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4화 > 1424. 아카데미의 구원자
나는 마키나와 스톰브레이커를 역소환하고 클라라에게 다가갔다.
손에 피리를 든 클라라는 다소 경작직된 태도로 날 바라봤다.
"네가 그 유명한 다크 히어로인 적광일 줄 몰랐어."
이 세계의 적광은 용서 없이 빌런을 죽이는 다크 히어로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사적제재를 범죄다. 따라서 적광은 빌런에 해당된다. 현상금으로 80억까지 걸려 있다. 최근에 또 현상금이 올랐다.
내가 적광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 겸 선 카르마를 올리기 위해서다. 빌런을 죽이면 조금씩이지만 선 카르마가 오른다.
"히어로 협회에 신고할 거야?"
"그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아.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네게 궁금한 게 많긴 한데… 참도록 할게. 그래도 이것만은 대답해줬으면 해.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너무 타이밍 좋게 끼어들긴 했다. 그녀가 날 의심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클라라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클라라 페이레드
근력: D 체력: D+ 민첩: D-내구: D+ 마나: B
특성: 빛나는 뮤즈(S)
스킬: 연주(A), 음의 파동(B-)
호감도: 42』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호감도다. 원래 30도 되지 않던 호감도가 40까지 올랐다. 클라라는 내게 상당히 고마워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적광이라는 비밀을 알아내서 편해졌거나. 내가 일방적으로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들었을 테니까.'
“시내를 지나가다가 네가 딱딱한 표정으로 여기에 오는 걸 봤거든. 경호원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게 이상해서 몰래 따라와 봤지. 아니나 다를까. 일이 발생했더라. 왜 경호원 없이 움직인 거야?"
클라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경호원 없이 방에 틀어박혀 곡이나 쓸 예정이었거든. 팀과 만나기로 한 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어."
클라라의 시선이 옆으로 향한다. 그 시선 끝에는 아직 체온을 품고 있는 팀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를 본 클라라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사람을 죽인 것으로 내게 뭐라 하지 않는다. 클라라의 성향이 그랬다. 클라라는 범죄자에게 가차 없는 여자다.
"갑자기 널 찾아왔다고?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어?"
"조금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긴 했어. 그래서 음파로 주변을 탐색하고 만났는데… 설마 텔레포트로 갑자기 마도정의 간부를 부를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어. 네겐 감사하고 있어. 네가 아니었다면… 상황은 최악이 되었겠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신고할 거야?"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우리끼리 끝냈으면 해. 시체는… 내가 묻을게."
"네 뜻에 따를게. 나도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 건 마찬가지니까. 시체는 묻는 것보단 아예 소각하는 편이 나아."
"소각…? 그건 연기가 너무 나지 않아?"
"괜찮아. 순식간에 소각해 버리면 되니까. 아니면… 뭐, 유품 같은 걸 가족들에게 챙겨줘야 한다는 건 아니지?"
"……이 사람들의 가족들이, 이 사람들을 자랑스럽게 여길까?"
"글쎄."
확답할 수는 없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들을 싸고도는 사람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나와 클라라는 적당한 곳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넣었다. 마키나의 힘을 이용해 초고열 플라즈마 방사기를 만들어 순식간에 시체를 소각한다.
"클라라.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적광인 건 비밀이야.”
“…비밀은 지켜줄 테니 걱정하지 마. 이래 보여도 입은 누구보다 무겁다고 자신하니까. 그리고… 일부 사람들은 너를 빌런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지만, 내겐 넌 다크 히어로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경호원 일도 해줄 수 있어. 아, 햄슨 헤밍포드 목을 따오는 건 지금으로선 좀 어렵지만."
"날 위해 햄슨 헤밍포드를 죽이겠다는 거야? 그 헤밍포드 가문을 적으로 돌리겠다고? 농담으로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3]
정지된 것처럼 느려진 세계에서 클라라의 몸을 훑는다.
차분하게 정돈된 금발, 눈부신 벽안, 새하얀 피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조각품처럼 아름답다. 몸매는 또 어떤가. 키는 170cm에 큰 편이고, I컵에 달하는 커다란 가슴과 얇은 허리, 가슴 못지않게 시선을 끄는 커다란 엉덩이, 토실토실한 허벅지와 길쭉한 팔다리 등등. 섹스를 위해 태어난 여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꼴리는 몸매의 여자다.
'다시 봐도 내 여자가 되기에 충분하군.’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농담 아니야. 이미 적광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미국이고, 헤밍포드고 뭐가 대수겠어?"
"……날 위해 미국을 적으로 돌리는 남자라. 조금이지만 설랬던 것 같아."
클라가 웃는다.
얼굴색 변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설렌다는 말도 거짓인 것 같지만… 놀랍게도 진심이었다.
『클라라 페이레드의 호감도: 45』
42였던 호감도가 단숨에 3 올라 45가 된 것이다. 그녀는 정말로 내 말에 설렘을 느낀 것이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클라라는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가 답답한 듯 말했다.
"악수 몰라? 왜 가만히 있어? 아니면 내 손이 더러워?"
“악수를 하자는 건 알겠는데… 왜 갑자기 하자는 지 몰라서 생각하고 있었지."
“앞으로 친구로서 잘 지내보자는 뜻이야.”
"뭘 새삼스레…."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그거 알아? 네가 한국에서 사귀는 첫 친구야."
"내가 처음이라고? 네 연예인 친구들이 있잖아."
