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450화 (1,445/1,497)

< 1450화 > 1450. 다크문

여닌자가 던진 물표창은 필립의 몸에 닿지 못했다. 푸른색 배리어가 필립의 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표창은 배리어에 닿자마자 증발하듯 사라졌다.

지지지직.

배리어를 타고 전류가 흐른다.

'배리어에 뇌속성을 부여한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마법이 아니군.'

나는 사전에 로즈에게 받은 정보를 떠올렸다.

쥬피트레인.

5세대 전까지만 해도 쥬피트레인은 네오 런던에서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초능력으로 이름 높은 귀족이었다. 주로 유전되는 초능력은 염력과 번개 조작, 텔레파시다. 하지만 5세대 전부터 피를 통해 이어지던 초능력이 사라졌다. 그 후로 서서히 몰락했고, 약 100년 전에 귀족의 작위도 박탈당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정확한 정보가 없었지만…. 피가 열어진 탓이겠지."

피를 관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대가 지나면서 옅어질 수밖에 없다. 노려볼만한 건 격세 유전인데… 필립 쥬피트레인이 격세 유전으로 각성한 초능력자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초능력을 숨기고 있었거나, 최근에 초능력을 각성했거나. 내가 볼 때는 후자. 이 실험실과 관련 있을 것 같은데.'

마법사의 실험실 같으나, 정작 필립은 마법사가 아닌 초능력자다. 그럼 이 실험실의 목적은 무엇일까? 마법사로서 호기심이 일었다.

“저기 말이야. 왔으면 구경만 하지 말고 좀 도와주지 않을래?"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내게 말을 걸었다. 쏟아지는 번개 줄기를 쉬지 않고 피하면서 잘도 말한다. 출렁이는 풍만한 가슴에 시선이 간다. 사이버 슈트라 젖꼭지의 모양은 안 보이지만, 유방의 융기는 확실하게 보였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그녀에게 보조 마법을 걸었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아이언 바디]

몬스에게 걸어줬던 보조 마법 3개. 신체를 이용해 싸우는 그녀에게 도움이 돌 것이다. 하지만 보조 마법 3개는 그녀의 육체에 깃들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 지금 보조 마법을 걸어준 거야?”

"…일부러 거부한 게 아닌 건가?"

“미안해. 내 슈트가 좀 특별해서. 저주 계열 마법이나 주술을 잘 막거든. 반대로… 축복 쪽도 튕겨내서 문제지만."

그저 음란하기만 슈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외에도 다른 기능이 있을 것 같다. 올라오는 호기심은 참았다. 물어봐도 안 알려줄 것 같으니.

"한순간."

그녀가 말했다. 내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허리춤에 찬 닌자도를 역수로 쥔 그녀가 바닥을 쭈욱 긋는다. 그리도 다른 손으로 수인(手印)을 취한다. 각각의 술식을 의미하는 손동작이 끝나고, 바닥에서 물기둥이 치솟아 쏟아지는 번개를 막는다.

"한순간이면 돼. 저 방어막만 어떻게 할 수 해 줘.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까."

“해보지."

나는 앞으로 나섰다. 필립의 눈이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마법사. 끼어들지 말고 꺼져라."

"내가 어떻게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 동생을 죽이고 왔다. 그런데도 꺼져달라고 한…."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필립이 팔을 휘두르며 번개를 날렸기 때문이다.

[라이트닝 스피어]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영창하며 번개의 창을 날렸다. 번개와 번개의 창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나는 최소 상쇄되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상쇄가 아니라 흡수였다. 놈의 번개가 내 라이트닝 스피어를 흡수하고 더 커져 내 몸을 감싸는 배리어를 두들겼다.

배리어 3개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크크. 전격계였나? 재수 없는 놈이군. 전격계 마법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재수 없는 건 방금 전에 뒤진 네 동생이겠지."

나를 비웃던 놈의 얼굴이 싹 굳어진다.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 너를 붙잡아 세포 하나부터 시작해 천천히 붕괴시켜 주마."

필립이 내게 양손을 펼치려는 순간이었다. 여닌자가 필립의 뒤에 나타나 칼을 휘둘렀다. 칼은 배리어 일부를 찢었으나, 곧바로 그녀의 몸은 자기력에 의해 튕겨 나간다. 번개가 튕겨나간 그녀를 뒤쫓았다. 허나, 그녀는 이미 옆으로 피한 뒤였다.

“…바퀴벌레처럼 잘도 뛰어다니는군."

