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440화 (1,435/1,497)

< 1440화 > 1440. 다크 문

[다크 문을 선택했습니다.]

[유희를 시작합니다.]

"……."

나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분명 1시간 정도 낮잠을 잔 것 같은데, 느낌은 수십 시간을 잤다가 깨어난 것 같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외투를 입고 1층으로 내려왔다.

빨래 바구니를 들고 있는 은발의 메이드와 마주쳤다. 메이드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녀는 나와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나가시는 모양이군요. 언제 돌아오시나요? 시간에 맞춰 식사를 준비해두겠습니다."

"7시 전에는 돌아올 거야."

그녀가 든 빨래 바구니를 본 나는 민망함을 느꼈다. 빨래 바구니에 내 속옷과 그녀의 속옷이 엉켜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의 속옷들은 이게 속옷이 맞는가 싶은 디자인이 많았다.

“그 시간에 맞춰서 저녁 식사를 준비해두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밖으로 나온 나는 마차를 타고 R구역으로 향했다. R구역에 도착하고는 두 발로 거리를 걸었다.

R구역은 번화가였다. 중간층, 하류층들이 자주 이용하는 번화가다. 난 이 R 구역의 골목길에 있는 가게를 임대했다.

'어쩔 수 없지. R 구역 상가는 워낙 인기가 좋아서 매물 자체가 잘 안 나오니까.'

어쩌다 발견한 상가는 내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더럽게 비쌌다. 그나마 합리적인 건 골목길에 있는 이 가게뿐이었다.

가게는 공사 중이었다. 고용한 인부들이 가게 인테리어를 바꿔놓고 있었다.

골목길에 안쪽에 있는 이 가게의 크기는 작았다. 5~6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주방과 홀을 분리하면 그보다 작게 느껴질 것이다.

'내 가게다.'

가게를 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다.

모든 준비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브로커에게 의뢰해 공무원에게 돈을 찔러준 덕분에 상업 허가도 바로 떨어졌다.

가게 간판은 아직 달지 않았지만, 가게 이름은 이미 정했다.

'유유 치킨.'

유진의 유. 유리아의 유. 합쳐서 유유 치킨이다.

'유리아가 없었으면 치킨 장사도 못했을 거야.'

치킨 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치킨의 맛인데, 정작 나는 요리에 재능이 없었다. 대충 알고 있는 레시피로 프라이드 치킨을 만들었을 때, 그건 쓰레기나 다를 바 없는 맛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 시도했으나 애꽃은 닭만 버리는 꼴이 됐다.

그때 나선 게 유리아였다.

'유리아가 도와준 덕분에 치킨을 완성할 수 있었어.'

프라이드 치킨 뿐만이 아니라, 양념치킨까지 구성했다. 나는 이 두 개를 주력으로 밀고 나갈 생각이다.

'치킨 가게에서 내가 해야 할 건, 유리아가 알려준 방식대로 치킨을 튀기는 것뿐이지.'

유리아가 알려준 기름 온도에서, 유리아가 알려준 시간만큼 닭을 굽는다. 그거만 잘하면 된다. 닭의 염지나, 양념 소스는 당분간 유리아가 맡아주기로 했다.

나는 염지나 양념 부분은 방법을 알아도 잘 못 했다. 분명 그녀가 하는 걸 보고 똑같이 했는데 맛이 조금씩 달랐다.

'메이드인 유리아에게 전부 맡길 수는 없지. 이 사업은 내가 하는 거니까.'

말로만 감사할 생각은 없다. 치킨을 팔아 얻는 이익의 일부를 그녀에게 지급할 생각이다.

‘그래도 공장이 정상 가동될 때까지 유리아의 도움은 받아야 해.'

나는 이 작은 가게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내 목표는 프랜차이즈다.

'다른 가게와 맛이 똑같아야 해. 그러려면 공장이 필수야. 공장에서 닭을 염지 하거나, 양념 소스를 만들어서 프랜차이즈 가게에 제공해야 해.'

