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443화 (1,438/1,497)

< 1443화 > 1443. 다크문

집사에게 포장된 치킨을 건넸다.

집사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

'배달이 안 돼서 불편하군.'

네오 런던은 음식 배달이 까다로웠다. 과거에 배달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인지 인증받은 업체가 아니면 음식 배달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유유 치킨처럼 작은 가게가 음식 배달을 허락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박이 터졌군."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손님이 말했다. 그는 치킨을 깔끔히 뜯어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족의 세계는 좁지. 그 세계에서 맛있다는 평가가 나오면 네오 런던에선 이미 성공한 거나 다름없어. 축하한다, 사장. 이젠 손님이 붐벼서 여유롭게 이 집 치킨을 먹진 못하겠군."

“…감사합니다. 사업을 키울 예정이니 그런 점에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사장. 네오 런던에는 베베 꼬인 놈들이 많아. 잘나가는 놈들을 시기하고, 힘없는 자들을 등쳐먹으려 하지. 감당할 수 없다면 대기업과 손을 잡는 것도 한 방법이야. 그 외에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어쨌든 사장, 자네가 잘 할 거라고 믿어.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나중에 또 오지."

"또 와주십시오.”

그가 가게를 떠났다.

나는 팔짱을 끼며 맞은 편 피시 앤드 칩스 가게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쳐들어가고 싶지만, 그 이후의 뒤처리가 문제였다. 나는 네오 런던의 시민이자, 치킨집 사장이었다. 무법자가 아니다.

‘내 가게에서 피시 앤드 칩스를 팔아 버릴까? 튀김기는 있으니 재료만 준비되면…. 아니야. 여긴 치킨집이야. 어중간해질 필요는 없어.'

피시 앤드 칩스 사장이 소문을 퍼트렸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었다. 나는 일단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치킨을 포장해간 집사, 하이드는 다음날 또 찾아왔다.

"주인님께서 치킨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셨습니다.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오늘도 프라이드와 양념치킨 각각 한 마리씩 포장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다른 가문의 메이드가 찾아왔다.

"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 각각 7마리씩 포장 가능한가요?"

검은 머리의 메이드는 정중했다.

"가능합니다. 다만, 지금 주문이 좀 밀려 있는지라…. 좀 기다리셔야 합니다."

"기다릴 테니 맛있게 조리 부탁드립니다."

딸랑!

문이 열리고 다른 메이드가 나타났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넷이잖아!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로 대체 얼마 만이야. 너도 주인님의 심부름으로 치킨 사러 왔어?"

"네. 세라. 오랜만이네요. 2년만인가요?"

"난 헤니스 자작가에서 일하고 있어. 너는?"

“고트벨 백작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 백작가…! 역시라고 해야 할까. 넌 아카데미에서도 성적이 좋았으니까. 아, 맞다. 잠깐 주문 좀 할게. 프라이드 치킨, 양념치킨 각각 5마리씩 부탁드립니다!"

그녀들은 치킨을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주방에서 일하며 귀를 쫑긋 세워 그녀들의 말을 엿들었다. 귀족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가면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그녀들은 철저했다. 자신들이 일하는 귀족 가문에 대해선 조금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예전의 일을 추억한다.

가벼워 보이는 언행에서도 철저한 직업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들은 프로였다.

"저기 아가씨. 이건 뭔가요?"

"아, 그거요? 쿠폰이에요. 쿠폰 10개 모아서 가져오면 치킨 한 마리로 바꿔주죠. 지금 사용하셔도 돼요.”

"단골을 위한 시스템인가요? 재밌네요."

메이드들은 쿠폰을 사용하지 않고 떠났다. 다시 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주인이 마음에 들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와. 메이드야. 진짜 멋있다. 안 그래?"

"응. 나도 한때는 메이드가 되고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지.”

알바들은 동경 어린 눈동자로 떠나는 메이드들을 쳐다봤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네오 런던에서 집사와 메이드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이 갖는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다음 날. 그다음 날이 지날수록 가게를 찾는 메이드와 집사들이 늘어났다. 사교계에서 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이 알려진 것이다.

네오 런던의 시민들은 귀족을 질투하면서도 동경한다. 귀족들이 하는 것들을 따라 하려고 했고, 귀족들이 먹는 요리들을 맛보려고 했다. 그 덕분에 유유 치킨의 매출 그래프를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그야말로 하늘을 뚫을 정도다.

안 좋은 기름을 쓴다는 소문? 그런 소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맹점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는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다만, 지금 제가 바빠서 가게가 끝난 뒤에 따로 이야기하고 싶군요. 그전에 이걸 먼저 읽어주십시오."

"이건?"

"유유 치킨에 대해 적힌 책자입니다. 가맹점 계약에 대한 내용도 알아보기 쉽게 적어 놓았습니다. 다 읽고 돌려주십시오.”

사업 계획서에 가까운 책자였다. 내가 제작한 건 아니었다. 치킨집 운영만으로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겠나. 이건 유리아가 집에서 심심하다며 제작해준 물건이었다.

'요즘 오전에 집안일이 전부 끝나서 한가하다지…. 하긴 그럴 만도 해. 우리 집은 작은 편이고 손님도 오지 않으니까.'

유리아는 치킨집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그녀 같은 대단한 메이드를 고작 치킨집에서 부려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거절한 후로, 유리아는 집에서 따로 공부를 하는 모양이었다.

