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5화 > 1465. 다크문
나는 X 인력소 사무실에서 로즈와 마주 보고 앉았다.
"네가 부탁한 거 알아봤어. 전부 사실이야. 프롱 갱단이라고 하던가? 사이보그 갱들이 네오 런던 북쪽 도로에서 활동 중이야."
“일개 갱단이 네오 런던의 북쪽 도로를 점검하고 대놓고 강도짓을 벌일 줄이야. 런던 가드들은 세금을 똥구멍으로 먹는건가."
“그건 이미 상식이고. 이놈들 꽤 영리하게 활동하고 있어. 평소에는 숨어 있다가 만만한 놈들이 지나갈 때만 모습을 드러내서 강도짓을 하는 거지. 런던 가드가 놈들을 소탕하러 갔지만… 아지트를 찾지도 못했어. 그리고 의외로 갱단의 수준이높아. 기사가 나서서 토벌할 거라는 소문이 있어."
"그럼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갱단은 알아서 토벌된다는 말이군."
"갱단이 도망치지 않는다면… 그렇겠지? 그런데 네 입장은 그렇게 간단한 것도 아니잖아."
"……."
라나 고메즈의 프롱 갱단 토벌은 2차 목적에 가깝다. 최우선 목적은 그녀의 딸이 프롱 갱단 놈들에게 빼앗긴 물건을 탈환하는 것이다.
런던 가드들이 갱단을 토벌하고 얻은 물건들을 시민들에게 돌려줄까? 일부는 돌려줄 것이다. 런던 가드도 이미지 메이킹을 할 필요가 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물건들은 전투에 의해 부서졌다고 발표하며 꿀꺽 삼키겠지.
'원래 이런 경우 런던 가드 쪽에 손을 쓰는게 더 빠르지만….'
상당한 돈이 깨진다.
라나 고메즈처럼 런던 가드 쪽에 인맥이 없다면 더 많은 돈이 깨진다. 라나 고메즈가 그런 조건을 건 이유를 알겠다.
"내가 부탁한 다른 정보는?"
"밀라 고메즈 말이지."
라나 고메즈의 딸.
"10년 전에 클리닉 일을 때려치우고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3년 전에 옷 가게를 차렸어. 감각이 좋은 여자야. 자기 자신을 잘 포장할 줄 안다고 해야 하나…?"
“그게 무슨 뜻이야?”
"알아보니 가진 재산이나 능력에 비해 시장에서 고평가 받고 있다는 거야."
"좋은 일 아닌가? 이쪽 업계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잖나."
“뭐, 그렇지. 의류 쪽은 포장이 중요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밀라 고메즈가 3개월 전에 프리우드 백작 부인의 파티용 드레스 제작 의뢰를 받았다는 거야. 밀라는 자기가 디자인한 드레스 제작을 디바인 프랑스에 있는 유명 공방에 맡겼고, 프리우드 백작 부인의 파티는 2주도 남지 않았어."
"……프롱 갱단에 빼앗긴 물건이 그 드레스인 모양이군. 밀라의 똥줄이 바싹바싹 타고 있겠군.”
"드레스의 값도 값이지만, 신용이 걸린 문제이기도 해. 드레스를 되찾지 못하고 제공하지 못한다? 그 여자는 프리우드 백작 부인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거야. 커리어가 끝장나는 건 당연하고 말이야. 아마 이 도시를 떠나도 순탄한 인생을 살진 못할걸?"
이 일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들은 나는 생각에 잠겼다.
원작과의 괴리가 좀 있었다.
'게임에서 라나 고메즈를 찾아가면 몇 가지 상호 작용으로 정보를 알 수 있지. 그중의 하나가 자기 딸과 의절했다는 말이었지. 지금은 의절하기 전이라고 보면 되나? 근데 왜 의절한 거지? 이번 일을 계기로? 라나 고메즈는 돈을 많이 벌어. 돈 관련 문제로 의절했다고 보긴 어려워.'
라나 고메즈와 밀라 고메즈. 그 모녀들의 사이를 끊어버리는 계기. 그게 무척 신경 쓰였다. 문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인지라 속 시원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어떻게 할 거야? 라나 고메즈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야?”
