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6화 > 1426. 아카데미의 구원자
그 후로, 사흘 정도가 더 지났다.
아라시 아카데미로 온 교류생들은 분주해졌다. 2차 교류전까지 앞으로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마루한 아카데미는 1차 교류전에서 패배했다. 2차와 3차 교류전이 남아 있지만, 이미 벼랑 끝에 몰린 것이나 다름없다. 2차 교류전에서 패배하면 3차에서 이겨도 스코어가 2대1이 되어버리니까.
다른 나라에는 져도 일본에겐 질 수 없다! 한국인 종특이 발동되어 교류생들은 훈련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바빠진 건 성하리였다. 한때 최강의 히어로라 불린 그녀를 학생들이 계속 찾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2차 교류전에도 빠졌다. 몸이 안 좋다는 온갖 핑계를 댄 것이다. 대신 3차 교류전에는 반드시 참가한다고 약속했다. 일단 교류생으로 온 이상 교류전에는 한 번 이상은 참가해야 한다. 그래야 뒷말이 안 나올 테니까.
그리고 텐라이 나기사 학장은 미에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단, 이 작전에 참가하는 건 우리뿐만이 아니다. 아라시 아카데미 교사 중 믿을 수 있는 자들이 참가하고, 성하리 또한 참가하게 됐다.
'성하리의 참가는 당연해. 텐라이 나가시 입장에서 성하리는 확실한 인재니까.'
성하리는 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신의 힘을 손에 넣은 마도정? 그녀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상대가 신이든 뭐든 이겨낼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일본이 망가지든, 말든 성하리는 관심 없었다. 일본을 지배한 마도정이 한국으로 손을 뻗겠지만… 그때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의 히어로 협회가 나선다면 아무리 신의 힘을 얻은 마도정이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
‘1회차 때 내가 당해봐서 잘 알지.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면 더럽게 피곤해져.'
그러므로 성하리의 의견은 타당했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지지한다.
'결국 내가 성하리를 설득했지.'
설득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냥 내 고집을 밀어붙였다. 결정타로 '엄마가 참가하지 않아도 나는 할 거야.'가 먹혔다. 성하리의 입장에선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겠지.
‘성하리는 작전에서 나를 따라 행동하고 싶었지만… 그건 안 될 일이지.'
성하리는 스사노오의 강림 의식을 저지하러 히로시마로, 나는 츠쿠요미 의식을 저지하러 후지산으로, 텐라이 나기사 학장은 아마테라스의 의식이 진행 중인 홋카이도로 정해졌다.
그리고 작전은 3일 뒤에 시작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뭐 하고 있느냐, 학생회장과 함께 아라시 아카데미 구교사를 향해 걷고 있었다. 구건물은 아카데미 뒤편에 있었다.
"주술과에서 구교사를 활용한 유령의 집을 운영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어요. 아직 승인은 하지 않았지만, 저희 학생회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죠. 지금 구교사로 가는 건 구교사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예요."
나보다 한 걸음 앞장서서 걸어가던 레이첼이 말했다.
“…딱히 물어보지 않았는데요."
"당신의 얼굴이 지금 묻고 있었어요. 얼굴에 귀찮다는 글이 적혀 있었으니까요."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글이 적혀 있을 리 없었다.
"…학생회장이 이런 일을 직접 하나요?"
“제가 아니면 누가할까요?”
"보통 아랫사람이 하잖아요."
"학생회에 아랫사람이고, 윗사람은 없어요. 모두가 평등하죠. 아, 선후배는 제외하고요. 제가 미국인이라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지만, 지킬 건 지켜야죠?"
레이첼이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녀를 몰래 훔쳐보며 걷고 있었다.
레이첼은 클라라와 비교해 겹치는 요소가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금발. 이건 자세히 보면 색깔이 다르다. 레이첼은 백색에 가까운 플래티넘 블론드고, 클라라는 허니 블론드다.
가슴은 둘 다 I컵으로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몸매는 둘다 나무랄 것이 없다.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분위기다.
레이첼은 유럽의 공주님 같은 느낌이고, 클라라는 미국 서부를 떠올리게 하는 거친 느낌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내 눈에는 둘 다 매력적인 여인으로 보이니까.
'클라라의 몸은 탄력이 넘쳐흐르는 몸으로 보이고. 반면에 레이첼의 몸은 어딜 만지든 깊게 파묻힐 것 같은 부드러움을 가진 몸으로 보여.'
