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5화 > 1445. 다크문
유리아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3명의 불청객은 팔다리가 묶이고 입에는 재갈을 문 채로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지하실을 훑어봤다. 지하실은 내가 평소에 마법 수련과 마법 연구를 할 때 쓰는 공간이었다. 마법 도구 몇 개를 제외하면 특별한 것은 없었다.
유리아에겐 지하실을 마음대로 이용해도 된다고 했으니 딱히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법 연구 자료 같은건 내 머릿속에 들어있다.
“…어떻게 제압한 거야? 움직임 생각도 못 하잖아."
“척수를 베었습니다. 신경이 끊겼으니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래도 목까지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물론 말도 할 수 있습니다."
"팔다리를 묶어둔 건?"
"혹시 모르니까요. 제가 모르는 비술 같은 게 있을 수 있으니 묶어 두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등에 있는 상처는 걸레 같은 낡은 헝겊으로 덮어 두었다. 질병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응급처치만 한 느낌이다.
'대단한 솜씨네.'
놈들을 보니 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이들을 제압했다는 뜻이 된다.
'과연 기사 수련원 출신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가 이들을 제압했다는 건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녀는 메이드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가 어느 정도 힘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놈 중 하나를 잡아 의자에 앉혔다. 놈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일부러 가장 심약해 보이는 놈을 골랐다.
[사일런스]
놈의 입에 물린 재갈을 빼기 전에 마법을 사용한다. 지하실의 소리를 차단한다. 놈이 지르는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곤란하다.
재갈을 뺐다. 놈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죽여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지금 너한테는 죽는 게 최고의 자비일 텐데."
"몸에 감각이 없다. 네가 어떤 고문을 하더라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날 죽이는 게 더 편할 거다. 아니면 평생 내 똥오줌을 받아 주려고? 흐흐. 그것도 나쁘지 않군. 저런 예쁜 메이드가 내 똥오줌을 받아주는 삶… 컥!"
짜악!
따귀를 날렸다.
놈이 유리아를 입에 담는 걸 보니 화가 치밀었다. 유리아는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여자였다. 같잖은 놈이 모독하게 둘 수 없었다.
나는 놈의 머리를 붙잡고 마나를 움직였다. 마나로 놈의 몸을 한 차례 스캔할 생각이었다.
파직.
파란 불꽃이 번뜩였다. 나는 의문을 느꼈다. 전격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마나가 자연스럽게 미약한 전류로 변한 것이다.
‘…인간의 신체를 훑는데 이게 더 편할 것 같군.'
편한 쪽을 선택했다.
미세한 전류가 놈의 몸을 흐르며 그 정보를 내게 전달했다.
'마나 각성자는 아니군. 그래도 내 몸과 비교하면 육체가 굉장히 단련되어 있다. 마나 없이 평범한 단련만으로 이 정도 수준까지 할 수 있나…?'
의문에 대한 답은 바로 나왔다.
약물.
근육을 강화하는 약물에 관해서 들어본 적 있다. 비싼 편이긴 한데 아예 손에 넣지 못할 정도는 아닌 약물이다.
'유리아의 말대로 신경이 끊어졌군. 깔끔하게 끊어졌어. 놀라운 솜씨야. 근데 이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이 움직이는 방식은 결국 뇌에서 보내는 전기 신호였다. 그 전기 신호만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면….
파직.
전류가 흐른다. 놈이 갑자기 왼발을 쭉 뻗었다.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어 뻗는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냐?!"
"이게 오른발인가."
다르게 전류를 컨트롤 한다. 이번에 놈은 오른팔을 옆으로 움직였다. 우지끈! 팔꿈치가 부러지면서 의자 뒤로 완전히 돌아간다.
"내, 내 팔…!"
팔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360도 돌아가기까지 했다. 물론 그 대가로 팔은 개작살 났다.
그 외에도 여러 실험을 해 봤다. 다른 팔과 다리를 강제로 움직이게 하거나, 내장의 생체 활동을 멈추게 하거나.
중간에 흥이 돋았다. 전류의 형태를 뜨는 마나.
그에 반응하는 신체.
마법적 영감이 번뜩이고 스쳐 지나간다.
만약, 전류가 뇌까지 조작할 수 있다면? 상대방의 기억이나 정신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면?
'인간을 내 뜻대로 조작할 수 있는 마법. 그런 마법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게 아니야.'
나는 기대감을 품고 미세한 전류들을 놈의 뇌로 움직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미세한 전류가 놈의 뇌를 건드리는 순간, 놈은 눈을 까뒤집고 죽었다. 사람의 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민감했다.
순식간에 흥미가 팍 식는 걸 느꼈다. 이런 방식으로는 몇 번을 해봤자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실수로 죽여버렸군. 그래도 대충 감은 잡혔다."
의자에서 시체를 끌어내리고, 다른 놈을 데리고 앉혔다. 놈은 마른침을 삼키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를 향한 시선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내가 사람을 가지고 인체 실험을 했다는 걸 코앞에서 봤기 때문이다.
나는 놈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파직. 미세한 전류가 놈의 몸을 타고 흐른다.
"끄아아아아아악!”
놈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마 세포 전체가 고문당하는 느낌일 것이다.
"편해지고 싶으면 이름부터 시작해서 네 모든 걸 말해야 할 거다."
놈은 1분도 버티지 못했다.
"말하겠다…! 말할 테니 그만해라…!”
놈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놈은 고통이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조용히 동료의 눈치를 살폈다. 그 동료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 체념의 빛이 보인다. 계속 고문당하는 것보다 말하고 죽는 걸 선택한 모양이다.
