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461화 (1,456/1,497)

< 1461화 > 1461. 다크문

"오직 초월만이 우리의 궁극이다."

지이이이잉.

문이 열렸다.

나는 거침없이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갔다. 벨은 깜짝 놀라 내 뒤를 바짝 뒤쫓는다.

복도는 우리가 들어오자마자 불이 켜졌다. 새하얀 통로는 앞으로 쭉 이어졌다. 문의 위치를 생각하면 지하를 향해 내려가는 게 분명한데, 복도는 완벽한 수평으로 되어 있어서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초월주의자? 난 그런거 처음 들어보는데?"

"높으신 분들은 초월주의자의 사상을 위험하다 판단 내리고 정보 통제를 시작했다. 정보가 묻히니 관심이 사라졌고, 결국은 높으신 분들마저 잊어버렸다."

"정보 통제야 흔한 일이지. 근데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이 정도 건물을 소유할 정도의 인간들이 통제당하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고?"

“초월주의자들의 수는 적었다. 정보를 통제하는 것?초월주의자들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으니까. 그들에게 중요한 결국 자신의 초월뿐이다."

“초월이 뭔데. 내가 알고 있는 그거야? 7급을 넘어서서 인간 외의 괴물이 된다…. 뭐, 그런 거?"

이 세계에선 흔히들 7급을 초인의 경지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게 있다. 이 세계의 등급은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척도에 가깝다.

“초월주의자들의 초월은 그런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자신만의 이상에 도달하는 걸 초월이라 한다."

“애매한 사상이잖아. 그런 게 뭐가 위험하다는 거야. 하여간, 그놈들은 제 마음에 안 들면 죄다 통제하고 없애려 한다니까….”

"위험했다. 초월주의자들 세력에는 정말로 초월을 이룬 자들이 있었으니까."

"그건 또 흥미가 돋네."

복도를 걷는데 벽이 나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벽 옆에 달린 패드로 손을 옮겼다. 패드가 켜지고 암호를 입력하라는 란이 나온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기억을 더듬었다. 여기 암호가 뭐였더라?

'원래는 초월주의자 관련 퀘스트를 수행하며 단서를 찾고 암호를 유추하는 거였는데…. 난 머리 쓰기 싫어서 별 고민 없이 인터넷에 검색했지.'

인터넷에 검색하고 10초 만에 알아낼 수 있었다.

'분명히 697852 였나?"

입력했다.

격벽이 열린다. 다시 긴 복도가 이어졌다.

"근데 초월을 이뤘다면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었다는 거 아니야? 난 왜 못 들어봤지?"

“초월을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초월을 이뤘다고 해서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는 건 아니다. 그런 초월을 바라는 초월 주의자들이 있었지만… 전부 실패했지."

"성공한 초월자에 대해 말해봐. 궁금하네."

"네가 이해하기 쉬운 초월은… 그렇군. 기계 초월이다."

“기계 초월? 나약한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우월한 기계를 몸에 달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놈들?"

“사이버 영혼이라고 아나?"

"모를 리가. 영혼을 데이터화 시켜 사이버 세계에 넣는다는 얘기잖아. 관련 프로젝트도 찾아보면 몇 있을걸? …기계 초월은 설마."

"맞다. 그게 기계 초월이다. 다만, 초월주의자들은 거기에 몇 가지 조건을 더 걸었다. 그중 하나는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자아를 온전히 유지해야 한다는 거지.”

"성공한 초월자를 말하는 거지? 네 말은 사이버 영혼이…. 아니, 사이버 세계의 신이 존재한다는 말이네?"

“사이버 신과는 다르다. 사이버 영혼이 되었다고 해서 사이버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아까부터 줄곧 궁금했던 건데… 넌 왜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거야?"

게임에서 봤으니까. 라고 할 수는 없었다.

"고대 쪽에 관심이 있어서. 마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군. 초월, 공허, 인류…."

"응?"

"고대에 있었던 사상주의자들이다. 종교에 가깝지. 공허주의자들은 너도 알지?"

"다크 문의 원인이 공허에 있다고 주장하는 놈들 말이지? 하, 그 새끼들은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네. 씨발. 그놈들 때문에 2번이나 사경을 헤맸어. 근데 인류는 또 뭐야?"

“……다크 문은 초월의 수단일 뿐이다."

"응?"

"다크 문을 숭배하라, 공허의 문은 다크 문에 있다."

"……."

"언젠간 저 다크 문도 우리가 지배할 것이다."

게임사가 초월, 공허, 인류 주의자들을 소개할 때 사용한 슬로건이다. 이쯤 되면 알겠지만,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사상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선택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선택하면 새로운 능력이나, 퀘스트가 추가되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장점만 있는 건 아니고, 단점도 있다.

"음. 뭐, 대충 알겠어. 근데 그거 외우고 다녀?"

"나도 우연히 알게 된 거다. 인상이 깊어서 저절로 외우게 되더군. 그리고 이것만큼 그들을 잘 표현해주는 건 없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사이버 영혼이라면 말이야. 함부르크 이노베이션을 지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 도시의 사이버 세계는 지나치게 넓으니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다만, 관심 있으면 직접 물어봐라."

도착했다.

이번에는 암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이 저절로 문이 열렸다.

넓은 공간이 나왔다. 내부는 깔끔하고 깨끗했다. 그리고 고대 유적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었다.

팟.

우리 앞에 홀로그램 인간이 나타났다.