사업만 성공하면 나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그리고 막대한 돈은 나를 귀족으로 만들어 줄 테지.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치킨집을 한다고?"

상념에 빠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누렇게 변한 티셔츠를 입은 중년 남자였다. 나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존 클락. 내 가게 맞은 편에 위치한 피시 앤드 칩스 가게를 운영하는 남자였다. 그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온다. 기름냄새가 났다. 불쾌했다.

"예. 치킨집입니다."

“튀김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데… 내 가게와 정면으로 맞붙겠다는 거냐?"

“…그쪽은 피시 앤드 칩스를 팔고, 저는 치킨을 팝니다. 겹치지도 않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같은 튀김이잖아. 뭐, 농담이고. 큰 걱정은 안 되는군. 왜인 줄 알아?"

"왜입니까?"

"네오 런던 사람들은 치킨을 안 좋아하거든."

존이 씩 웃었다. 그의 이빨은 강철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이보그는 아니고 그냥 이빨을 철로 바꿔 보강한 정도. 이 세계에서 이 정도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

"뭐, 잘해보라고. 길어야 3개월이겠지만."

그가 돌아서서 자신의 가게로 들어갔다.

네오 런던의 시민들은 치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이 맞았다. 치킨집을 차리는 내가 시장 조사도 안 해봤겠는가?

'이 세계의 치킨은 너무 느끼하고 맛없어. 치킨을 먹을 바엔 피시 앤드 칩스를 먹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만들고 팔려는 치킨은 네오 런던에 지금까지 없었던 한국식 치킨이다.

'한국식 치킨은 먹힌다. 100% 확신한다.'

나는 공사일을 하는 인부들에게 음료수를 건네 준 뒤에 주위를 돌아다녔다. 내 가게에 위험이 될만한 가게는 없었다.

양아치를 혼내주는 의뢰를 끝내고 인력소를 찾아가 당분간 의뢰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래? 아쉽네. 한창 네 주가가 올라가고 있었는데. 요즘은 널 지명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로즈는 오른쪽 기계 팔로 담배를 집어 입에 갖다 댔다. 검은 머리카락이 미끄러지듯 어깨 아래로 떨어진다. 그녀의 오른쪽 목에는 검은색 장미 문신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단추 풀린 셔츠 사이로 가슴골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애써 시선을 돌려 그녀의 얼굴에 집중했다.

"활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내가 알려졌다고?"

“일 처리가 확실한 5급 마법사잖아. 12개의 임무 중에 실패한 건 하나도 없고. 슬슬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거지."

"죄다 쉬운 임무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안 그래. 그리고 말은 똑바로해. 팰리스 패밀리를 상대하는 건 너도 조금 버거웠잖아?"

"……."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팰리스 패밀리는 외부에서 온 마피아 조직이었다. 상대하는 게 좀 힘들긴 했다.

“자유 마법사로서 유명해지고 있어. 지금 이대로 계속 의뢰를 받고 거래를 이어간다면… 1~2년 뒤엔 거물이 될 수 있을거야."

"다시 말하지. 당분간 의뢰는 받지 않는다."

“그 치킨집 때문에? 유유 치킨이었나? 엄청 안 어울리는 짓을 하는구나.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5급 마법사가 뭐가 아쉽다고 치킨집 따위를 하는 거야?"

"치킨집은 시작이다. 사업을 더 번창시켜서… 언젠가는 중앙에까지 진출할 거다."

"꿈도 크시네. 그렇게 귀족이 되고 싶어?"

"귀족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

“그럼 이 일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아? 의뢰를 하다 보면 더 빠르게 귀족이 될 수 있을 거야. 당신은 5급 마법사니까."

“그렇게 귀족이 되어봤자, 다른 귀족들이 나를 무시하겠지. 결국 나는 가진 것이라곤 마법밖에 없는 용병 출신의 귀족일뿐이니까."

"당신이 더 강해지면 될 일이야."