저번에 공부하는 모습을 힐끗 봤는데 뭘 공부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녀의 공부하는 종목이 워낙 방대했던 탓이다. 법률, 포르그래밍, 세무회계, 마법, 도시 역사 등등. 그 종류가 너무 방대해서 공부가 되나 싶을 정도였다.

'슬슬 나도 주방을 맡을 사람을 구하고 마법 연구에 들어가야지.'

주방을 계속 내가 맡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최소 2명은 구해야 감당할 수 있어. 3명 정도가 적당하려나?'

주방에만 3명. 지나치게 많은게 아닌가 싶지만… 지금 유유 치킨은 한창 잘 나가고 있었다. 3명도 모자란 느낌이 든다.

'사람을 구한다고 해도 유유 치킨의 맛이 변할 일은 없을 거야.'

주방이 할 일은 정해진 시간 동안 닭을 튀기는 것뿐이다. 튀기는 시간도 알람으로 맞춰놨다. 어려운 일은 없다.

유유 치킨 가게의 맞은편, 피시 앤드 칩스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존 클락은 이를 악물며 유유 치킨 가게를 노려봤다.

"망할! 치킨 집 주제에 왜 저렇게 잘나가는 거야?!"

유유 치킨이 오래되고 더러운 기름을 쓴다는 소문까지 퍼뜨렸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유유 치킨의 뛰어난 대응? 그것도 있겠지만, 소문을 무시할 정도로 유유 치킨의 맛이 너무 좋았다. 귀족까지 찾기 시작하면서 존 클락이 퍼뜨린 소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썩을…!"

잘나가는 가게가 근처에 있으면 좋은 게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전혀 아니었다. 사람들은 잘나가는 가게만 찾지, 근처에 있는 가게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근처 가게 손님까지 빠배앗아 간다. 당장 그의 가게를 찾는 손님도 평소보다 30% 이상 급감했다. 피시 앤드 칩스를 먹으러 왔다가 유유 치킨 앞에 줄 선 인원들을 보고 자기도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배 아파 죽겠다!"

도저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아는 동생을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형님."

“저 치킨 가게 보이지? 가서 메뉴 좀 포장해 와라."

"아. 요즘 유명한 치킨 가게군요."

"알고 있나?"

"치킨의 편견을 깨부수는 새로운 치킨의 등장에 요즘 사교계가 떠들썩합니다. 귀족계에서 시작되어 상류층까지 퍼져 나가고 있죠."

"그렇게나 유명하다고?”

“저기 집사나 메이드들이 줄 서고 있지 않습니까? 저게 전부 귀족 가문의 사용인들은 아닐 테고, 대부분이 상류층 사용인들일 겁니다."

"잠깐 인기가 반짝하는 거겠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거다."

"음. 그럴지도 모르지요."

"……."

존은 계획을 바꿨다. 원래는 치킨에서 이물이 나왔다며 인터넷에 거짓 정보를 퍼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욕심이 생겼다.

유유 치킨의 치킨을 자신이 판매한다면? 자신의 가게는 이미 튀김기가 존재했다. 재료와 레시피만 알면 치킨을 튀겨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치킨을 주문하고 그 레시피를 알아와라. 돈은 두둑하게 챙겨주지."

"뭐,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해보겠습니다."

그의 동생은 2시간 뒤에야 치킨을 들고 돌아왔다. 줄이 워낙 밀려 있었던 탓이었다.

코리안 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을 맛본 존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맛있었다. 치킨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만든 피시 앤드 칩스와는 비교도 안 된다….'

코리안 치킨을 한 번 맛보니 피시 앤드 칩스에는 손도 가지 않는다. 특히 양념치킨은 혁명적이었다.

"레시피는?"

“기다리는 동안 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주방을 보고 싶었는데 막혀 있어서 볼 수 없더군요. 정확한 레시피는 모릅니다만, 닭을 두 번 튀긴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 치킨이면 레시피를 숨길만 하지 그런데 두 번 튀겼다고? 두 번 튀기면 더 느끼해져야 정상 아닌가?"

"글쎄요. 전 요리에 대해 잘 모르니…."

"너희 보스에게 전해라. 돈 될만한 사업이 있다고."

"…확실히. 이 치킨이라면 돈이 되고 남겠군요. 이미 사교계에까지 퍼졌으니…. 근데 존 님은 괜찮으십니까? 손을 씻지 않으셨습니까."

“이번 일이 진짜 마지막이다."

"하하. 보스에게 전하겠습니다. 갈 때 코리안 치킨을 포장해 가야겠군요.”

아침 10시.

유유 치킨에 출근한 나는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와 변함없어 보이는 가게지만, 자세히 보면 바뀌어 있었다.

'카운터 의자가 뒤로 살짝 밀렸고, 살짝 열어두었던 주방문은 꽉 닫혀 있군.'

누군가가 내 가게에 들어왔다는 증거였다.

도둑은 아니다.

도둑은 있을 수 없었다. 네오 런던의 시민들은 현금으로 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나 마나 레시피를 훔치러 온 거겠지. 유유 치킨은 매출을 미칠 듯이 올리고 있으니까.'

실제로 유명 기업들이 코리안 치킨의 레시피를 막대한 돈으로 사겠다며 접근했다. 나는 거절했다. 사업 아이템을 팔라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며칠만에 치킨 레시피를 알아낼 테지만… 코리안 치킨의 원조가 유유 치킨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대기업의 일 처리는 아니야. 굳이 이런 위험한 방법을 쓸 필요 없어. 전문가를 모아 치킨을 연구하는 편이 훨씬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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