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3화 > 1463. 다크문
"음."
흑마나가 담긴 칩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뭔가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마도 공학을 연구하는 중이긴 한데 칩을 단숨에 알아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자신 있는 건 마도공학의 마도 부분이지, 공학 부분은 전혀 모르겠다. 이건 흑마법 보다는 공학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럴 때는 괜히 내가 판단을 내리는 것보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고 확실하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괜찮은 메카닉을 찾아가거나, 중개인에게 의뢰를 하거나.
'다행히도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근처에 있지.'
칩을 들고 초월주의자 고대 유적으로 향했다.
"하하. 자네 정말 화끈하게 싸우더군. 마법으로 레일건을 쏘는 마법사를 보는 건 자네가 처음이네. 왜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하는지 물어봐도 되나?"
고대 유적에 들어서자마자 바르카세의 말이 들렸다.
"비효율적이라고?"
"레일건은 마법이 아니어도 사용할 수 있지 않나? 대표적으로 R675 라이플이 있지."
“그거 군용이잖아. 그것도 군대가 편집증으로 관리하는 물건 중 하나. 구하기 어렵고, 구한다고 해도 쓰는 순간 특수부대가 나타나 끌고 가겠군.”
"흐음. 요즘은 그런가? 나 때는 레일건쯤은 하나씩 장비하고 다녔다만."
"재밌는 시대였군.”
"여러 가지로 엿 같은 시대였네."
나는 복도를 걸어가며 손에 쥔 칩을 들어 올렸다. 작은 칩에서 흑마나가 줄줄 새어 나왔다.
"부탁 하나만 하지. 괴물 몸속에 있던 칩이다. 해석해줄 수 있나?"
"어렵지 않은 부탁이군. 들어주겠네. 나도 그 칩에 대해선 흥미가 있다네."
안으로 들어왔다. 벨 테리어는 여전히 캡슐 속에서 조정을 받고 있었다. 바르카세의 홀로그램이 옆에 나타나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벽 아래쪽 흠이 보이나? 저곳에 칩을 넣어두게. 일단 스캔부터 한 뒤에 접속해 보겠네."
나는 칩을 던졌다. 칩은 흠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갔다. 칩이 흠에 들어가기 직전에 염력을 이용해 조심히 내려놓았다.
"와우. 마법사답지 않은 실력이로군."
"내가 뭘 던지거나, 맞추는 걸 잘하지."
“잠시만 기다리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의자에 앉았다. 할 게 없었기에 캡슐에 들어가 있는 벨을 바라봤다. 내가 설정한 캐릭터답게 몸매는 뛰어났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기계 팔과 다리. 눈을 달고 있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군. 편하려나?'
그렇다고 기계를 몸에 달 생각은 없었다.
마나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마법사에게 기계는 방해물에 가깝다. 마법사에게 중요한 건 마나의 밸런스인데, 신체 일부를 기계로 바꾸면 그 밸런스를 깨버리는 것이다. 기계로 밸런스를 잡으면 안 되냐고? 그 정도 기계쯤 되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 그리고 조정도 빡세다. 장인 수준의 메카닉에게 주기적으로 조정을 받아야 한다. 내가 볼 땐 마법사에게 기계는 단점밖에 없었다.
“결과가 나왔네. 재미있군. 내가 알고 있는 칩과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해."
"위험한 건가?"
"위험하지. 자네, 뮤턴트칩이라고 아나?"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모르는 척을 하는 게 더 이득인가? 이것저것 따지던 나는 그냥 아는 척하기로했다. 바르카세의 설명을 듣기 귀찮았다.
"…공허주의자가 공허 에너지를 더 쉽게 받아들이기 위해 만든 바이오칩으로 알고 있다. 육체가 공허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쉽도록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거지."
“정확히 알고 있군. 자네가 가져온 칩은 뮤턴트칩과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하네. 차이가 있다면 공허 에너지가 아닌 흑마나로 만들었다는 거지."
