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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91화 (1,486/1,497)

< 1491화 > 1491. 팔라딘: 악멸의 여정

교황의 눈매가 쭉 찢어진다.

눈알이 툭 튀어나왔다. 눈알은 떨어지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눈알과 이어진 신경다발이 근육처럼 버티고 있었다.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교황은 이미 손쓸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콰아아아앙!

교황으로부터 충격파가 날아온다. 나는 옆으로 뛰어 충격파를 피했다. 충격파가 지나간 바닥은 엉망진창으로 뒤집혀 있었다.

“그거 아나? 여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네."

“헛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 헤리안느 여신께서는 인류를 위해 안배를 해놓으셨다. 나의 존재가 바로 그 증거다."

“그것뿐이지. 여신은 팔라딘과 성녀에게 계시를 내리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한 게 없네. 교황청을 세운 건 인간이고, 성법을 발달시킨 것도 인간이며, 성검을 제작하는 것도 인간이지. 반면에 대악마들을 보게. 그들은 적극적으로 이 세계에 간섭하고 있다네."

"여신께서 존재하시기에 인류가 아직 존속하고 있음을 진정 모르는 것이냐. 네놈은 그저 자신의 타락을 합리화하기 위해 신성을 모독하고 있을 뿐이다. 악마에게 굴복하여 타락한 네놈에겐 신성을 모둑할 자격조차 없다."

“하하. 그대는 신실하군.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날 정도로."

하인스의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았다. 충격파가 날아온다. 나는 이번에도 충격파를 피하며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가속, 질주.'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6]

다리가 빨라졌다. 나는 검자루를 양손에 쥐고 하인스의 목을 노렸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진다. 하인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놈의 목을 찌르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놈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당황하여 다리를 멈췄다.

-후후후후후후.

대악마 아리아스가 날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환각이다. 아리아스가 벌써 개입할 줄이야….'

원작에서 대악마 아리아스는 하인스가 죽고 난 뒤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그런데 지금은 시작부터 원작과 달랐다.

'그만큼 날 경계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럴 만도 했다.

원래 원작에서는 교황청에서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교황에게 나아가 도달했다.

콰아아아아앙!

충격파가 날아온다. 오른쪽이었다. 거리가 가까웠기에 쉽게 피하기는 글렸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를 이용해 충격파를 피하고 하인스를 향해 도약했다. 대검이 하인스의 육체를 가른다. 하인스의 육체가 연기처럼 흩어진다.

"어딜 노리는 건가? 난 여기에 있네. 그대의 성안은 진짜와 가짜도 구분하지 못하는군."

등 뒤에서 하인스가 나를 조롱했다.

나는 그를 뒤 돌아보고 피식 웃었다.

"육체가 점점 변이하고 있군. 추악하군. 알고 있나? 네놈의 모습은 땅속을 헤집고 다니는 벌레처럼 변하고 있다. 대악마의 애완벌레가 되어 만족스럽나?"

“적어도 여신의 사냥개가 아니라는 점에 감사하고 있다네. 자네 혹시 팔라딘들의 최후를 알고 있나? 지금까지 수많은 팔라딘이 존재했으나, 천수를 누린 팔라딘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평균 10년. 길어도 30년 내로 죽어버리지.”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지 알겠군."

팔라딘은 인간이다. 늙는다. 그리고 늙으면 육체는 약해지고, 악마들은 호시탐탐 팔라딘을 노린다.

"팔라딘은 여신이 애용하는 사냥개에 불과하네. 아무리 많은 적을 물어뜯어도, 결국 이용당한 끝에 죽을 뿐이라네."

“그건 지금까지의 팔라딘이 무능해서 그렇다. 1년. 나는 1년 내로 모든 대악마를 죽일 것이다."

"고작 너 따위가? 건방지구나."

하인스와 대악마 아리아스의 목소리가 겹쳐서 울렸다.

대악마의 혀가 왜 이렇게 길까. 이유는 간단하다. 아리아스는 내가 타락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하인스의 몸을 버리고 내게 빙의할 것이다.

“아리아스. 네년의 수작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욕망을 드러내. 그럼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네 아래에서 헐떡이게 될 거야.

또 환각이 일어났다. 알몸의 미녀들이 춤을 추며 나를 현혹한다. 나는 숨을 삼키며 정신을 다잡았다. 환각이 깨지며 정면에서 있는 하인스가 보인다. 하인스의 육체는 잠깐 사이에 더욱 악마와 가깝게 변이했다.

'2페이즈로 넘어갔군. 아리아스가 교황에게 힘을 쓰고 있다는 증거다.'

상황은 위험하다.

하지만 마냥 안 좋은 상황인 건 아니다. 아리아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힘을 사용한다는 건 날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대악마라고 해서 힘이 무한한 건 아니었다.

"하하, 하하하하하!"

하인스가 웃는다. 아리아스가 제공하는 거대한 힘이 자신의 것인 줄 착각하고 있다.

그때,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도 환각인가?'

가까이 다가오는 유령을 무시하고 전진한다. 지금 중요한 건 하인스의 목을 치는 것이다. 그래야 아리아스가 진짜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끼아아아아아아악!"

무시한 유령이 쫓아와 내 귓가에 비명을 지른다.

순간적으로 몸이 흔들렸다. 오른쪽 귀에서 피가 흘린다. 나는 대검을 바닥에 찍으며 균형을 잡았다. 흔들리는 시야가 천천히 회복된다. 유령들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하하하! 그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신앙을 버리게."

"신앙을 버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그럼 죽도록."