“이렇게 예쁜 바퀴벌레가 어딨어? 비유는 여우로 해줄래? 여자에게 바퀴벌레가 뭐야, 바퀴벌레가."

그녀가 만들어준 한순간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코트 안쪽에서 숏소드를 꺼낸다. 4급 아티팩트인 속성검이다. 나는 속성검을 필립을 향해 내던졌다.

필립은 속성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던진 힘도 약했고, 그를 지키는 배리어가 튕겨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날아가는 속성검에 내 의지를 깃든다. 속성검의 속성이 얼음으로 바뀌었다. 그 검신에서 새파란 냉기가 연기처럼 흘러나온다.

이 세계의 속성에는 상성이 있다. 번개 속성의 상성은 얼음이다.

콰직!

번개 배리어에 얼음검이 꽂힌다.

“아쉽게 됐군. 겨우 이 정도로 내 배리어를 깨부수진 못한다.”

"금이 갔다. 그걸로 충분하다."

[아이스 스트라이크]

공중에서 얼음덩어리가 떨어진다. 족히 5톤은 나갈 것 같은 크기. 금 간 초능력 배리어로는 막지 못할 거다.

"겨우 이 정도로.…!"

필립은 배리어의 출력을 높이는 것으로 대응했다. 나는 다른 상극인 마법으로 대응했겠지만, 필립은 나같은 마법사가 아닌 초능력자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배리어의 크기가 커지고, 배리어에서 발생한 저류가 사방으로 튀었다. 배리어가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를 아래에서 받친다.

‘과연 자신만만한 이유는 있었군.'

내 시선은 속성검으로 향했다. 속성검은 여전히 배리어에 꽂혀 있었다.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요구한 한순간의 틈. 그건 이미 충족하고도 남았다.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필립의 등 뒤, 배리어 안쪽에 소리 없이 나타났다.

'속성검에서 발생한 냉기가 배리어의 전류에 녹으며 물이 되었지. 저 여자는 배리어 안쪽에 있는 물웅덩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일종의 공간 이동 마법이군. 아니, 이 경우엔 인술인가.'

배리어에 힘을 집중하는 필립은 보이지 않는 칼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닌자도가 움직인다. 칼날은 필립의 등을 깊숙이 베었다. 그대로 가슴과 목을 베어내며 마무리를 하면 되는 상황에서… 필립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뇌전의 파동이 실험실을 휩쓴다.

그 위력이 만만치 않았다. 내 몸을 지키던 배리어들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전류가 쓰러진 내 몸을 감전시키려 한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대응하지 못했다.

‘…잠깐. 대응할 필요가 없잖아.'

내 몸 안에 들어온 전류는 바로 진정되어 내 의지에 따랐다. 조금 따끔하긴 한데, 그게 전부다. 바닥에 손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킨다.

엉망이 된 실험실 중심에 번개로 몸을 이룬 필립이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벗어던졌다. 허공에 떠오른 놈은 입을 벙긋거린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전류가 튀기는 소리뿐.

“저기, 혹시 저게 뭔지 알아?"

어느새 내 옆에 나타난 인비저블 블레이드가 물어왔다. 그녀도 무사하지 않았다. 여우 가면 일부는 부서졌고, 은색의 깔끔하던 사이버 슈트는 까맣게 변하고, 여기저기 찢어졌다. 찢어진 부위에선 피가 흐른다.

"폭주 말고 답이 있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거지. 놈이 힘을 쓰는 방식을 떠올려봐라. 단순하다. 배리어로 방어하고, 번개를 쏘아내 공격하지."

"맞아. 단순했어. 전격계 초능력자는 흔하지 않지만, 응용력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힘을 손에 넣은 지 얼마 되지 않았겠지.”

필립이 번개를 쏘아낸다. 거대한 번개 줄기는 사방을 휩쓸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쓸데없는 움직임이 너무 많다. 필립이 에너지를 완벽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증거였다.

[아이스 월]

거대한 얼음 기둥을 앞에 세우며 번개를 막아냈다. 번개는 끊임없이 이어지며 얼음 기둥을 갉아 먹는다.

'얼음이 녹는다. 30초도 못 버티겠군.'

인간의 몸으로 저 번개를 계속 유지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무언가 비밀이 있다. 나는 눈동자만을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부서진 벽의 안쪽이 보인다. 어두컴컴하지만 무언가가 들어있다.

'저기에 비밀이 있겠군.'

판단을 내린 나는 인비저블 블레이드에게 말했다.

"혼자서 버텨줄 수 있나? 저놈이 가진 힘의 원천을 박살 내고 오지."