"네 의견은 어떻지?"
"내 의견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이 일의 당사자는 너야. 네가 선택해. 거절한다면 괜찮은 수복사를 소개해 줄게. 라나 고메즈 만큼 실력이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마법사에게 있어 마나 로드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기왕이면 확실한 실력의 수복사에게 맡기고 싶다."
“그래. 그럼 계획을 짜볼까?"
나는 놀란 눈으로 로즈를 바라봤다.
"도와주겠다고? 내가 요청한 건 정보뿐이다만."
“이럴 때 네게 빚을 달아둬야지. 아, 물론 돈은 받을 거야. 남들보다 싸게 해줄게. 필요 없으면 혼자 하시고."
“…네 도움은 감사히 받지."
계획을 짠 뒤에 라나 고메즈에게 바로 연락해 거래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적당한 자동차를 로즈에게 빌리고 네오 런던 밖의 북쪽 도로로 향했다. 런던 내에서는 마차가 기본이지만, 바깥에서는 차를 타든, 말을 타든 딱히 상관 없었다.
덜컹!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보니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운전 좀 똑바로 할 수 없어?"
조수석에 앉은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꼽을 줬다. 사이버 슈트를 입고 얼굴에 여우 가면을 쓴 여닌자, 인비저블 블레이드였다.
“황무지를 달리는 거니 어쩔 수 없다."
이번 일은 그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녀가 갱단 아지트에 잠입해서 드레스를 확보하면, 내가 정면에서 전격계 마법으로 갱단을 쓸어버린다.
'로즈가 붙여 준다는 잠입 전문가가 이 여자일 줄은 몰랐지.'
로즈의 의도는 뻔했다.
나와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같이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이가 좋아지기를 원하고 있을 거다. 인비저블 블레이드도 로즈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일 터다. 내가 로즈에게 낸 500만 크레딧으로는 절대로 인비저블 블레이드를 고용할 수 없을테니까.
'뭐… 로즈는 나와 인비저블 블레이드 사이에 있었던 일은 모르니… 이럴 수도 있는 거지.'
나와 인비저블 블레이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안다면 최대한 나와 그녀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을 것이다.
"속도 낮춰. 곧 첫 번째 포인트야."
"알고 있다."
차가 멈췄다.
나와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바로 차에서 내려 주변을 탐색했다.
"빙고.”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씨익 웃으며 말한다. 그녀가 보는 방향에 갱단 아지트가 있었다. 천막을 세우고 발전기를 설치하고 주위에 울타리를 쳐서 기지를 만들어 놨다.
"첫 번째 포인트에서 바로 발견할 줄이야. 운이 좋네."
"운이 좋다기보다는 로즈의 능력이 뛰어난 거겠지."
"초 치지 말아줄래? 그 여자는 또 왜 그렇게 과평가해?"
"냉정하게 평가하는 거다. 로즈는 네오 런던에서 손꼽히는 중개인이다. 능력도 좋고 신의까지 있지."
"X 구역의 중개인이? 혹시 둘이 붙어먹는 사이야? 그럼 이해되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을 앞둬서 그런지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반응이 유독 까칠하다.
'내게 2번이나 범해졌으니… 당연한가. 날 죽여버리고 싶겠지.'
내게 칼을 겨누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텔레스코프]
마법으로 시력을 높이고 아지트를 관찰했다.
"카메라가 많군. 중앙에 발전기가 있고… 저 안테나가 전파 차단기인가?"
"교란기야. 전파 차단은 물론이고 레이더에도 안 걸리게 해주는 물건이지. 군용이라 어마어마하게 비싼 장비인데…. 평범한 갱단은 아닌 것 같네.”
"유목민같은 갱단이라더군. 다른 곳에서 한탕하고, 여기서 한탕하고…. 어때? 잠입은 할 수 있겠나?"
"난 닌자야. 잠입은 내 전문이고."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까지 완전히 놓지 못했다. 잠입 임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보통은 전투 쪽이 더 힘들다고 말하지만….'
