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0화 > 1480. 팔라딘: 악멸의 여정
숲 안쪽에 있는 마녀의 집에 도착했다.
마녀의 집은 평범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로 지어진 집이다.
나는 마녀의 집을 앞에 두고 뒤를 돌아봤다. 한스는 땀을 잔뜩 흘리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의 안색은 새까맸다. 당장이라도 심장 마비가 와 죽을 것처럼 불안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유령의 비명을 계속해서 들은 결과였다.
"내가 정면에서 마녀를 상대할 것이다. 너는 마녀의 뒤를 노려라."
“…알겠습니다. 기회를 봐서 반드시 마녀의 등에 이 단검을 꼽겠습니다."
자기 상태가 정면에서 싸울 정도가 아님을 아는 한스는 내 지시에 수긍하며 숲으로 몸을 숨겼다.
'사냥꾼 출신의 용병이라 하더니 몸을 숨기는 재주가 뛰어나군.'
이 정도면 한스가 마녀에게 들킬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마녀의 집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왼 주먹을 꽉 쥐고 나무 문을 후려친다. 문이 뒤로 날아가 테이블을 박살 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것들이 떨어지고 깨진다. 마녀의 집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어느 놈이냐!!"
붉은 머리칼의 마녀가 방안에서 튀어나왔다. 검은색 옷을 입은 마녀의 겉모습은 아름다웠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 어떤펀 남자라도 그녀가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몸매는 또 어떠한가.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원피스는 매혹적인 라인을 그대로 드러냈다. 봉긋한 허리와 풍만한 골반.
그야말로 남자가 선호하는 육체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키이이이잉.
성안을 발동한다. 그녀의 주위로 악마의 힘이 넘실거린다.
표독스러운 표정을 짓던 마녀는 나를 보더니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너! 발렌티어의 새로운 팔라딘이구나! 깔깔깔! 날 죽이러 온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마녀 헬렌. 헤리안느 여신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하겠다."
"팔라딘이 된 지 이제 겨우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 주제에? 난 네 인생의 세 배를 살았어. 악마와 계약하고 영원한 젊음을 손에 넣었지. 너를 죽이고 그 시체를 대악마에게 바친다면…. 아아. 상상만으로 짜릿한걸. 아랫도리가 젖을 지경이야. 어때? 같이 침대로 가지 않련?"
"추악한 년! 지옥에서 괴물들이랑 뒹굴어라!"
"깔깔깔! 지옥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우린 죽어서 이 세상을 떠돌 뿐이지! 아니면 악마에게 먹히거나!"
"내 영혼은 헤리안느 여신께서 거두실 거다. 죽어라, 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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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자루를 양손으로 꽉 쥐고 질주와 가속을 사용해 마녀에게 달려들었다. 쿵쿵쿵!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연달아 3번 울렸다. 마녀의 앞에 도착한 나는 황금빛 신성이 담긴 검을 휘둘렀다.
콰앙!
폭음이 울렸다.
내 몸이 뒤로 날아가 오두막 밖을 지나 땅바닥을 굴렀다.
'공기 폭발! 마법인가. 갑옷이 아니었다면 위험했겠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검기가 오두막집을 베어 가르며 마녀에게 날아간다.
마녀는 손등으로 입가를 가리며 깔깔 웃는다. 검기가 그녀의 몸에 닿기 직전, 이번에도 공기 폭발이 일어나 검기를 흩트렸다. 흩어진 검기의 조각들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든다.
“깔깔깔. 내 집이 엉망이 됐네? 하지만 괜찮아. 마침 다른 곳으로 터전을 옮기려고 했거든. 이사 기념으로 팔라딘의 시체라니…. 너무 좋은걸.”
마녀가 손을 뻗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던 빗자루가 마녀의 손으로 날아갔다. 마녀가 빗자루를 휘두르자 부서진 집과 떨어진 물건들이 하늘로 떠오른다. 마녀의 마법이었다.
허공으로 떠오른 물건들은 모두 나를 가리켰다.
“쉽게 죽지는 말렴. 오랜만에 이 정도의 마법을 쓰는 건데… 너무 빨리 끝나면 재미없잖니. 깔깔.”
마녀의 경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물건들이 나를 향해 날아온다.
나는 갑옷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 물건들이 날아와 갑옷에 부딪혀 박살 난다. 나를 밀어내려는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 폭풍 속으로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홀리 오라!'
성스러운 기운이 내 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진다. 나를 옥죄던 마법의 힘이 상쇄되어 움직임이 편해졌다. 나는 마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깔깔거리던 마녀의 입가에 금이 갔다. 그녀의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어린 팔라딘아.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둔 아가들이 있지."
땅이 들썩이더니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그 괴물들은 인간의 몸을 하고 있으나, 인간의 형태가 아닌 것들이었다.
"내 아가들은 어때? 귀엽지?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만들었어. 처음에는 심심풀이였는데…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 이젠 취미가 됐지 뭐야."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유독 작은 괴물이었다.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머리 2개를 가진 괴물이다. 4개의 팔과 4개의 다리는 비틀어져 있고, 2개의 몸통은 맞댄 채 지져있다. 그 창자는 마치 벨트처럼 몸통에 휘감겨 있다.
“…제 가족을 악마에게 바친 여자다운 역겨운 취미로군."
“깔깔깔! 그게 마음에 들어? 아까부터 시선을 못 떼네. 혹시 아는 애들이었어?"
모르는 애들이다.
다만 한스의 자식들이란 건 알겠다.
한스는 아직 숨어 있다. 나는 한스의 인내심에 내심 감탄했다. 한스는 분노를 참으며 마녀의 등에 단검을 꽃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내가 그 기회를 만들어 줘야지.'