“으음. 버티는 역할은 내 취향이 아니야. 네가 하지 않을래? 지금도 잘 버티고 있잖아."

"마나의 여유가 별로 없다."

“…어쩔 수 없네. 내가 버틸게. 대신, 보조 마법 좀 걸어줄래? 슈트가 고장 나서 네 마법도 통할 거야."

"그 정도는 괜찮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아이언 바디]

"나쁘지 않아. 3분 정도는 버틸 수 있겠어."

인비저블 블레이드의 말을 들으며 마법을 하나 더 발동한다.

[할루시네이션]

내 환영을 옆으로 보낸다. 보통은 잘 통하지 않지만, 상대는 폭주하는 상태였다. 번개의 방향이 환영으로 바뀐다. 나와 인비저블 블레이드는 동시에 움직였다. 그녀는 필립을 향해, 나는 부서진 벽을 향해.

벽 안으로 들어왔다.

[라이트]

빛의 구체를 허공에 띄워 어두운 안을 밝힌다.

강화 유리로 만든 관들이 늘어서 있었다. 관 안에는 알몸의 인간들이 들어가 있었다. 젊은 남자와 여자들이었다. 그 수만 해도 족히 200개에 달한다.

‘1급, 2급의 마나 각성자들이군.'

나는 그들보다 벽을 주시했다. 위이이이잉. 벽에 설치된 기계가 폭주하듯 돌아가고 있었다. 이 복잡한 기계에서 흑마나가 느껴진다.

'…흑마법을 이용한 마도 공학인가. 이게 필립에게 힘을 주고 있었군. 이건 필립이 설치했나? 아니면….'

흑마법도 마법이다.

나는 조사해보고 싶은 욕구를 참았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파지지지직.

내 손아귀에 막대한 전격이 꽃처럼 피었다.

[라이트닝 그랩]

기계를 잡았다. 전류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기계를 박살 낸다. 기계는 제법 내구도가 있었지만, 내가 내는 전격도 만만치않다.

'예전이었다면 좀 더 마나를 써야겠지만… 이유는 모르지만, 최근 내 전격계 마법은 강해졌다.’

콰! 펑! 콰아앙!

기계가 터졌다. 돌아가던 기계가 정지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관속에 있는 자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곧바로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크아아아아아악!"

필립의 단말마가 들린다. 벽 밖으로 나가니 필립은 하반신과 상반신이 분리된 채로 죽어 있었다. 피와 내장이 바닥을 더럽힌다.

그 앞에 닌자도를 든 여닌자는 칼에 묻은 피를 손으로 털어내고 있었다.

"갑자기 원래대로 돌아오더라고. 벽 안쪽에 뭐가 있었던 거야?"

"가서 직접 봐라."

나는 문으로 향했다. 출구가 아니다. 필립이 줄곧 등지고 서 있던 문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비밀의 방이 또 나왔다. 사무실 같은 곳이었다. 책장에는 두꺼운 책 3권이 꽃혀 있었다.

'비밀 방에 있는 책이라. 소설책일 리는 없을 테고…. 장부나 실험일지 같은 건가? 후자면 좋겠군.'

책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뒤에서 손이 쑥 튀어나왔다. 내 손보다 빠르게 움직인 그 가는 손은 책 3개를 모두 가지고 갔다.

나는 인비저블 블레이드를 노려봤다.

"이게 무슨 짓이지?”

“일을 하는 거야. 이 장부들은 내가 의뢰인에게 가져다줄게. 네 활약상도 잘 보고할 테니 걱정하지 마."

"…하나만 내게 넘겨라. 확인할 게 있어서 그렇다."

"네가 장부를 확인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

"내가 할 말이다. 지금 네 행동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신경질적으로 책상 옆의 서랍을 열었다. 종이 서류가 들어있었다. 나는 서류를 확인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대박이 걸렸군. 그 장부들은 네가 보고해라. 이 서류는 내가 의뢰인에게 보고하지."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내 손에서 서류를 낚아챘다.

서류를 확인한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야 서류는 카지노의 매출표였기 때문이다. 필립이 확인하고 대충 책상 서랍에 넣어놓은 1년전 매출표.

우우우웅

마법진 3개가 허공에서 나타나 인비저블 블레이드를 겨눴다.

"이중으로 의뢰를 받았군. 의뢰 내용은 장부를 가져오라는 쪽이고… 의뢰주는 아마도 우리 의뢰주와 대립하는 의원이겠지. 내 말 맞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