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8화 > 1448. 다크문
-아직 의뢰 보수에 대해선 말도 하지 않았어. 쥬피트와 관련되었다고 해서 너무 섣부르게 받아들이는 거 아니야?
"쥬피트와는 어떻게 해서든 결판을 지어야 한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 쥬피트 쪽이 먼저 내게 접촉할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다 되어 가도록 연락 하나 없더군."
-아하. 쥬피트 쪽의 접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야? 그 반대면 어쩌려고?
"그 반대라도 상관없다. 의뢰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지명 의뢰한 건 아닐 테니."
-의뢰 보수는 1억 크레딧이야. 의뢰 내용은 아까도 말했듯이 의뢰를 수락하고 난 뒤에 알려준다고 했어. 하지만 보수만 보면 대충 어떤 일인지는 감이 오지?
"간단한 일이었다면 보수가 높지 않을 테니…. 쥬피트를 공격하는 의뢰군.”
-할 거야?
"한다. 중개인으로서 말릴 건가?"
-오히려 적극 추천이야. 당신은 5급 마법사야. 지금까지 해온 의뢰들은 급에 맞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 당신도 이제 슬슬 올라갈 때가 됐어. 5시간 뒤에 사무소로 와.
"지금 바로가 아니라?"
-나도 조사는 해봐야 할 것 아니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당신을 보좌하는게 중개인으로서의 내 일이기도 해.
뚝.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육체와 장비를 점검했다.
"알아보니 쥬피트는 훨씬 심각한 상황이야. 쥬피트의 사업은 L 구역의 카지노인데, 지금 그게 흔들리고 있어."
“흔들려? 다른 세력과 전쟁이라도 벌이나?"
“그게 오히려 더 나을걸. L 구역은 카지노를 두고 대표 의원 2명이 서로 대립하는 중이야."
네오 런던 원탁 의회.
도시 국가인 네오 런던의 정부라 볼 수 있다. 구역마다 대표하는 2명의 의원이 있으나, 진짜 도시의 지배자는 원탁의 자리에 앉는 12명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의원들의 권력이 약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었다.
"한쪽은 L구역의 경제를 이유로 카지노를 유지하려 하고, 다른 한쪽은 치안을 이유로 카지노의 폐쇄를 주장하고 있어."
“후자가 우세하겠군. 시민들은 경제보다 안전을 더 원할 테니까. 돈이 많아도 강도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겠지."
“맞아. 하지만 쥬피트가 그걸 신경 쓰겠어? 쥬피트는 어떻게든 카지노의 폐쇄를 막기 위해 여기저기 돈을 뿌리고 있어. 그게 꽤 어마어마해. 카지노로 벌어들인 돈을 뿌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뢰인은 폐쇄를 주장하는 의원인가?"
“의뢰는 브로커를 통해 들어왔어. 하지만 거의 90% 확률로 그 의원이 맞을걸?"
“의뢰의 자세한 내용은?"
“사흘 뒤, 조사를 이유로 카지노는 잠시 폐쇄될 거야. 카지노 바지사장을 불러 심문하는 거지. 그때 당신이 갱단을 토벌하면 돼. 표면적으로 갱단 간의 전투로 보도되겠지."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해도 되는 건가?”
“아직 이 도시를 몰라? 웬만한 일은 전부 수습 가능해. 시민들의 입장에서 위험한 갱단이 사라지니, 내막을 짐작하면서도 입 다무는 거지. 아, 이번 의뢰는 당신만 하는게 아니야. 다른 용병들도 구했다고 해."
"다른 용병들을 이미 구했는데 내게 의뢰를 넣은 건…."
"넌지시 물어봤는데, 누군가가 당신을 적극 추천했나 봐. 누군지는 짐작 가지?"
인비저블 블레이드.
그 여닌자가 떠올랐다. 그녀가 하버스 갱단을 무자비한 걸 떠올리면 이번 일을 위해 사전 작업을 한 거라 생각된다. 아마 조사해보면 쥬피트 연합에 속한 갱단 몇 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거다.
"내가 주의해야 할 점은 없나?"
"5급이라고 너무 까불지 마. 쥬피트 갱단의 두목과 간부는 하버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자들이니까. 이 도시에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는 건, 막대하게 강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해.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알겠다."
