈물이,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허리는 굽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굴복하고 다 포기하고 쓰러지고 싶었지만, 오히려 글씨와 목소리가 남자에게 오기를 심어주었다.
남자는 입을 열었다.
“항거할 수 없는 것에대해 생기는 필멸자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공포라면, 그걸 이겨내고 항거할 수 없는 걸 극복하는 것 또한 필멸자의 의지다.”
콰드드득-
[가 소 로 워]
[‘그 의지가 얼마나 갈지.’]
세상이 깨졌다.
**
[진정한 공포의 편린]
[끝을 알 수 없는 공포와 어둠이 용사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짓밟고 꺾고 끝내 좌절시킵니다.]
[용사들의 멘탈리티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칩니다.]
[유진 멘탈리티 -50]
[카야 멘탈리티 –72]
[공포의 예언자가 유진에게 3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12/15]
[공포의 예언자가 카야에게 3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남은 체력 10/14]
[공포의 예언자는 다음 턴에 행동할 수 없습니다.]
남자는.
유진은.
헨드릭은.
텅 빈 눈으로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보다가, 터덜터덜 걸어가 손도끼를 휘둘렀다.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