둘 다 꼴린다. 지금도 레이첼의 뒤태를 보니 조금만 방심해도 자지가 커질 것 같았다.
"근데 저를 부르신 이유는 뭔가요?"
“별거 없어요. 당신이 자주 농땡이를 부린다는 보고를 받아서 제가 직접 데려가는 거예요. 제가 옆에 있으니 농땡이 부릴 생각은 하지 마세요.”
"농땡이라니… 억울한데요."
“그럼 묻죠. 어제 어디에 있었나요?"
“신보와 대련하고 있었습니다. 대련을 통해 서로를 갈고 닦았죠. 우린 아카데미의 학생이니 본분에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만."
"말은 잘하네요. 학생회의 일도 당신의 본분이에요. 당신은 지금 학생회 소속이니까요. 그저께는 어디에 있었나요?"
"……."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가부키초에 가서 창녀들과 좆질 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의 농땡이를 허락해 줄게요. 당신은 원래 학생회 소속도 아닐뿐더러, 한국 아카데미의 교류생이니까요. 하지만 학생회 일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주세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전 거짓말 하는 남자를 싫어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의 치마가 흔들렸다. 아쉽게도 허벅지 일부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레이첼을 어떻게 공략할지 정했다.
인벤토리에서 하얀 구슬 팔찌를 꺼내 손목에 찼다.
[럭키 스케베 부적
손목에 착용하면 발동되며 일회용입니다.
일주일 동안 럭키 스케베가 일어날 가능성이 대폭 상승합니다.
가격: 10 포인트
※주의
부작용이 있습니다.]
'럭키 스케베 부적. 오랜만이네. 부작용이 좀 심하긴 한데… 감당할만한 가치가 있지.'
부작용이 꽤 심하다. 갑자기 질병에 걸리거나,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을 맞는다거나. 완전 회복이 없다면 엄두도 못낼 정도의 부작용이다.
'완전 회복이 있으니 고통만 대충 견디면 돼.'
좀 즐기다가 팔찌지를 벗으면 된다. 일회용인지라 다시 착용하면 럭키 스케베 효과는 사라지지만 가격이 10포인트밖에 안한다.
우리는 구교사에 도착했다.
"저기가 구교사예요. 그동안 최소한의 관리만 해와서 그런지… 폐교까지는 아니어도 으스스한 분위기네요. 성 군은 혹시 무서운 거 싫어하시나요?"
"제가요? 저 귀신도 때려잡아 본 적 있습니다."
“하하. 안 무섭다는 말이네요. 그럼 들어가서 살펴볼까요. 위험한 부분이 보이면 바로 말해주세요.”
구교사 입구로 들어간다.
-이야옹~!
입구 옆, 어두운 그늘에서 검은 고양이가 튀어나왔다.
"꺄악!"
그녀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때, 고양이도 깜짝 놀라 도망간다. 하필이면 도망가는 방향이 레이첼의 치마 쪽이었다. 치마가 크게 펄럭이고 그녀의 커다란 엉덩이를 감싼 보라색 팬티를 볼 수 있었다.
'헉.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팬티는 존나 섹시하군! 아주 좋아!'
럭키 스케베 부적의 효과는 확실했다.
레이첼은 얼굴을 붉히며 치마를 눌렀다.
"봐, 봤어요?"
"보라색 팬티요? 의외로 잘 어울리는 팬티였습니다."
"봐, 봤군요…!"
“그렇게 노려보셔도… 보인 걸 어떡합니까. 불가항력이었습니다."
“…하아."
레이첼이 한숨을 내쉬었다. 불가항력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그녀가 더 잘 알았으니 내게 따질 수도 없다. 럭키 스케베란 원래 그런 것이다.
위이이이이잉.
오른쪽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아, 젠장. 벌써 부작용이 오네. 이번엔 좀 빠르네.'
아프지는 않다. 단지 이명이 크게 들려서 좀 많이 거슬릴 뿐이다. 이명은 5초도 지나지 않아 멎었다.
'후. 다음에 올 부작용은 뭘까. 각오하고 럭키 스케베 부적을 사용했는데도 걱정되는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나는 일단 럭키 스케베를 즐기기로 했다.
“뭔가 느낌이 안 좋네요."
“돌아갈까요?”