“어서 오게, 젊은 초월주의자들이여. 나는 72대 초월 인도자인 바르카세라고 하네."

하얀 가운을 걸친 금발 남자였다. 앞머리를 전부 뒤로 넘긴 올빽 머리에 안경을 썼다. 누가 봐도 의사나 연구원처럼 보이는 외모와 분위기였다.

“인공지능…? 아니, 인공지능 같은 느낌이 아니야. AI 특유의 딱딱한 느낌이 없잖아."

"하하. 자네들은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게 아니었나?"

"…사이버 영혼."

"격세지감이 느껴지는군. 네트워크의 기생충이란 말을 들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야."

나는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면서 바르카세에게 물었다.

"우리 대화를 들었나?"

"엿들을 생각은 없었네. 이 건물 자체가 내 하드웨어라 할 수 있다 보니… 자연히 듣게 되더군."

공간은 원작과 똑같았다. 바르카세가 나타나는 것도 똑같다. 공간 안에 있는 기계 부품들을 뜯어간다? 그럼 돈 좀 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바르카세를 적으로 돌리게 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그게 더 손해다.

"그럼 말하지 않아도 알겠군. 우린 초월주의자가 아니다."

“나도 처음부터 초월주의자가 아니었네."

"초월주의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옛날 생각나는군. 초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말일세. 나는 초월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그게 상식이니까. 하지만 보게. 결국, 나는 초월을 이루었네."

“네트워크의 기생충이 될 생각은 없다만."

"하하. 까칠하군. 초월의 방향이 하나만 있는 게 아남님을 자네도 알지 않나?"

"우리에게 호의를 보내는 이유가 뭐지?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인간이 반가워서 아니야?"

벨이 끼어들며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주변을 돌아다니며 돈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물론 그런 건 없었기에 그녀의 표정은 안 좋아졌지만.

"자네들이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지.”

"난 운전 면허 말고는 자격증 같은 거 한 번도 딴 적 없는데.”

주위를 전부 둘러본 벨이 툴툴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초월의 자격. 자네들은 그 자격을 갖추고 있네."

"…바르카세 씨? 좀 더 쉽게 말해주면 안 될까? 난 옆에 있는 마법사와 달리 초월이니, 초월주의자이니 죄다 처음 듣는 말이거든."

"간단히 말해서 초월을 이룰 수 있는 재능을 말하네. 자네의 경우엔 육체가 특별하고, 자네 파트너는 마나의 축복을 받고있군. 어느 쪽도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지.”

"……."

"……."

나와 벨을 입을 다물었다. 나는 단순히 할 말이 없어서 다물었다면, 벨의 경우엔 놀라서 그런 거겠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게. 나는 자네들을 해칠 생각이 없어. 오히려 자네들을 도와줄 생각일세. 자네들이 동의한다면 말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내심 기뻐했다. 그를 설득해야 한다는 귀찮은 문제가 사라진 것이다.

"뭘 어떻게 도와준다는 거야?"

벨이 물었다.

바르카세는 양옆으로 손을 뻗었다.

"저 캡슐과 이 캡슐을 이용해서 도와주겠네. 뭐,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전부네만."

“저 캡슐이 뭔데."

“마나 샤워기일세. 몸에 쌓인 노폐물을 빼내고, 체내를 안정화시키는 거지. 그 외에도 육체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거나, 약간 조정할 수도 있네. 초월주의자들은 모두가 마나 샤워를 원하네. 이게 한번 하고 나면 개운한 맛이 끝내주거든."

"하. 저런 수상쩍은 물건에 내가 들어갈 것 같아?"

벨이 못 믿겠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에겐 꼭 필요할 텐데?"

"저런 거 받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어."

"육체와 기계의 조정도 가능하네. 자네 몸에 붙어 있는 기계들을 최적화시켜주겠네. 웬만한 메카닉에게 조정받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라는 걸 약속하지. 특히 자네는 심장 쪽이 문제이지 않나?"

“……이 심장에 대해 알고 있는 거야?"

“자세한 건 확인해봐야 아네."

"……."

벨이 고민에 빠진다.

그녀의 심장에 대해선 내가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내가 말해줘도 덥석 믿을 리가 없다. 그리고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

"자네는 어쩔 텐가?"

바르카세가 내게 물었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한다."

원작에서 마나 샤워를 받으면 최초에 한해 능력치 일부가 영구적으로 상승한다. 최상급 영약을 먹는 거나 다를 바 없는 효과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는 마나 로드를 전부 수복한 뒤에 오려고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나도 하겠어. 내 몸에 대한 정보는 자세히 알려줘. 특히 심장에 대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네."

푸슉.

캡슐이 열렸다.

“그럼 옷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게. 나머지는 전부 내가 하겠네."

"옷을 벗고? 설마 여기서 알몸이 되라는 거야?"

“문제라도 있으신가?"

"아니, 그건…."

벨이 나를 힐끔거린다. 내게 알몸을 보이기 민망한 모양이다.

"소녀적인 부분이 있었군. 문밖에 나가 있어라. 나 먼저하고, 다음에 네가 하면 되겠지."

"누가 소녀라는 거야? 하, 잠깐 놀랐을 뿐이야. 알몸을 보이는 게 뭔 대수라고."

그녀는 발끈하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옷을 전부 벗고 캡슐로 들어갔다. 캡슐 문이 닫힌다. 캡슐 문은 투명했기에 밖에 있는 그녀가 보였다. 물론 그녀 또한 나를 볼 수 있다.

'몸매가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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