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460화 (1,455/1,497)

< 1460화 > 1460. 다크문

"벨 테이어…."

이름을 곱씹으며 기억을 뒤진다. 떠오르지 않는다. 원작 게임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게임이다.

'내가 만든 캐릭터와 모습만 같을 뿐인가?'

“내 이름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난 네오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지도 않거든."

"…혹시 함부르크 이노베이션에서 왔나?"

함부르크 이노베이션

디바인 프랑스와 네오 런던과 같은 도시 국가다. 다만, 그 영토나 인구수는 다른 도시 국가에 비해 작은 편이다. 그러나 함부르크 이노베이션이 보유한 기계화 기술만큼은 전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다.

육체를 기계로 바꾸고 싶으면 함부르크 이노베이션으로 가라. 라는 말이 떠돌 정도다.

“오. 날카로운걸? 어떻게 알았어? 겉모습만으로는 알아차리는 걸 불가능할 텐데."

“그 기계 눈을 보고 추측했다. 그 정도 물건은 함부르크 이노베이션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 테니까."

사실은 내가 만든 캐릭터 '짜파구리'의 시작 지점이 함부르크 이노베이션이라 한 번 떠본 것이다.

얼굴, 몸매, 목소리, 성격. 내가 설정한 캐릭터 판박이다. 게다가 출신지까지 같다. 그녀는 내가 만든 '짜파구리'가 확실했다.

신기하다.

모니터를 통해서만 보던 내 캐릭터가 나를 마주 보고 있는 건 무척 신기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그녀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몸을 돌렸다. 그녀는 내가 만든 캐릭터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가? 넌 내가 만들었으니, 이제 넌 내 거다. 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세계에서 그녀는 그녀만의 삶을 살아간다.

나는 분수를 향해 동전을 던졌다.

"잠깐. 네 이름은 안 가르쳐줬잖아. 이럴 거야?"

"…유진 마이어.”

“유진 마이어. 음. 기억했어. 좋은 이름이네."

"입력한 게 아니고?"

“뇌까지 기계로 바꾼 건 아니야. 팔, 다리, 안구만 기계로 바꿨어. 아, 심장도 포함해야 하나? 아니지, 그건…. 하, 내가 왜 처음보는 네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

6번째 동전이 분수 안으로 풍덩 들어갔다.

“여기까진 뭐하러 온 거지? 일인가?"

“개인적인 일이야. 신경 쓰이는 정보를 하나 얻었거든.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어. 이해하지?"

“그래."

아마도 그녀의 개인 스토리와 관련된 일이겠지.

원작 게임의 플레이어 캐릭터는 출신지와 직업 등으로 스토리가 달라진다. 그녀의 스토리는….

'알아서 하겠지.'

나와 그녀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다시 그 점을 상기하며 마지막 7번째 동전을 던졌다. 게임 속에서는 분수에 동전을 7번 던지면 일시적으로 행운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내 눈앞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버나 봐? 분수에 돈을 버릴 거면 나한테도 돈 좀 주지."

"나는 돈을 버린 게 아니다. 행운을 샀다."

"70 크레딧으로 말이지? 그 정도면 괜찮은 식당에서 한 끼 할 수 있는 돈이야.”

“행운이 있으면 그것보다 더 벌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 난 그런 말 안 믿어 …너 혹시 점술사야?"

“갑자기 신뢰가 확 생기네. 70 크레딧… 나도 한 번 해볼까? 근데 꼭 70 크레딧이어야 해?"

“1크레딧 동전이든, 10 크레딧 동전이든 7개면 된다."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그녀는 1크레딧 동전을 분수를 향해 던졌다. 나는 그녀를 지나쳐 마을 밖으로 나갔다. 슬슬 해가 지고 검은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을은 유령 도시처럼 조용했다. 모두가 집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을것이다.

[레비테이션]

마법을 사용했다.