바닥에서 무언가가 치솟았다. 그것은 나무 뿌리 같은 촉수들이었다. 10개가 넘는 촉수들이 나를 노린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회전시키며 대검을 휘둘렀다. 촉수들이 베여 떨어졌다. 촉수는 다시 바닥에서 치솟는다. 내 주위를 빙빙 돌던 유령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홀리 오라를 사용했다.

성스러운 기운이 유령의 비명을 중화했다.

'성가시군. 이대로 있으면 하인스를 죽이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들다.'

능력을 아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저번에 얻은 새로운 스킬을 사용했다.

강림(Lv. 1).

내 안의 신성력 일부가 허공으로 빠져나간다. 황금빛 신성력은 허공에 줄을 긋더니 이내 찬란한 빛을 사방에 내뿜었다.

빛속에서 여신의 사자이자, 여신의 종인 천사가 강림한다.

한 쌍의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는 갑주를 입고 손에는 창을 들었다. 강림의 레벨이 낮다 보니 하급 천사다.

또한 천사에겐 자아가 없었다. 천사는 여신이 제조한 병기일 뿐이다.

천사는 강림하자마자 홀리 오라를 터트리며 유령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팔라딘이여, 증오스러운 것을 꺼냈구나. 허나 저것이 얼마나 오래 버틸 것 같나?"

오래 버티지 못한다.

기껏해야 하급 천사에 불과하니까. 타락자보다 강하지만, 평범한 악마보다는 약하다.

'귀찮은 유령과 촉수를 상대로 약간만 버텨주면 된다.'

원래 그런 목적으로 강림을 선택했다.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파지직.

황금빛 번개가 내 몸을 감싼다.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하인스가 당황하며 뒤로 물러선다. 이미 급속도로 변이되고 있는 몸이라 그런 것일까. 하인스의 발이 땅을 잘못 디디며 뒤로 넘어진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행운이었다.

'신성검!'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성검을 하인스의 몸통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아아악!"

하인스가 고통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지른다. 물론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검을 움직인다. 놈의 살을 가르며 머리통까지 단숨에 베어내려고 했다.

'…검이 안 움직인다.'

하인스의 살덩이가 꾸드득 소리를 내며 검에 달라붙었다. 어찌나 강하게 달라붙는지 내 힘으로도 빼내기가 쉽지 않았다.

'뇌전!'

파지지지지직!

황금빛 전류가 검신을 통해 놈의 육체로 흐른다. 그러나 하인스는 좀처럼 죽지 않았다.

“아리아스 님! 힘을! 제게 더욱 강력한 힘을…!"

하인스의 살덩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역겨움이었다.

살덩이가 빠르게 부풀어 오른다. 위험하다고 판단한 나는 검자루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려고 했으나, 그보다 한발 빠르게 살덩이가 폭발했다.

피와 살점, 뼛조각과 함께 뒤로 날아가 바닥을 굴렀다. 평범한 폭발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갑옷이 박살 났다. 나는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놈은?'

하인스는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끔찍한 몰골이었다. 육체의 80% 이상이 날아갔는데 보이지 않는 힘으로 겨우 육체를 유지하고 있다.

두근두근.

놈의 심장이 팔딱거린다. 심장을 중심으로 혈관이 꾸물거리며 인간의 형상을 겨우 취한다.

“그게 악마에게 모든 걸 바친 자의 말로인가. 역겨워서 토가 나올 것 같군.'

이제는 간신히 그 흔적만 남아 있는 입이 천천히 움직인다. 입을 통해 나온 것은 고통으로 가득 찬, 지옥에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사, 살려줘…. 너무 아파…. 구해줘… 아리아스 님이시여… 아, 아아아…!"

"네가 아리아스의 뭐라도 되는 줄 알았나? 너는 그저 아리아스의 장난감이었을 뿐이다.”

하인스가 비틀거리며 움직인다. 하인스의 의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저 육체라 부르기도 민망한 몸을 조종하는 건 아리아스다.

나는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내 몸도 한계였다. 아까 저주의 폭발은 내 몸을 좀먹고 있었다.

'신성검.'

신성력을 짜낸다. 손바닥 앞에 황금빛이 모여들어 검의 형태를 취했다. 내 의지를 받은 신성검이 하인스에게 날아가 심장에 꽂혔다.

펑!

신성검이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하인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선사한다. 하인스의 마지막 육체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뒤쪽에서 천사의 비명이 들렸다. 수많은 유령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장렬히 전사한 것이다.

유령들은 내가 아닌 하인스의 육체 찌꺼기로 달려들었다. 육체 찌꺼기가 허공으로 올라가며 뭉치며 심장의 형태로 변한다. 유령들은 기쁜 비명을 지르며 심장에 자신을 바쳤다.

심장이 두근두근 고동친다. 심장이 한 번 고동칠 때마다 강력한 마력이 사방으로 퍼진다.

"대악마 아리아스….”

형태가 있으나, 형태가 없는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후. 이렇게 직접 나서는 건 정말 오랜만이야. 정말 기분 나쁜걸.

-난 새로운 육체가 필요해.

-그런데 눈앞에 딱 좋은 육체가 있네?

-자, 나랑 하나가 되자.

심장이 천천히 나를 향해 날아온다. 아리아스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진 부활과 완전 회복의 존재를 모른다.

나는 내 몸 상태를 점검했다.

하반신이 괴사했다. 검에 몸을 기대며 어떻게 서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다.

한 번 죽어야 한다. 아리아스에게 죽고 싶지 않았다.

"헤리안느 여신이시여,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리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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