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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66화 (1,461/1,497)

< 1466화 > 1466. 다크문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방법은 원초적이었다.

놈을 순식간에 제압하여 근처 비어있는 컨테이너로 끌고 가 고문한 것이다. 자세한 고문 방법은 모르지만, 비밀번호를 알아내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닌자답다고 해야 하나….'

-비밀번호가 1010이야. 웃기지도 않아.

"0000이나. 1234보다는 낫지 않나?"

-비밀번호가 왜 이 꼴이냐고 물어봤는데, 여기 보스의 첫사랑이 텐텐이라는 여자였나 봐. 장기 밀매나 하는 놈이 지랄 맞게 감성적… 뭐?

"문제 생겼나?"

-...잠깐 놀라서. 텐텐이라는 여자가 이 갱단의 첫 번째 장기 밀매 피해자인 모양이야. 자기 고백을 안 받아 줬다고 홧김에 죽여버렸다네. 그걸 또 장기를 빼서 팔아버렸고, 미친 새끼들.

컨테이너에서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홀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닌자도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피가 찐득하게 묻어 있었다. 고문당하던 그놈은 아마 죽었으리라. 그녀는 하얀 컨테이너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상자가 뭐가 이리 많아? 하나씩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섣부르게 죽이지 않고 물어보는 건데….

“시간이 걸린다고? 몇 분?"

-몰라. 빨리 찾으면 1분도 안 걸리겠지만… 최악의 경우엔 5분 넘게 걸릴 수도 있어.

"위험하군. 놈들의 주력 부대가 돌아오고 있다."

갱단은 트럭과 바이크를 끌고 아지트로 달려오고 있었다.

"도착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아마 3분 내로 도착하겠지. 한탕하고 온 것 같으니 바로 창고로 직행할 테고…."

-하, 진짜…. 갑자기 일이 안 풀리기 시작했네. 이 새끼들 컨테이너 안에 함정을 깔아놨어. 고전적인 함정이라 해체는 문제없지만… 시간이 더 필요해.

“…몇 분?"

-10분.

"너무 길군. 들키고도 남을 거다."

-시간 끌라니까. 마법이라도 써서 난리라도 쳐. 내가 물건이랑 같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라고. 어차피 토벌할 생각이었으니 상관없잖아?

"물건은 확실히 챙길 수 있나? 그게 가장 중요하다."

-날 믿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놈들 쪽으로 향했다.

인비저블 블레이드를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같이 일하고 있는 지금은 그녀를 믿어야 했다.

트럭은 입구에서 멈췄다. 나는 언덕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아스트랄을 개방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6]

시간이 느려졌다. 정확하게는 내 정신만이 가속되었다. 나는 이 느려진 세계에서 마법을 선택하고 술식을 계산했다.

'시선을 끌려면 큰거한 방 날려주는 게 좋겠지.'

후우우웅.

마나가 마나 로드를 질주하며 번개로 변하고, 번개는 술식이 되어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 감각은 짜릿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마법과 이어져 있는 이 감각은 마치 하늘을 내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마른 하늘의 중심에서 시퍼런 번갯불이 튀었다. 작은 번갯불은 그 크기를 점점 키워갔고, 이제는 밝게 빛나며 그 존재를 내뿜었다. 지상의 인간들이 이변을 눈치채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는 그런 인간들을 쳐다보며 조용히 영창을 읊조렸다.

[썬더 브레이크]

거대한 번개가 천둥소리보다 빠르게 트럭에 내려꽂혔다. 트럭은 완전히 박살 나고, 그 힘의 여파가 주변 일대로 퍼지며 작은 크레이터를 생성한다. 크레이터의 땅은 고압 전류가 잔류하며 사라지지 않고 잔류했다.

5급 마법 썬더 볼트의 상위 마법인 6급 전격계 마법의 위력은 딱 예상 내였다.

'저기 있는 발전기에 꽂혔다면 아예 아지트 전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목을 매만졌다. 마나 로드가 뜨거웠다. 부서진 16개의 마나로드가 온전했더라면, 마나 로드에 가해지는 부담이 지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콰콰콰콰콰쾅!