몸이 위로 떠오른다. 남쪽에서 4번째로 큰 산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가는 건 마냥 편하지 않았다. 다크 문의 영향을 받아 흥분한 검은 갑각 독수리들이 내게 미친 듯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일렉트릭 웹]

날아드는 놈들은 전기 채찍으로 쳐냈다. 바싹하게 구워진 검은 갑각 독수리들은 바닥으로 추락해 다른 동물과 몬스터의 먹이가 되었다.

30마리 정도 죽였을까.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위치를 가늠한다.

'내려오기 전에 절벽을 봤다. 그쪽으로 가야 한다.'

쿠웅!

심장이 큰 소리를 내며 멈췄다.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나를 이용해 심장을 억지로 움직였다.

'빌어먹을. 시작부터 심장 마비 현상이냐….'

하늘에 뜬 다크 문을 노려봤다.

지역마다 다크 문이 뜬 날에 각각 다른 상태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 네오 런던 시외구역에서는 심장 마비, 랜덤 질병, 반신불구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이 지나면 상태 이상 현상은 사라지고 원래대로 돌아온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상태이상 현상이 또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거다.

5분 정도 지나자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마나를 이용해 억지로 심장을 뛰게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것만으로 꽤 편해졌다.

절벽이 나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수직으로 깎여 있는 절벽이 보인다. 절벽 아래쪽은 어둡고 깊어서 끝이 안 보인다.

'내려갈 일 없으니 괜찮다.'

절벽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마나의 흐름이 바뀌며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 상태에선 아무리 나라도 마법을 쓰긴 힘들었다. 내가 절벽을 향해 바로 날아오지 않은 이유였다.

'제대로 찾아왔군. 자, 그럼….'

주위를 둘러본다. 절벽 끝에 피어있는 은은한 파란색 꽃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이 세상에는 다크 문이 떴을 때만 피는 식물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눈앞에 있는 파란 꽃, 블루 디스토션이다.

마나를 왜곡하는 능력이 있는 꽃이다. 꽃이 피었을 때만 채집해야 한다. 꽃이 피지 않았을 때는 평범한 잡초나 다를 바 없다.

나는 코트에서 상자를 꺼냈다. 블루 디스토션의 꽃잎을 떼서 준비한 상자에 담는다. 이 꽃은 이름 그대로 마나를 왜곡하는 능력이 있다.

'부서진 마나 로드를 수복할 때 반드시 필요한 재료 중 하나지.'

다크 문, 그것도 산 깊숙한 곳에서나 피다 보니 가격도 무척 비싸다. 암시장에 팔면 한 몫 두둑히 챙길 수 있다.

'한 뿌리만으로는 부족하지.’

나는 절벽 쪽을 바라봤다.

‘세모난 바위 앞에 있는 절벽… 저기군.'

후우.

한숨으로 긴장을 털어내며 절벽으로 향한다.

마음을 다잡고 오른쪽 발을 들어 절벽을 향해 뻗었다. 발은 절벽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바닥에 올라섰다.

'…다행히 성공했다. 역시 선행 퀘스트를 깨지 않아도 되는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저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검은 달과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무시하고 절벽을 향해 걷는다.

‘7366. 7366. 7366.'

숫자를 반복해서 외우며 앞으로 걸어간다. 정확히 7걸음에서 다리를 멈췄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시커먼 절벽 아래가 보인다. 저기에 떨어지면 분명 즉사하겠지.

'오른쪽으로 3걸음.'

뚜벅뚜벅뚜벅.

'왼쪽으로 6걸음. 오른쪽으로 6걸음.'

마지막 걸음을 무사히 내디딘 순간, 허공에 문이 나타났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 손잡이를 잡고 밀었다.

3평짜리 공간이었다.

파란 하늘, 산뜻한 공기, 촉촉한 땅.

그곳에는 블루 디스토션이 한 무더기로 피어있었다. 어림잡아도 100 송이는 되어 보인다.

'성공이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쪼그려 앉았다. 블루 디스토션의 꽃잎을 한 장, 한 장 채집한다.

'어느 정원사의 비밀 정원.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다크 문이 떴을 때만 들어올 수 있는 비밀 공간이지.'