"귀족 사회에서 제대로 우대받으려면 8급은 되어야겠지. 너는 내가 8급이 될 수 있을 거라 보나?"

"……."

로즈는 입을 다물었다.

이 세계에선 7급부터가 초인의 경지로 불린다. 그게 7급이 희귀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잘 찾아보면 7급 정도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8급 이상부터는 정말 희귀했다. 그 누구도 8급의 경지를 쉽게 입에 담지 못한다.

"…뭐, 좋아. 당신의 뜻이 확고하니 말리지는 않을게. 의뢰를 영영 받지는 않겠다는 거지?"

"돈이 급할 때나, 여유가 있을 때는 의뢰를 받을 거다. 그리고 기왕이면… 의뢰 보상으로 마법과 관련된 쪽이 좋겠군. 영약도 나쁘지 않고.”

"오케이. 일이 생기면 부를게."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모조리 파쇄기에 넣었다. 의뢰가 적힌 서류들이었다.

이야기는 끝났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대체 왜 네가 치킨집 같은 걸 하는 거야? 넌 5급 마법사잖아."

나는 이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게임 설정에 대한 것이었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한 부분까지는 모른다.

마법사도 그렇다. 이 세계의 마법사는 연구직으로 더 유명하다. 문명이 발달한 도시에서 굳이 마법사가 전투를 맡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 세계의 마법사는 전투 마법사뿐이야. 게임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역시 전투였으니까.'

그 외에도 이 세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옷을 주로 입는지에 대해선 잘 모른다.

기초적인 상식이 부족한 내가 사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 종목은 치킨뿐이었다.

"내가 치킨을 좋아해서."

“그러셔? 가게 오픈하면 치킨 들고 찾아와. 얼마나 맛없는지 제대로 평가해줄 테니까."

"단골이 하나 생기겠군."

"하, 미리 말하는데, 난 입맛이 당신 생각보다 까다로워."

안다.

그녀의 진짜 정체는 귀족이다.

하지만 내 입맛보다 까다로울까.

“치킨 한 마리에 쿠폰을 준다. 쿠폰 10개를 모으면 치킨 한 마리가 공짜지. 쿠폰을 잘 모으도록.”

"쿠폰이고 나발이고 맛 없으면 그 자리에서 뱉어 주겠어."

신장 개업!

마침내 그날이 왔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가게로 찾아와 주위를 둘러봤다. 가게를 하는 건 처음이라 그런지 심장이 떨렸다. 어제 대청소를 끝내고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가게를 괜히 다시 한번 청소한 뒤에 위생모와 앞치마를 두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냉장고 안에는 미리 염지 해둔 닭고기와 유리아가 만들어준 시크릿 양념 소스가 준비되어 있다. 튀김기에 황금빛 식용유를 붓고 온도를 높인다. 그 외에도 콜라와 맥주 같은 음료도 확인한다.

아무 문제 없다.

오전 9시 30분.

오픈하기 30분 전에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갈색 머리의 젊은 여성이었다.

카렐 오리싱.

오늘을 위해 고용한 알바다. 홀을 담당할 것이다. 주방을 맡을 알바는 가계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구할 것이다.

"늦진 않았죠?"

"딱 맞춰서 오셨습니다. 앞치마만 걸쳐 주세요."

유유 치킨이라 적힌 앞치마를 건넸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앞치마를 입고 멀뚱히 대기했다. 오픈까지 30분이나 남았다.

“…치킨 한번 드셔 보실래요?"

"아, 아뇨. 아침부터 치킨은 좀….”

질색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치킨에 대한 인식이 안 좋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그녀는 치킨집이라 손님 없는 꿀알바라 생각하며 찾아왔겠지만…. 이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것이다.

'내가 괜히 시급보다 더 많이 주는 줄 아나.'

나는 그녀와 적당히 잡담을 나누다가 10시 정각에 가게를 오픈 했다.

오픈 이벤트로 20% 할인 이벤트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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