“너도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네. 걔들은 친구라기보다는 직장 동료지. 카메라 돌아갈 때 친한 척하는 사이. 걔들 중 절반은 내 인기에 탑승하려고 접근하는 거야?"
"나머지 절반은?"
"내 몸이 목적이지.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엄청나잖아?"
"인정. 햄슨 헤밍포드가 푹 빠진 마성의 여자지."
“……친구가 아니었다면 그딴 농담은 듣자마자 욕했을 거야."
“친구니까 한 거야."
클라라는 실없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웃었다.
이윽고 우리는 같이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같이 저녁식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스캔들이 나면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아라시 아카데미의 낡은 기숙사는 좋은 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 하지만 이 기숙사의 장점이 단점을 참을 수 있게 해준다.
'여자들 방이 근처에 있어서 만나기 쉽다는 거지. 특히 나랑 관계있는 여자들과는 섹스도 할 수 있고.'
방음처리는 잘 되어 있었기에 조심하면 다른 사람에게 들킬 일은 없다. 방음 시설이 없더라도 내 능력으로 소리 정도는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
'두 번째는 커다란 목욕탕. 백환 세계에서는 기본 옵션이지만… 다른 세계에선 커다란 목욕탕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지.'
목욕탕은 남탕, 여탕이 따로 없었다. 혼탕이란 뜻은 아니다. 시간마다 남탕과 여탕이 서로 바뀌는 것이다.
'다른 애들은 귀찮다는 이유로 목욕탕을 잘 안 쓰는 모양이지만.'
샤워라면 방안에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물론 귀찮거나 급할 때는 방에서 샤워하지만, 시간이 있을 때는 목욕탕을 이용한다.
오늘도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 입구에 판이 세워져 있다. 빨간색 천에 여(女)라는 한자가 적혀 있다.
그 뜻은 간단하다. 지금 목욕탕은 여자들이 사용하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 없지.'
나는 히죽 웃으며 귀신 망토를 꺼내 입었다.
투명인간이 되어 여자 목욕탕 훔쳐보기. 남자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오늘 성하리는 아라시 아카데미 학장이랑 이야기할 게 있다고 늦게 온다고 했어. 즉, 목욕탕에 성하리가 확실하게 없다는 거야.'
귀신 망토는 일루시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지만, 그게 만능이란 소리는 아니다. 성하리 정도의 강자면 귀신 망토를 써도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다.
'여탕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 아닌데… 들어갈 때마다 설레는군.'
여탕으로 들어갔다.
바로 신발장을 확인한다. 신발장에 들어가 있는 슬리퍼는 2켤레다. 슬리퍼에는 이름이 적혀 있다.
최다연, 류하나.
다소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나는 탈의실을 지나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으로 가는 문은 미닫이로 닫혀 있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누군가가 들어갈 때 함께 들어가는 거지만… 누가 언제 올지 알 수 없고, 누가 언제 욕탕에서 나갈지 알 수 없다. 위험하더라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그녀들의 알몸을 볼 수 있다.
'조심하면 돼. 조심하면. 다행히 입구는 욕탕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으니까.'
극심한 컨트롤이 필요했다. 나는 문을 살짝 열었다. 새끼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만큼의 틈이 벌어졌다. 눈을 갖다 대며 내부를 확인한다. 다행히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눈동자만 살살 굴려 그녀들의 위치를 확인한다.
최다연은 온천처럼 꾸며진 탕에 들어가 있었고, 류하나는 샤워기에 있었다.
'류하나가 가까운데… 어?'
류하나가 밖으로 나온다.
나는 놀랐지만 침착하게 조용히 문을 닫고 뒤로 물러났다. 류하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입구에서 수건으로 몸을 닦는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류하나는 몸을 대충 닦고 긴 연보라색 머리카락을 꼼꼼히 닦았다. 나는 차분히 그녀의 몸을 훑어봤다.
'역시 생각대로 옷을 입으면 말라 보이는 스타일이군. 진짜 몸매는… 아니, 잠깐. 가슴이 생각보다 더 큰데?'
나는 깜짝 놀랐다.
설마 류하나가 내 예측을 벗어나는 몸매를 소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옷을 입었을 때는 꽉찬 B컵인데, 벗은 몸을 보니 F컵이군! 모양도 좋고, 꼭지도 분홍색이야.'
허리에 군살하나 없는 건 당연했고, 엉덩이로 올라가 있으며 탱탱했다. 보지는 일부만 보였는데 분홍색이다. 털도 있었으나 매우 옅었다. 머리카락과 같은 연보라색이다. 색이 옅어서 자세히 봐야 털이 보인다. 멀리서 보면 백보지로 보일 것이다.
그녀를 만지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참았다. 류하나 공략은 아직 진행 중이다. 여기서 망칠 수 없다.
류하나는 머리카락을 대충 닦고 속옷을 입기 시작했다.
'스포츠 브라? 저 커다란 가슴이 압축되다니… 말라 보이는 이유가 있었군. 잰 답답하지도 않은 건가.'
저 가슴을 압축할 수 있는 스포츠 브라의 성능도 놀라웠다.
류하나가 떠나고 다시 목욕탕 문을 살짝 열었다. 최다연은 아까와 달리 탕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탕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허벅지를 쩍 벌리고는 손가락으로 보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목욕탕에서 자위하는 중이다.
'최근에 섹스를 안 했지… 욕구불만이겠군.'