"흑마나에 걸맞은 육체로 변이시키는 건가?"
나는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무언가 틀어졌다는 걸 느꼈다. 내 원작 지식에는 이판 물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닐세. 흑마나는 뮤턴트칩의 변이를 가속 시키는 역할이네."
"공허 에너지는 쏙 빼고 육체를 변이시키기 위한 칩인가.. 카발라 연구소와 관련되어 있다면 무슨 목적일지 뻔하군.”
카발리아 인더스트리 산하의 카발리아 연구소는 여기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 카발리아 연구소가 하는 것은 생체 실험이다. 지역 곳곳에 있는 동물들을 잡아 생체 실험을 진행한다. 물론 그 동물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카발리아 인더스트리가 바이오 분야의 1위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건 모두 카발리아 연구소 덕택이라 할 수 있다.
'식품 분야에서도 어마어마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
닭, 돼지, 소 등 가축을 클론으로 만들어 유통하는 것이다. 싼 가격과 어마어마한 물량으로 밀어붙이니 식품 시장을 지배할 수 밖에 없다.
'이 새끼들은 과거에 인간도 찍어내던 놈들인데….'
전설이라 불리는 어느 전설적인 군인의 클론으로 최고의 군대를 만든다는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가축과 달리 인간은 최소 10년 이상의 성장 기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그 전설적인 군인의 전투 재능이 클론들에게 발현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그 재능 일부를 발현한 클론이 있긴 하나, 역시 원본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정밀 분석으로 내용을 살펴보니 이 칩의 이름은 다크칩이라 불리는 모양이군. 이 칩은 어떻게 할 건가?"
“카발리아 연구소의 물건이라 하면 관심 있는 놈들이 많을 테니, 중개인을 통해 판매할 생각이다. 돈 좀 만질 수 있겠지."
"직접 사용할 생각은 아니겠지?"
"머리에 총 맞아도 안 한다."
“그거 다행이군. 다크칩에는 방향성이 없네. 어떻게 변이할 줄 아무도 모른다는 거지. 다크 문의 영향을 극대화하여 변이목적만을 위해 만든 칩이네."
"분석은 고맙군.”
나는 칩을 회수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녀를 기다릴 셈인가? 아무 관계도 아니라 하지 않았나?"
“인사는 하고 떠나야지. 그녀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녀의 몸을 보는 게 목적은 아니고?"
"……."
그녀의 캡슐이 열렸다. 후다닥 캡슐 밖으로 나온 벨은 바로 옷가지부터 집어 들었다.
“저기 말이야. 눈 좀 치워주지 않을래? 그게 매너잖아."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실례했군.”
바로 몸을 돌려 벽을 바라봤다. 이미 볼건 다 봤으니 미련은 없었다.
“기분은 어떤가? 어디 아픈 곳 있나?"
"나쁘지 않아. 오히려 최고야. 내 몸이 이렇게 가벼워질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에서야 알았어. 고마워, 바르카세 씨."
"간단한 일이었네."
이후 그들은 기계에 대해 말했다. 특히 기계 눈에 대해 심도 있게 말했는데… 너무 전문적인 내용인지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초월주의자들의 시설은 이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네. 정확한 위치는. 알려줄 수 없군. 나도 모르거든. 하하. 초월주의자들의 시설들은 모두 자네들에게 도움이 될 걸세. 그러니 시간이 되면 찾도록 하게."
"…우린 초월주의자가 아니다만."
"내 눈에는 자네들은 이미 초월의 길을 걷고 있네. 초월주의자는 별거 아닐세. 자격을 갖추고 초월의 길을 걷는다면… 그게 초월주의자라는 거지. 자네들이 부정해도 상관없네. 나는 자네들을 초월주의자로 대할 걸세."
"바르카세 씨. 그냥 지금까지 외로웠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
"하하. 부정할 수 없구먼. 내년에도 마나 샤워를 받으러 오게. 노폐물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쌓이니 주기적으로 정리하는게 좋네. 특히 도시에선 더 빠르게 쌓이지."