보는 것과 같이 이곳에 오면 블루 디스토션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 다음에 다시 올 수 있으나, 블루 디스토션은 없을 것이다.

블루 디스토션을 전부 채집한 나는 문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허공 위였다. 하지만 마나의 흐름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마나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인 블루 디스토션을 전부 내가 채집했기 때문이다.

[레비테이션]

허공을 날아서 산에 착지했다.

고민에 빠졌다.

여기서 바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걸 얻으러 가느냐.

'돌아가자. 기회는 오늘만 있는 게 아니야. 우선 돌아가서 마나 로드를 전부 수복하고 다음 다크문이 뜬 날에 다시 찾아온다.'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나는 미련을 뒤로 하고 허공에 몸을 띄웠다.

콰아앙!

폭발음이 들렸다.

허공에 멈춘 나는 폭발음이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위치는 공터가 있는 산의 오른쪽 산. 숨겨진 고대 유적지가 있는곳이다.

'……텔레스코프.'

마법으로 시력을 강화했다.

저 먼곳을 내려다본다. 몇 시간 전에 마을 분수 앞에서 만났던 벨 테이어가 디로이드와 싸우고 있었다.

디로이드.

인간에게 반기는 든 로봇들.

네오 런던의 귀족과 시민들은 트라우마 수준으로 디로이드를 혐오한다. 네오 런던은 한때 디로이드의 반란으로 인해 나라가 멸망할 뻔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네오 런던이 빅토리안 시대의 문화와 비슷해 진 것도 디로이드의 영향 때

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벨이 불리해 보이는군.'

그녀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녀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그녀는 저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어야 하니까.

벨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며 마법 술식을 준비한다.

파지지직.

번개의 마나가 하늘로 치솟으며 뭉친다.

강철의 몸과 강철의 피부를 가진 디로이드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두 개의 붉은 렌즈가 빛을 발하며 나를 포착했다.

그 앞에서, 벨은 빠르게 기동하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디로이드의 머리를 노리지만, 유의미한 피해를 주진 못한다.

"마법사 발견. 5급으로 추정. 타겟 우선 순위 변경. 인간을 제거한다."

디로이드가 나를 향해 팔을 들어 올렸다. 철컥철컥. 팔이 총구로 변하며 내게 겨누어진다. 총구 끝에 에너지가 모여들고 쏘아지려는 찰나.

[썬더 볼트]

그보다 한발 앞서 거대한 벼락이 디로이드를 향해 떨어졌다.

주변은 대낮이 된 것마냥 번쩍 밝아졌다. 디로이드는 땅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기계 놈들에겐 전격계 마법이 잘 먹히는군.'

바닥에 내려섰다. 손등으로 땀을 뒤닦으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가 날 지긋이 바라봤다.

"괜한 참견이었나?"

“…아니,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저 디로이드 놈은 철갑탄이 아예 안 박혀서 곤란한 참이었거든."

나는 그녀의 뒤를 바라봤다.

전투의 영향으로 엉망이 된 땅에 지하로 향하는 기계문 만큼은 온전하게 위치해 있었다.

"아, 이건 내가 우연히 찾은 고대 유적이야. 디로이드 놈들과 관계없으니 걱정하지 마. 온갖 개지랄을 떨어도 저 문은 안 부서지더라고. 혹시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아? 마법사잖아.”

"안다."

"…진짜? 그냥 한 번 물어본 건데…. 좋아. 그럼 좀 도와줘. 여기서 얻는 건 반으로 나누자. 이건 내가 찾았으니 절반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나누기 전에 안에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지."

“그것도 그렇네.”

나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의 바로 앞에 섰다. 나는 문에 새겨진 마크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연꽃을 닮은 문양이다.

“저 문양이 뭔지 알고 있어? 검색해 봤는데 안 나오더라고."

"초월주의자들의 문양이다."

“초월주의자? 그게 뭐야? 초인을 말하는 거야?"

“아니."

나는 문을 보며 말했다.

"오직 초월만이 우리의 궁극이다."

지이이이잉.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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