"쥬피트 갠단의 정보는 준비해뒀어. 파쇄해야 하니 전부 여기서 숙지하고 가."
쿵!
로즈는 내 앞에 30cm가 넘는 서류 더미를 올려두었다. 나는 그 압도적인 양을 아연히 바라봤다.
"오늘은 나도 야근이거든. 같이 있어 줄 거지?"
"……."
사흘 뒤. 의리인이 말한 약속 장소인 L구역 낡은 창고에 들어갔다. 창고에 들어가자 마자 30명이 넘는 시선들이 내게 꽂힌다. 남녀 관계없이 전부 무장한 자들이었다. 그것도 모두 마나 각성자들이다. 비록 대부분이 2급 정도지만.
“시간에 딱 맞춰서 오셨군. 그쪽이 오기로 한 5급 마법사?"
위로 삐죽 솟은 녹색 머리의 남자다. 대파를 떠올리게 하는 헤어 스타일이었다. 그는 등과 허리에 각각 2개씩, 총 4자루의 검을 장비했다. 검은색의 스판 재질 옷 위로 압축된 근육의 형태가 보인다.
그는 자신의 경지를 숨기지 않았다. 느껴지는 힘과 기세로는 5급 전사다.
"유진 마이어다.”
"몬스. 이 네오 런던의 고독한 칼잡이지."
"……."
나는 주위를 살폈다.
5급 전사와 마법사. 그리고 2급 용병 30명.
이 정도로 그 갱단을 상대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해 보였다. 적어도 5급 이상의 강자가 한 명 더 있어야 한다.
“무시하는 거냐. 좀 마음 아픈데."
“이 인원이 전부인가?"
"현장에서 합류하는 한 명이 더 있다. 무려 닌자라더군. 표창 날리는 그 닌자 말이야. 실물 닌자를 볼 생각에 기대되지 않나?"
"글쎄."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정장을 입은 여자가 공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들 모이셨군요. 의뢰인을 대신하여 작전을 브리핑하겠습니다."
뻔하다면 뻔한 작전이었다.
2급 용병들은 쥬피트 갱단원들을 사살하는 역할, 5급 전사인 몬스는 쥬피트의 간부와 보스를 맡는다. 마법사인 나는 후방에서 화력 지원. 그리고 전장이 어느 정도 제압되었을 때 몬스를 돕는 일을 한다.
“이동 수단으로 대형 버스 2대를 준비했습니다. 그럼 여러분. 돈 받은 만큼 일해주세요.”
버스가 카지노를 향해 질주한다.
카지노는 우리의 습격을 알고 있었다는 듯, 총탄과 로켓, 미사일로 환영해줬다. 버스에 장착되어있던 보호막 기계가 가동을 시작했다. 반투명한 배리어가 버스를 감싼다.
콰앙! 쾅!
배리어가 미처 막아내지 못한 충격이 버스를 덮친다. 버스가 덜컹덜컹 흔들렸다. 좌석에 앉은 나는 앞좌석을 잡으며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끼이이이익!
버스가 카지노 앞에 멈췄다. 용병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버스 창문을 박살 내고 카지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총탄이 빗발쳤으나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날아오는 로켓과 미사일이 없는 것만으로도 편하다.
나는 귀에 착용한 무전기를 툭 두들기고 말했다.
"옥상에서 로켓과 미사일을 쏴대던 놈들은 내가 처리하지."
-꽤 많던데,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
"3분이면 충분하다."
아스트랄을 개방한다.
감각이 확장되며 내 안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마나가 느껴진다. 사용이 불가능한 16개의 마나 로드를 제외한 34개의 마나로드가 활성화된다. 내 의지에 따라 마나를 술식으로 구축한다.
나는 조용히 읊조리듯 완성된 마법을 영창했다.
[라이트닝 스피어]
길쭉한 번개의 창 5개가 카지노 건물 옥상을 향해 날아간다. 진짜 번개에 비하면 한없이 느린 속도지만, 미사일이 날아가는 속도에 비하면 훨씬 빨랐다.
번개의 창은 대상에 적중하자마자 어두운 밤을 한순간 밝힐 정도로 밝게 폭발하며 주변에 뇌전을 흩뿌렸다.
