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4화 > 1444. 다크문
일단 주방을 살폈다.
냉장고도 그대로고, 튀김기도 그대로다. CCTV는 고장 나 있었다.
'주방에서 얻은 건 없겠지. 닭을 전부 소진했으니 없을 테고, 양념 소스는 완제품만 있으니까. 소스를 연구할 놈들이었으면 이런 짓도 하지 않았어.’
사용하는 재료로 레시피를 짐작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방에서 나는 닭을 튀기는 것밖에 하지 않는다. 닭을 염지하고 양념 소스를 만드는 건 전부 공장에서 한다.
'…놈들도 공장에 대해 알았겠지. 그러니 다음으로 놈들이 노릴 건….'
공장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가게 오픈을 준비했다. 내 공장이 있는 T 구역은 공장지대다. 구역 자체가 경비를 갖추고 있었다. 놈들이 멍청하지 않은 이상 대낮에 공격해올 리 없다. 그러니 밤까지 시간은 있었다.
'일단 가게를 운영해야지.'
나는 힐끗 주방 밖을 바라봤다.
가게 앞에는 이미 코리안 치킨을 맛보기 위한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밤 8시.
일찍 퇴근한 나는 귀가 대신에 T 구역의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은 불이 꺼져 있어 아무도 없었다. 직원들은 오후 5시쯤에 퇴근한다.
'당장은 공장을 풀로 가동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가맹점이 늘어나면 공장도 24시간 내내 가동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직원도 더 뽑아야 할 테고.
'다른 공장도 알아봐야지.'
그때는 아마 치킨 공장이 아닐 것이다. 유유 치킨이라고 해도 계속 치킨만 팔 생각은 없었다. 치킨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치킨을 중심으로 분야를 넓히는 거지.'
다른 음식을 팔 생각이었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음식은 영원히 팔 수 있어. 음식을 안 먹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아무도 없는 공장 안쪽 사무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불은 일부러 켜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났다.
'너무 일찍 왔나. 생각해 보니 놈의 입장에선 자정쯤이 움직이기 편하겠군.'
자정이 지나 새벽 1시가 되었음에도 칩입자는 없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안 와? 조심성이 많은 놈들이군.'
새벽 2시.
놈들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놈들이 온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지. 내가 지레짐작한 거긴 하지만… 허탈하군. 낮에는 가게에 출근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잘까.'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회중시계형 워치가 부르르 떨린다. 유리아로부터 연락이 왔다.
"유리아. 지금 돌아갈게."
-네. 주인님. 오시자마자 씻을 수 있도록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리고… 불청객을 포획했습니다.
유진이 없는 집.
유리아는 조용히 유진이를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공부를 이어갔다.
그녀의 공부 방식은 읽고 보는 것이었다. 이 세계는 유진의 세계 이상으로 기술력이 발달 되어 있었다. 그건 인터넷도 마찬가지였기에 웬만한 것들은 인터넷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세계의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했다. 대충 훌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완전 기억 능력… 까지는 아니어도 웬만한 것들은 한 번 보고 잊지 않는 게 그녀다. 일단 지식을 습득하고, 지식을 이용하는 건 그다음에 하면 되었다.
그녀가 주의 깊게 살펴본 것은 마법에 대해서였다. 이 세계의 마법과 자신의 세계의 마법은 체계가 달랐다. 너무 달라서 신선함까지 느껴졌다. 그랜드 아크 메이지의 경지에까지 오른 그녀에겐 신선한 자극이라 할 수 있었다.
'마법의 기초 적인 지식은 결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고위 지식은 역시 없군요.'
아쉬움의 감정을 빠르게 떨쳐냈다. 인터넷으로 고위 마법 지식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마법 지식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니까.
'이 세계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군요.'
마법 사용 불가. 그녀가 이 세계에서 가진 페널티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편했죠.'
효율과 편리의 문제였다. 마법이 있었다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직접 육체를 움직여 처리해야 했다. 그건 팔 하나가 사라진 것 같은 불편함이었고, 효율이었다.
그래서 유리아는 생각했다.
'마법을 쓸 수 없다면….'
마법이 아닌 비슷한 힘을 쓰면 된다. 다행히도 이 세상에는 그런 힘들이 꽤 많았다. 대표적으로 초능력이 있었다.
초능력 대부분이 선천적으로 각성하고, 후천적으로 개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녀는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주인님은 마법이 아니어도 뇌전을 쓸 수 있었죠. 그리고 뇌천류라는 무공이 아니어도 번개를 쓸 수 있으실 테고….'
그녀는 오랫동안 유진을 곁에서 봐왔다. 그녀가 보기에 유진이 뇌전을 쓰는 방식은 마법과 무공과 궤를 달리한다.
의지로 발현하는 힘.
[백환] 세계의 악마들이 쓰는 권능에 가까웠다. 물론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주인님의 완전 회복은 궤를 달리하니 따라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유진의 뇌전이라면 비슷하게 흉내 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건 그녀가 초월의 경지에 들어섰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아는 이 세계에 들어오면서 페널티만 얻은 게 아니다.
그녀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대신 날카로운 감각을 얻었다. 안 그래도 뛰어난 그녀의 감각은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냈다. 보통 제 6감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유리아는 그저 직감이라 불렀다.