천둥소리는 한 박자 늦게 울렸다.

인비저블 블레이드에게 입구는 정리했다고 말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전류가 잔류해 있는 크레이터 위에서 한 남자가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걸 맞고도 살아 있다고? 보통 놈이 아니군.”

얼굴의 절반이 기계로 되어 있는 남자였다. 놈의 기계눈 두 개가 붉은빛을 번뜩인다. 놈의 시선은 정확히 내 쪽으로 향해 있었다.

'얼굴의 절반이 기계인 남자…. 프롱 갱단의 보스인 프롱이군. 사이보그면서도 전격계 마법을 맞고도 움직인다라….'

보통 기계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강도와 장기매매 짓을 하며 번 돈 전부를 자신의 몸에만 처바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롱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검지가 나를 겨눈다. 직후, 레이저가 쏘아졌다. 너무 빨라서 반응하지 못했다. 그래도 미리

몸에 둘렀던 배리어가 레이저를 막아낸다. 레이저의 빛이 배리어에 부딪쳐 갈라지고 증발했다. 배리어 또한 불안정하게 흔들리더니 사라졌다.

'남은 배리어는 4장. 이 정도로 빠르고 강력한 레이저를 연속으로 4번 쏘지는 못하겠지. 사이보그가 가진 출력한계가 있으니까.'

"뭐하냐, 이 밥버러지들아! 저기에 있는 마법사가 안 보이나? 움직여라. 굼뜬 놈들은 내가 직접 죽여주마!"

프롱의 분노의 찬 음성이 황무지에 울렸다. 기계음이 섞인 그 목소리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기지를 지키고 있던 프롱의 부하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내게 달려온다. 저들은 프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좋네. 인원이 확 빠졌어.

“…이쪽은 꽤 심각한 상황이다만.”

-좋은 소식 알려줄까? 드레스 찾았어. 마법 상자에 조심스럽게 보관해놨더라.

“마법 상자에?"

-드레스에 마법이 걸려 있어. 전투용도 아니야. 어떤 미친년이 패션만을 위해 드레스에 고위 마법을 걸어 놓은 거야.

"놀라울 게 있나?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이지. 챙겼으면 나와."

-너는 어쩌게?

“드레스가 무사하다면 꺼릴 게 없다. 여기서 놈들을 토벌한다."

달려오는 적들을 보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뺐다. 내 손에는 블루 디스토션 꽃잎들이 한 움큼 쥐여 있었다. 라나 고메즈에게 내밀었던 블루 디스토션은 전부가 아니었다. 일부는 내 연구용으로 빼놓았다.

'마나 파장을 왜곡하는 효과가 있는 블루 디스토션은 마나 수복에 필수인 재료이지만…, 배리어나 결계의 촉매로 사용하면 좋은 마법 재료지.'

물론 그냥 사용할 수는 없다. 마나 왜곡 효과를 제어하기 위해선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쥔 블루 디스토션 꽃잎들은 모두 사전 작업을 끝마친 것들이다.

허공을 향해 꽃잎들을 뿌렸다. 은은한 빛을 내는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마나 역장]

바람에 흩날리던 꽃잎들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그리고 이 주변 일대에 마나 역장이 펼쳐진다. 역장 안으로 들어온 적들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뭐어어야아아아모오오옴이이이이느으으으려어어어져어어어서어어어."

느려진 몸만큼이나 목소리도 느리게 들렸다. 너무 느려서 듣고 있기 괴로울 정도다. 하지만 그들의 의식은 정상대로 흐르고 있을 것이다.

"너희는 내 영역에 들어왔다."

놈들이 총을 쏜다. 일부는 팔을 날려보내기도 했다. 사이보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로켓 펀치였다. 그것들 모두 왜곡되어 위로 날아갔다.

"짓눌러라."

놈들의 몸은 지면에 처박혔다. 움찔대면서 어떻게든 움직이려고 한다. 일반인이라면 온몸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중력을 기계의 힘으로 버티고 있다. 나는 놈들의 수를 살폈다. 13명, 아지트에 있는 소수의 놈들은 제외하고 다 나왔다고 보면 된다.

"원래는 몇 가지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지만…."

