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7화 > 1487. 팔라딘: 악멸의 여정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70
힘: 42 민첩: 20 체력: 20 신성력: 32
사용 가능한 포인트: 5
보유 스킬: 성안(Lv. Master), 홀리 오라(Lv.7), 신성검(Lv.7), 질주(Lv.3), 홀리 라이트(Lv.3) 신성 강화(Lv. Master)]
사용 가능한 포인트가 5개.
나는 포인트 전부를 신성력에 사용했다.
이번에 샐로트 성에서 언데드와 타락자를 죽이고 레벨이 5 올랐다.
레벨 70.
게임 진행과 비교하자면 터무니 없이 높은 레벨이었다. 본래 초반부라 할 수 있는 발렌티어 지역에서는 모든 서브 퀘스트를 깨고 대악마 수톤을 조지더라도 레벨 50을 넘기기 힘들기 때문이다.
'성창을 쓰는 루트를 사용해서 비교적 쉽게 대악마 수톤을 죽였지.'
쓰지 않더라도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완전 회복이나 천심 같은 비장의 수단이 남아 있었으니까.
'사용 가능한 포인트는 다섯 개.'
원래 내 스타일은 레벨업 하자마자 능력치를 바로바로 사용한다.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포인트를 아껴봤자 나만 고생하기 때문이다.
'힘을 올려서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게 좋지만… 다음 대악마는 신성력이 중요하다.'
근데 내겐 신성한 정신이 있다. 신성한 정신의 효과라면 굳이 신성력에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신성한 정신만 믿기에는 어딘가 불길하다.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은 대악마다. 그걸 잊어선 안 된다.
'…신성력을 올린다. 힘에 비해 능력치 효율은 떨어지지만… 신성력을 올려서 나쁠 건 없다.'
신성력은 스킬 대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충분한 신성력과 스킬 레벨을 갖추면 수준 낮은 악마나 타락자 수십 마리를 단번에 쓸어버릴 수도 있다.
'신성력에 전부 사용한다.'
신성력 5개를 올렸다.
'남은 것은 축복의 기운. 대악마의 영혼을 정화한 것답게 상당히 쌓였군.'
우선 2개의 스킬을 선택했다. 이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스킬이었다.
[부활(Lv. Master)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강림(Lv. 1)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부활은 3일에 한 번 죽어도 부활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완전 회복까지 합치면 나는 총 2개의 여분의 목숨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완전 회복과 마찬가지로 최상의 컨디션으로 부활하지.'
부활의 축복.
최고의 가성비 스킬이라고 확신한다.
'다른 팔라딘이나 성녀들은 부활의 축복의 존재 자체를 모르지.'
시스템 인터페이스가 보이는 나와 달리 다른 팔라딘이나 성녀들은 시스템 같은 걸 볼 수 없다. 객관적으로 자기 능력치가 어느 정도 인지알 수 없는 것이다. 축복의 기운도 마찬가지다. 다른 팔라딘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기존의 축복을 강화하거나, 기존에 알려진 축복을 선택한다.
나는 남은 축복의 기운을 확인했다.
아직 많이 남아있다.
나는 세 개의 스킬에서 고민했다. 지금 가진 축복의 기운으로는 셋 중에 하나밖에 선택할 수 없다.
'완전한 육체’, '여명의 날개', '세크리파이스'.
육체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킬인 완전한 육체.
기동력이 극대화되는 여명의 날개.
자신을 희생하여 일시적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세크리파이스.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세크리파이스는 게임에선 고인물 전용 스킬이다. 최대 생명력을 낮추는 대신 공격력이 올라가는 방식의 스킬.
'여긴 현실이라 그런지 스킬 자체가 변했군. 페널티가 더 강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위력은 더 강해졌을 테지….'
세크리파이스를 통해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호기심이 들었다.
'부활과 완전 회복을 가진 나다. 어쩌면 셋 중에 가장 효율적인 건 세크리파이스가 일지도 모른다.'
나는 세크리파이스를 선택했다.
[이름: 유진
출신: 성기사
레벨: 70
힘: 42 민첩: 20 체력: 20 신성력: 37
보유 스킬: 성안(Lv. Master), 홀리 오라(Lv.7), 신성검(Lv.7), 질주(Lv.3), 홀리 라이트(Lv.3) 신성 강화(Lv. Master) 부활(Lv. Master), 강림(Lv. 1), 세크리파이스(Lv. 1)]
정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직 하나가 남아 있다.
인벤토리에서 대악마의 심장을 꺼낸다.
대악마의 심장은 여러곳에 사용할 수 있다. 영약을 만들면 능력치괴 최소 10 정도는 오를 것이고, 물건을 만들면 흔히 말하는 종결템이란 것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 효율이 떨어진다.
‘가장 효율적인 사용처는 딱 하나지. 마스터 스킬 강화.'
풍덩.
대악마의 심장이 성스러운 연못에 떨어졌다.
"팔라딘이시여?!"
아멜리아가 깜짝 놀라 성스러운 연못으로 다가갔다.
"괜찮다. 놀라지 마라. 정화 의식을 할 필요 없다. 대악마의 심장은 대악마의 영혼과는 다르니."
성스러운 연못에 빠진 대악마의 심장은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성스러운 연못에서 푸른 빛이 일어난다. 푸른 빛은 내 주위를 맴돌았다. 동시에 스킬 창의 일부 스킬이 빛난다.
성안, 신성 강화, 부활.
마스터 레벨이 붙은 스킬들이 자신을 선택해달라고셨나고 있다. 이번에는 고민 없이 손을 움직였다.
[성안(Lv. Master)을 강화합니다.]