침입자를 대비하며 경계심을 잔뜩 올린 곳을 잠입하는 건 전투보다 힘든 일이었다. 실수로 발각되기라도 한다? 그때는 그냥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죽기만 하면 낫지.'
생포된다면 고문은 기본 옵션처럼 딸려올 것이다.
“감시 카메라가 많군. 카메라 대처 법은 있나?"
"내가 입고 있는 슈트에는 교란기와 비슷한 기능이 있어."
"비슷한 기능?"
"감시 카메라에 안 찍혀. 필름 카메라에는 찍히지만 요즘 시대에 그런 걸 쓰는 사람은 없잖아."
"…그 슈트. 대체 얼마나 많은 기능이 있는 거지?"
"비밀이야. 바로 시작할까?”
"지금? 밤이 더 낫지 않나?"
“뭔 소리야. 딱 봐도 지금 사람이 적잖아. 주력부대가 밖에서 강도짓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움직이는 게 더 나아."
“…과연. 자세히 보니 사람이 적군. 드레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잠입한 뒤에 찾아야 한다. 괜찮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야.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걸 놈들이 알고 있다면… 보안이 삼엄한 곳에 넣어뒀겠지. 가치를 모른다면 아무 창고에 대충 넣어 놨을 거고.”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귀마개를 건넸다. 귀마개를 받은 그녀는 눈을 찌푸렸다.
“이게 뭐야?"
“텔레파시 마법이 걸려있다. 귀에 착용해라. 여기서 상황을 보며 널 지원하지."
"흥. 나쁘지 않네. 다른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정보만 제대로 알려줘."
그녀는 귀마개를 끼고 빙 둘러서 아지트를 향해 뛰어갔다. 왜 돌아가는가 싶었더니, 순찰하는 갱단원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다.
-침입했어. 보여?
"보인다. 오른쪽 벽에 잠입한 이유가 있나?"
-여기 보안이 가장 취약해 보였으니까? 근처에 경비원 있어? 내 시선에 보이지 않는 곳에 말이야.
"없다."
그녀가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무척 빠르고 은밀했다. 얼마나 은밀한지, 나도 한순간이나마 그녀의 위치를 놓쳐버릴 정도다. 과연 닌자다.
'저 커다란 젖가슴을 달고 이렇게 민첩하게 움직이다니… 대단하군.
-창고에 도착했어. 냉장고랑 잡동사니가 많네? 옷도 있네. 비싸 보이는 건 없지만. 냉장고는 하, 씨발.
"왜 그러지?"
-비닐 포장된 장기로 가득 차 있어. 이 새끼들 사람까지 아주 알차게 뽑아 먹는데? 어쩐지 부유한 냄새가 난다고 하더라니… 쓰레기 중의 쓰레기 놈들이었잖아.
장기매매에 손을 뻗은 놈들은 갈 때까지 간 놈들이다.
‘도시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있었군. 아니, 들어오지 못한다고 해야겠지. 이놈들은 너무 과격해. 기존의 갱단이 질서를 파괴하는 놈들을 환영할 리도 없고, 놈들의 행태를 알면 런던 가드들도 전력을 다해 토벌하려고 하겠지.'
그녀가 창고를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네 기준으로 오른쪽. 한 명이 다가간다. 근처에 잠깐 숨는 게 좋을 것 같군.”
-아. 여기 옷장 진짜 뭣 같은 냄새가 나. 차라리 네 똥 냄새가 더 향기로울걸?
“말 좀 예쁘게 할 수 없나? 외모가 아깝군."
-내가 좀 예쁘긴 해. 놈이 갔어. 움직일게. 저기 하얀 컨테이너 보여?
"발전기에 가려져서 자세히는 안 보인다."
-입구에 의자에 앉은 놈이 컨테이너를 지키고 있어. 몸의 절반을 기계로 떡칠한 놈인데…. 저건 우회할 방법이 없어. 정면으로 돌파해야 해. 컨테이너 입구에 도어락까지 달아났네?
"도어락? 해킹도 할 수 있나?"
-못해. 그래도 상관없어. 저놈에게 물어보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