나는 정면을 쳐다봤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적이라 할 수 있는 프롱이 이쪽을 빤히 지켜보고 있다.

“저놈까지 상대하려면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해서 말이지."

주먹을 움켜쥔다.

마나 역장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왜곡된다. 왜곡은 바닥에 쓰러진 적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단단한 기계 신체가 나뭇가지처럼 부러지고, 왜곡에 의해 휘저어진 피와 내장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공간이 왜곡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프롱은 마나 역장 지켜보며 입을 열었다.

"대단하군. 이 정도 수준의 마법사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도 설마 썬더 브레이크를 견디는 사이보그가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대체 이곳엔 왜 자리 잡은 거지?"

"당연한 걸 묻는군. 당연히 돈을 벌러 왔다. 여기서 적당히 벌다가 다른 곳으로 옮겨서 또 적당히 버는 거지."

"적당히 인가."

헛웃음을 흘렸다.

냉장고에 인간의 장기가 가득 차 있다는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나 보군. 우릴 비난할 자격이 청부업자인 네게 있다고 생각하나?"

"없지. 그래서 비난은 안 한다. 그저 임무를 다할 뿐이지.”

"누구에게 의뢰를 받았지? 그년인가?"

"내가 말할 것 같나?"

"…방금 아지트 내에 있는 부하 놈이 죽었다. 유언으로 닌자를 봤다고 지껄이더군. 너는 내 시선을 끌고, 그 닌자는 물건을 찾고 있는 거겠지. 아지트 안에 있는 특별한 물건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기껏해야 내 예비용 파츠와 별 이상한 마법이 걸린 귀족의 드레스가 전부지.”

"그게 그렇게 중요하나?"

"딱히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건… 그 씨발년이 나와 거래를 하기로 했으면서 내 뒤통수를 깠다는 거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 두 가지 중 하나를 저질렀어. 밀라 고메즈. 그 샹년은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거래? 밀라 고메즈랑 무슨 거래를 하기로 했나?"

“고메즈 가문의 비술을 받기로 했다. 망할 마법 드레스보다 그게 더 값비쌀 테니까."

그는 고분고분히 대답해줬다. 시간을 버는 게 뻔히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마나 역장의 촉매인 블루 디스토션이 조금씩 움직이며 프롱을 포위하고 있다.

‘고메즈 가문의 비술이라. 원작 게임에서 라나 고메즈가 딸이랑 의절한 이유가 이거였군. 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밀라 고메즈는 이놈과 거래했겠지.’

궁금증이 풀렸다.

-빠져나왔어. 뭐 해? 도와줄까?

마침 들려오는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텔레파시.

“됐다. 처리하고 가지. 혹시 모르니 떨어져 있어라."

손을 까딱인다. 파란 꽃잎들이 프롱의 주위를 에워싼다. 마나 역장이 그를 중심으로 축소되며 공간 왜곡을 일으킬 준비를 한다.

“디로이드!! 떨궈라!!"

슈우우우우웅!

하늘에서 전투기 한 대가 날아왔다. 전투기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프롱을 향해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상자처럼 보였던 그것은 낙하 도중에 변형을 일으켜 사람과 비슷한 형상을 취한다.

쿠웅!

3m에 달하는 육중한 기계 전투 무장이 떨어졌다. 프롱은 씩 웃으며 뒷점프로 기계 중심에 들어갔다.

마나 역장이 공간 왜곡을 발동한다.

콰드드드드드득!

왜곡은 기계의 표면을 우그러뜨리는 것으로 끝났다. 단단해도 지나치게 단단했다.

배틀 슈트를 입은 놈이 킬킬 웃는다.

"디로이드 특제 배틀 슈트다. 네놈을 곤죽으로 만들어주마."

"디로이드와 손을 잡은 건가? 인간말종도 너보다는 정상적일 거다."

"내게 도움이 되면 인류의 적이든, 뭐든 손을 잡을 수 있다. 네놈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네놈에게서 나와 같은 냄새가 난다. 너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놈이지. 안 그런가?"

"……부정할 수 없어서 더 좆같군."

파지지지직!

손바닥위에서 번개가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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