[성안(Lv. Ultimate)이 당신에게 깃듭니다.]
“으으윽!”
두 눈에 고통이 밀려왔다. 버티기 힘든 고통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끓었다. 수억 마리의 작은 벌레들이 내 눈을 파먹는 고통이었다.
"팔라딘이시여?!"
놀란 아멜리아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순도 높은 신성력이 느껴진다. 나는 그녀가 치료 성법을 사용하기 전에 말했다.
“…괜찮다. 한순간의 시련이었을 뿐이다. 나는 멀쩡하다."
끓었던 무릎을 다시 세운다.
겉으로 보기엔 내 성안은 변하게 없다.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에 교단의 상징인 날개 달린 십자가 문양이 여전히 새겨져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들이 변했다.
'이젠 악마와 타락자들 뿐만이 아니라 빌어먹을 이단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타락하지 않았음에도 악마에게 협력하는 놈들.
이단. 그리고 악마 숭배자라 불리는 놈들.
'나는 인간의 죄악을 볼 수 있게 됐다.'
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것으로 더 많은 경험치를 얻게 될 것이다.
"…성안의 힘이 더 강해지셨군요. 대악마의 심장을 여신께 바친 것입니까?"
성녀가 작게 감탄하며 물었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순수했다. 어떤 인간이든 가지고 있어야 할 약간의 죄악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된 성녀였으니까.
"너는 순수하군.”
죄악을 볼 수 있게 되었기에 그녀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었다.
“제가 말인가요…? 아니요. 저는 팔라딘께서 생각하시는 만큼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래…?”
"네. 저도 모르게 가끔… 나쁜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인간은 다 그런 법이다. 생각만으로는 죄악이 쌓이지 않는다. 허나 마음이 굴복하는 순간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나는 네 마음이 꺾이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한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끔 팔라딘께서는 저보다 저를 더 믿는 것 같습니다."
"너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베일 아래에 있는 성녀의 뺨과 턱을 잡았다. 부드러웠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았다.
"팔라딘이시여…?"
"미안하군. 잠깐 멍해졌다.”
나는 바로 손을 내렸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갖고 싶다는 탐욕이 일었다. 팔라딘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대악마의 영향이 팔라딘께 남아 있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군.”
팔라딘은 성녀와 달리 타락할 수 있는 존재였다. 타락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다시 한번 정화 의식을 치르지요.”
“아니, 됐다. 사흘 동안 정화 의식을 진행하느라 피곤하지 않나. 너도 알겠지만, 지금 내 몸에는 타락의 기운이 없다."
"간단하게라도 정화 의식을 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팔라딘이시여."
"……알겠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가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간단하게 하는 정화 의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나는 옷을 전부 벗고 성스러운 연못에 몸을 눕혔다. 그녀에게 알몸을 보이는 건 일상처럼 자연스러웠다.
정화 의식은 지루했다.
집중하는 아멜리아와 달리 나는 가만히 성수 속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보통 팔라딘들은 이때 헤리안느 여신에게 기도한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기도는 내 성향에 맞지 않았다. 악마와 타락자들을 찾아내 죽이는 것이 여신에게 보내는 나의 기도이고, 신앙이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났다. 정화 의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손을 들었다. 스스로의 손을 집중해서 노려본다.
'죄악이 보이는군.'
깨끗한 성녀와 달리 진한 오물이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더러웠다. 물론 겨우 이 정도로 지금까지 벌일 일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팔라딘의 죄는 성녀가 짊어진다.'
성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팔라딘의 죄를 짊어지는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성녀는 희생양이지만, 희생의 대가는 여신으로부터 이미 받았을 테니.
"끝났습니다. 다행히 아무 팔라딘의 육체에는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
성스러운 연못에서 나와 옷을 입으며 물었다.
"근처에 악마가 날뛰고 있다는 정보는 없나?"
"없습니다. 대악마가 죽었다는 소식이 퍼지며 발렌티어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습니다. 팔라딘이시여. 좀 더 성소에서 휴식을 취하소서."
“그래. 쉬는 것도 나쁘지 않지."
발렌티어에서 활동하는 어지간한 악마나 타락자들은 내가 다 죽였다. 대악마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어중이떠중이 악마와 타락자들은 모두 도망쳤으리라.
“심심하군. 나랑 놀아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성녀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 있었다.
나와 성녀는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아 포커를 쳤다. 그녀는 베일을 벗고 표정 연기를 했다. 처음과 달리 자연스럽게 포커 페이스를 유지했다. 처음 포커를 했을 때, 그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했다. 처음 하는 게임에 지나칠 정도로 흥분한 것이다. 포커의 룰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하지만 지금은 꽤 잘한다. 표정만으로 그녀가 무슨 패를 읽어내는지 불가능했다. 나는 손 패를 확인한다. 시작부터 꽤 괜찮게 나왔다. 투페어를 노린다.
"발렌티어의 성검은 언제쯤 재련이 끝났나?"
"팔라딘께서 꾸준히 재료를 조달해주신 덕분에 곧 끝날 것 같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재료란 악마의 부산물들이었다.
“교황청의 반응은?"
"교황청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라딘님을 칭송합니다."
“그래? 투 페어다."
"풀하우스입니다."
"……."
졌다.
물론 나는 겨우 한 판 졌다고 좌절하지 않았다.
"투 페어."
“저도 투 페어입니다."
숫자는 그녀가 더 높았다.
"…트리플. 이 판은 내가 이긴 것 같군.”
"플러시입니다."
"……."
2승 8패.
이렇게까지 승패가 갈라지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보다 포커 운빨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