괴물들이 달려온다. 나는 마주 달려 나가며 대검을 휘둘렀다. 괴물 하나가 검에 짓이겨지며 사방에 피를 뿌렸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콰앙!
위에서 바람이 떨어져 내 몸을 압박한다. 마녀의 마법이다. 나는 무릎 꿇기 직전 검을 땅에 박으며 가까스로 버텼다. 괴물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몸에 달라붙었다.
“깔깔깔깔! 그대로 죽으렴! 네 시체는 내가 잘 갈무리해줄게!"
한스의 자식이었던 괴물들이 내 어깨에 달라붙었다. 입을 쩌억 벌리며 내 투구를 갉아 먹으려 들었다. 그 외의 괴물들도 갑옷을 두들긴다.
조금씩 갑옷이 부서지고 찢기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홀리 오라!'
신성력을 사용해 홀리 오라의 출력을 높였다. 괴물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나는 한스의 자식이었던 괴물의 머리를 악력으로 붙잡아 터트리고, 근처 괴물들을 대검으로 베어 죽였다.
대검, 주먹, 발. 모든 걸 이용해 주위에 있는 괴물들을 하나씩 죽였다.
마녀는 질린 듯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 아이들을 이렇게나 빨리 정리해? 진짜 괴물이 내 앞에 있었네. 네 지금 모습이 어떤 줄 아니? 온몸에 피칠갑을 한 악마, 그 자체야."
"시끄럽다, 마녀. 다음은 네 차례다."
"흐응. 날 어떻게 하려고? 넌 날개도 없잖니."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절대적 우위다. 특히나 원거리 공격에 특화된 마녀에겐 더욱더. 하지만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마녀뿐만이 아니다.
나는 바닥에 물건 아무거나 주워 마녀에게 투척했다.
마녀의 몸에 닿지는 못했다. 마법이 마녀를 지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녀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
그 증거로 지금 마녀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마녀가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탄환이 내게 쏘아진다. 나는 전투 감각에 의지하여 공기 탄환을 피했다. 어쩌다 맞더라도 갑옷이 1번 정도는 견뎌줬다.
바닥을 박차며 마녀를 향해 뛰었다. 2단 점프로 아슬아슬하게 닿는 거리에 도달하자, 마녀가 기겁하며 더 위로 올라갔다.
내 검은 마녀의 발목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바닥에 쿵 떨어진 나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갑옷의 무게가 안 좋게 적용했다.
'마녀를 지키던 마법이 사라진 걸 확인했다.'
마녀가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친다. 바람이 눈에 보일 정도로 살벌하다. 저걸 지금 맞으면 즉사할 것이 분명했다.
'이때를 위해 준비한 스킬이 있지. 홀리 라이트.'
하늘에서 마녀를 향해 성스러운 빛이 떨어졌다.
성스러운 빛을 맞은 마녀의 몸이 타올랐다. 성스러운 빛은 위력이 약하기에 마녀를 단번에 끝장내지 못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마녀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마녀는 떨어지는 와중에 마법을 사용하여 최대한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현명한 선택이자 발악이라 할 수 있지만, 이곳에 있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죽어라, 마녀!! 빌과 도라, 줄리아의 복수다!!"
한스가 내가 준 단검으로 마녀를 내려찍는다. 퍽퍽퍽! 쉬지 않고 단검이 움직인다. 마녀의 비명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한스에게 다가갔다.
"크흐흐흑! 빌… 도라… 줄리아…!"
"비켜라, 한스.”
"팔라딘님! 제가! 제가 마녀를 죽였습니다! 복수를 끝냈습니다!"
"마녀는 인간이 아니다. 방심하지 말고 비켜라.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내가 검으로… 한스!"
마녀의 팔이 한스의 머리를 붙잡고 끌어당겼다. 한스의 머리가 마녀의 가슴에 파묻힌다. 아니, 흡수당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5]
찰나를 이용해 단숨에 뛰어가 마녀의 머리를 신성검으로 베어냈다. 마녀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라붙었다.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마녀의 영혼은 지금까지 죽여온 어떤 악마나 타락자들보다 강대했다.
"팔라딘님! 몸이! 몸이 이상합니다!"
한스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피부 표면이 괴사하고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린다. 한스의 얼굴은 공포에 차 있었다. 나는 대검을 한스에게 겨누었다.
"마녀의 저주다. 너는 지금 타락하고 있다. 아마도 기껏해야 3분이겠지."
"…타락하면 가족도 못 알아본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알아본다.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다만, 인간을 가축 이하의 동물로 여기게 될 뿐이다. 타락은 네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변화가 느껴집니다. 마녀를 향한 증오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팔라딘이시여, 저를 죽여주소서. 저는 인간으로서… 한 명의 가장으로서 죽고 싶습니다."
“아직 시간은 있다. 남길 말은 없는가?"
"없습니다. 제 가족과 친구들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여신이시여. 이 불쌍한 영혼을 가엾게 여기소서."
나는 한스의 목을 베었다. 한스의 머리가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저주에 의한 타락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나는 한스의 머리를 발로 밟아 터트렸다.
'끝났군.'
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마녀의 시체가 꼭두각시처럼 기괴한 움직임으로 일어선다.
쩌억!
마녀의 몸이 반으로 갈라진다. 단검에 의해 난도질 된 내장들이 이어 붙어 입의 형태로 변한다.
무슨 일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마녀와 계약한 악마의 짓이다.
"발렌티어의 팔라딘이여! 그분께서 돌…."
신성검을 덧씌운 대검을 휘둘러 마녀의 시체를 베었다.
"닥쳐라. 네놈과 네놈의 주인은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얌전히 심판의 날을 기다렸다."
"흐흐흐. 오만하….”
퍽!
말하는 시체를 발로 찼다. 시체는 나무와 부딪쳐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