"아뇨. 여기까지 와서 느낌이 안 좋다고 돌아갈 수는 없죠. 일은 일이니까요."
레이첼은 낡은 나무문 입구를 열고 구교사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 삐죽 튀어나온 가시에 치마가 걸렸다. 당사자인 레이첼은 눈치채지 못했다. 치마가 올라가고 보라색 팬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녀가 앞으로 더 걸어갔다. 치마는 자연스럽게 가시에서 벗어나 아래로 내려갔다. 레이첼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통 치마가 저 정도 올라가면 알아차려야 정상이지만…. 럭키 스케베 부적 효과 때문에 못 알아보는군. 역시 대단한 물건이야. 부작용만 아니면.'
뒷골이 약간 당겼다. 목을 좀 움직여주자 당기는 느낌이 사라졌다.
삐걱삐걱.
복도를 걸을 때마다 바닥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 바닥이 썩었군요. 이건 위험할 것 같으니 바꿔야겠어요."
“이것도 저희가 바꿔야 합니까?"
“아뇨. 주술과에 알려주고 검사만 하면 돼요. 구교사를 쓰는 건 주술과니까요. 음. 창문은 의외로 쓸만한 것 같네요. 깨진 부위도 적고요."
"저, 회장님. 그 쪽으로 안 가시는 쪽이 좋을 것 같은데요."
"네?"
내 말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은 바로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창문을 보며 걷던 그녀의 오른쪽 발이 구덩이로 쑥 들어갔다.
10cm 정도의 구덩이는 그녀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꺄아악!"
그녀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넘어진 자세가 야했다. 무릎을 세운 뒤 엉덩이를 위로 치켜들고, 상체는 땅바닥에 붙였다. 고양이 자세. 즉, 뒤치기에 최적화된 자세였다. 나는 보라색 팬티 중심을 집중해서 봤다.
도끼 자국이 선명하다. 보지가 팬티를 먹은 것이다.
'저것도 쉽지 않은데… 보지가 보통 두툼한게 아니군.'
군침이 싹 돈다.
"저기요! 잡아줄 순 없었나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레이첼은 얼굴을 잔뜩 붉히고 날 노려봤다.
좀 억울했다. 넘어진 건 자기면서. 거기다 난 경고까지 해줬다.
"회장님이 넘어질 거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회장님 정도면 감각으로 알고 계실 줄 알았죠."
"……전 평소에는 그랬겠죠."
"…평소에는? 오늘은 다릅니까?"
"컨디션이 안 좋네요. 정확하게는 이 구교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당신은 어떤가요?"
"전 평소와 같습니다."
“…아무튼 다음번에는 제가 넘어질 것 같으면 잡아주세요. 그게 매너예요."
"한국에선 여자 함부로 만지면 큰일 납니다. 쇠고랑을 찰 수 있다고요."
"제가 그럴 일 없으니 걱정 마세요!"
우리는 구교사 교실 하나, 하나를 둘러봤다. 옛날 느낌이 너무 났다. 그리고 쓰레기가 많았다. 과자 봉지나 음료수 캔 같은 쓰레기들이 대부분이다. 담배도 흔하게 보였다.
"학생들이 아지트로 사용한 흔적이 있네요. 하아. 구교사는 학생 출입 금지 구역일 텐데…."
"뭐, 이런 곳에 이상한 로망 같은 게 있는 법이니까요."
“이 교실은 청소하면 쓸 수 있겠어요."
그 옆에 있는 교실에 들어간 순간이었다.
내겐 익숙한 냄새가 났다.
약간 비릿한 묘한 냄새.
나는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이건…!"
레이첼이 깜짝 놀랐다. 그녀의 앞에는 사용을 끝낸 콘돔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는 교실 중앙에 놓인 책상들이었다. 침대처럼 이어 붙였는데 그 위에 성인용품과 마른 액체 자국이 있었다.
레이첼이 얼굴을 붉히며 할 말을 잃었을 때, 나는 차분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성인용품 대부분이 남자 거잖아? 여자 것도 간간이 있긴 한데… 여기서 SM 플레이를 했다고?'
도구 종류를 보니 남자가 M. 여자가 S다.
'냄새를 보니 어젯밤에 하고 갔구만.'
아라시 아카데미. 생각보다 화끈한 곳이었다.
"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뭐, 뭘 어떻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