"우리는 프랙슨 욕병단 소속이다."
마피아나 갱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으니까.
“의뢰를 받았나?"
“…적당한 용돈 벌이라고 생각했다."
"네 생각은 관심 없다. 의뢰주와 의뢰 내용은?"
“의뢰주는 오른 하버스. 하버스 갱단의 두목이다. 의뢰 내용은 너를 납치하는 거다. 치킨 레시피를 원한다고 하더군."
"놈은 왜 너희를 고용한 거지? 이 정도 일쯤은 직접 움직여도 될 텐데?"
"하버스 갱단은 현재 의회에 단단히 찍힌 상태로 몸을 사리고 있다. 직업 움직였다가 의회가 나설 수 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우리를 고용했다."
“처음 들어보는 갱단인데… 의회가 신경 쓸 정도로 큰 세력인가?"
“의회의 공무원을 죽였다더군."
바로 이해됐다.
어느 세력이나 자신들을 건들면 가차 없어진다. 특히나 공무원은 건드는 건 국가 자체를 적으로 돌리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공무원을 죽인 하버스 갱단이 아직 토벌되지 않은 게 도리어 이상할 정도다.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다른 것들도 물어봤다. 쓸만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하버스 갱단이 네오 런던의 갱단 연합인 쥬피트에 속해 있다는 것 정도다. 물론 나는 쥬피트라는 갱단 연합도 처음 들어본다.
"우리는 프랙슨 용병단이다. 우리를 풀어준다면 일은 여기서 끝내겠다. 우리를 죽인다면 프랙슨 용병단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웃기는군. 내가 이 바닥 사정도 모를 것 같나? 내가 너희를 어떻게 죽이든 프랙슨 용병단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프랙슨 용병단을 공격한 게 아니다. 이 일에는 프랙슨 용병단과 관계 없다. 놈들이 아까 말했듯이 용돈 벌이를 위해 나를 노렸고, 나는 자기 방어로 놈들을 죽였다.
용병이 의뢰를 실패했다고 해서, 그 소속인 용병단이 직접 나서서 보복하지는 않는다. 그랬다간 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명예 회복을 위해 추가로 다른 용병이 의뢰를 이어받을 수 있겠지만… 그 이전에 프랙슨 용병단은 하버스 갱단에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쪽 업계를 잘 알고 있군? 동종업자냐?"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돌렸다. 놈에게 들은 정보가 맞는지 교차 확인할 시간이다.
붙잡은 놈들은 정보를 알아내고 깔끔하게 죽였다. 그 시체는 마법으로 소각했다. 놈들이 괘씸하긴 해도 계속 붙잡고 고문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건 인력 낭비에 시간 낭비였으니까.
나는 바로 집을 나섰다. 귀찮은 일은 날이 밝기 전에 끝낼 생각이었다. 목적지는 유독 갱단이 많기로 소문난 V구역이다. 하버스 갱단도 이 구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V구역에 들어섰다. 나는 괜히 코트를 매만지며 걸어갔다.
얼굴은 일부러 가리지 않았다.
이건 보복이었다. 하버스 갱단은 먼저 나를 건드렸고, 나는 그에 대한 보복을 할 뿐이다. 음지에서는 당연한 생리였다.
'여기서 힘을 보여줘야지 앞으로가 안 귀찮아진다.'
내 사업을 방해하고 빼앗으려는 놈들이 하버스 갱단만 있을 건 아니었다. 놈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작은 갱단 하나 치웠다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명해질 리는 없을 테고. 설령 유명해지더라도 치킨 가게에 직접 출근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시급을 높이면 인력은 쉽게 구해질 것이다. 나는 벽과 골목길을 살피며 걸었다. 갱단은 개가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듯, 벽에 낙서를 그리며 자기 영역을 알린다. 벽에 그려져 있는 표식만 잘 보면 갱단의 아지트를 찾을 수 있다.
'진짜배기 갱단은 이런 곳에 없지. 그놈들은 조직이 기업과 흡사하니까.'
이곳에 있는 놈들은 어중이떠중이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대놓고 이 거리를 거니는 이유였다.
'찾았다.'
하버스 갱단의 표식이 그려진 골목길.
나는 골목길을 걸어가며 생각했다. 하버스 갱단은 갱단 연합 쥬피트에 속해 있다. 네오 런던의 공무원을 죽이고도 아직 토벌당하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뻔하지. 고위 공무원과 관계있는 거겠지. 하버스 갱단을 없애면… 십중팔구 나를 죽이려 하겠지.'
내가 해야 할 건 뻔하다.
내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쥬피트와 협상한다. 나를 적으로 돌리는 게 보복을 고집하는 것보다 손해라는 걸 각인 시켜주면 된다.
'연합. 그 정도 크기의 갱단이면 감정적으로 나올 수 없지. 나를 먼저 건드린 건 하버스 놈들이니 명분은 나한테 있다.'
앞으로 나아가던 발이 멈췄다.
벽에 등을 기댄 양아치 셋이 껌을 씹으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기는 살벌했다. 돌격 소총, 권총, 수류탄 벨트.
거친 피부에는 해골이나 몬스터 같은 위협적인 문신이 새겨져 있다.
"뭐야, 너?"
“여기가 누구의 구역인지 알고 들어온 거냐?"
"손님이면 암구호를 말해. 5초 준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놈들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바로 총구를 내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총알이 쏟아진다. 허나 내 몸에 닿는 총알은 없었다.
팅팅팅팅팅팅!
5급 마법사가 펼친 배리어다. 평범한 총알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다.
“이런 씨발!"
안전핀이 제거된 수류탄이 날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