"다음에도 또 올게. 그때도 조정 좀 해줘."
“기회가 되면 또 오지.”
벨과 나는 바르카세와 인사를 하고 고대 유적을 나왔다.
바르카세가 이렇게 환대해줄 줄은 몰랐다.
'원작에서는 퀘스트를 통해 차근차근 관계를 진전해야 했는데….'
나는 벨과 함께 산을 내려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 고릴라 괴물이 되살아나 습격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죽은 걸 확인 했는… 아, 젠장. 오늘 다크 문이지? 말이 되네."
"놈의 몸에서 다크 칩을 얻었다. 이건 내 거다. 카발리아 연구소의 물건이니 비싸게 팔 수 있겠지."
“그거 몇 개 얻었는데 다크 칩이라고 하는구나."
다크 칩에 대해서 말해줬다.
“…워. 팔면 비쌀 것 같긴 하네."
"팔 생각이 없나?"
"일단 난 좀 더 조사해볼 생각이야. 도시에 이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동료가 있거든. 아니다 싶으면 카발리아를 싫어하는 놈들에게 팔면 그만이고.”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 보니 마을에는 빠르게 도착했다.
“여기서 헤어지자. 메일 주소 좀 알려줄래? 나중에 연락할게. 오늘 일은 잊지 않을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급한 일이 없으면 최우선적으로 도와줄 테니까."
“바로 떠나겠다고? 해가 뜨려면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위험할 텐데."
"바이크를 타고 왔어. 밀입국한 거라 열차를 못 타거든. 다크 문은 괜찮아. 싸우지 않고 피하는 거에 집중하면 돼."
“그래.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라. 도와주지. 단, 공짜는 아니다. 난 네게 진 빚은 없으니까."
메일을 교환했다. 그녀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걸. 초월주의자 덕분에 몸도 좋아지고, 실력 좋은 마법사와 안면도 텄고 말이야. 낮에 분수에 던진 동전들이 행운을 불러왔나 봐?"
"그럴 지도."
벨은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바이크를 타고 마을을 떠났다.
나는 역 앞에 있는 벤치에 멍하니 앉아 검은 달을 올려다봤다. 날이 밝고 첫 열차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다크 문이라 호텔도 영업 안 하겠지. 마을을 떠나기 전에 적당한 방을 빌려두는 건데… 실수했군.'
머릿속으로 마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지직.
노이즈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무시했다.
지지직.
두 번의 우연은 없다. 나는 눈에 힘을 주며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어두운 골목길.
그곳에서 새하얀 무언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순식간에 10m의 거리를 좁혔다.
하얀 원피스, 백발에 가까운 머리카락, 창백한 피부. 비쩍 마른 팔다리. 간단히 말해서 귀신이었다.
'다크 문이라 그런지, 별게 다 튀어나오는군.'
눈을 깜빡인다.
귀신은 한순간에 가까워졌다. 일부러 눈을 연속으로 깜빡거렸다. 귀신은 어느새 내 코앞에 나타나 비명을 지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입은 상어의 입처러 벌어졌다. 수백 개에 달하는 작은 이빨들이 입안 전체에 박혀 있었다. 덤으로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닥쳐."
내 머리를 씹으러 달려드는 귀신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마법을 사용했다.
[라이트닝 그랩]
파지지지지직!
내 손에서 발생한 시퍼런 전류가 귀신의 몸을 감전시켰다.
"끼아아아아아아악!"
귀신은 귀에 거슬리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몸은 입자로 변하여 사라졌다.
다시 마법을 생각하며 멍이나 때리려 했던 나는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역의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붉은 눈의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철도 쪽에 있는 혐오스러운 고깃덩어리, 매점 쪽에서는 거꾸로 된 여자가 거미처럼 기어 오고있다.
"하, 지루하지 않게 해주는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나가 마나 로드를 타고 질주한다. 손가락 끝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그래, 한 번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