"빌어먹을 새끼가!"
카지노 건물이 부서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로켓을 쏘았다.
쾅!
로켓이 버스의 배리어를 두들겼다. 배리어의 표면이 쩌적 갈라지며 금이 생겼다. 로켓 2~3방이면 배리어가 깨질 것 같았다.
[라이트닝 스피어]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5개의 번개의 창을 던졌다.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적을 맞추기가 유독 쉽게 느껴진다.
[라이트닝 스피어]
연달아 번개의 창을 투척했다. 옥상에 남아 있는 놈들은 없었다. 대부분 라이트닝 스피어를 피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일부는 카지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카지노 건물을 훑어봤다.
[디텍션]
창문 근처 포착되는 적의 수는 42명.
손가락을 까딱인다. 파직. 전류가 번뜩이며 자기력이 되어 사방에 흩어져 있던 탄피들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그 수만 해도 500개가 넘는다.
"경고하지. 창문 근처에 있다면 떨어져라. 그게 힘들다면 창문 아래로 몸을 숙여라."
-우리 마법사가 뭔가 하려는 모양이군. 알겠다.
[형태 변환]
500개의 탄피의 형태가 원뿔형의 가시처럼 변한다.
[일렉트릭 에어리어]
일렉트릭 필드를 일부 수정한 마법이다. 땅이 아니라 주변 공간에 전자기를 깔았다. 허공에 떠오른 탄환들이 당장에라도 쏘아질 것처럼 부르르 떨린다.
'말하자면 이건 위력을 대폭 낮춘 레일건이라 할 수 있지.'
탄환의 방향 설정을 끝낸 나는 망설임 없이 탄환들을 쏘았다.
500개의 탄환은 카지노 건물의 창문을 깨부수고, 창문 근처에 있던 적들의 몸을 꿰뚫었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아래로 후두둑 떨어진다. 건물은 마치 눈물이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화력지원 제대로인데? 방금 그걸로 30%는 죽었군. 이봐들. 화력지원 더 필요하나?
-아니,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정리하겠다.
-유진. VIP룸 쪽으로 와라. 우린 쥬피트 형제를 잡는다.
"곧 가지."
카지노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엉망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갱단의 시체가 널려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오른쪽 복도에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카지노 건물의 구조는 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완벽히 숙지한 상태였다.
VIP를 위한 도박방은 문부터가 화려했다. 문의 표면에 알몸의 여자와 남자가 조각되어 있었다는 거다. 여자 조각의 경우 가슴이 봉긋했다. 보지까지 디테일 하게 표현했다. 남자 조각상에는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았다. 나는 여자 조각이 붙어있는 왼쪽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양손에 검을 쥔 몬스가 2명의 남자를 혼자서 상대하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적들은 각각 창과 건틀릿을 장비하고 있었다.
"왔군!"
몬스가 내 등장에 기뻐하며 외쳤다. 그가 상대하던 적들은 잠깐 뒤로 물러나며 나를 경계했다.
"지원군인가."
"재수 없는 낮짝을 보니, 아까 보고 받은 마법사 같은데? 형이 맡을래?"
"네가 맡아라."
"마법사를 죽이는 재밌는 일을 양보해줘서 고마워, 형."
건틀릿을 낀 쪽이 비릿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놈을 주시하며 몬스에게 물었다.
"쥬피트레인 형제들이군. 쥬피트 연합의 보스인 필립 쥬피트레인은 어딨지?"
"내가 왔을 때 저 테이블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 통로로 급히 내려가는 걸 봤다. 내 생각엔 닌자를 막으러 간 것 같다."
나는 몬스에게 2급 보조 마법 3개를 연달아 사용했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아이언 바디]
근력, 민첩성, 육체 내구를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보조 마법들이다.
"오오! 도핑은 혐오한다만, 이런 중독성 없는 완벽한 도핑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던전 칼잡이 나가신다!"
몬스는 대파 머리를 휘날리며 쥬피트레인 형제들을 향해 뛰어갔다.
창을 쥔 발드 쥬피트레인이 몬스에게 마주 달려들었다.
건틀릿을 낀 케이슨 쥬피트레인은 몬스를 지나쳐 네게 달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