워낙 생소한 느낌인지라, 그녀조차 아직 잘 다루지 못했다. 그 직감이 말하고 있다. 적들이 근접해 있다고.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치솟는 분노는 냉정한 이성으로 다스렸다. 그녀의 천재적인 머리가 단숨에 상황을 계산하고, 적들의 목적을 추측한다. 아마도 적들이 노리는 건 치킨의 레시피일 것이다. 유진은 적들이 공장을 노릴 거라 예상했으나, 적들은 유진의 집을 노렸다. 집에 레시피가 있을 거라는 생각? 아니다. 적들은 유진을 납치해 레시피를 알아내려고 한다. 그게 확실하고 빠르니까.
유진이 5급 마법사라는 걸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더 용서할 수 없군요.'
죽이지 않는다.
알아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리고 죽음은 너무 편한 처우다.
그녀는 허벅지에 장비한 단검들을 확인하고 집 밖으로 나갔다. 유진과 자신이 머무는 집안으로 그들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와 있으니 3명의 남자가 찾아왔다. 복면을 썼고, 손에는 총과 칼을 들었다. 그들은 유리아의 모습을 보며 긴장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메이드인가…."
"젠장. 메이드를 고용했을 줄이야."
“치킨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더니… 사실인가 보군."
네오 런던에서 집사와 메이드의 위상은 엄청나다. 전투면 전투, 집무면 집무. 그 어떤 것에도 뒤처지지 않는 존재가 집사와 메이드였다.
“어떻게 할래?"
"덮쳐? 우린 셋이니 가능성 있지 않아? 상류층이 머무는 구역도 아니고, S구역에 고용된 메이드의 실력이야 별거 없겠지.”
“아니, 후퇴한다. S구역 주민에게 고용되었다 하더라도 메이드는 메이드다. 게다가 나는 저 메이드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살아있는 인간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눈앞에 있는데도 기척이 없다.
대놓고 집 앞에 서 있지 않았다면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은발의 메이드로부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어이가 없군요. 늦은 시간에 멋대로 찾아와서는, 이제는 멋대로 돌아가겠다? 불청객이라도 객. 메이드로서 여러분을 응대해 드리죠."
"아가씨. 우린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남자는 허리에서 꺼낸 연막탄을 바닥에 내던졌다. 연막이 순식간에 피어오르며 사방을 가린다.
“흩어져라!"
남자들은 일제히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망갔다.
유리아는 눈을 감았다. 소리도 듣지 않았다.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도 무시했다. 그녀가 이 세계에서 얻은 새로운 감각, 직감에 의지하며 허벅지에 장비된 단검들을 투척한다.
푹! 퍽! 푹!
“악!"
"크억!"
“윽…."
단검이 날아가 그들의 몸에 박혔다. 정확히 노리던 척추의 한 부위에 꽃혔다. 신경이 망가졌을 테니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유리아는 오른편에 던진 단검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실수가 있었다. 오른쪽으로 던진 단검은 원하는 부위에 꽂히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바닥에 뻗지 않고 반격했다.
탕탕탕!
연막 속에서 총알이 날아온다. 유리아의 머리와 심장을 정확히 노렸다. 상대 또한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탄환의 방향이 느껴지는군요.'
그녀는 가볍게 옆으로 한발 작 움직였다. 상대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부터 느껴졌다. 아무리 감각이 예민해졌다 하더라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유리아 본인도 어처구니없을 정도였다.
‘…저번에 판테움의 회장을 상대하며 이해한 시간의 힘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녀는 눈을 떴다. 짙은 연막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앞으로 걸어갔다.
탕탕탕탕탕!
탄환이 쏟아졌다. 허나 탄환은 유리아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그녀는 느긋한 걸음으로 총알보다 한발 앞서 움직였다.
철컥철컥.
적은 탄이 떨어진 권총을 유리아에게 던졌다. 물론 그조차 유리아의 몸에 닿지 않았다. 연막이 흩어졌다. 유리아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상대를 볼 수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연막에서 총알을 피해? 터무니없는 괴물이군. 4급 이상의 전사도 보이지 않는 총알은 못 피하는 법인데…. 너 같은 실력자가 왜 S 구역에 있는 거냐…!"
"메이드니까요. 주인님이 있는 곳에 제가 있습니다."
"직업 정신이 아주 투철하시군!”
남자가 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나름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래 봤자 유리아의 눈에는 전부 보였다.
유리아는 칼날이 목에 닿기 직전에 단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그녀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직감이 발동하지 않는군요. 곤란하네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적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녀는 부츠를 신은 발로 적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한순간 균형을 잃은 그의 뒤로 돌아가, 척추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그는 옴짝달싹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불구가 되셨습니다만, 요즘 의학은 뛰어나니 치료받으면 큰 문제는 안 될 겁니다. 뭣하면 기계 척수로 바꾸면 되니까요."
"……미친년이. 그 와중에 단검으로 척수를 노려 신경을 끊은 건가…. 진짜 뭐하는 년이냐?"
“늦은 밤입니다. 이웃들에게 민폐이니 다물어 주세요."
유리아는 그들의 팔을 잡고 질질 끌며 지하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